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여는법' 적힌 20년전 강수지데뷔 앨범에 웃다
2일, 서울 신촌. 블로거들간의 문화 모임에 참석했던 나는 뜻하지도 않은 글감을 얻게 된다.
보다시피, 이 모임은 많은 물건들이 오가는 곳. 음악 CD를 비롯해 매니아라면 탐낼만한 아이템이 가득하다. 원하는 사람이 많을 시에는 가위바위보로 주인을 결정하곤 한다.
난 승률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한 장 내 손으로 쟁취하긴 했는데... 그 다음엔 두 사람이 연거푸 내게 양보. 이거, 동정받는거야?
꽤나 오래묵은 음반도 나왔다. 박학기, 이상은... 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생소할 법한 이름도 제법 보인다. 그러다가, 왕년의 요정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사람. 청순가련한 여가수의 대명사였던 발라드요정 강수지다. "사진 죽인다"는 탄성이 나올만치 지금도 여전히 멋진 광채를 발산하는 그 때 그 모습.(물론 지금도 아름답다)
이 앨범은 그녀의 데뷔앨범. 90년도 발매됐던 앨범으로 이젠 정확히 20년된 앨범이다. '보랏빛향기'가 담긴, 그 앨범. 나는 경쟁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성분들 몇 사람은 당연한 듯 쟁탈전을 벌인다. 운좋게 이를 손에 얻은 이에게 다가가 케이스를 잠시 받아 들고 여는 순간.
"응?"
원주인이 미리 알리긴 했지만 설마했다. 안엔 그 흔한 사진 한장 없고, 가사집만 한두페이지. 그리고 그 뒤엔 놀랍게도 CD케이스 여는 방법이 친절하게도 아주 상세하게 동봉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다. 너무도 친절하다. 바람직한 방법과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을 비롯해 여러가지 방법이 전수되는 순간. 중앙의 검은 톱니를 누르며 꺼내는 방법은 만사형통의 길. 사실 그 외엔 손가락 위치나 모양의 차이점 정도다. 그냥 덜컥 열었다간 CD가 떨어져 깨질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지양할 방법 소개가 사실상 내용의 핵심이다.
맞다. 한 페이지 더 넘기면 컴팩트디스크의 정의가 내려져 있었다. 너무나도 상세한 어드바이스에 지금 우리들에게선 끝내 웃음이 터져나오고야 만다. 저마다 폭소를 터뜨리는 상황서 "이거 돌아가서 포스팅해야 겠는데요"라고 했더니 또 한번 웃더라.
"근데 사실 이 때만 해도 CD 접하지 못한 사람들 꽤 됐어요"라는 원주인의 설명. 하긴, 그 때는 테이프가 기본이었으니까. 그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무상한 순간이다.
이 날 원주인이 풀어놓은 백여장의 음반들을 보면 실로 감탄하게 된다. 정말 많이도 수집했구나 싶다. 또 한편으로는, 나와 은근히 취향이 비슷했던 점에 놀랐다. 90년대 앨범이 상당수였는데 당시 초,중,고를 두루두루 다녔던 내가 테이프로 소장했던 앨범이 꽤 많았던 것. 상당수는 1000원짜리 길거리 테이프로 구한 추억거리들(당시는 하교길에 꽤나 많이 널렸었고, 용돈 궁한 중학생들에겐 여러모로 고마웠던 아이템이었다)이 동시대를 살았던 여섯살 연배의 사람에겐 값나가던 정품 CD 컬렉션의 일부였고, 그것들이 십수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내 앞에 펼쳐지는건 꽤 멋진 감흥이었다.
댄스음악 전성시절이던 당시, 난 대중적 취향치고는 조금 비껴가 있었다. 지금 보니 20대 취향을 지닌, 조금은 어른스런 취향의 10대였나 보다. 장혜진 3집, 조트리오 2집, 이소라 데뷔집, 마이클런스투록 프레이 더 페퍼... 이거 다 정품 내지 비품 테이프로 갖고 있던 것들인데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내가 이 날 손에 넣은 그의 컬렉션은 이렇듯 총 석 장. 승률이 좋지 않은 탓도 있거니와 경쟁에 많이 나선 편이 아니라서 한가득 챙겨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물론 앨범 퀄리티와 가치는 셋 다 극강.
이 중 가위바위보로 쟁취한 건 앤 1집 한 장. 장혜진 3집과 유키쿠라모토 앨범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다른 경쟁 희망자가 그냥 양보해주시더라. 기뻐해야 하나 초라히 여겨야 하나.
개인 관점상 명반 중 명반으로 꼽는 장혜진 3집은 테이프로 갖고 있었지만 다시 CD로 갖게 됐다. MP3 리핑 대기 중. 가위바위보 실력으로 유일하게 따낸 앤 1집은 지금 포스팅하면서 듣고 있는데 뜻밖의 보물이라 희열로 가득하다. 내 취향에 딱이라 넘버 하나 하나가 그냥 넘길게 없다. 그렇지, 포스팅이던 기사던간에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며 써 올릴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게 없지. 소소하면서도 쏠쏠한 일상 속의 기쁨을 선사해 준 블로그들에게 다시 한번 이 자릴 빌어 감사드린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보다시피, 이 모임은 많은 물건들이 오가는 곳. 음악 CD를 비롯해 매니아라면 탐낼만한 아이템이 가득하다. 원하는 사람이 많을 시에는 가위바위보로 주인을 결정하곤 한다.
