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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월드컵 중계석의 빈자리, 송인득을 기억하시나요

[월드컵 통신] 중계석의 휑한 빈자리, 송인득을 기억하시나요


 


SBS가 독점중계를 강행할 때 사람들이 아쉬워했던 이유 중 하나가 뭐였을까.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자진사임하면서 "중계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난 '역시나'하고 탄식했던 이들 중 하나였다. 'MBC 차범근 해설위원'을 올해는 볼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되뇌었다.

다행히도 차범근 해설위원을 이번 대회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방송사는 SBS로 갈아타게 됐지만 그의 해설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또 한명, 허전한 그의 자리를 의식하게 된다. 그건 짱짱한 목소리를 울리던 송인득 아나운서의 자리였다.

사실 그가 살아있었어도, 이번 대회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SBS가 중계권을 독점한 가운데 MBC 아나운서가 있을 자리는 생각하기 어려우니까. 그래도 생이별이란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게 한다.

아직도 그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의 사망은 3년 전, 2007년 5월이었다. 유독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비보가 잦았던 2007년이었기에 그의 부고를 인지 못한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스포츠 캐스터로 펼쳤던 활약을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이름은 몰라도 얼굴과 목소리를 들으면 누군지 안다'고 할만한 아나운서였다. 독일월드컵 때도 활약했고, 축구 뿐 아니라 프로야구 등에서도 친숙한 중계자원이었다. 오랜기간 허구연 해설, 송인득 캐스터가 중계하는 MBC 프로야구를 지켜봤다. 학교 끝나고 돌아온 토요일 오후, TV를 틀면 어김없이 두 사람이 나오곤 했다. 시원하게 나오는 목소리, 명쾌한 진행,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이 여러모로 매력적인 인물. 의외로 목이 약한지 가끔가다 소리 지른 후엔 쉰 목소리가 섞여 나오는 것 또한 인간적인 맛이 있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있었던 건 그의 중계에서 묻어나오는 휴머니즘이다. 부상당한 선수를 걱정할 때, 패배한 팀을 다독일 때, 시청자들에게 감사를 표할 때 그의 멘트에선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건 승패가 냉혹히 갈리는 승부사들의 스포츠 속에 '인간'을 꽃피워내는,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기적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히 마이크를 잡았던 그가, 활동이 뜸하다 싶었을 즈음 해서 병상에 누워있고 위독하다는 소식으로 찾아왔을 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얼마 안가 부고가 떳다. 직접적으로 인연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좀 더 좁혀 말하자면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는 사람으로서 삶의 중요한 톱니바퀴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사실 제대로 믿기질 않았다. 그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은 잠깐, 짤막하게 뉴스로 소개됐을 뿐이었다. 좀 더 조명될 수도 있었는데 워낙 많은 공인들이 떠나가던 시류 속 한 순간이라 묻히듯 사라졌다. 그 해 상황을 보면 새해 벽두부터 김형은, 유니, 정다빈 등 꽃다운 연예인들이 숨졌고 그가 떠난 5월만 해도 이틀간격으로 문인 피천득, 해외에선 J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자드의 보컬 사카이 이즈미가 고인이 됐다. 어느순간, 조용하게 사라져간 한 사람이었다. (2007년 떨어진 별들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1576)

믿기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불과 한달전까지만 해도 활동하고 있었던 점이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는 4월 초반만 해도 그는 허구연 해설위원과 함께 콤비를 맞췄다. 간경화라는 병은 그렇게 어느 한순간 사람에게 생이별을 통보하는 병인가 보다.

뜬금없지만, 요즘 SBS 월드컵 중계를 보면 '담배없는 대한민국'이란 금연 캠페인이 종종 뜬다. 허구연 해설자는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담배 좀 끊으라고 그렇게 말했건만"하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저 캠페인 문구를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언제나 그랬듯 사람좋은 웃음으로 넘겨버리지 않았을까.

요즘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 허구연 해설자가 틈틈이 월드컵 이야기를 꺼낸다. 야구관중들 속에서도 월드컵 열기가 옷 색상이나 응원보드 속에 묻어나오는 상황이니 안 그럴 수가 없다. 만일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 곳에서라도 월드컵 이야기를 함께 했을 것이다. 새삼 그의 빈 자리가 무척이나 아쉽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