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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방송국차 사이에 "내 자전거도 취재차량이다" 끼워넣었다

방송국차 사이에 "내 자전거도 취재차량이다" 끼워넣었다
한명숙 후보 사무실에서 못다한 이야기




지난 2일, 선거날.
별볼일 없는 프리랜서 기자나부랭이 하나가 일을 나왔어요. 오늘의 취재장소는 민주당 여의도 당사예요. 한명숙 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실이 차려진 곳이예요.
폼새막강 방송3사 방송 트레일러가 주차해 있어요. 앞에 세로로 샌드위치 주차한 K본부. S본부. 그리고 저 앞에 M본부.

딱 보니 떡대가 장난아니예요. 이정구 성우님의 목소리로 "변신!"하며 트랜스포머 대장으로 변신할 것만 같아요.
아니다. 저기 저, 4층까지 집어넣은 전선을 보니 에반겔리온이 튀어나와 뭔가를 뜯어먹을 것만 같아요. 보라색, 빨간색, 파란색. 진짜예요. 색깔이 완전 초호기 영호기 이호기의 언벨리컬 케이블이예요.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저 3대본부 마크의 위엄. 으음, 쩐다.

잠시 주눅이 들지만, 나도 기자나부랭이다. 질세라 내 취재차량을 나란히 주차하기로 해요.




내 차예요. 두발달린 놈. 회사차 아니고 내 자가용.
자전거. 26단 접이식 MTB. (2006년식) 소형의 날렵한 은색에 빨간 포인트. 쟤네들이 에바라면 이 녀석은 레이즈너 MK-2라 불러요. 여기까지 오면서 오너의 생체 에너지를 쪽쪽 뽑아먹으며 왔어요. 이런 삐리리. 이래뵈도 연비가 장난아녜요. 내 정열을 제물 삼는 마물이예요. 별 수 있나요. 기름값 엄두 못내면 생체 에너지로 커버해야지. 난 젊다.

자전거라고 취재차량이 아닐쏘냐. 꼭 저렇게 깍두기처럼 생겨서 언벨리컬 케이블을 쭉쭉 뽑아내는 네발짜리만 취재차의 위엄을 누리란 법이 있더냐. 난 스스로에게 계속 반문해요. 기세좋게 갖다놓고 눈치를 삭 살펴요. 아니나다를까, 좀 무섭게 생긴 경비원 아저씨가 날 4초동안 빤히 봐요.

지면 안돼. 지면 안돼. 먼저 눈 돌리는 놈이 지는 거다. 일단 저 쪽에서 먼저 눈 돌려요. 하지만 그냥 이대론 불안해 있을수 없어요.
난 잠시 후 옆 편의점에 가서 원플러스원 하는 1000원짜리 신제품 음료수를 사요. 초콜릿향이 나는 스파클링이라네요. 난 이걸 주머니에 넣고 다시 경비원 아저씨에게 다가갔어요. 나도 저널리스트임을 어필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은 허세전용 기자증을 목에 걸고 다가갔어요.

물어요.

"여기 주차해도 돼죠?"

답해요.

"안돼지."

오마이갓. 이런 우라질레이션. 하지만 질수 없어요.

욱해요.

"아니 저건 취재차량이고 이건 취재차량 아녜요?"

작전상 강하게 나가기로 해요. 근데 이게 통한듯 아저씨는 "아 이것도 취재차라고?"하시더니,

"그럼 취재라고 써 붙여 놔야지."

난 이 쯤에서 호주머니에서 음료수를 꺼내어

"잘 좀 봐줘요."

뇌물 드립해요.

아저씨, 당황해요.

"아니 이거 뭐여."

"뇌물입니다."(진짜로 뇌물이라고 떠다밀었어요)

"나 잡아갈일 있냐"며 손사래치는 아저씨한테 막무가내 밀어넣고 공범이 되기로 해요. "아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하며 되밀다 휘청하는 아저씨. 난 "잘 좀 부탁한다"며 잠시 자릴 떠요. 그렇게 자전거도 취재차량으로 나란히 끼워넣기 성공해요.

나중에 아저씨, 다시 날 보더니 "먹긴 잘 먹었슴다. 근데 나 잡아가진 마쇼" 해요. 아무래도 나중에 하나 더 들이밀어야 할 거 같아요.




나는 생각해요. 에이 이런 꽃같은 세상. 돈없는 햇병아리 저널리스트의 자전거는 취재차량도 아니더냐 하고 홀로 자격지심에 휩싸여요. 그래도 객기를 부려보면 방송3사의 에반게리온 3총사와 나란히 설 수 있구나 함을 체험했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 있을 때면 '취재 간판'을 하나 만들어서 목에다... 아아, 안되겠다. 내가 상상해봐도 너무 웃길것만 같아요. 국회 정문으로 밀고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긴 해요.

취재는 다음날 아침 8시에야 끝났어요. (관련 기사 참조) 녹초가 된 심신으로 다시 자전거에 올라 복귀해요. 장장 1시간 20분에 걸쳐 여의도서 꽃들이 노래하는 화곡동으로 돌아오는 길. 빨리 돈 좀 모아서 50행정 2기통 위엄의 스쿠터라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이상, 자전거로 무리하는 가난한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기자탐구생활이었어요.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