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우 다이어리

[성우인터뷰] 홍범기 "마이크 살짝 비껴서면 더 재밌는 세계"

[성우인터뷰]9.홍범기 "마이크 살짝 비껴서면 더 재밌는 연기 나온다"
 
 



 
 
"이 사진 어떠세요?"
"으음, 이 사진만 빼주세요!"
"다시 찍을까요?"
"아니요 아녜요. 아하하하."
 
결국 이 사진은 잠시 고민하다 넣기로 했다. 그것도 맨 첫 장으로. 두시간여 동안 지켜본 바 그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장이었다. 
 
"카메라 저도 하나 갖고 있는데. 장돌뱅이라서." 
 
주연을 하면 조연같이, 또 조연을 하면 주연같이 그렇게 나만의 존재감은 더욱 키워가는 성우 홍범기를 만났다. 
 
 

 
홍범기
2003년 투니버스 5기 입사
 
대표작
아따맘마 - 동동이 (투니버스)
카레이도스타 - 켄 로빈스 (투니버스)
파워레인저 와일드스피릿 - 칸도 쟝 (챔프)
우주인 타로 - 타로 (투니버스)
허니와클로버 - 노미야 (애니맥스)
돌연변이 아일랜드 - (투니버스)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 (투니버스)
은혼 (투니버스)
무적코털 보보보 (투니버스)
데뷔작 엑스드라이버 (투니버스)
 
노래 - 두근두근동물랜드 (무적코털 보보보)
 
 
 

 
 
2003년 투니버스 5기로 입사한 그는 올해로 벌써 그것을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기간동안 성우로 살았다는 얘기다. 
 
5기 가운데서도 전속때부터 한발 앞서 알려진 이름을 남자 중에 하나, 여자 중에 하나 꼽으라면 '홍범기'와 '이용신'을 꼽을 수 있다. 노래 잘하는 성우로 알려진 이용신은 연기 외에도 주제곡을 직접 불러 오프닝, 엔딩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여기 이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는 파격적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없을 만치 전속 때부터 굵직굵직한 배역을 꿰찼다. 성우가 된지 1년만에 주인공을 받은 것도 꼭 닮았다. 우선 이용신 성우는 달빛천사에서 주인공으로 낙점된다. 그리고.
 
 
 

 
출처 투니버스 아따맘마 홈페이지
 
 
2004년 투니버스가 방영을 시작한 홈드라마 아따맘마. 마지막 시즌인 8기까지 방영하면서 수년간 방송사의 간판프로로 자리잡는다. 이 작품의 팬이라면 그림만 봐도 어떤 목소리가 튀어나올지 이젠 훤히 알지. 바로 이 유쾌한 가족 중 차남인 동동이를 당시 전속 1년차의 성우 홍범기가 맡는다. 
 
"이걸 두고 주위에서 보험 들었다고 했어요. 오랜 기간 이어지는 장수 시리즈의 고정배역이 됐으니까요."
 
그는 "동동이야 뭐, 워낙 엄마의 비중이 커서 주연이라 할 거 까지야..."라면서도 당시엔 "나도 캐스팅 소식에 놀랐다"고 밝힌다. 결국 그는 동동이와 함께 완주하면서 성우 세계의 첫 10년을 닦았다. 
 
그러나 이 작품보다 더 신선했던 배역이 있다.
 
 

 
카레이도스타 투니버스 방영분 캡처
 
 
개인적으로 투니버스가 방영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카레이도 스타. 2005년 방영당시 이 50부작의 작품은 주연에 김서영 성우와 홍시호 성우를 데려온 것 외엔 딱히 외부성우를 들이지 않고 대신 투니버스의 1~5기 성우가 대거 집약됐다. 물론 그 두 사람의 존재감이 크긴 했으나 투니버스에서도 동창회를 방불케 하는 동원능력을 보였다. 
 
그리고 이 중에, 남자 배역 가운데 가장 주역에 가까웠던 이 꽃다운 소년을 당시 막내 기수였던 홍범기가 '또' 맡는다. 워낙 주인공과 라이벌 두 여자의 투톱 체제라 도드라지는 남자 주인공을 꼽기 힘들었지만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주인공 소라의 곁을 지킨 이 소년이 내가 꼽는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이다. 
 
그도 "켄이 남주라니"하고 부정하지만, 역시나 아직 전속이던 나에게 막중하다 못해 떨렸던 임무였노라 밝힌다. 
 
