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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업무마비된 국민은행서 본 사람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업무마비된 국민은행서 본 사람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과부하걸린 국민은행 지점에서 시간 날려보니


국민은행, 넌 내 스케줄을 잡아먹어줬어. 
어떻게 하필이면 오늘 일이 생기냐.




28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난 서두르고 있었다. 개인일정상 부산에 다녀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음주 예정된 스케줄 하나가 갑자기 이 주로 당겨진 터라 출발을 서둘러야 했다.

월말에 집을 비우려니 할게 많다. 따땃미지근한데다 습기가득한 날씨에 비워놓을 쓰레기통, 그리고 세금도 연체를 피해 미리 납부해야 하고... 딱 한번 봤던 아홉살 이종사촌에게 줄 선물도 사야 한다. 일단은 돈부터 뽑고 나서... 응?

그런데 타행에서 처리를 하려니 이게 안되는 것이었다. '타행 출금 장애' 뭐시기 하는 기괴한 상황보고가 뜬다. 카드를 통한 출금은 물론이요, 심지어 잔액조회도 안된다. 공과금 납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 서른살 생일이 지난게 뭔가 문제인건 아닐까. 이런 이야긴 못 들어봤는데.

지갑을 TV에 올려놓은탓에 마그넷이 열받았나.

뭔가 큰 문제가 있는건 어닐까.

내 거래 은행은 국민은행. 결국 가까운 지점까지 찾아가야 했다. 헌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직원들은 급조한 출력물을 여기저기다 붙여놓으며 찾아온 주민들에게 뭔가를 알리고 있었다. 설마 했던 몇가지 가정 중에 하나가 들어맞는 순간, 그 이름은 '전산 장애'.

차라리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개인에 생긴 문제는 아니구나... 허나,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돈줄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된거예요?"

난 관계자에게 놀란 토끼눈으로 물었다.

"서버가 갑자기 놀랐어요."

나만 놀란게 아니라 서버도 놀랐네. "언제부터 가능하냐"고 물으니 "1시"라고 답하는 관계자. 그러나, 그의 혼잣말 하나가 꼬리를 문다.

"아, 1시에 되면 좋겠는데..."

지금 시각은 12시 40분. 20분 뒤에도 어찌될지 모른다는 암시였다. 돌아서다가 하나 더 물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11시쯤이요."




오후 1시. 집에 갔다 다시 돌아온 나.
직업병이다. 마음은 바빠 죽겠는데 이 와중에도 "왜 내가 카메라도 휴대전화도 안 가져 왔지" 하며 냅다 달려가 챙겨온 길이다. 돌아와 얼른 단신 기사도 하나 내보내고, 인터넷 상황을 보니 막 소식이 전해지는 터였다. 머니투데이 등 2곳에서 34분전, 16분전 업데이트된 속보가 확인된다. 트위터 등지에서도 불편함과 더불어 알수없는 불안감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한 네티즌은 "점심값 계산하려다 카드가 막혀 뻘쭘했다"고.

다시 돌아와 보니 상황은 달라진게 없다.

"본사에선 오후 1시부터 된다고 했거든요?"

"아 지금이 1신데 언제 된다는 거야?"

입구에 들어서려니 한 아주머니가 볼멘 소리를 한다. 안으로 들어서려던 한 고객은 ATM기기실로 들어서려 했지만 "창구 뿐 아니라 기계도 다 막혔다"는 말에 우뚝 멈춘다.

더운 날씨,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는 편이 낫다. 월말의 오후. 한참 바쁠 시간에 창구 앞은 한산하고, 주민들은 예비군 시청각 교육마냥 앉아 발만 구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왜 나는 여기 있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꼭 여기서 돈 안 찾아도 되잖아? 집에 돌아갔다 가까운 타행에서 업무 보는 편이 현명할 것을. 어차피 스케줄이야 묶인거고.

난 스스로에게 자문 자답하다 끝내 여기 남기로 했다. 머리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정상화되는 모습을 끝까지 남아서 보고 싶었다. 그래, 멍청한게 아니고 무식한거지.

"아, 12시에 안된다 하고, 12시 30분에 또 안 된다고 하고, 1시에 왔더니 또 안돼."

한 아주머니가 "차암"하며 갑갑한 속내를 들어내 보였다. 안내원도 어쩔 도리가 없다. 본래는 12시에 마비가 풀릴거라 안내했건만, 지연되면서 2차로 "1시까지만"을 외치며 고객들 인내를 주문한 터였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그마저도 초과...



1시 하고도 10분을 넘기고 있다. 두시간째다. 11시경 부터라 했으니 이미 점심시간대를 홀라당 다 잡아먹었다. 이쯤하니 "왜, 대체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계속 날아든다. 관계자는 "월말이라 정산할게 밀려들어서 그만 전산에 과부하가 걸렸다"고 설명한다.

"여기 말고는 돼?"

"다 안돼요. 전국 어디나 다 똑같아요."

