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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여론 쓰레기장 - 인터넷 문화에 대한 소고

여론 쓰레기장
인터넷 문화에 대한 소고

'인터넷 뉴스'에 달린 이런저런 댓글을 보면 어느 쪽이 흰 까마귀이고 어느 편이 검은 까마귀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혼란스럽고 황당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원수들이 살벌하게 할퀴고 생채기 내며 헐뜯는 투의 치열한 싸움으로 칠갑을 한 모양새인 관계로 옳고 그름을 명명백백하게 가름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정치권에서 여야(與野)가 가파른 대립각을 세우고 기(氣) 싸움을 하는 현안에 대하여 정당 대변인(代辯人)의 서슬이 퍼런 성명(聲明)은 차라리 티격태격 다투는 아이들의 장난 수준이며 애교 정도로 여겨도 좋을 만큼 순진한 축에 든다. 그러므로 언뜻 보면 인터넷에서 특정 사안에 대하여 견해를 달리하는 두 집단의 양립(兩立)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인터넷에서 '익명의 게시판'을 '여론 쓰레기장' 정도로 취급하며 그 존재를 원천적으로 무시해 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상공간(cyber space)은 '사이버의 높은 담장 뒤에 숨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익명성(匿名性)이 보장된다. 이 특징은 현실세계의 정보전달이나 여론형성과 판이한 궤적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진화한다. 그리고 이 공간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너무도 극명하게 명암(明暗)으로 투영되어 사회적 갈등의 소지(所持)나 빌미를 제공하는 인터넷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익명성의 보장은 이성(理性) 보다는 본성(本性)의 실체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면서 원초적이고 여과되지 않은 언어나 행동의 폐해(弊害)가 잇따르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인터넷에는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마구 쏟아내면서 구정물이 흐르는 하수구처럼 역겹기 그지없는 배설구(排泄口) 같은 사이트나 사회나 국가의 존재를 마음껏 조롱하며 비웃고 천방지축으로 나부대는 해방구(解放區)를 방불케 하는 사이트가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문화현상에 대하여 권리와 자유를 구두선(口頭禪)처럼 주워섬기며 알 권리와 볼 권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게재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지 싶다. 왜냐하면, 이들 권리나 표현의 자유는 불특정 다수의 명예와 권리를 지키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의 틀 내에서 인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즈음 누리꾼들은 누구나 'ID' 하나만으로 어디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통하는 평등성을 지님으로써 마이너리티(minority)까지도 정보의 생산자이며 소비자로서 권익과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가 생산하거나 취급하는 정보에 대한 검증의 책임을 들먹이면 익명의 그늘 철옹성 속으로 모습을 감추려는 비정상적인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입에 담기 민망스러운 욕설이나 비방을 비롯하여 허위 사실을 익명으로 거리낌없이 댓글로 달면서도, 실명(實名)이라는 말만 나오면 으레 안전 막 속으로 파고들고 숨어들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게 보편적인 경향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인터넷 기사나 각종 사이트에서 무차별적인 공격성 댓글이 위력을 한껏 발휘하는 풍토는 아마도 우리와 중국이 유사하지 않을까. 이웃 일본은 댓글이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익명성 댓글을 주류문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류문화의 산물(産物)쯤 여긴다는 얘기이다. 그 이면에는 익명의 유언비어나 비방 혹은 무고가 어지럽게 오가는 사이트를 '여론의 쓰레기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적 공감대가 튼실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미국이나 유럽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해온다.

인신공격이나 욕설이 여과 없이 직설적으로 난무하는 인터넷에서 극히 편향적(偏向的)이고 공격적인 모습은 첨예한 사안이 사회적 이슈(issue)로 등장하면 더욱 걷잡을 수 없게 요동치기 때문에 곤혹스럽다. 이러한 익명의 댓글문화는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의 창달이 아니라 독선적이고 단세포적이고 우매한 무리를 양산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의 말이나 뜻에 무임승차하여 독선적이고 편협한 감정의 늪에 빠져 익명의 테러를 자행하며 여기저기에 댓글을 올려대는 채신머리없는 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그런 어쭙잖은 주제에 키보드(keyboard) 싸움꾼들은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면 집단 따돌림은 물론이고 저급한 인신공격을 퍼부으며 인격 파탄 자나 얼간이쯤으로 몰아세운다. 이렇게 상대방을 무지막지하게 벼랑 끝으로 모는 병리적 현상은 많은 부작용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악플러'들은 댓글의 가공할만한 파괴력과 전파력이 가져올 엄청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자기가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기도 한다.

익명의 가면(假面)으로 무장하고 남을 비방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무고행위에 빠지기 쉬운 인터넷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가상공간은 현실세계와 함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공간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곳에 내남없이 평등하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필요한 질서 유지를 위한 자율을 전제로 하는 자정(自淨)의 율법인 도덕과 윤리가 정립되어야 한다. 어떤 환경이든 가장 우선으로 꼽히는 공생의 덕목은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인륜이나 도덕이 가름하는 기준에 따라 현실적인 모든 문제를 스스로 다스리는 슬기로움이다.

자기의 존재나 생각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그것도 중요한 법이다. 세상은 절대로 유아독존(唯我獨尊)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상생(相生)을 전제로 한 공존의 셈법은 기필코 필요한 지혜이다. 그러므로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는 극히 위함 한 발상이며 공멸(攻滅)을 부추기는 독소(毒素)이다. 이런 맥락에서 댓글도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 독선과 증오에 가득 찬 '악플러'의 사이버 폭력은 바로잡아야 할 비뚤어진 진실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이는 강제 규정에 의한 법이나 제도적 규제라는 타율을 기반으로 하는 정화가 아니라 스스로 자율적인 자정력을 바탕으로 복원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화의 전제는 도덕과 윤리의 토대 위에서 문제의 해법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요건은 필요충족 조건이다. 시비곡직의 문제를 초월하여 특정 신문의 인터넷 기사 중에서, 소통의 통로는 사실상 굳게 닫은 채 일방적 주장으로 도배한 댓글을 통하여 으르렁대는 안쓰럽고 소모적인 경우를,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시작하여 미시적(微視的) 관점으로 초점을 옮겨가며 살펴보자. 거기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처지가 되어 상생과 공존의 방안이나 길을 터득하며, 순화된 의견을 표출하는 슬기로운 지혜와 예(禮)를 위하여 윤리와 도덕이라는 덕목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를 깨우치는 여유에 다다를 수 있는 후덕한 누리꾼으로 거듭나기를 꿈꿔본다.

    

 
 
 
  ▲ 수필가 한판암 교수  
 
출처: http://hpa1945.kll.co.kr
[한판암 프로필]

경남대학교 전자계산소장, 이부학장,
전산정보원장한국정보처리학회 학회지편집위원, 이사, 감사, 부회장
한국정보과학회 학회지편집위원, 영남지부장, 이사, 부회장
경남신문객원논설위원
한맥문학 신인문학상(수필)
문학저널 신인문학상(수필)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찬밥과 더운밥'(도서출판 : 엠아이지)
수필집 '내가 사는 이유'(도서출판 :(주)에세이)
경남대학교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교수(경영학박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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