"켄은 어려웠어요. 카레이도 스타 자체가 어려운 작품이었죠. 큰 움직임 없이 내면연기로 승부해야 하니까. 옆에서 서영 선배가 계속 입도 맞춰주시고 도움을 주셨죠. 그 때 녹음분은 지금도 갖고 있어요."
 
"어떻게 했어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어요. 그게 최선이었고, 사실 그 때 목소리가 지금보다는 더 좋았어요. 순수한 목소리였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참고로 그의 데뷔작은 엑스드라이버였다고. 여느 이들의 입봉작처럼 한마디로 끝이었지만 그땐 그걸 어떻게 준비하나 노심초사했다. 
 
"행인이었죠. '우와 엑스드라이버다!' 하고 끝났던 기억입니다."
 
방송에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성우 본인이 들었을 때 기분은 어떨까. 특히 전속 때는? 
 
"방송국 안에서 송출되는 TV 본방송을 보다가 제 목소리가 나오죠? 듣다가 귀를 막았어요. '어떡하냐'하는 기분이었죠. 근데 요즘도 간혹 그래요."
 
 

 
 
적당히 수줍기도 한 남자. 지금은 도시에서 도도한 남자로 살아가는 성우지만, 어릴 적엔 바닷가에서 짠내 머금으며 놀던 소년이었다. 강원도 동해에서 짠내나는 바다를 보며 성우가 될 거라 예상은 했었을까.
 
"전혀요. 막연하게 방송 쪽 일을 그것도 목소리 쓰는 일을 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진행자, DJ를 먼저 생각했는데, 이게 너무 막연한 거죠. 그래서 도서관에서 방송일에 관한 키워드를 검색하다가 '성우'를 보고 '아 왜 이건 생각도 못 했을까' 한거예요."
 
그는 군을 마치고 대학 복학한 뒤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주말마다 원거리 성우공부를 다녔다. "학원이란게 있단 걸 알고 재밌겠다 싶어서 다녔다"고 밝힌다. 꼭 성우가 아니라도 방송계통 일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공부였고 그 때만해도 재미없으면 때려치우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재미가 있었군요."
"그래서 계속 했죠."
 
나중엔 졸업 전인데도 아예 서울로 자취생활을 떠나와선 녹음과 관련된 회사를 다니고 또 학원수업까지 병행했다. 강원도에서 학교 다녀, 서울에서 회사에 학원 다녀... 본인은 "원거리 통학, 통근하며 대충 졸업했다"고 하지만 정말 대충으로는 가능할리 없다. 대학전공과 생업과 꿈을 모두 쫓으며 지낸 20대였다. 
 
방송사마다 서류상으로 나이제한이 존재할 때였다. 4년, 5년인가를 기약없고 도박처럼 느껴지는 도전에 쏟았다. 그러나 서른이 될때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5,6번째 시험부터는 1차 통과도 연거푸 하기 시작했는데 결승선을 끊는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되질 않는다. 그래서 중압감도 컸다.  
 
"시험은 열번인가 쳤는데 8번째까진 욕심도 기대도 컸어요. 1차까진 가니까. 끝나고 돌아서면 매번 로또 2등 맞는 기분이랄까? 마지막 한자리까지 다 안 맞으면 결국엔 죄다 필요없는 거 있잖아요." 
 
돌이켜보면 "사실 성우 안되면 어떡하지? 란 걱정은 안하고 미쳐서 공부한 거 같다"고도 표현했다. 어디서 그런 긍정의 파워가 나오는 거지?
 
"처음 서울 상경할 때도 그랬어요. 산동네 단칸방서 혼자 사는데, 그래도 꿈을 먹던 그 때가 재밌고 좋았어요. 춥고 힘들었지만 그 조차도 재미있었죠. 어느날은 기분 좋게 집 앞 떡볶이 집에서 1인분 포장해 들고오면서 '나한테 주는 선물~'하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했죠. 그 땐 막연하게 나중에 성우가 되면 명동의 비싼 헬스클럽을 끊어야지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은 거들떠도 안보네요." 
 
"지금은 어떤 집에서 지내나요?"
 
"달동네에서 언덕배기로, 그리고 이젠 2층으로?"
 
