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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다이어리

[성우인터뷰] 최승훈 "데뷔작 '경찰2 최승훈' 크레딧 7년째 간직"

[성우인터뷰] 6. 최승훈 "데뷔작 '경찰2 최승훈' 크레딧 7년째 간직"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배역이요? '경찰2'요. 대사가 딱 두마디였나."

 

화려한 주인공도 최고 흥행작의 캐릭터도 아니었다. 만 서른살의 성우 최승훈이 보낸 지난 7년간의 보물 1호는 첫 키스와도 같았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린 왕자' 최승훈을 만났다.

 

 

 

 

최승훈

2006년 투니버스 6기 입사

 

쟈니테스트(투니버스) - 쟈니

동쪽의에덴 (투니버스)

은혼 (투니버스) - 오키타 소고

어린왕자 (EBS) - 어린 왕자

나루토(투니버스) - 유우라, 우타카타

메르헤븐 (투니버스) - 소년

몬스터 (투니버스) - 경관2

명탐정 코난 (투니버스)

뷰티풀 죠 (투니버스)

노다메 칸타빌레 파리편, 피날레 (애니맥스) - 테요

로젠메이든 (퀴니)

트리니티 블러드 (투니버스) - 알렉산드로 18세, 윌렘

가정교사히트맨 리본 (투니버스) - 로크

캐릭캐릭체인지 (투니버스) - 소마

와라! 편의점 (MBC) - 강민준

안녕 자두야 (SBS)

 

 

 

'유키의 황태자' 만나보니 수줍은 소년 

 

최승훈은 2006년부터 투니버스 6기로 입사해 햇수로 7년차 성우가 됐다. 지금까지 만난 성우들 모두가 10년차 내외의 젊은 기수지만, 공중파에 비해 활동반경이 비교적 한정되는 케이블 방송사 출신임을 감안하면 지금 그의 성우인생 초반부는 향후 조명받을 만한 것이다. 전속기간 중 장편 연작 애니메이션의 주연을 꿰찼고 현재는 공중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타 방송사 작품 크레딧 상위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금 EBS에서는 어린왕자로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고 SBS에선 국산 창작물 '안녕 자두야'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MBC에서 방영한 웹툰 원작의 '와라 편의점'에서도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팬 뿐 아니라 그를 비롯 투니버스 6기 성우들도 스스로를 '투니 유키'라고 부른다. 이런 그에게 '유키의 황태자'라고 했더니 그는 손사래를 친다.

 

"써 주세요. 황태자를 불러냈더니 웬 황태가 왔더라고."

 

 

 

 

시즌 도중 더빙 끊긴 작품, 집에서 나홀로 더빙해 보기도 했다 

 

그에게 가장 애착가는 작품을 소개해 달라 했다. 그는 "아무래도 내 인생에 있어 첫 주인공이었던 쟈니테스트부터 말해야겠다"고 말한다.

 

"전속이 채 끝나지 않은 2년차 말에 맡았어요. 우리 기수 모두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세대지만 그 중에서 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만나기 힘든 행운이었죠."

 

미국산 카툰의 소년 쟈니는 그의 목소리를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에 익히는 계기가 됐다. 시즌2의 방영을 앞둔 3년전 스치듯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의 차림새는 영락없는 쟈니였다. 캐릭터와 동화되고자 평소 혹은 녹음당일 의상을 매치하는 성우가 있다더니 사실이다.   

 

그 외에도 애착이 가는 작품이 많다고. 입사 직후 투입됐던 메르헤븐의 알비스나 골수팬을 보유한 은혼1기(번역 및 더빙 퀄리티는 호평받았으나 시청률과 시청연령 문제로 2기 방영 계획은 지지부진하다)에서 성깔있는 오키타를 맡았을 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실 은혼 다음 시즌을 저도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데 몇년째 이뤄지질 않아서 혼자 '셀프 더빙'도 해봤어요. 집에서 원판을 틀어놓고 제가 맡은 캐릭터 입에 맞춰 대사를 읊었죠. 꼭 다시 오키타를 해 보고 싶어요."

 

"혹시 자니나 오키타가 본래 자기 성격과 맞는 인물들이냐"고 물었더니 "그럴리가"하고 웃는다. 확실히 이날 만난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이 외에 극장개봉작 섬머워즈에서도 주인공 켄지로 활약했다. 이제 20대와 이별하는 이립의 젊은 장수가 내보일 이력치고는 상당히 화려하다.  

 

 

 

 

딱 두어마디였던 데뷔 역할이 내 일생에서 가장 벅찼던 순간

 

그러나 그가 가장 벅차올랐던 순간의 배역은 따로 있다. 화려한 주인공도 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유명작품의 출연 때도 아니다. 성우로 처음 데뷔할 때 맡았던 '경찰 2'라고. 따로 이름도 없고 1도 아닌 그냥 경찰 2였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마이크 앞에 섰던 건 몬스터라는 작품이었어요. 거기서 제가 맡은 역할이 경찰 2예요."

