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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되었나… 2002년 이후의 한국정치

무엇이 잘못되었나… 2002년 이후의 한국정치

 
무엇이 잘못되었나

다이나믹 코리아! 최근 몇년간의 한국정치를 말하는 데 있어 이보다 적절한 말이 어디있을까? 아무리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지만 한국정치의 흐름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기적적인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이 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 분당 사태가 일어났다. 그 후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 일어났고, 탄핵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에 힘입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압승을 거둔다. 그러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락했고,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했음에도 제대로 된 개혁 하나 못 하고 내분에 빠져 허둥대가 자멸하고 만다. 그리고 2007년, CEO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 여세를 몰아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17대 총선의 열린우리당 이상의 승리를 거머쥔다. 하지만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 파문으로 反MB 여론이 일더니, 급기야 6.4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예기치 못한 참패를 당한다.

당장 생각나는 큰 사건만 열거해도 이정도다. 2002년의 정당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그것도 대선 이후 내분을 겪은 상태다. 2002년 감동적인 승리를 거둔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된 끝에 대통합 민주신당으로, 다시 통합민주당으로 위태로운 재결합을 이뤘다. 2002년의 패배 이후 정계를 떠난 이회창씨는 화려하게 돌아와 자유선진당을 이끌고 있으며, 문국현이나 허경영같은 인물이 잠깐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끊임없는 정당의 소멸과 탄생, 그리고 내분, 갈수록 낮아지는 선거 참여율, 시민들의 집단 저항과 그를 강제로 진압하려 하는 정부, 일관성이 없는 정책, 사태를 예측하기 힘든 정계의 움직임.... 이걸 나쁘다고 단정짓기는 힘들어도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더욱 힘들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째서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일이 벌어진걸까? 이 복잡한 정치의 흐름을 일관성있게 설명하는 하나의 규칙성을 찾을 수는 없을까? 이 글은 이 의문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청와대로 갑시다!

청와대로 갑시다! 나는 이 한마디에서 최근의 한국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언젠가부터 촛불시위대의 최종 목적지가 청와대가 되었다. 딱히 청와대를 공격(?)하려는 배후가 있는것도 아니다. 무슨 계획된 일정과 시나리오가 있는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시위대는 청와대로 향했고, 청와대를 향하는 시위대를 막기위해 투입된 전경들과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사실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는 건 MB정부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사람들은 청와대로 향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던 시위대도 청와대로 향했으며, 부안사태때도 일부 시위자들은 상경하여 청와대로 가고자 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왜 하필 청와대인가?"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은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시위대의 청와대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부정적으로 평가하든 말이다. 물론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이고, 노무현 때의 한미FTA나 현재의 쇠고기 문제는 대통령의 판단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이니만큼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의 의견을 전하고자 한다면 국회도 있고 정당도 있다. 국회와 정당의 역할이 그거 아닌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법을 제정하고,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거. 사람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청와대로'만' 향하는 건 어딘지 이상한 일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 앞에 시민들이 집결한 적은 없지만 국회에 가서 시위를 벌이거나 주요 정당의 당사에 가서 시위를 벌이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민들이 행하는 비판의 초점도 철저하게 대통령에게 맞추어져 있다. 노무현 때는 이게 다 노무현 탓인지 아닌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지금은 MB가 얼마나 나쁜놈인지에 대한 담론이 여론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정당은 부차적인 존재다.

의회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의 의견이 정당과 국회를 통해 수렴되어야 함에도 국민들은 국회/정당을 배제하고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 직접 승부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역시 국회를 통해 무슨 일을 하기보다 대국민 담화와 같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한나라당이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민주당이 장외 투쟁을 선포했지만 현재의 대립구도는 국회와 정당이 배제된 '대통령(행정부) vs 시민' 의 구도다. 그리고 이 구도는 노무현 때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국회가 배제된 국민과 대통령의 직접 소통을 통한 정치. 이것이 청와대로 갑시다! 라는 구호에 담긴 의미이자 2002년 이후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다.


위대한 아웃사이더 : 노무현과 이명박

당연한 말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그렇지만 양자가 공유하는 확실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기성 정치권에서 한발 떨어진 아웃사이더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이다.