그는 자신의 재능을 믿었을까. 그런데 공부할 때 칭찬받은 적이 없단다. 목소리, 발음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었다고. 그래도 매번 1차 패스가 용기를 주었나 보다.
투니버스 시험은 두번 봤다. 2000년 4기 시험 땐 1차 합격자 명단에 왜 내 이름이 없냐고 착오가 아니냐며 전화도 걸었다. "한마디로 미친거죠"라고 지금은 웃는다. 그러나 2003년 그해 시험 때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치뤘다고 한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수년간에 걸쳐 준비는 되어있었고 그렇게 합격하게 된다.
 
"그렇게 바라던 합격이었는데 실감은 나시던가요?"
"근데 그게요, 주변의 반응이란게 있잖아요. 합격했는데도 주변 분들이 시골분들이라 성우가 뭔지 알게 뭐에요. 시험 붙었다는데도 '그래서 취업은 언제할거니'라고 물을 정도였죠."
 
 
 
 
성우 공부하던 당시, 만일 고를 수 있다면 특별히 가고 싶었던 방송사가 따로 있었느냐고 물었다. 
 
"MBC요."
 
큰일났다. 최승훈 성우도 KBS였다고 하더니 투니버스 극회에서 이 연재를 보고 있다면 이래저래 머리 띵하겠다. 처음엔 그래서 학원도 MBC아카데미를 끊었다고 말한다. 그럼 투니버스는 언제 의식하게 된 걸까. 여기서 생각 못한 이름이 나온다.
 
"아카데미 다닐 때 우연히 투니버스 2기 성우분을 만난 거예요. 부탁해서 거의 무료봉사로 사사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땐 형이라 불렀는데, 이젠 그렇게 못 불러요."
 
은인이다. 처음엔 형이라 불렀고, 정작 같이 일하게 되면서부터는 그 말이 차마 떨어지는 않는 사람이 바로 최재호 성우다. 우연찮게도 이후 두 사람은 같은 작품에 나란히 서는 일도 별로 없었다. 소림사로 따지면 사형과도 같은 특별한 존재다.
 
"선배가 주역을 잡은 사무라이 참프루 때는 제가 엑스트라로만 나왔고, 또 아따맘마에선 선배가 잘 안나왔죠. 혹시 우리 사이를 알고 누가 배려해준건 아니겠죠?" 
 
 

 

 
 
그는 지금껏 만나본 성우 아홉 가운데서도 첫 손에 꼽을 만큼 다양한 표정과 재밌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팔색조같다. 정작 사진은 그리 많이 찍은 편이 아님에도 저마다 다른 모습들이 제법 많이 모였다. 
 
"그러고보니 파워레인저 레드도 하셨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탐나는 영광인데."
 
"아, 그랬죠. 그치만 그 레드가 멋진 레드가 아니라 아주 특이한 레드라 제가 캐스팅됐나봐요. 힘든 캐릭터인걸 알았는지 PD님도 힘든 캐릭터만 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은 악역에도 중복 캐스팅이 되는 바람에 주인공이랑 악당이랑 둘이서 싸운 적이 있죠."
 
"이름 때문 아닐까요? 홍 범 기. 레드 타이거 파워. 그 레드도 호랑이였으니까."
 
"그런가? 이름 뜻은 다른데. 아하하하."
 
파워레인저 와일드스피릿의 레드, 칸도 쟝 이야기다. 얼마전 캡틴포스에서도 게스트로 나와 "안녕 난 칸도 쟝이야. 호랑이 새끼지."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었지. 파워레인저 시리즈가 다 그렇지만, 특히나 이 친구는 방방 뛰는 캐릭터였다. 
 
그에게도 레드는 주연다운 주연이라 독특한 기억으로 남았다. 전속 때부터 주역을 많이 맡지 않았느냐고 하니 정작 자신은 "솔직히 원 톱 다운 주역은 별로 없었다"고 밝힌다. 
 
"주연보다는 튀는 서브를 많이 맡았죠. 기억에 남는다는 건 워낙 캐릭터마다 개성적이어서 그런 거고. 어떻게 주역급을 맡아도 한 중앙을 차지하는건 아니고 조금 옆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역할이에요."
 
그러고보면 그는 확실히 여러 주역이 동시에 나올 경우 조금은 살짜기 옆에 섰다. 혹여 한가운데 서서 메인을 장식하더라도 어딘가 모르게 살짝 비껴선 느낌이었지. 그와 나는 서로 기억을 더듬으며 그가 주인공이었던 작품을 꼽아봤다. 동기인 정혜옥 성우랑 나란히 남여 주인공을 맡았던 결계사, PD가 계속 연기를 잡으며 녹음해 갔다던 외계인 타로, 그리고 나루토 본편에서 외전으로 떨어져나와선 주연을 꿰찬 록리... 
확실히 수가 적진 않은데, 한결같이 개성파 주인공이었다. 감초같은게 마치 조역같은 주역이랄까. 
 
