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번 촛불집회를 과연 '합리적' 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괴담만 가지고는 이토록 큰 집회가 장기간 계속될 수 없다. 광우병 괴담은 노무현 때도 있었고,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움직임 역시 NT때 존재했었다. 한미 FTA반대 집회 역시 열린 바 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과 같은 범국민적인 참여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정치 참여도 사실상 전무했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월등히 좋았던 건 아니다. 한미FTA를 추진할 무렵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그나마 노무현을 비호했던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NT를 비판했다. 확실히 광우병 괴담만으로는 이번 촛불집회를 설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최근의 시위에는 600도 프리온 같은 광우병 괴담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괴담은 NT때도 있었다오]
이명박에 대한 반대세력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아고라는 지난 대선때부터 Anti-MB여론의 중심지였다. 올블로그나 이글루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반대여론이 있는 것과 실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이명박 반대여론이 강해도 실제 현실에서 이명박 지지여론이 강하다면 장기간 촛불집회가 계속될 수 없다.
조선일보마저 논조를 이명박 비판쪽으로 바꾼 건 온라인 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이명박 비판 여론이 우세해졌다는 확실한 증거다. 얼마 전 있었던 보궐선거 결과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고 이른바 진보 지식인들이 통분의 한숨을 내쉬던 게 고작 두달 전이다. 아니, 촛불집회가 처음 열리던 5월 초만 하더라도 이토록 Anti-MB여론이 강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선지자 허경영을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취임한지 채 1년도 안되서 탄핵 구호가 나올 걸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이상할 정도로 자충수를 두고있다. 어이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미국과의 협상에서부터, 촛불집회에 대한 대응에 이르기까지 "배후는 이명박" 이라는 풍자성 구호가 진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끊임없이 촛불에 기름을 붓는 일을 해 왔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해라"는 대통령의 발언부터,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실업자들" 운운한 이상득 의원의 말. 뉴라이트 인사의 맥도날드 발언까지. 말 뿐이 아니다. 경찰특공대 투입이나 물대포와 같은 불필요할 정도의 강경진압을 강행하여 시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 지경임에도 자신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게 놀랍다.
유가 폭등과 그로인한 물가 상승도 Anti-MB여론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경제대통령, CEO대통령을 내세우며 민생문제를 모두 노무현 탓으로 돌렸던 MB였기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서민들의 불만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맞다. 기름값이 오른 게 어떻게 대통령 탓이겠는가. 그러나 MB가 대통령만 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과장광고한 게 MB와 한나라당이었으니 자업자득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배후']
이제 정리를 해보자. 이번 촛불시위는 ⓐ 광우병에 대한 공포 ⓑ 이명박을 반대하던 사람들 ⓒ 대통령과 여당의 끊임없는 자충수 ⓓ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서민경제 위축 - 이 네가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발생했다. 만약 대통령이 초반 대응만 잘 했었다면, 운좋게 국제유가가 하락세였다면 이러한 대규모 집회가 장기간 지속될 일은 일어나기 않았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기에는 너무 내외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다. 우연까지는 힘들더라도 이번 촛불시위를 필연이라고 보기는 힘든 셈이다.
더욱 절묘한 건 우연이든 필연이든 촛불시위가 일어난 덕에 국가적인 대재앙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터무니없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신중함 없는 각종 사(私)영화 계획이다.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이 되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합친 보수세력의 의석이 200석에 육박하는 게 18대 국회다. MB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대운하든 의료 민영화든 공기업 사영화든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는 정국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로 MB에 대한 신뢰도와 MB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그와 비례해 MB가 계획하고 있는 각종 급진적 개혁방안에 대한 비판여론은 높아졌다. 설사 이번 촛불시위가 쇠고기 재협상과 같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할지라도 MB의 막가파식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건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앞으로는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지지를 받더라도 MB는 함부로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히기 힘들 것이다. 언제라도 이와같은 범국민적 저항이 뒤따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포기를 모르는 남자 MB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가 보통 수준의 상식과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렇게 하는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어떤 사람은 이번 시위를 괴담으로 인한 우매한 대중들의 집단 광기쯤으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광기들린 우매한 대중' 덕에 MB가 나라를 국밥에 말아 고소영 친구들과 나눠먹는 걸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소고기 수입은 찬성하지만 대운하는 반대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주장이고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소고기 수입 문제가 MB의 뜻대로 소리없이 넘어간다면 대운하 역시 소리없이 사업이 추진될 공산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소고기 수입은 소고기 수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의회 과반의석을 등에 업은 MB 폭주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번 촛불시위에서 혁명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으며, 광우병 괴담에 휩싸인 우민들의 집단광기를 발견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MB의 독단적이고 또 급진적인 개혁이 일시적으로나마(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좌절되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촛불시위와 같은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 제도권 정치인을 통해서든,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서든 - MB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앞으로라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큰 위기를 하나 넘겼다. 그리고 더이상 대운하와 같은 시대착오적 토목공사나, 어용세력을 동원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국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졌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뉴스보이> 이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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