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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개표하는 밤에, 한명숙 후보 캠프에서 본 풍경들

개표하는 밤에, 한명숙 후보 캠프에서 본 풍경들




2일 저녁 7시. 민주당 여의도당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마련된 당사로 들어갔다. 이 때만 해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까지 여기서 올나이트 할 줄은. 




선거 개표때면 뉴스에서 곧잘 봤던 풍경이지만, 사실 기잣밥 먹으면서 현장에 직접 나가본 건 처음이다. 방송 카메라가 포진된 가운데 여러대의 TV가 각 방송 채널에 맞춰진 실시간의 현장. 실로 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아직은 한산한 상황.




...이거 어쩐지 최문순 의원 작품일거 같은데.

'시민참여본부'로 명명된 방을 들여다봤다. 고무된 분위기다. 출구조사에서 한명숙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차는 불과 0.2%. 그간 여론조사가 점친 확실한 열세와는 달리 초박빙의 상황이 이들을 들뜨게 한 것.   




개표 초반인 8시. 다시 기자들이 모여있는 대합실(?)을 들여다 봤다. 들어서는 발길만큼이나 술렁이는 분위기다. 개표 진행 0.1%를 가리키는 개표방송은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앞서는 모습으로 시작됐다.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상황실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TV 개표와는 별도로 마련한 상황판 앞에 선대위원장인 이해찬 전 총리가 있다. 어찌된 일인지 TV개표보다 상황이 더 빠르다. 어찌된 일인가 들어보니 각 개표장의 참관인들을 통해 정보를 입수, 독자적으로 개표를 해보인다고. 정확함을 자신하는 동시에, TV보다 1시간 빠르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 상황판의 수치는 동시간대의 TV 상황과는 달리 한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와 있다. 

각 지역 개표 스코어를 짚어보던 이해찬 전 총리는, 뜬금없이 "이겼네"라고 한마디를 꺼냈다. 너무나도 이른 예측.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자들에게도 "우리들의 집계에 따르면 앞서고 있다"고 발언한다.




그리고 9시 50분경. 정말 순위가 뒤집혔다. 한명숙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기 시작한다. 10시 20분경, 4.8퍼센트 개표에 MBC는 표차가 5970표임을 내보였다. 초반이지만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최문순 의원은 사무실에서 뭔가를 작업한다. 말로는 불안한 리드에 "맘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어째 겉보기엔 너무 덤덤하다. 심지어 "한 0.2%로 이기면 딱이야"라고 초박빙을 언급하는데, 알고보니 이유가 따로 있었다.




몇프로로 이기느냐 내기를 했단다. 참가자는 13명. 최고 근접자가 받는 상금이 13만원이라니 1만원 내기렷다. 보아하니 1프로를 내건 최문순(문순C)의원이 가장 초박빙을 예상한 거였다. 대단한...




10시 50분경. 아래 상황실은 계속해 개표 현황을 경신해간다. 차를 벌려가는 것으로 집계되자 보던 이가 주먹을 불끈 쥔다. 




자정이 되자 한명숙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세균 대표, 박지원 의원, 정청래 전의원과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 이정희 의원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셔터 소리가 진동했다. 한명숙 후보는 짤막하게 기자회견에 임한다.


 


회견을 마치자 기자석에서 "손 한번 흔들어 주시라"고 청한다. 그러나 한 후보는 "아직 15퍼센트가량밖에 개표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때가 맞지 않다"며 거절했다.




한순간이었으나 가득찬 사람으로 찜통이 된 실내. 겨우 빠져나와 다시 상황실로 들어선다. 한명숙 후보는 그새 인터뷰까지 마치고 시청으로 향한다. 최문순 의원도 함께 움직일까 말까 망설인다. "안가실 거냐"는 질문이 들어오자 "아직 유력한 상황이 아니라 불안감에 자릴 뜨기가 그렇다"고.




그런데, 1시를 얼마 안 남긴 12시 50분. 상황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앞서 집계한 것만큼 TV개표가 진행됐건만, 득표차는 예상했던것보다 적다. 업데이트가 지지부진한 지역 스코어를 전화로 다시 확인해보고, 또 오차가 없는지 쉴새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 차이를 점점 벌려가길 바라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표차는 요지부동.

열세 지역이 문제였다. 서초, 강남 등에서 한번에 1만표가까이 뒤지는 것. 게다가 아직 개표진행이 더딘 상황이라 이들에겐 불안한 기색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좋았다. 서울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전반적으로 야권의 강세가 나타나고 인천에서 송영길, 충주에서 안희정 후보가 당선 윤곽을 보이는 것에 간간이 환호가 터졌다. 강원에서 벌어진 '기적'은 계속 입담에 올랐다.   

최문순 의원은 결국 자리에 남기로 했다. 내게 "피곤하지 않냐"고 묻길래 난 그에게 "피곤한것보다 심심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타로트 카드 보시겠습니까."

한번도 본 적 없다며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에게 카드를 꺼내 들고 무엇이 궁금하냐고 묻자 천안함 사태 후일 상황 등 무지 곤란한 주문이 들어온다. 난 그냥 개인적인 고민을 물으라며 손을 내젓고 말았다.

몇시쯤이면 당락이 결정될 것 같냐고 다른 카드 손님(?)에게 묻자 "3시"라고 답한다. 개표방송에서 예측하던 그것과 동일하다. 글쎄다.