그럼 반대로 그가 살짝 비껴선 주역 내지 조역이었던 캐릭터를 찾아봤다.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그 쿨 가이. 인기 좀 끌었을 미소년이지만 확실히 주역은 아니었지. 블리치의 콘도 있다. 감초다. 그런데 때론 주인공보다 더한 존재감을 풍기는 이들이다. 때문에 조역이라도 꼭 주역같았을 때가 있었다. 주인공을 맡으면 감초같고, 감초를 맡으면 그게 또 주인공같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캐릭터와 연기를 즐겨요. 그 땐 즐거워서 NG도 잘 안 나고요. 정작 전형적인 멋진 주인공은 생각만큼 끌리진 않더라고요. 물론 그런 배역이 잘 돌아오지도 않지만."
 
그는 그렇게 마이크 앞에 서면 살짝 비스듬하게 위치하는 걸 즐긴다. 그렇게 바라보면 어느순간 자신은 또다른 주인공이 되어 있고,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살짝 달라져 있다. 그 묘한 세상에서 깡총깡총 뛴다. 근엄하게 저만치서 걸어가는 진짜 주인공과는 또다른 주인공이다. 이제 성우 경력 10년차, 그렇게 자신만의 연기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연기자로서 자수성가한 부러운 남자다.
 
 

 
 
요즘 근황도 비슷한 작품들의 연속이다. 장난스런 모습처럼, 투영되는 캐릭터도 작품도 앙증맞고 귀엽다. 닥터슬럼프 OVA를 녹음 중이라고. 물론 투니버스에선 한참 청춘닌자전 록리가 절찬리 방영 중. 오늘 저녁에도 EBS 작품 녹음이 있다.
 
애착이 가는 친구를 물었다. 그는 "역시 동동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블리치의 콘도 정신나간 채로 열연했다고 밝혔다. 
 
"혹사 당하는것 같다? 글쎄요. 확실히 전속 때 어느 선배님이 범기 너도 힘들겠다 목 많이 쓰겠네라고 안타까워하신 적이 있죠. 확실히 한번 이미지가 '쟤는 저거 전문이예요'라고 박히면 어쩔 수 없나 봐요. 항시 목관리는 잘 해야 하죠. 잘 먹고 잘 쉬고 그래요. 그거 말고 더 있나요. 담배 안해 다행이죠. 술도 별로."  
 
어쩌다 보니 높은 음을 잡고 날뛰는 애들 전문가가 된 홍범기.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진지한 남자를 연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선 독특한 경험이었던 파이브레인에선 조용하고 남다른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는 이에게 있어선 정적이고 조용하게 지나갔을지 몰라도 그에게 있어선 범상치 않던 분신이 있었는데.
 
"허니와 클로버요. 거기서 노미야라는 정말 남자로서 봐도 멋진 남자가 있었죠. 한 여자만 멋있게 사랑하고 바라보는 남자예요. 워낙 멋진 남자에 멋진 목소리가 가득했던 작품이었지만, 제 눈엔 노미야가 개 중에서도 가장 멋졌어요. 평소 저와는 다르게 중저음으로 연기했는데 성우 홍범기에게 있어서도 이는 좋은 공부가 됐죠. 정말 이례적인 캐스팅이었어요."
 
 

 
 
10년... 아니 11년차인가. 서른에 성우의 꿈을 이룬 남자는 어느덧 불혹이 됐다. 우리가 예전에 알던 불혹은 아니다. 여전히 장난기 넘치고 까불까불한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는 남자. 
예전에 비슷한 나이의 앤디 가르시아를 보고 미국의 여성들이 모 앙케이트에서 5위로 꼽았다지. 손잡고 집으로 데려가 욕실에서 씻겨주고 머리도 감겨주다가 부비부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픈 남자 순위로. 느낌은 좀 다르지만 그도 비슷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소년같은 성우 홍범기를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앞으로의 목표라. 사실 성우 수명은 나날이 짧아지잖아요. 그래서 걱정들 하죠. 노년까지 장수할 수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지금의 우리랑 같이 활동할 수 있는 베테랑 분들은 젊은이와 어울릴 수 있는 센스를 유지하고자 정말 무던히 노력하시거든요. 그래서 전 나이 먹고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성우가 될래요."
 
