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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다이어리

[성우인터뷰] 장민혁 "젊은 성우들 치열한 쟁취의 나날 보내"

[성우인터뷰] 3. 장민혁 "젊은 성우들 치열한 쟁취의 나날 보내"






"우리 기수가 마지막으로 징검다리 기수거든요. 전속기간이 2년으로 줄면서 이후로는 매년마다 KBS 공채가 있으니까 우리 포지션이 좀 재밌어요."

그는 손해보는 시류에 끼었다고 실소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만큼 확실하게 빨리 치고 나가는 영건도 보기 드물다는 거였다. 

'셜록홈즈' 장민혁 성우를 만났다. 




장민혁
2005년 KBS 32기 입사

대표작
외화
셜록 - 셜록홈즈 (KBS)
트랜스포머 1,2 - 샤이아라보프(KBS)
인디아나존스 4 - 샤이아라보프(KBS)
뉴욕 아이러브유 - 샤이아라보프(KBS)
명화극장 굿바이 - 야마시타 (KBS)

애니메이션
완소! 퍼펙트반장 - 우진 (챔프)
우리들이있었다 - 타케우치 (애니박스)
내친구해치 - 초코칩 (SBS)
정말웃기는마을 (니켈로디언)
닌자의왕 (애니맥스)

특촬물
가면라이더키바 (챔프)

라디오드라마
남남북녀 (KBS) - 남한강




전속때부터 이미 완성된 성우


장민혁 성우는 '신성'이다. 2005년 공채에서 합격, 2006년부터 KBS에서 데뷔했다. 3년간의 전속기간을 거친 후 프리랜서로 활동한 이력은 이제 2년 남짓. 그런데 그의 대표작을 보자면 쉽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열되는 목록도 길고, 굵직하다.

위의 대표작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그는 샤이아라보프의 전담성우가 됐다. 헐리웃의 샛별인 그와 이미지도 얼추 맞아 떨어졌다. 무엇보다 전속 때부터 주인공을 맡고(KBS 남남북녀), 프리 1년차에 대작외화 트랜스포머의 주연을 꿰찼으니 향후 그는 출발 때부터 돋보였던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세대를 넘어 수십년 선배의 극찬도 따른다. 1969년부터 마이크를 잡은 애니메이션의 대모 최수민 성우는 그에 대해 "전속 때부터 곧잘 해내는 '잘하는 성우'"라고 찬사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현재 KBS의 기대주를 넘어 타 방송사에서도 폭 넓게 활동기반을 닦고 있다. 케이블채널 챔프, 애니박스 등지에선 주연급 캐릭터를 계속해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맞는 역할 모두가 남자라면 탐낼만한 멋진 주인공들이다. 학교의 왕자님, 대작 블록버스터의 주인공, 그리고 셜록 홈즈. 누가 뭐래도 그의 대표작은 셜록홈즈다. KBS에서 작년 방영한 셜록에서 주인공 셜록홈즈(베네딕 컴버배치) 를 맡아 호연하며 더빙보다 원판을 선호하는 이들에게서도 근사하다는 평을 이끌어 냈다.



이미지출처 - KBS 외화시리즈 셜록


셜록 홈즈로 다시 보는 외화더빙의 가치


"제가 생각해 봐도 행운이었죠. 제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는 셜록 때 오디션을 봐서 발탁됐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오디션 경쟁자들은 쟁쟁한 선배들이었고 자신은 그저 프리랜서 1년차였다. 경험삼는다는 생각으로 했다. 원래는 홈즈월드의 또하나의 주인공인 왓슨 역까지 같이 염두하고 오디션에 나섰다고.

"셜록도 그렇고 왓슨도 그렇고, 서로의 상성이 맞아야 한다는 여부가 심사 때 작용했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홈즈가 됐고 왓슨은 한 기 선배인 박영재 성우가 맡았어요."

그러나 "대본을 외울만큼 열심히 봤다"는 부분에서 운 만으로 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게 됐다.

