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명암과 굴곡의 10대뉴스 - ① 민주주의의 눈물
노무현,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노무현,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1.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500만 추모객의 눈물
지난 5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이제 곧 역사 속에서 바라볼 2009년의 사건 중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볼 것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토요일 아침. 그 때부터 기나긴 충격과 파문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표적수사 논란에 오른 검찰에 "이제 속이 시원하냐"며 맹비난을 퍼부었고, 결국 이 서거정국은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국민장으로 모셔졌다. 영결식 때도 바람 잘 틈이 없었다. 경복궁 앞에선 가까이 가지 못하는 상황에 추모객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지하철이 끊겼다, 휴대전화도 먹통이다... 슬픔에 찼던 사람들은 숱한 의혹을 꺼내며 추모 열기를 식게 만드려는 정부의 의도가 아니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제가 열린 서울 광화문과 시청라인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찼다. (관련글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5484)
노란색 물결, 정말이지 따로 발디딜 공간 조차 허락치 않을만큼 많은 이들이 쏟아져나왔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국민장 7일 기간동안 다녀간 추모객은 전국 500만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이날 노제에서 '여전히 그의 국민들'은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을 외쳤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있을 때 뜻을 몰라줘 미안하다고 사죄의 말과 함께. 뒤늦게 그가 걸어온 '바보 노무현'의 실로 바보같던 원칙주의적 행보는 재평가를 받았다.
몇 달 뒤. 지식채널e로 유명한 김진혁 PD는 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는 인간 노무현에 미안해 하는 걸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못미? (웃음) 살아있었을때, 그 진정성을 몰라줬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인 거죠."
2.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일기에 남겨진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를 접한 김대중 전 대통령. 급기야 6월엔 남북공동선언 기념 연설 중 이를 언급하는 동시에, 현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띄우기에 이른다. 여기엔 노 전대통령을 잃은 것에 대한 자신의 슬픔과, 나아가 현 정부가 걷는 길이 과거 겪은 독재정부의 그것과 다름 없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는 급격히 쇠약해졌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호흡기 탈부착으로 횡보 상태를 이어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결국, 8월에 눈을 감고 만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후 불과 석달 만의 일이다.
6일간의 국장으로 치뤄진 그의 장례. 사람들은 "대통령보다 선생님이란 말이 더 친근한 그 분"이라며 추모했다. 8월 23일, 영결식은 국회에서 치뤄진다. 그가 살아 생전 국민의 전당이길 바라던 그 국회에서.
영상 2도의 유리관 안에 잠든 채로 며칠간 추모객들과 만난 그는 그 날 정말로 작별을 고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국회 앞, 미처 장내로 들어가지 못하는 인파들은 전광판으로 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여기엔 고인이 생전 기록했던 최근의 일기장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그의 일기장 속엔, 정말 짤막한 일기가 한 줄 들어있었다. 홀로 남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한달 뒤. 뉴스위크는 김대중 전대통령을 조국의 변혁을 일궈낸 지도자, 트랜스포머 11인 중 한사람으로 선정했다. 넬슨 만델라, 마거릿 대처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였다.
한 네티즌은 그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애도했다.
"2009년, 두 개의 태양이 졌다."
독재정권 시대의 민주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 가장 민주적인 정부로 평가받는 참여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이렇듯 지난 10년을 이끈 한국의 두 수장이 눈을 감은 2009년에 떨어져 내린 것은, 민주주의의 눈물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