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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눈 속에서 맞은 연탄 나르기 자원봉사, 보송보송 뜨거운 마음들

대설 속에 맞은 연탄 나르기 자원봉사, 보송보송 뜨거운 마음들




사람들이 정을 나눌 때, 하늘은 커다란 눈꽃송이를 던져주었다. 보송보송하고 따스한 기운이 인간의 언덕에서 피어올랐다.

지금 시작할 이야기는, 서울 상도동, 어느 연탄 때는 마을의 이야기.


5일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상도종합사회복지관. 토요일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모여 있다. 여기는 '제 7회 까만두손이 전하는 이웃사랑'이 진행되는 자리다.

해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아직 연탄불을 때며 겨울을 나는 인근 주민들을 찾아가 연탄을 지급하고 또 날라다 채워주는 봉사체험 프로그램. 한국투자공사, 숭실대 사회봉사단 등이 뜻을 모아 행사에 참여했다.

저마다 찾아갈 구역이 배정된다. 이 중 가장 난코스는 5구역.

"여기에 숭실대 학생들을 배치한 것은, 등산을 해야 하는 코스라... 젊은 혈기를 쪽쪽 빼먹으려고..."

너무도 솔직한 진행자의 발언에 폭소가 터진다. 아아, 난 절대 저기는 따라가지 말아야 겠다.

"아 그리고, 돌아오시면 저희가 육개장을 많이 끓여놨거든요. 그리고 샌드위치 많으니 원하는만큼 가져가시고..."

 


나이스.
샌드위치다.

이런 취재 오면 개인적으로 행복한 것이, 잿밥이 있다는 거지. 좋아 그럼 나도... 응?

그냥 취재만 하고 손 벌리면 염치 없는 거잖아.
잠시 고민하던 나, 목장갑을 챙겼다. 나도 조금은 도와야 얼굴에 철판을 떼고 입을 벌릴 수 있지... 않겠는가.



네. 저도 준비했습니다.
잿밥을 취할 구실이 생겼다.




내가 따라간 곳은 1구역. 한국투자공사를 비롯 수십명이 이동을 시작했다. 5구역보단 낫겠지, 5구역보단!
하지만 여기도 뭐... 일단은 언덕 시~작.



'오늘밤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 천사소녀네티 주제곡 중.

왜 나는 아침에 이 노래를 부르는거지.



궂은 듯 했던 하늘이 잠시 눈부신 햇살을 던져준다. 예쁘게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눈부신 거리에서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진. 좀 더 언덕으로, 언덕으로 걸었다.



목적지 도착.
여기도 꽤나 높은 언덕이다. 아래로 63빌딩을 비롯 서울 전경이 눈 안에 들어왔다. 아아, 얼마만에 보는 연탄인가. 20년전에 어머니가 집게로 뒤집던 그 연탄이다.



본격적으로 뭔가가 시작되려나 보다. 사람들, 주욱 늘어서고. 에에 그리고...



연탄 나르기 작전 개시.

"싱커, 마구 금지요."

투수를 잘 만나야 한다. 여기저기, 괴로운 포수들이 변화구 금지를 요구해왔다.


이쯤에서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컹컹대는 강아지 동반하고 바라보는 할머니, "며칠전 내가 혼자서 200장 나르는데, 밤중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났어. 혼자 몇시간을 날랐는지 몰라."

오늘 미션의 할당량도 200개. 우리가 그 고생, 조금은 덜어드리겠습니다.


여기도 견공 등장. 이번엔 다른 주민이 이를 흥미있게 지켜본다.

"아주머니댁도 연탄 쓰세요?"

"아니 우린 도시가스..."

아주머니 품에 안긴 강아지, 시커먼 뭔가가 공중부양하는게 신기한듯 고개만 도리도리.





자. 사진 이쯤 찍고. 나도 잿밥 값은 해야 겠다.

"잠시만요, 저도 낄게요."

카메라 내려놓고, 잠시 일을 거들었다.

"훨 수월하네"

빈말이라도 고맙네. 그렇게 나도 열심히 받고, 던졌다. 잠시 휴식할땐 얼른 목장갑 빼고 사진 찍고... 또 얼른 카메라 내려놓고 일손 투입하고. 멀티플레이어는 바빠요.


위, 아래 할 거 없이 다 바쁘다.

"몇장했어?"

"80장이요."

"얼마라고?"

"90장~"

이 때, 주민이 차를 타와서 날라다준다. 조금은 긴 휴식이 시작된다.

"꿀맛이네."

커피가 달달하다.



어라. 이게 웬 드라마틱한 전개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나에겐 올해 처음 보는 눈이다. 눈꽃송이가 아주 크다. 쉬던 사람들, 눈을 맞이하는 서울을 내려다본다.

"이런 눈 보기 쉽지 않은데."

변덕스런 하늘,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더니 이젠 눈을 점차 많이 뿌린다. 덕분에 사진 찍을 맛은 난다.




내 손에서 잠시 맥이 끊긴 연탄. 귀퉁이 한쪽이 나갔지만 훌륭히 쓸 수 있다. 목장갑 내려놓으니 진짜로 까만 손일세.

어디보자. 난 자랑스럽게도 실투율 제로. 포수에게 제대로 던져주었다. 처음엔 연탄이 스핀 걸려 회전하던데, 요령 붙으니 보다 안전하게 무회전 공이 나가더라. ...그렇다고 자이로볼은 아니다.

다시 작업 재개.

반면 투수의 와일드 피치에는 두 번 당했다. 한 장은 몸으로 받는 통에, 빨래를 해야만 하게 됐다. 난 장갑만 받았지 앞치마는 없었걸랑. 아아, 그 한 장만 아니었어도.

다른 한장은 그냥 놓쳤다. 덕분에 하나 깨져버렸네.

"이거 얼마라고요?"

"750원."

"나 어릴땐 번개탄이 200원이었는데..."

세월무상이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 설일 중. 김남조.


싯구는 인간이 의지할 신의 존재를 말하기에 조금은 상황에 안 어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겨울의 황량함속에서 선 그 누구도 혼자는 아니라는 대목, 그리고 지금 이 땅 위에 내려지는 백설. 이 시를 떠올리게 만든 부분이다.

대설 속에서, 사람들은 온정을 피워간다.



"이제 몇장 남았어?"

"10장만 더!"

드디어 막판. 눈발이 거세질때, 연탄 나르기는 드디어 끝이났다. 사람들이 저마다 검은 두손을 가졌을때, 세상은 반대로 하얘지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 그리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 마을은 다시 고요 속에 묻힌다.


"우리 사진 찍어요."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 나도 한장 같이 찍었다. 찰칵하고 찍히는 그 그림 속에, 글자가 함께 묻어나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아니었을까.


돌아와서 대접받은 점심밥.

"밥은 저기서 원하는만큼 덜어 드시면 되요."

혼자서 싹 다 비웠습니다. 사람아닌 짓을 했군요.
괜찮아. 밥값 했으니까 괜찮아.

물론, 샌드위치 잿밥도 두 개 챙겼습니다. 이 날은 이렇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도 해피엔딩을 맞이했군요.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