아웃사이더라는 틀을 통해 보면 노무현과 이명박의 흥미로운 공통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정치경력 자체는 짧다고 보기 힘들지만 대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대두하기 전까지 기성 정치권에서 그다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살펴보자.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 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후에 이명박씨의 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재선거에서 당선됨), 16대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며 부산지역에 출마했으나 낙선. 그 후에는 2001년까지 그다지 큰 힘이 없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노무현은 DJ계열, 민주당 구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명박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비록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는 순조로운 정치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회창, 박근혜와 같은 인물들에 비하면 당내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박근혜씨와의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로 결정적 승기를 잡았던 점을 생각해 보자. 이명박씨는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정치인이었지 한나라당 내부를 확실히 장악한 정당인은 아니었다. 그가 대선 후보가 된 후에도 당내 친박세력과의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으로 인해 친박연대가 따로 독립해 나간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아직까지도 복당 문제를 두고 한나라당 안밖의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의 아웃사이더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그 두사람은 모두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바람과 대세를 무기로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후보는 기존에 있었던 한나라당의 압도적인 우세에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대세론을 확산시켰고, 노무현 후보는 노사모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노풍' 에 힘입어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기성 정치인, 기존의 부패한 인사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썼다. 노무현 후보는 정풍운동 이후 참신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국민들의 마음을 끌어모았으며, 이명박 후보는 부패한 정치, 무능한 정치에 물들지 않은 유능한 CEO라는 이미지로 대세를 굳혔다. 그 방향은 다르지만 어쨌든 두 사람 모두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과 실망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대통령이 된 다음은 또 어떠한가?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아직(ㅠㅠ)100일밖에 지나지 않은지라 무엇이라 단정짓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100일을 가지고도 그의 정치 스타일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현 대통령은 모두 기존의 정치인들, 기성 제도를 불신하고 자신의 측근이나 각종 위원회 따위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분당이라는 초강수를 써서 DJ계열, 구민주당계 인사들을 쳐내려 했으며, 이후에는 유시민과 같은 친노 인사나 각종 위원회, 386출신 측근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명박 현 대통령도 친박인사들에 대한 노골적인 축출 움직임, 정두언, 류우익과 같은 측근들에 대한 과도한 의존, 국가경쟁력강화 위원회와 같은 자신의 의사를 추진할 의원회 이용과 같은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놀라울 정도의 유사점을 보인다. 간단히 말해 둘 모두 코드정치를 하고 있다.(코드정치를 안하는 대통령은 없겠지만 YS나 DJ는 기성 정치인들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존중했다는 점에서 NT나 MB와는 차이가 있다.)

탄핵의 두 얼굴 : 국회와 국민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탄핵은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제도적 장치이자 국회가 행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이다. 그러기에 탄핵은 쉽게 입에 담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최근 5년 이내 국민들은 탄핵이라는 말을 두번이나 꺼냈고, 탄핵 때문에 촛불을 들었다. 한번은 탄핵을 막기위해, 다른 한번은 탄핵을 이루기 위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 의해 탄핵되었다. 이게 국민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노사모와 같은 친노 집단이 중심이 된 건 맞지만, 노무현의 탄핵이 잘못되었으며 그를 탄핵한 국회를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은 범국민적으로 퍼져있었다. 17대 총선에서 이전까지 군소정당에 가까웠던 열린우리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소위 '탄돌이 국회' 를 만든 게 그 증거다. 어쨌든 국회를 풍자하는 각종 패러디물이 쏟아져 나왔고, 국회폐쇄, 국회폭파와 같은 말들이 나왔으며,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고 국회에 항의하기 위한 촛불시위를 벌였다.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했다.)

그때 촛불을 들었던 이들의 주된 논리가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멋대로 탄핵시켰다" 이거였다. 즉 국회에 대한 분노의 이면에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타락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국회'의 대립구도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386세대가 탄핵규탄 촛불집회를 주도한 이유로 그들이 이룬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어쨌든 국민들의 강력한 항의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2008년. 국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탄핵을 외친다. 오늘의 외침은 탄핵 반대를 위한것이 아니다. 탄핵을 위한 것이다. 물론 촛불집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 탄핵(혹은 하야)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적잖은 시민들이 국민의 힘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심판이 어떤 방법이냐를 떠나서 말이다. 확실히 "이명박은 물러나라!" "이명박 OUT" "쥐를 잡자" 따위가 촛불집회의 주된 구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음 아고라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탄핵 청원 서명을 제외한다면, 실제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는 국회를 대상으로 한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대통령을 탄핵시키고자 한다면 청와대로 가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를 외치는것보다 한나라당사에 가서 "이명박을 탄핵해라!" 를 외치는 게 더 낫다. 물론 한나라당이 MB를 탄핵시킬 리 만무하지만, 시민들이 청와대까지 진출한다고 해서 MB가 자진 사퇴할 가능성 역시 0%에 가깝다. 심지어 민주당에 가서 이명박 탄핵을 위해 애써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조차 전무하다.

결국 탄핵이라는 같은 말을 외친 서로 다른 두 집회는 '대통령은 국민에게만 심판을 받는다' 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다. 2004년 집회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에 대한 자발적인 권위 존중을 보여주었다면 2008년의 집회는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심판할 권리' 에 대한 요구를 보여주고 있다. 의회는 철저하게 부정적인 존재이거나 혹은 부차적인 존재다. 법적 탄핵권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견제하는 것이 국회인 사실을 시민들이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따라서 한국의 대통령은 국민이 지지하는 이상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이지만, 반대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으면 직접 심판해야 할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두차례의 총선에 대한 고찰 : 17대 vs 18대