구체적인 롤모델도 말했다.
 
"이인성 선생님이요.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해 롱런하시잖아요. 연구도 항상 하시고. 우리가 대충 하는 건 아닐까 할 정도예요. 젊은이들과 통할 수 있게 지금도 개그 프로그램을 잘 챙겨보신다고 하더라고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홍범기의 남자. 써놓고 보니 뭔가 센스가 있는걸?
 
투니버스엔 그와 각별한 인연이 둘 있는데 한명은 사형인 최재호 성우였다고 밝혔지? 
또 한명은 동문이요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역시나 소림사로 친다면 틈마다 빗자루 들고 투닥대는 싸움친구랄까. 
 
"신용우요! 때론 우리끼리도 세월 좀 지난 작품의 목소릴 듣다가 '저거 니가 했냐 내가 했냐' 묻고는 해요. 감각도 비슷하고, 음색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만나기도 곧잘 만나서 어제도 같이 저녁 먹었고 오늘도 만나요."
 
한번은 그와 나란히 공동 주연을 맡아 진짜 누가 누구인지 막판의 끝을 달린적이 있는데, 그가 '지랄 맞은 애니'라고 평하는 돌연변이 아일랜드다. 요즘엔 가끔 새벽에 투니버스에서 틀어주는데, 이거 의외로 재밌다. 
 
"투톱이었죠. 재밌었어요. 맞아요. 서로 노래도 곧잘 하고. 이게 정말 특이한게 둘이 동시에 호흡을 맞추고 대사를 하는 신이 많은데요, 몇번을 맞춰도 쉬운게 아니거늘 우린 NG 한번 없이 죽이 잘 맞았어요." 
 
그는 "이 말고도 신용우와는 정말 많이도 같이 했다"고 말한다. 동기랑 묶여 캐스팅에 자주 어울리는 건 그럴법도 하지만, 연관 검색어에도 홍범기와 신용우가 나란히 걸리는건 좀 이상하지 않나?
 
"아는 지인이 저보고 '신용우가 누구니?'하고 묻기도 해요. '야 니 검색하니까 신용우가 나오더라'하고요."
 
 

 
 
그에게 있어 성우란 무엇일까. 그리고 자신과는 정녕 잘 어울리는 일일까. 스스로에 대해 '이래뵈도 얼굴이 자주 빨개진다'는 그에게 말이다. 
 
"저는 연기자의 끼도 있고, 부끄러움도 적당히 갖고 있어요. 실상은 내성적인 A형이에요. 그런 이에게 성우란 정말 하늘이 내려준 직업 같아요. 내향적이면서도 무대체질인 나에게 말이죠. 내게 성우는 '120%'예요."
 
현재는 아따맘마의 '아빠' 손종환 성우와 함께 출강을 나간다. 거기서도 십수년 전 자신을 닮은 지망생들을 만난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역시나 나이가 차서 고민하는 늦깍이 지망생들을. 그가 그 마음을 이해 못할리 없다. 
 
"나도 발음이 안 됐고, 지금도 고쳐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건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 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지적도 많이 한다"고 했다. 호랑이 선생님은 아니지만 덕분에 몇명은 울기도 했단다. 그의 진심이 제자들에게 여과없이 전달되길 빌었다.
 
 

 
 
"우와 저거 달이죠?"
 
밖으로 나와서 그는 맑은 오후에 뜬 희미한 달을 본다. '카메라 들고 나와 돌아다녀 볼까'라는 남자. 그런 자신에 대해 "장돌뱅이니까..." 라고 설명한다. 
 
황송하게도 점심으로 칼국수를 사 주었다. 소탈하고, 담백하다. 차를 갖고 다니는 것도 성미에 안 맞아 그저 지하철 타며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아따맘마의 오프닝에서 그러했듯 정말로 친구랑 가방 싸움하며 뛰어다니진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 동동이 친구의 성우, 신용우였어) 
 
이 남자는 여행하고 있다. 녹음실에서는 끼도 호기심도 많은 방랑자이고, 현실세계에서도 털털하고 그래서 도리어 깨끗한 나그네. 그래도 누가 이 남자의 마음만큼은 잡아주면 좋겠다. 아직은 어딘가 있을 반쪽을 성급히 찾지 않는다는 이 소년. 어디있을까. 하늘 멀리서 그의 눈을 사로잡는 저 달과 같은 사람은.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