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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속 세상보기] 미합중국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숙명은?

[이야기속 세상보기] 미합중국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숙명은?
영화 딥임팩트




최초의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물론 저것만으로는 말이 안되고, 한 마디 더 붙여야지. 최초의 '흑인'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그런데 '최초'라는 말에 어째서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게 되는 걸까. 
 
3. 미합중국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숙명은? - 영화 딥임팩트
 
매운탕 보글보글...

영화 속의 흑인 대통령.

사실 이 아이템은 당선자 윤곽이 나오기 전날 꺼내려 했다. 헌데 그 날 SBS 뉴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5&aid=0000144818)에서 이게 나오지 뭔가.

차라리 한 발 빨리 꺼낼 걸 하며 눈물을 머금고 폐기처분하려다가, 내용을 좀 바꿔 살려보자고 맘 먹었다. 그런데 이때부턴 또 뭔가 일정이 꼬이면서 늦춰지고 또 하루 늦춰지고... 살펴봤더니 그럭저럭 다 생각할 만한 아이템인지 이미 매체 몇군데에서 다뤘더라.   

이미 회를 뜨거나 초밥을 빚기는 늦은 터. 다시 단념할까 했다. 그런데, 재밌는건 네티즌들 스스로도 이에 대한 이야기꽃을 만개시키고 있다는 것.

현재진행형이었다. 블로거들도, 카페회원들도 여기저기서 미국 흑인대통령이 허상의 세계에서 뚜벅뚜벅 우리 세계로 걸어들어온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아, 단순히 시의성에 기댄 아이템이라 생각하기엔 그 유효 기간이 꽤나 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컨셉을 바꿔 매운탕을 끓이기로 작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 간만에 저 간판 올리고, 시작.
 
모건 프리먼, 버락 오바마... 닮았습니까?

딥임팩트. 따로 스토리 다이제스트를 짜지 않고 중간 중간마디 필요에 따라 내용소개를 배치하겠다.

오바마에게서 모건 프리먼을 떠올린 건 그가 그를 지지한 폴리테이너라서가 아니다. 10여년전 미국 대통령의 상을 먼저 그려냈기 때문, 그거 하나다. 시야가 무척 좁은가? 하지만 그만큼 그의 검은 대통령이 강렬했다는 증거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대통령 '톰 벡'이 폭풍과도 같은 카리스마로 넘쳤느냐...

모건 프리먼의 연기는 언제나 담대하다. 일순간 몰아치며 좌중을 압도하는게 아니라 항상 고요하고 잔잔한 연기를 보인다. 어느 한 장면만 뽑아서 클라이막스로 꺼내긴 좀 그렇다.

하지만 조용하다는게 카리스마와 상반된 말은 아니다. 그의 잔잔한 수면을 담아내는 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을만치 광활하기 때문이다.
 

딥임팩트 중 - 출처 다음카페 전주중앙여고 천체관측동아리 별똥구리, 다음 TV팟 공개영상
 
이 대목도 그렇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담담한 연설을 펼쳐내는데 이 부분은 지구의 위기가 절체절명까지 달했던 상황에서 미국 국민(미국의 입지를 생각한다면 전 인류라 해도 무방할 듯)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우주로 쏘아올린 로버트 듀발 휘하 영웅들이 대기권 밖에서 위기를 틀어막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좌절된 상황. 침통할 수 밖에 없지만 그가 꺼내보이는 것은 조금 성질이 다르다. 

섣부른 희망도, 그렇다고 그것을 탁 놓아버리는 좌절감도 시청자들에게 보내지 않는다. 직시해야 할 사실을 먼저 꺼낸 뒤 "우리한테 하나, 여러분한테 하나씩 차선책이 있다"고 전제한다.

첫째 것이 실패할 경우를 생각한다면, 결국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다. 계엄령을 내리고, 생존할 이를 제비뽑기로 선택한다. 재앙을 막을 수는 없지만 종말은 막을 수 있다는 내용. 그러나 이를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혼돈으로 잇지 않고 듣는 모두가 담담히 받아들이도록 한다. 명연설이다.

오바마와 프리먼의 톰벡이 닮았느냐를 묻는다면... 우선은 고개부터 갸웃거릴 수 밖에. 동년배도 아니고, 묻어나오는 생김새도 분명 다르다.

반면 연설이 뛰어나다는 점은 분명 닮았다. 비록 스타일은 다르지만 말이다. 오바마의 것은 폭포수, 프리먼의 것은 호숫물로 표현하면 될까.

사실 여기서 그 둘을 닮았느냐 비교한다는 것은, 지금 시점에선 편별 여부보단 희망사항에 붙여야 한다. 프리먼의 대통령은 우주의 힘 앞에 더할 나위없이 나약한 인간들에 있어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지도자였다. 위기를 막아내느냐가 아니라, 그 위기를 민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하느냐가 선행 조건임을 직시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와 닮아야 한다는 점은 오바마에 있어 숙명과도 같은 숙제다. 무슨 이야기냐고?
 
오바마는 프리먼(톰벡)을 닮아야 한다

아니. 저 위 영상의 대통령이 연설 중 그랬듯, '내가 하려던 표현의 제목이 아니었다'. 굳이 저 모습을 꼭 닮을 필요는 없다. 하고픈 말은 '닮진 않더라도 저만큼은 해야 한다' 정도가 좋겠다.