"셜록에 보면 소위 비엘이라 불리는 그런... 어둠의 요소가 은근히 담겨 있었던 것도 주효한 것 같아요. 사실 은근 힘들었던 더빙이예요. 목소리를 꾸며서 한 것도 있고, 쟤네들은 노노노노노 할 때 우린 안돼안돼안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소리지르려니 힘들었죠."

공중파 TV 외화는 과거 80년대 때의 전성기를 생각하면 지금은 누가 봐도 찬밥 신세다. 주말의명화, 토요명화 모두 폐지됐고 따라서 시즌제의 외화 시리즈 몇편이 심야 시간대에 명맥을 잇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3부작 짜리 셜록의 편성은 보기 드문 예였다.

"그러나 우린 더 활성화되길 바라건만 윗선에선 그리 생각 않나 봐요. 결국은 그래서 토요명화 같은 외화가 폐지되고 더빙작은 시간이 계속 밀리더니 새벽대로 가고, 그러면 시청률 바닥이라는 악순환만 계속되고."

중요한 건 셜록으로 내부에서도 고무되는 반응이 있었다는 부분이다. 이런 작품이 계속 된다면 언젠간 외화에 다시 볕이 들지도 모른다.


인터넷 악플도 문제, 외곬수적인 옹호도 문제... 객관적인 성우팬들 만나 평가받고 싶다

장민혁 성우는 전속 때 라디오드라마 남남북녀의 주인공 남한강 역할을 따 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라디오드라마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KBS에서 전속성우가 주연을 맡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외화에서도 그는 발빠른 행보를 보이며 벌써 주역급을 두루 섭렵했다. 셜록홈즈에 앞서 트랜스포머의 주연을 그가 맡았을 때는 더빙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알고보니 그 작품도 오디션을 거쳐 진행됐었다고.

"정말 그 땐 경험삼는다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아니나다를까 가니까 쟁쟁한 선배님들이 오신 거예요. 마음 비우고 했죠. 그런데..."

그런데 본인도 생각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기존의 익숙한 성우들의 목소리와는 뭔가 다른, 신참 성우의 보이스가 선택됐다. 지금이야 밝히지만 그 땐 스스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내가 들어도 닭살이 돋고 못 보고 못 들어 주겠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성우 '장민혁'이 알려졌죠. 선배님들도 어디 녹음실에서 만나면 '니가 걔냐?'하고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는 갓 프리랜서가 된 햇병아리 성우에게 있어 큰 행운이었다. 그는 "원래 그 캐릭터가 좀 맹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게 나와 잘 맞았었나 보다"라고 회자한다. 그러나 워낙 큰 작품이다 보니 그는 인터넷에서 혹평이 나오는 것도 확인하게 됐다.

"나에 대해 작품팬, 더빙팬, 성우팬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모니터링하려고 인터넷 서치를 곧잘 해요. 특히 디시인사이드는 자주 봐요. 성우갤러리도 자주 들어가 보고, 또 관련 작품이라던가 다른 갤러리도 들어가 봐요. 딱히 디시만 주로 찾는다는게 아니라 셜록 때는 검색하니까 죄다 디시갤만 검색되어 나오는거예요. 성우갤러리야 워낙 좋게 봐 주시고들 그랬지만, 역시나 다른 관련갤러리, 트랜스포머갤러리라던가 그런 곳에선 혹평이 나와요. 악플도 있고."

"감수할 만 했나요?"

"아니 뭐, 어차피 다 감안하고 내 평가를 모니터하려고 들어간 거니까 지적받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데, 진짜 누가 봐도 딱 아 이건 악플이거나 싶은 글 있잖아요. 특히 트랜스포머 당시엔 정도가 심한 글 보면서 연예인들이 이래서 자살하나 싶긴 했어요. 별 말 아닌 것도 상처될 수 있는데 심한 건 심하죠. 그런데, 악플러들은 칭찬도 악플처럼 달더라고요."

반면 성우갤러리에선 좋은 말이 많아서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거꾸로 트포갤을 주로 서핑했다고 한다. 

"성우갤은 칭찬, 트포갤은 욕... 성우갤러리들은 진짜 대개가 좋은 말을 해 주세요. 그런데 성우갤은 어디까지나 위안을 받는 곳이고, 평가는 보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애초 트포갤에서 상황을 봤어요."