"그럼 되는게 뭐야?"

"상담은 가능하세요. 헌데 창구 접수, 기계, 공과금... 아무것도 안돼요."

"그냥 얼마 있는지도 못 보는거야?"

"안돼요."

할머니한테 설명해주는 안내원 청년. '더운날 욕보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에 묘한 호감이 느껴진다. 그도 더운지 잠깐 들어온 김에 셔츠에서 더운 기운을 툴툴 털어낸다. 기계가 더위를 먹으니 사람들도 지쳐가는 초여름의 낮. 그 때 한 소녀가 "안녕하세요"하고 코맹맹이 소리로 들어온다. 그제사 이 청년은 환히 웃는다. '그래도 너밖에 없다.' 하는 모습. 카메라로 찍지 못하는게 아쉬울 뿐. 

1시를 넘기며 정상복구예정시간은 다시 1시 30분으로 미뤄진다. "본사에서 10분 정도면 정상화될거 같다"고 알려오는 목소리. 그런데 그 때, 잘 기다리던 사람들을 순간 "욱"하게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갑자기 접수창구에서 알림벨이 들어오고, 접수대에 사람들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뭐야, 이제 되는 거야?" 하며 술렁이던 사람들은 무거워졌던 엉덩이를 들기 시작한다. 안내원은 어찌된 일인지 확인해 보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제사 일을 볼 수 있나"하는 안도감이 막 퍼져가는 순간이었다.

"아, 죄송한데 안돼요. 그냥 불만 들어왔어요."

땅이 꺼져라 탄식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 시간은 벌써 1시 30분에 닿는다.
한 아저씨는 "12시에도 안되고, 1시에도 안되고, 1시 30분에 와도 또 안돼. 몇번을 오고가냐"며 아까 누구와 같은 레퍼토리를 펼쳐보인다. 웃으며 들어주는 담당자.

ATM 센터로 가보니 줄섰던 사람들이 어이없는 듯 서로를 돌아본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시라"는 안내에 "그러지 말고 여기 에어컨이나 좀 틀어달라"고 주문한다. "시원하게 틀어주겠다"는 답변이 나오고, 갈길 바쁜 사람들은 이제 체념한 듯 그냥 기다렸다.


 

그나마 이 곳 지점원들의 대응능력은 꽤 맘에 든 것이, 쥬스하고 탄산음료를 내어놓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한잔씩 권하며 짜증을 식히고 있었던 점이다. 이쯤하면 여기저기서 원성이 자자할 만도 한데, 불안하나마 사람들의 인내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없었잖아."

"보통 서버가 마비되어도 한 30분? 그 정도면 복구인데... 이렇게 2시간 넘게 가는 일은... 그쵸. 없던 일이죠."

"아 국민은행이면 큰 덴데 이렇게 큰 곳이 왜 이러는 거야?"

한켠에선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사람들 표정에서도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온다.

컵을 두잔째 비우고 실내를 터벅터벅 걷다보니 김연아가 보였다. 갈라쇼 때의 검은 의상으로 자신에 찬 미소를 쏘아올리는 그녀의 표정도 지금 이 상태서 보니 '썩소'같다. 그래도.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 이 어퐈는 너때문에 국민은행을 놓을 수가 없구나.

업무가 정상화 된 건 1시 40분이었다. 공과금 시스템은 조금 더 걸렸고. 그제사 사람들은 2시간동안 멈췄던 시계를 돌린다. 다만, 내 시계는 하루를 넘기게 됐다. 부산은 내일 가야 겠구나.

돌아와서 한숨 돌린 뒤 인터넷 상황을 봤다. 재밌는 사연들이 많다. 이 중 하나를 골라본다. 네이버 유저이자, 깨소금 햄볶아라 하는 새댁 프리티 님은 "열폭입니다"하며 두통을 호소하다 세상에 중심에서 "킬 유"를 외쳤다. (http://blog.naver.com/sony_79/100108087200)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밝힌다. 카드가 거절당하고, "잔고없는거 같다"는 말을 듣고, 일순간 이상한 사람이 된 거 같았다고. 말하자면 "국민은행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정도? 갑자기 블로그 포스팅 찢고 김영철씨 튀어나올 기세.

...말이다. 모든게 볼펜과 장부로 돌아가던 어머니 아버지 시절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기기 시스템이 만사형통은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날씨가 더우니 기계도 더위를 먹는다. 그리고 기계가 더위 먹으면 사람들의 시스템이 정지를 먹고. 30년전에 부모님 세대에서 봤다면 이런 일도 있구나 신기해 했으려나.

여튼 국민은행, 넌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했고.

국민은행, 넌 새댁에게 모욕감을 줬어.

국민은행, 니가 날 붙드는 바람에 오늘 차를 못 탔어. 무슨 계시를 내려주신건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만약에 말야. 내일 더 좋은 만남을 이뤄주려고 이런 거라면 좋겠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