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바가지]대통령께 상소문을 올려라
독도, 기억을 환기시켜라
3. 대통령께 상소문을 올려라
전화선도 방송도 없던 시절, 벼슬아치와 유생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랏님께 상소문을 올렸다. 자신들의 소임이 그의 눈과 귀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용기였다. 국왕의 말 한마디에 사람의 목숨이 오가던 시대의 일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이 표를 던져 선택하고 언론과 여론이 살아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독도는 일본땅"이라 일컫는 일명 '다케시마 팸플릿'이 나라를 진노시키는 이 시국에, 누가 대통령에 곧은 말 한마디 올렸다는 소식 한 통이 없다.
12월 27일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를 국내 언론이 타전하면서 인터넷 광장은 또 한번 요동쳤다. 그달 초부터 일본 외무성이 각 재외공관에 어떻게 외교공작을 펼쳐왔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물론 이 같은 움직임은 27일 요미우리 보도에 앞서 정부가 미리 감지 못했을 리가 없다.(그렇다고 믿고 싶다) 역시나, 그간 정부 대응에 대한 네티즌들의 원성 또한 자자했다.
애꿎게도 마침, 당일날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보도는 많았다. 물론 모두가 이와 무관한 내정 문제다. 정작 이토록 중요한 사안에 관해선 보도에 앞서 그간 언급이 없었던 사실과 오버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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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다렸다. 늦었지만 보도 대응으로나마 뭔가 나오지 않을까 했다. 다음날이 되니 뭔가 나오긴 했다. 외교통상부의 '엄중 항의' 그리고 똑같이 홍보자료를 통한 맞불 작전. 근데 이게 다인가.
며칠을 더 지켜봤다. 대통령께선 아무 언급도, 노했다는 소식도 없는 것일까. 그리고 각 부처에선 더 이상 어떤 작전회의도 없는가. 자고로 군주가 침묵하면 재상이, 아님 다른 어디서라도 상소가 있어야 하건만. 대통령 신년사까지 기다려 봤지만 결국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어느 작가가 유인촌 장관에 "왜 독도 팸플릿에 침묵하느냐"고 성토하는 언론 기고글의 한숨 뿐.
보수와 진보를 가를 것 없이 모두가 당연시할 지도자의 그 층의 궁극적 역할을 간략히 나열해보자. 아무래도 높으신 분들 모두가 한동안 잊고 지내는 것 같으니. 거의가 '줄타기'다. 외줄타듯 양 쪽의 대비 효율을 극대화시켜야 할 것들.
첫째가 강국과의 줄타기다. 분쟁과 전쟁은 반드시 억제하되, 끌려다니며 굴욕당해서도 아니된다. 국민을 외세에 보호하고 강압에 굴복하지 말지어라.
둘째가 치안과 자유의 줄타기다. 국민들이 편히 지낼 밤의 안녕을 확보하고 맘 놓고 활보케 하라. 범죄는 억제하고 자유는 최대한 보장한다.
셋째가 권리와 책임의 줄타기. 국민들이 권한을 마음껏 누리되, 그것이 타인의 것을 침범치 못하도록 책임 또한 수반케 할 것. 법은 탄탄한 기반 위에 세우되 그것엔 합당함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넷째가 경제의 줄타기다. 국민을 기근에서 구하고 댓가는 공정히 분배케 한다. 고복격양의 실현을 이상향에 세우라.
교육과 정의는 줄타기가 아닌 동일선상의 동일 추구체. 미래에 희망의 씨를 뿌리는 것이 다섯째의 덕목이겠다.
여섯째가 꿈. 삶의 질을 한 단계씩 진전시키고, 국민들을 꿈꾸게 하라. 행복의 추구는 완성의 관문이다.
이 중 절반만 이뤄도 '성군'이 기록에 오르고 태평성대의 초입이 될 터. 그러나 여기서 첫째의 것은 반드시 항목에 필수 포함돼야 한다. 외세를 막지 못하면 국가는 멸한다. 설령 존속한다 해도 자부심을 잃으면 국가엔 한이 서린다.
알겠나? 독도 문제는 국가침탈에 준하는 중대 사항이란 말이다. 그리고 이젠 대통령의 기억을 환기시킬 때다. 대통령이 일본에 별 대응 않는 것은 혹 이것 때문이 아닌가. 무의식 중엔 그에 대한 고수를 자각하되 그 책임에 대해선 망각한 것이 아닌지.
출처 - 태그스토리에 공개된 서경덕 조선닷컴 기자 자료
지난해 1월 당시 당선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다. 여기서 대통령은 "일본에 더 이상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현 집권 여당의 논평을 확실히 기억한다.
"성숙하고 세련된 대일관이었다"
상소를 잊은 여러분들은, 지금도 같은 생각이기에 아무런 상소가 없는가. 일본이 그 '세련된 외교관'에 합당하게 행동하는지, 아니면 이를 기회삼고 오매불망한지 보고도 모르겠나.
지난해 일본이 독도에 어떻게 나왔는가 살펴보라.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여름 그 유명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기사로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진위여부에 여론의 눈이 쏠리자 청와대 대변인은 "뭘 기다려 달라는 것이냐"며 발끈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그 말대로면 언론플레이에 놀아난 꼴 밖에 더 있나?
연말 들어선 각 언어로 '다케시마'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끝날 공산이다. 새정부 1년에 계속된 일본의 도발은 그저 몇 술 떠 본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누가 대통령께 1년 전 저 기억을 환기시켜드려라. 민심이 격노하는데 모두 어딜 보고 있는가. 혹자는 말할 것이다. 저들의 수장이 나서지 않은 이상, 일국의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그 체신과 모양새가 어찌되느냐고.
이상과 현실의 잣대를 바꿔 들이대는 격이다. 독도 대응에 관해선 철저히 '약소국의 현실'을 들이대고 침묵하면서 어찌하여 이같은 문제엔 체신과 이상을 들이대는가. 진정 현실의 잣대는 여기서 꺼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정부 고관과 집권당은 좋아도, 싫어도 '보수'의 진영에 엮인다. 설령 존경받지 못하는 '별놈의 보수', 심지어 '보수도 아니다'란 말을 들을지언정, 진보의 반대축으로 불리는 그 역할을 수행해 내야 한다. 보수의 미덕이라면 집권세력으로서 당장에 뭔가를 실행할 힘을 갖췄다는 것이다. 국민은, 젊은이들은 이럴 때 '언제까지 끌려 다녀야 하느냐'고 호통칠 진짜 보수의 '어른'을 원한다. 어찌하여 이럴 땐 나라의 위신을 걱정한다는 진정한 보수가 나서지 않는가.
대통령이 날 선 칼이라면 그대들은 칼집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그 끝이 무디면 칼을 갈아주어야 한다. 어느 방향을 겨누고 있는지, 또 섣불리 휘두르진 않는지 옆에서 늘 보좌해야 한다. 그런데 상소문은 어디다 팔아먹었나. "각하, 저 말씀에 저들이 도리어 우릴 능멸하고 있습니다"라고 용기낼 자가 정녕 없는가. '세련된 대일관' 운운한 자들은 무얼 하는가. "진정 세련된 대응관으로 꽃피우려면 이젠 이대로 두고 보면 안 됩니다"라고 꺼낼 말 조차 잊었는가. 시시비비를 떠나, 그저 야당과의 '공성전'에서 어떻게 여론을 이 쪽으로 돌리느냐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가.
원통하다. 용기 없는 시대여.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