 

마침 이 자리엔 그의 동기인 투니버스 6기 최지훈 성우도 나와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게스트가 된 그는 여러모로 그와 닮아 있다. 예를 들면 그 첫 작품이 그랬다.

 

"그 때 네가 꼼짝 마! 하면 내가 먼저 간다! 였나? 뭐 대사가 그랬어요. 그 작품을 동기인 이호산 성우도 함께 했었는데 우리 셋 다 그 때 이야기하면서 우리 일생일대의 최고 연기였다고 회고해요."

 

최승훈 성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처음으로 했던 그 녹음분을 이후 어떤 주연작보다 잘 했던 명연기였다고 기억한다. 70편에 달하는 장편 중 어느 한편 스치듯 그렇게 두어마디 분량이었지만 그 편이 끝나고 스탭롤이 나올때 '경관2 - 최승훈' 이라고 찍혀 나온 자막은 캡처해서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이길이 가보로 전해가겠다고.

 

 

 

 

다른 출연 작품 이야기를 더 해보기로 했다. 최근엔 '도쿄 매그니튜트 8.0'에 출연했다. 로봇을 좋아하는 소년으로 잠깐 나왔지만 알아보는 팬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치만 요즘엔 친구들이 원피스의 브룩을 제일 좋아하더라고요."

 

"아직 TV판에선 출연 안 한걸로 아는데."

 

"등장하려면 한참 멀었죠. 그래서 선행 상영된 극장판 스트롱월드를 통해 먼저 선보였어요."

 

"그럼 이후 TV판에서도 브룩으로 캐스팅이 확정된건가요."

 

"맞아요. 그럴 겁니다."

 

"웃음소리가 어렵진 않았어요?"

 

"요호호호호! 하는 거요? 안 어려웠어요. 그보다는 캐릭터 자체의 느낌을 잡는게 어려웠죠. 그 외에는 선더일레븐 극장판에서 악당으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겁니다."

 

 

 

 

지금 녹음중인 작품으로는 어린왕자가 있다. EBS에서 방영중인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동명 고전을 연작 애니메이션화한 것으로 당당히 주인공을 맡았다.

 

원작처럼 흘러갈까? 그는 "대본이 아직 다 안 나온 현재진행형 시기라 아직 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팬이라면 꼭 찾아볼만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작품인 동쪽의 에덴에서도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넌지시 말을 던졌다. 악역이지만 이용만 당하고 결국엔 자기 분노에 못 이겨 방아쇠를 당기는 캐릭터였는데 본인 스스로도 "좀 어려웠던 캐릭터"라고 말한다. "물론 작품 자체는 나에게도 좋은 작품으로 남았다"는 말과 함께. 종합해보면 그는 동네 편의점에서 만날 법한 사람좋은 오빠 형을 비롯해 개구장이 틴에이저, 어린왕자, 뼈만 남은 해골(?), 주위에 휘말리는 유약하고도 격정적인 악역까지 다양한 연기경험을 해 왔다.

 

 

 

 

합격하고 "왜 내가 다닌 학원에 내 이름 없지?" 귀여운 소심함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매우 평탄하게만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어린왕자의 발자취, 물론 그럴리는 없다. 그도 출발선에 섰을 때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

 

"군 제대 후 스물네살부터 성우를 목표하고 2년간 공부했어요. 솔직히 그 때의 각오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했죠. 그 힘든 군대도 제대했는데 뭘 해도 되지 않겠냐는 막연한 각오요. 스터디모임에 가입해볼까 했는데 거기도 오디션이 있었어요. 그래도 거기서 '참관이라도 시켜줄테니 와 봐라'하고 도와준 것이 현재 EBS 성우인 김창렬 선배예요. 처음으로 대본이란 걸 받고 입을 떼어봤더니 들려오는 말은 '열심히 해봐라'는 딱 그 정도 소리였죠."

 

 

 

 

그는 언제부터 성우를 꿈꾼 걸까. 그는 "어릴적부터 막연히 연기자를 원했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성우를 생각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처음엔 막연하게 연극무대를 생각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는 얼굴이 안 돼요. 사지도 짧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연기자는 되고 싶어요. 그렇게 비주얼을 빼고 나를 보니 오디오가 남았고 그제서야 선택할 길이 확실해졌어요."