그는 "악플도 문제지만 너무 외곬수 식으로 옹호만 하는 것도 문제지 않을까"라고 더빙작에 있어 솔직한 평은 받고 싶다고 말한다. 

"성우갤러리에서 애정어린 비판을 해주면 나는 환영이죠. 객관적 평으로 모니터링 받고 싶어요. 가장 좋은 것은 객관적이면서 성우팬인 분들이 딱 좋습니다."



지금은 슈퍼루키, 그러나 성우시험은 5전6기... 마지막 시험은 드라마

이 쯤하면 그가 '처음부터 성우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도 성우가 되는 길은 녹록치가 않았다. 그는 다섯번 미역국을 먹고 여섯번째 시험에서 붙었다.

"스물 셋에 성우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시험은 여섯번 봤네요. 사이사이에 시험 기회가 더 있어서 몇번 더 볼 수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짓을 하면서 응시기회 몇번을 날렸어요. 여섯번 중 네번을 KBS시험에만 매달렸어요. 그러고보니 그 중 앞서 세번은 1차도 합격 못했네요. 그러다 결국 스물여덟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차시험까지 내달린 뒤 붙었죠."
  
그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각오 비슷한 것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 때서야 지금까지의 시험은 뭔가 절실함이 부족했었다고 깨달았다. 

마지막 시험은 전화위복이었다.

"응시접수를 일찍 했어요. 그리고 일찍 나서려고 알람을 맞추고 전날 잠들었는데 이게 안 울린거예요. 어머니도 좀 일찍 나서려던 것은 생각을 못하시고 좀 더 자라고 안 깨우셨대요. 속으로 '으아 씨'하면서 나섰어요. 근데, 희한하게도 이 날 잡아탄 버스가 신호 한번 안 잡히고 씽씽 달리는거예요. 뭔가 묘한 예감이 들더라고요."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던 시간에 방송국에 닿았다. 그리고 시험에 딱 드는데 또 묘한 일이 벌어졌다.

"문제 지문이요. 이게 아버지에 대한 원망 비슷한 것을 담아내야 하는 지문인데, 이 때 오늘 아침에 있었던 감정이 솟아나는 거예요. '엄마 왜 날 안 깨워줬어!' 하는 그런 기분. 상황이야 정반대지만 그래도 부모에 대한 자식의 마이너스 감정인 것을 동일하니까, 이걸 좀 본래 것보다 오버해서 나타냈어요. 그랬더니 합격이야."

1차 시험 통과는 그리도 어려웠는데, 정작 2차 시험을 가니 큰 난제가 없이 그 한번으로 바로 합격이었다고 한다. 어머니한테 사실을 맨 처음 알릴 때, 짖굿게도 '엄마 나 어떡하지?'로 말문을 열었다. 또 안됐구나 싶어 착잡한 심정이 묻어나오는 어머니보고 그제사 '나 이제 출근해야 돼 어떡하지?'하고 물었다고. 부모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으니 이런 불효가 또 없다. 
 
그 다음엔 여자친구한테 알렸다. 이번에도 나쁜 남자 모드가 작동한다.

지금의 제 와이프, 그러니까 그 땐 한창 작업걸던 여친이었죠. 합격한 내색 않고 인상 쓰며 '아 나 어쩌지'하고 만나자마자 고뇌하니까 울먹거려요. 그런데 내가 '됐어' 하니까 '뭐?' 그래요. '아 됐다고, 성우 됐다니까' 하니까 그 자리서 진짜로 울려고 하대요. 아. 그 때 기분 잊지 못해요."

"좋았다는 거지요?"

"당연히 좋았지요. 그 때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어요."

알고보니 나쁜 남자였어. 참고로 그는 아내와 교제할 때부터 성우들이 모이는 자리에 대동해 성우라는 직업의 매력을 보여줬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성우들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잘 이해해 준다고 했다.




