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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10년전 새해의 밀레니엄버그 공포를 기억하세요?

[오아시스]10년전 새해의 밀레니엄버그 공포 기억하세요?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작년엔 커피 이야기였나. 재작년엔 해운대 바다에서 보는 새해 일출이었고. 매년 새해마다 처음 날려보내는 기사엔 남다른 의미를 두게 된다. 올해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 보일까 하다가... 10년 전 이야기를 잡았다. 본래는 작년이 되어버린 어제쯤 꺼내려던 이야기다.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찰나, 그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다가 혹시 끝자리의 9에서 0으로의 변화를 보고 10년 떠올린 사람 손?


66. 10년전 새해의 밀레니엄버그 공포 기억하세요?


1999년은 많은 일이 있었다. 세기말이라 해서 공포의 대왕,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같은 통신환경이 부실했던, 오프라인 시대의 종착지였기에 더 파급력이 컸었는지도 모른다.

밀레니엄버그와 Y2K 같은 단어는 기억하고 있는지. 만일 한일공동의 락 프로젝트 그룹만 떠오른다면 이미 그 존재감은 싹 지워진 것일 테지.

실은 나도 이틀전인가, 투니버스에서 나오던 심슨네가족들을 보다가 불현듯 떠올렸다.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1999'가 '1900'으로 바뀌자 군중들이 Y2K다 하며 종말이 온 듯 아우성치는 블랙코미디. 그런데 그게 당시엔 그 분위기가 가공된 코미디가 아니라 진짜였다. 

10년 대계. 강산이 바뀌는 10년. 그래서 1999년 마지막 날이나 2009년 마지막 날은 앞서의 9년 것 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10년 전 그것이 이번 것보단 더 컸다. 간단하다. 그건 10년의 무게가 아니라 세기가 바뀌는 100년... 아니, 새천년이 오는 밀레니엄의 개막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고작' 10년에 불과한 세월에 그 때의 기억이 벌써부터 희미해진 것은 뜻밖이다.

밀레니엄버그, Y2K의 공포는 뜻밖에도 한줄요약 설명이 너무도 간단하다. '전산 오류'.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못할 나이어린 독자들에겐 의아할 법한 이야기다.

1900년대 들어 눈부시게 발전한 문명의 이기, 그 중 하나인 전산 데이터가 당시엔 1000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의 수십년에만 머무르다 보니, '1999'에서 '2000'으로 넘어가는 데 중대한 장애가 발생, 초국가적이고 전세계적인 대혼란이 야기된다는 시나리오였다. 은행도, 금융시장도, 나아가 정부와 군대도 한순간 패닉상태에 빠져 어떤 오류가 범람할 지 모르다는 불안감이 키워낸 공포였다. 핵이 터질지도 모른다, 개인의 자산이 보장받지 못할수도 있다, 위험한 복역자들만 모여든 교도소의 문이 활짝 열릴지도 모른다... 별의별 불안감이 종합세트마냥 엄습했던 것이 불과 10년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였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공포의 대왕'에 대한 숱한 추측 중 가장 현실감 있게 느껴졌던 존재기도 했던 실체없는 공포. 그것이 바로 밀레니엄버그. 관련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정부에선 대책반이 세워지고...

10년 전의 자정, TV속 서울 광장에서 카운트가 바뀌었을 때. 지금 기억나는 것은 밀레니엄 베이비의 울음소리와, 김대중 대통령이 그 특유의 화술로 '우린 이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선사해야 하겠습니까...'로 이어가던 축하 연설이다. 공포의 밀레니엄 버그는 희망을 상징하는 밀레니엄 베이비의 우렁찬 목소리 속에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듯 10년이 흘렀다. 21세기도 어느덧 10년.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어떤 의미에선 세기말의 그 흉흉하던 시절보다도 더 어지럽고 흉흉한 시기를 나고 있음을. 전산 오류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상식과 원칙의 오류가 염려되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것을.

하긴. 밀레니엄버그나, 상식을 자신할 수 없는 어지러움이나. 그 불안한 것들은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세대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낙천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으니까. 막상 평화로운 세상에선 무료하게 낭비했을지도 모를 우리 삶을 보다 의미있는 것으로 쓰고자 고민할 수는 있게 됐지 않은가. 이제 열살이 됐을 밀레니엄 베이비들에게 보다 자신있게 우리의 시대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