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온서 '600만 땡겨달라'던 어벙한 사칭범과 놀다
인터넷 탐구생활. 사기꾼과 놀다 편.
꽤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네이트 사기꾼이랑 놀아 줬어요.
며칠전, 인터넷에서 기사감을 사냥하던 중.
갑자기 접속 중이던 네이트온으로 누가 들어와요.
"바뻐?"
초장에 말부터 놓고 들어온 사람. 이 분은 다름 아닌 뉴스보이 발행인이자 공동대표예요.
"조금이요."
좀 이상해요. 참고로 본디 발행인은 온라인상에선 상시 높임말을 써요.
"지금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역시나 평소 알던 스타일과는 많이 좀 달라요. 수상한 냄새 팡팡 풍기던 상대, 그리고 드디어 '600쯤 가능할까' 드립쳐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나 거지인거 잘 알면서. 월급 주는 마스터가 채용자에게 돈 빌려달라는 게 영 이상해요. 여기서 대충 눈치 까네요. 오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네이트 사기인건가! 내게도 찾아와 주는군 하며 손가락을 꺾어봐요. 우두둑 하는 소리가 청아하네요.
어떻게 할까 하다, 실없는 짓을 해봐요. 너 오늘 내 인생의 박카스. 몸소 찾아와준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
"아니 어제 입금한건 어찌하시고?"
망상 시작. 뭔가 큰 자금줄을 대는 패거리(?)라는 설정 하에 엉뚱극장을 펼쳐봐요. 처음엔 "무슨 말이냐"며 몸을 숙여요. 늦었어요. 다시 강하게 떡밥 투하. 그러니까...
"어제 입금한 거 확인했어요?"
"확인은 했으니까..."
딱 걸려들어요. 너, 드디어 여기서 사기꾼 확정하며 씨익 웃어요. 확인은 무슨. 인증하나요?
좀 더 놀아보기로 해요.
"저기서 더 얹어달래요?"
물론 더 얹어주고 말고할 거래처 따윈 실존하지 않아요. 참고로 내가 설정한 거래처는 지하경제조직이예요.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내 페이스에 말려드는 사기꾼. 삐리한 척 하지만 실은 어벙한, 전형적 잡범이예요.
"네."
푸핫, 존댓말. 벌써 겁먹었나 봐요. 이젠 빼도 박도 못해요.
국내인은 아니고 그냥 한국말 좀 잘하는 외국인인 듯. 거기 어디냐. 요새 중국 등지서 이런 거 많이 한다던데 거기냐?
"조건 어떻게 변경됐는데? 프리미엄 그 정도 얹어줬음 됐지 더 붙여줘? 어제만 큰 거 석장나갔는데."
자, 큰거 석장에 프리미엄 나가요. 스케일은 점점 더 커져만 가요.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볼륨을 높이듯.
계속 던지는 떡밥, 잘도 받아먹네요. 네이트 사기꾼의 전제조건인 능동력은 상실됐고, 계속 질질 끌려다녀요. 속전속결 강공은 이미 빛을 잃어요. 강하게 나와봤자 나는 그냥 씹네요.
자아, 과연 내가 구상한 지하경제조직의 윤곽은 뭐였을까. 대충 아파트나 골동품 관련한 브로커를 떠올렸다면 범상한 축이고,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저렴한 축이 벌써 국제 마피아.
결국 이 자식, 밑천 다 드러내곤 최후 루트로 돌입해요.
"급하니까 상세한건 나중에 얘기하고..."
급해요. 감정이 없어요. 여유가 없네요.
어벙한 놈. 급하다고 네이트서 돈 달라는 놈이 세상에 어딨어요.
"전화로 이야기하죠. 지금 걸 테니까."
나는 건들거려요. 눈치 다 깠어요. 그리고 먹이를 두고 입술을 핥는 독수리처럼 여유를 부려요. 난 육십갑자의 포스를 지닌 저널리스트니까요. 참고로 독수리는 입술이 없어요.
자. 더 할 말 있나? 있다면야...
"핸폰이 밧데리가 안되가지고 그러지..."
그렇지. 그거 말고는 없지. 역시 그거네요. 상식적으로 인간이,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전화도 아니고 어케 컴퓨터 켜 돈 빌려달란 생각을 하는지. 얼라? 이런 우라질레이션 리얼 얼라이딩 나우. 재미없게 겨우 여기서 연결을 끊네요.
안타까워요. 엉뚱극장은 이제 막 시작인데. 레이저를 쏘는 죽음의 인공위성을 거래하는 어둠의 흑막과 설계도를 둘러싼 산업스파이 모의, 아틀란티스 대륙 신화와 미합중국 펜트하우스 핫라인까지 릴리스 스탠바이 하고 있었는데. 들려주고픈게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았는데.
노하우가 좀 있었다면, 진작에 아이피 추적 같은 것 좀 알아둘 걸 그랬나봐요.
담번엔 반드시 사기범을 추적, 잡아보이겠다는 다짐을 해봐요.
뇌 좀 세탁시켜 놓은 뒤에. 다음에 또 오기만 해 봐. 주거써.
아 참, 진짜 본인은 베트남에 있었대요.
여러분도 누가 갑자기 금전 요구를 하면 상대 이름이 누구든 간에 부담없이 씹던가 어딘가 망상의 세계로 안내해 실태를 떠보기로 해요. 그게 설령 교수님이더라도, 부처님이더라도, 직장 과장이라도 이건 십중팔구 사칭범이란 자신감을 갖고 플레이 해봐요.
괜찮아요. 만일 본인이 정말 맞다고 해도 겁낼건 없어요. 그 땐 사기꾼인줄 알았다고 당당하게 설명하면 돼요. 그리고 그 길로 곧장 그 자와는 연을 끊도록 해요. 말이야 바른말이지 정중하게 만나 청탁하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급하다며 전화도 아니고 네이트로 돈 빌려달라는 인간은 상종 안 하는게 상책이니까요. 그건 여러분이 미안해 할 게 아니고 백번 상대가 잘못한 거예요. 자기 입장만 급하고 우리 입장은 배려 안 하나요. 사람 골라가며 사귀게 하는 고마운 계기로 삼도록 해요.
내가 권하는 사기꾼을 대하는 네티즌들의 대처 방안이자 사람 관리법이예요.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