앞선 장에서 국민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들이 국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선거에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생각해볼 차례다. 2002년 이후 두 차례의 대선이 있었고, 두번의 총선이 있었으며, 한번의 지역선거가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보궐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 내가 주목할 건 17대와 18대 국회를 선출한 두 번의 총선이다. 국민들이 국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피는 데 총선보다 더 적합한 대상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17대 총선은 간단하다. 국회에서 노무현을 탄핵했고, 국민들은 거기에 분노했다. 그래서 국회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열린우리당을 강력히 지지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원내 제일당이 되었고, 한나라당은 박근혜씨의 활약으로 간신히 선방했으며, 구 민주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그 외에도 자민련이 몰락했으며,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대립구도는 '국민이 선출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당 vs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한 썩은 국회의원들' 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분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했음에도 선거의 초점은 대통령으로 모아졌고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구 민주당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겉으로 당정분리를 내세웠지만 실제 친노의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강력히 유지하려 시도했고,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준 시민들 역시 열린우리당의 정책이나 노선, 이념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정당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 노무현' 의 정당이었기 때문에 지지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는 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노무현의 인기가 추락하자, 열린우리당이 함께 무너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열우당 소속 의원들의 무능이나 내분도 몰락의 주요 원인이었겠지만.

얼마 전 있었던 18대 총선은 또 어떠한가?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에 했던 것보다 더 확실한 승리였다. 친박연대, 자유선진당까지 합치면 소위 '보수'세력이 국회를 장악한 것이다. 18대 총선에서도 대립은 정당간 대립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대선 완승의 분위기를 이어가려 했었고, 반대로 민주당은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이겨내려 했었다. 17대 대선때 그랬던 것처럼 한나라당은 反노무현 + 경제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뉴 타 운!)에 의존했고, 민주당은 反이명박/反한나라당 + 견제론에 의존했다. 실제 대립하고 있는 대상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임에도 이명박 vs 노무현 구도로 선거가 이루어진 꼴이다.

6.4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한 것 역시 17대, 18대 총선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선거의 승패를 갈랐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대적으로 지역감정(이말은 쓰고싶지 않았건만 ㅠㅠ)이나 지역 토호의 입김이 강한 지역선거임에도 '촛불 민심' 의 힘으로 한나라당은 예상외의 패배를 당했다. 따라서 두 차례의 총선, 그리고 얼마전 보궐선거를 통해 우리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가 정당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나마 내릴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지방 보궐선거에까지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여부가 큰 영향력을 끼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한번, 무엇이 잘못되었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처음 내가 던진 질문은 "무엇이 잘못되었나" 이다. 여태까지 한 분석에 따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답이 나온다. 정당과 의회를 매개로 하는 의회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대신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그 대통령과의 직접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국회는 국민들의 의사를 수렴, 대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입법기계, 혹은 파이트 클럽으로 전락했으며, 정당은 여전히 대통령 개인에 의해 흔들리는 무기력한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건 3김때 더 심했으니) 국회와 정당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와,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도적 참여에 대한 불신과 직접 참여에 대한 의존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썩 바람직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극에 달했고, 국회의원들은 상종하기 힘든 더러운 존재로 간주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국회의원은 그놈이 그놈이고 천하의 썩을놈들이라는 식의 불신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있다. 그 결과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국회와 정당의 역할 또한 갈수록 축소된다.

이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광범위한 불신 + 대통령 개인의 자의적인 권력 확대 시도 +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국회의원들의 부패와 무능' 이 삼자가 합쳐져서 낳은 결과로 볼 수 있다. 국회/제도에 대한 불신과 직접참여/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의존. 이것이 2002년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틀이자, 복잡한 최근 정세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정치 지형이 계속되는 한 이명박 대통령을 몰라낸들 이와같은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제도적 참여와 직접 참여가 함께 가고, 국회와 대통령이 함께 국민과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의회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

연속과 단절 혹은 조심스러운 추측

불행히도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답을 내 놓았지만(그 답이 맞든 틀리든) '왜'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잘못 바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다만 한국사회의 연속과 단절에 대해 한가지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 보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최근 십여년간을 되돌아볼 때, 한국사회의 모습을 바꾼 결정적인 분기점은 언제였을까? 가장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97년 IMF위기다. 그 일을 계기로 한국 경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전반적으로 바뀌었음은 분명하다. 이른바 '신 자유주의' 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문화적 분기점은 2002년의 월드컵과 17대 대선이 아닌가 싶다. 그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딘지 YS-DJ로 이어지는 이른바 '삼김시대' 와는 다른듯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나 국민들의 정치 참여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노무현-이명박은 연속성이 강한 반면 김대중-노무현은 단절성이 강해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2002년 이후는 3김 시대가 끝난 뒤,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 모델을 찾지 못해 발생한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이 되었다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자리잡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보기 힘들다. 민주정치의 경험은 민주화 운동의 경험보다 짧고, 정당정치의 경험은 민주정치의 경험보다 짧은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러나 분명 군사독재 시절의 유산을 청산하고, 3김 시대를 지나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으며,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뉴스보이> 이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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