난 승률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한 장 내 손으로 쟁취하긴 했는데... 그 다음엔 두 사람이 연거푸 내게 양보. 이거, 동정받는거야?
꽤나 오래묵은 음반도 나왔다. 박학기, 이상은... 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생소할 법한 이름도 제법 보인다. 그러다가, 왕년의 요정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사람. 청순가련한 여가수의 대명사였던 발라드요정 강수지다. "사진 죽인다"는 탄성이 나올만치 지금도 여전히 멋진 광채를 발산하는 그 때 그 모습.(물론 지금도 아름답다)
이 앨범은 그녀의 데뷔앨범. 90년도 발매됐던 앨범으로 이젠 정확히 20년된 앨범이다. '보랏빛향기'가 담긴, 그 앨범. 나는 경쟁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성분들 몇 사람은 당연한 듯 쟁탈전을 벌인다. 운좋게 이를 손에 얻은 이에게 다가가 케이스를 잠시 받아 들고 여는 순간.
"응?"
원주인이 미리 알리긴 했지만 설마했다. 안엔 그 흔한 사진 한장 없고, 가사집만 한두페이지. 그리고 그 뒤엔 놀랍게도 CD케이스 여는 방법이 친절하게도 아주 상세하게 동봉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다. 너무도 친절하다. 바람직한 방법과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을 비롯해 여러가지 방법이 전수되는 순간. 중앙의 검은 톱니를 누르며 꺼내는 방법은 만사형통의 길. 사실 그 외엔 손가락 위치나 모양의 차이점 정도다. 그냥 덜컥 열었다간 CD가 떨어져 깨질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지양할 방법 소개가 사실상 내용의 핵심이다.
맞다. 한 페이지 더 넘기면 컴팩트디스크의 정의가 내려져 있었다. 너무나도 상세한 어드바이스에 지금 우리들에게선 끝내 웃음이 터져나오고야 만다. 저마다 폭소를 터뜨리는 상황서 "이거 돌아가서 포스팅해야 겠는데요"라고 했더니 또 한번 웃더라.
"근데 사실 이 때만 해도 CD 접하지 못한 사람들 꽤 됐어요"라는 원주인의 설명. 하긴, 그 때는 테이프가 기본이었으니까. 그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무상한 순간이다.
이 날 원주인이 풀어놓은 백여장의 음반들을 보면 실로 감탄하게 된다. 정말 많이도 수집했구나 싶다. 또 한편으로는, 나와 은근히 취향이 비슷했던 점에 놀랐다. 90년대 앨범이 상당수였는데 당시 초,중,고를 두루두루 다녔던 내가 테이프로 소장했던 앨범이 꽤 많았던 것. 상당수는 1000원짜리 길거리 테이프로 구한 추억거리들(당시는 하교길에 꽤나 많이 널렸었고, 용돈 궁한 중학생들에겐 여러모로 고마웠던 아이템이었다)이 동시대를 살았던 여섯살 연배의 사람에겐 값나가던 정품 CD 컬렉션의 일부였고, 그것들이 십수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내 앞에 펼쳐지는건 꽤 멋진 감흥이었다.
댄스음악 전성시절이던 당시, 난 대중적 취향치고는 조금 비껴가 있었다. 지금 보니 20대 취향을 지닌, 조금은 어른스런 취향의 10대였나 보다. 장혜진 3집, 조트리오 2집, 이소라 데뷔집, 마이클런스투록 프레이 더 페퍼... 이거 다 정품 내지 비품 테이프로 갖고 있던 것들인데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내가 이 날 손에 넣은 그의 컬렉션은 이렇듯 총 석 장. 승률이 좋지 않은 탓도 있거니와 경쟁에 많이 나선 편이 아니라서 한가득 챙겨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물론 앨범 퀄리티와 가치는 셋 다 극강.
이 중 가위바위보로 쟁취한 건 앤 1집 한 장. 장혜진 3집과 유키쿠라모토 앨범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다른 경쟁 희망자가 그냥 양보해주시더라. 기뻐해야 하나 초라히 여겨야 하나.
개인 관점상 명반 중 명반으로 꼽는 장혜진 3집은 테이프로 갖고 있었지만 다시 CD로 갖게 됐다. MP3 리핑 대기 중. 가위바위보 실력으로 유일하게 따낸 앤 1집은 지금 포스팅하면서 듣고 있는데 뜻밖의 보물이라 희열로 가득하다. 내 취향에 딱이라 넘버 하나 하나가 그냥 넘길게 없다. 그렇지, 포스팅이던 기사던간에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며 써 올릴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게 없지. 소소하면서도 쏠쏠한 일상 속의 기쁨을 선사해 준 블로그들에게 다시 한번 이 자릴 빌어 감사드린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