저 영화 속에서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대통령 톰 벡은 다시 말하는데 뛰어난 지도자였다. 비중이 크다곤 하지만 단순히 연설을 잘해서만은 아니다. 처음 이 사실의 단서를 잡았던(착각에 의한 것이었지만) 기자와 만났을 때 섣불리 입을 막는 편법을 쓰지 않았다. '발표시간을 좀 앞당기게 됐다'는 당장의 곤란함에 연연했다면 도리어 섣부르게 손을 썼다 예기치 못한 문제가 야기됐을 것이다. 물론 영화만을 놓고 보자면 이보단 그의 인덕이 먼저 빛을 발한다. 발표전까지 비밀리에 진행됐던 노아의 방주, 그리고 우주선 원정과 미사일 격추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1년남짓한 시간 동안 전부 동원한 것 또한 추진력과 행동력 모든 면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꼭 그만이 아니다. 드라마 24시에 등장하는 대통령을 비롯, 그간 허상의 세상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등장했던 흑인들은 비록 그 숫자는 적을지언정 하나같이 깊은 인상을 심어 줬다. 인간적이고, 유능하며, 올곧고 선량하다. 무엇보다 사람을 따르게 하는 울림이 있다.

하지만 그건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란 전제에 부여되는 현실적 난관이 영화 속에도 그대로 반영된 탓. "흑인이 온갖 어려움을 딛고 대통령에 선출되려면 저 정도는 돼야..."란 불가피함이 그것이다. 흑인 지도자가 훌륭한 이로 그려진 것엔 이처럼 슬픈 비밀이 담겼다.

표면적으로는 만인평등시대가 만개한 이 시대. 자유민주국가인 미국, 한국... 물론 중립국인 일본과 스위스, 심지어 우리진영서 볼 땐 인권 문제가 심각한 공산국가조차 원칙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라고 자신의 국가를 정의,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돈이 곧 힘이라는 물질만능주의와 숭배는 국가를 초월한 맹신의 것이 됐다. 한국에선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 나왔을 때 분명 인정치 아니하는 발언이 어딘가에서 흘렀다. 일본? 재일한국인들의 서러움을 우리가 몰라주면 누가 아는가. 그리고 미국. 흑인과 백인의 사회가 공집합인지 교집합인지 다른 집합인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확실한 것은 이제서야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4년후 다신 흑인 대통령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독설을 뿜는 것.

내 학창시절에, 그러니까 아마도 사회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문제를 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늦게 투표권을 가진 이가 누구냐"라고.

여기엔 노예와 흑인, 여성과 노동자 등이 예시문으로 나왔다. 정답은 여성.

하지만, 학생들의 다수가 선택한 답은 '흑인'이었다. 그리고 만일, '투표권'이란 단어에서 아메리카합중국이란 국가를 떠올리고 링컨 대통령 전기에 나오는 흑인 노예 문제까지 링크가 걸렸다면 '흑인 = 노예'라는 공식까지 무의식 중에 성립됐을지 모른다.

여하튼 이런 조건 속에서 파격적 설정으로 등장한 대통령이다 보니 그들은 캐릭터 탄생에서부터 뛰어나야 할 숙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오바마도 마찬가지다.

오바마는 지금껏 전례가 없었다는 핸디캡을 안고서 승리했다. 바꿔말하면 그간 흑인이란 사실 때문에 배제됐어야 할 대통령의 자리에서 다른 이보다 더욱 활약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단 얘기다. 영화 속 선구자들의 모습조차 이젠 부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번 더 뒤집는다면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싸워야 할 대상이 혜성은 아니지만...

딥임팩트는 사실 캐릭터들의 역할 부여에 있어서 극영화보단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주역이라는 주축이 한 군데만 있지 않다. 대기권 밖에서 유격대로 사투를 벌이는 로버트듀발 일행의 우주선 부대와 관제센터의 사람들, 처음 혜성을 발견한 소년(무려 반지의 제왕이시다)과 주변사람들, 티아 레오니가 열연한 기자(향후 앵커로 전직)와 가족들, 그리고 이 모든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모두 연결된 모건 프리먼과 백악관. 이 모두가 주역으로 실은 이들 그룹 중 어디를 스탭롤 캐스트 목록에 선행 기재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과 소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 정치적 역량으로 모든 이들을 움직이면서 흐름의 주체에 한발 가까워진 것은 모건 프리먼의 1998년도 미국 흑인 대통령 톰 벡이다. 전미를 넘어 전세계적 위기에 봉착해 제 역할을 다했다.

오바마는 혜성과 만나진 않았지만, 헤쳐갈 과제가 많다. 첫째가 영화 속에선 그려지지 않은 흑인 대통령 스스로의 문제. 이에 대한 조언은 없고 다가가야 할 부담스런 상만 그려놓은 것이 그로선 불친절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비롯 미 새정부가 임해야 할 것들. 하나같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이렇게 했다'는 부연설명이 함께 기록될 것들이다. 자신이 책임질 자국민 뿐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기록하게 된다.

좀 더 넘겨짚어 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란 사실만으로도 그는 언젠가 자신의 전기 격인 영화를 만나게 된다. 이런 실록이 빨리 등장할 경우라면 덴젤 워싱턴이나 윌 스미스가 그의 분신을 담당할지도. 설령 자신이 아닌 새로운 허구의 흑인 대통령이라도 일단 나왔다 하면 주목받을 수 밖에 없다. 기존 대통령 이상의 무게를 '숙명'이란 이름 하나로 짊어지게 된 오바마다. 이제 그가 백과 흑을 아우르고 이상적 대통령의 실제 모델로 자리잡게 될지 주목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