 

그는 대학에 들어가 우선 방송국 아나운서 활동을 하며 성우 준비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만난 성우들 중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이 여럿 있다. '성우가 되는 데엔 실력뿐아니라 운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그의 말대로라면 졸업 후 2년만에 성우가 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운도 실력이라는 것. 그가 2년간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발휘했는지는 그의 겸손한 언행만으로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운좋게 2년만에 됐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서른살까진 계속 도전하지 않았을까"라고. "백수 겸 지망생으로 1년을 보내니 아버지가 언제까지 할거냐고 한 말씀하시더라"던 그가 정작 꿈에 그리던 합격을 손에 넣었던 순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뜻밖에도 소소한 것으로 고민했었다고 말한다.

 

"합격한 뒤 제가 다닌 학원의 소식판을 봤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합격생 배출' 하며 이름을 올리는데 전 없더라고요. 그래서 '왜 내 이름은 없지'하고 소심하게 고민했던게 기억에 남아요."

 

 

 

 

합격 후 방송국에서 만난 성우와의 첫 만남? '눈부셨다'

 

"최승훈, 황태자 맞아요."

 

최지훈 성우는 나이 어린 동기를 두고 그렇게 말한다. 둘 다 서로 "내가 유키 중 제일 못나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벌써 두번에 걸쳐 후배를 받았고, 이젠 그들 눈에 빛나는 존재가 됐다. 그들도 선배들을 보며 그러했듯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봐요. 지망생 시절에 '난 어느 방송사 성우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생각했었어요?"

 

대답은 생각 이상으로 확실하다.

 

"당연히 KBS 가고 싶었죠."

 

그는 솔직히 처음엔 KBS에만 성우가 있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 때만 해도 투니버스 성우에 대해선 무지했어요. 여자친구들에게 인기 좋다는 투니버스 선배들 이야기를 들을때면 대화에는 못 끼고 '김장? 누구야 그게?' 하고 속으로 되뇌었어요."

 

그러던 그가 투니버스 성우에게서 빛을 봤다. 합격 후 회사에 찾아가 녹음실이라는 곳을 처음 들어갈 때였다. 합격자 신분으로 참관하게 된 작품은 개구리중사케로로였는데 녹음실 문이 열리자 투니버스 간판이자 1기 선배이며 본작의 주연이었던 '우주성우'(한 에피소드 중 아예 전 우주적 인기성우로 이름을 당당히 올린다) 양정화 성우가 우아하게 앉아 '어서들 오너라'하며 자신에게 팔을 벌렸다고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 때 그 분한테서 눈부신 빛이 화악 이는 거예요. 말 그대로 포스넘치는 자태였어요. 와 이게 투니버스 성우인가"하고 "부셔, 눈부시다고"했던 기억이 나요. 성우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강렬했어요.

 

 

도전에 늦고 빠름은 없다, 다만 각오했으면 서두르라

 

젊은 나이에 성우가 된 그는 이제 자신보다 나이많은 성우지망생과도 더러 만나게 된다.

 

 

 

 

각오를 다지라고 조언했다. 세월아네월에 말고 지금으로부터 구체적으로 몇년동안 도전하겠다고 계획을 세워 단기필승의 의지를 다지라는 거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고 해서 또 지금의 나이가 부담된다고 포기하거나 자포자기 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늦고 빠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작하고서 어떻게 매듭짓느냐가 관건이라는 거다. "끌어낼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걸 다 꺼내 후회없이 승부하라"는 것이 젊은 그의 가치관이다. 

 

 

 

 

헤어질 때가 왔다. 어느덧 삼십코너를 돌게 된 성우로서의 목표는 그저 "잘 하는 성우"라고.

 

"난 너무 못해요. 가끔은 강변북로를 다니다가 순간순간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자책해 보기도 해요. 일전에 김서영 선배님과 함께 녹음부스 들어갔을 때는 서로 비교가 되잖아요. 우와 최승훈이라는 성우는 정말 못하는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고. 그래서 아직은 잘하는 성우에 목표를 두고 있어요."  

 

잘 하는 성우가 되고자 전력투구해서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이성교제도 없는 미혼이다. 본인 말로는 "하루벌어 하루먹기 바빠서"라고. "여성팬들에겐 호재일 수도 있겠다"고 말했더니 "날 남자로 좋아하는 팬이 세상에 어딨냐, 그냥 성우로서 좋아하는 거지"하고 웃어버렸다.

 

"언젠가 '잘하는 성우'가 되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겸손한 어린왕자는 앞으로도 갈 곳이 많다. 왕자가 수많은 별의 땅을 밟으며 성장해갔듯 그도 '잘하는 성우', 자신의 성에 충분히 차고 남을 그런 영역에 닿고자 더 많은 캐릭터들을 섭렵해 갈 것이다. 황태자는 그렇게 왕도를 걷고 있다.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예고 - 다음 주자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기대 이상의 '대어'를 끌어온 최승훈 성우다. 현재 가장 뜨거운 성우를 정말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