2시가 넘어가는 시각. 방송차량이 하나 둘 철수한다. 나도 내 보도차량(자투리글 참조)을 접어다가 사무실로 들였다. 편의점에서 원플러스원 쥬스를 사서 카운터에 올려놓으니 점원이 내 목의 기자증을 보며 "어떻게 되어가냐"고 물었다. "아직 모른다"고 했더니 뜻밖이라는 반응.   

본래 방송에선 새벽 3시쯤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정작 3시가 넘어도 알 수가 없다. 표차는 줄어들어 박빙을 이어간다. 옆에선 "끝까지 갈 건가"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염통이 쫄깃해 졌다"는 트위터글에 순간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상황실도 더이상 개표를 진행하지 않고 멈춰진 채로 있었다. 방송에선 5000표 안팎의 근소한 차가 계속되는데. 잠깐 1만표로 벌어졌다가 또 4000표까지 좁혀졌다가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다.

"200만표만 넘기면 되는데..."

누군가가 희망한다. 70프로의 개표를 넘긴 상황에서, 아직 200만 고지까진 50만 정도가 남았다. 물론 오세훈 후보 역시 바로 뒤에서 추격해 온다.

그리고 4시가 넘어서자, 5시간여 이어왔던 1위자리가 넘어갔다. TV개표에서 순위가 뒤집히고,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정보에서 지역별 상세 개표 상황에 시선이 쏠린다. 4시 30분경엔 50표차로 뒤졌다 앞섰다 하며 왔다갔다 시소게임이 이어진다. "학교 회장 선거냐"는 실소가 터져나오고야 만다. 

그리고 이때부터 1시간여. 리드를 내준 채 계속 수천표의 차를 좁히지 못하자 이 곳 사람들은 탄식을 연발한다. 아직 개표가 많이 남은 강남 쪽의 두드러지는 지지율 약세가 못내 아쉬운 듯 고개를 젓는다. 다만 강세를 띠는 관악구도 아직 남은 개표가 남아 계속해서 희망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어찌 됐다고?"

자리를 잠깐 떳던 최문순 의원이 다시 달려와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피로함에 장사없다.




곧장 눈이 감기는 최문순 의원. 어느새 창 밖엔 동이 터 밝아오고.

결국 전체 개표율이 80퍼센트를 넘어 92퍼센트에 달하는 6시 정각에도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상황에 놓였다. 단 한번도 '유력' 마크가 어느 후보에게도 뜨지 않았던 서울시장 선거는 그렇게 막판의 막판까지 오리무중이다. 

정리해보자. 난 이르면 12시 쯤엔 당락을 확인하고, 돌아가서 기사를 쓸 거라 예상했었다. 그게 이젠 첫차가 다닐 지금 사무실의 컴퓨터 하나를 얻어 쓰며 여기서 기사 작성 중. 잘하면 최문순 의원과 해장국 먹으며 귀가하게 생겼... 아니 벌써 시간은 그렇게 됐고. 맞다. 물어볼 것도 있으니 어여 기상해야 할텐데.     

6시 40분. 최문순 의원은 다시 일어났다. 2만표가량 차이가 난 것에 착잡한 표정이었다. 그에게 인사를 고하며 "서울은 제쳐두고 선거 전반을 놓고 본다면 민주당은 성공했다고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며 "비등비등한 수준은 됐지 않느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래도 경기와 서울은..." 하며 아쉬움을 지우지 못한다. 

그에게 마지막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저거 의원님 작품 맞나요?"

'백욕이 불여일견'말이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어. 나 실없다는 소리 종종 듣는다고. 알고보니 그의 작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누군지 참 잘 만든 작품이여"하며 잠깐 웃었다.

개표가 96퍼센트 이상 진행됐는데도 방송에서 유력 표시가 뜨지 않는 보기 드문 상황은 계속된다. 표차가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가라앉고 자릴 뜨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 와중에도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 역시 남아 있다. 그렇게 7시 경과.  

개표진행이 97.5퍼센트에 이르자 결국 한 사람은 "낙선소감은 언제쯤"이라며 체념하고 전화에 묻는다. 선거 전체를 놓고 볼 때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민주당이건만, 최대 격전이던 서울시장 자리를 눈 앞에서 놓쳐버린 이 곳 사무실에선 아쉬운 한숨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그간 수고많으셨다"는 격려를 남기며 점차 사라져가는 사람들.



아침햇살이 들어오는 사무실. 그렇게 치열했던 레이스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 곳에 들어서면서 어떤 결말을 보게 될 것인가 자문했었다. 이기는 싸움을 보게 될지, 지는 싸움을 보게 될지. 이 두 가지 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승자의 환호하는 모습이 마지막에 담길지, 아니면 조용한, 조금은 흐트러진 적막을 담게 될 것인지 그야말로 예측불허였던 하룻밤. 결과는 후자였다. 실은 이럴 경우 그것을 또 어떻게 담아낼 지도 고민해야 했는데, 선택한 것은 이렇게 날이 밝은 모습이다.

어느 쪽을 더 보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난 답할 이야기가 없다. 내게 있어 취재란 기자라는 신분을 넘어 나라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수업이다. 좋던 싫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지는 싸움은 그 나름대로 내게 무언가를 남겨 줄것이다.'

언젠가부터인진 모르겠는데 내가 갖고 있는 지론이다. 솔직히 날밤을 새며 지켜본 그 풍경들이 내게 무엇을 남겨줬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실히 답할 수가 없다. 아마, 이기는 자의 싸우는 모습을 봤어도 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글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보면 자신있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