성우를 꿈 꾼 계기는 내 여자짝의 소원을 이어받아서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가 성우가 되겠다고 다짐한 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었다. 처음은 초등학교 때였다. 자신의 짝이었던 여학생의 꿈이 성우였단다. 존경하는 성우는 가제트로 유명한 대성우 배한성이었다. 덩달아서 자기도 성우가 꿈이요 존경하는 사람은 배한성이라고 장래희망 발표 때 선언해 버렸다. 그게 성우를 지망한 첫 계기다. 

"그게 다예요?"
"아하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후 잠시 잊었던 그 꿈은 대학진학 후 다시 수면위에 떠올랐다. 내 꿈은 성우라고 확인하게 됐다고. 그래서 그의 이십대는 성우가 되는 인고의 과정과, 결실을 따는 행복함으로 장식됐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참 좋았다

장민혁 성우는 이날 경사가 있었다. 아이가 백일을 맞았다. 젊은 나이에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고 또 귀여운 자식까지. 이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소망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부모님 복도 많은 사람이었다. 먼저, 어머니는 물심양면 아들의 꿈을 밀어주셨다. 스물여덟, 그가 성우지망생으로 살며 잘 될까 하는 회의감에 젖었을 때 어머니는 '일단 올해까진 힘내라, 내년은 그 다음 생각해보자'고 격려해 주셨다고.

아버지는 좀 독특했다. 고교 시절이 끝나고 진학 문제를 고민할 시기다. 집에서 아버지가 "너 뭐할 거냐?" 하고 물을 때 마침 아버지는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고 했다. 

"'성우요' 하고 말하니 곧장 하시는말씀이 '에이 자식이라고 키워봤자~' 그러시고는 또 '위잉'하시는 거예요. 돈 안되는 일이라는 거죠. 사실 우리집이 좀 형편이 어려워서, 곧장 집안에 보탬이 되길 바라신것 같아요."

그는 삼형제 중 막내였다. 생각해보면 형들도 다 좋았고 부모님도 다 좋았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식의 꿈에 '스톱'을 건 적은 없었다.

나중에 그가 성우아카데미를 다닐 때, 아버지는 또 한번 그에게 물었다. 그 때도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계셨다.

"거기서 수료하면 자격증 따냐?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없는데요 라고 했죠. '시험은?' 하시길래 '내년'이랬더니 또 '에이'하시고 '위잉'이예요."

"아버님이 가정적이신가 봐요. 그 때마다 항상 청소기를 돌리시네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만 딱 청소기를 돌리시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뒤였다. 그가 얼떨결에 언더그라운드 성우 일을 맡게 됐다. 두어시간 넘게 진땀을 흘리며 '참 어려운 일이구나'하고 느꼈다는 그는, 곧장 10만원이란 돈이 주어지자 '오!'하고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부모님께 성우일로 번 첫 돈이라며 드렸다. 

"그 땐 아버지가 별 말이 없으셨어요. 헌데 며칠 뒤 집에 조사가 있어 친지들이 모인 자리였어요. 할아버님이 돌아가셨었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우리 막내가! KBS성우야! 30분만에 10만원을 벌어 왔어!' 하고 자랑을 하시는거여요. 아니 KBS아카데미 수강생을 성우라고 하시고, 두세시간 넘게 일한걸 30분이라고 하시니 주변 사람들이 '어억? 우리 집안에 성우가 들었단 말야? 민혁이가 큰 인물이 됐어!'하시니 아하하 이걸 어쩐대요."

부모의 마음은 그런 거였다. 요샌 성우로 커 가는 자식의 가장 든든한 응원자시다.




우리 젊은 기수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산다

"그게... 이 자리가 절반의 의미는 성우분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고, 또 다른 절반은 '성우'란 주제 중 하나를 잡아 이야기하는 의미가 있어요. 성우님은 지금껏 만난 분들 중에서도 제일 젊은 분입니다. 그래서 성우의 세계에 들어선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젊은 기수의 근황, 신진급 성우의 고충에 대해 묻고 싶어요."

"예 저도 그게 젤 낫겠다 싶어요. 제가 경력이 몇년 안 되는지라 달리 뭐 이야기 할 게 있겠나 걱정했어요. 인터뷰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뉴타입 잡지에서 성우 인터뷰 진행할 때도 제 순서는 안 돌아오더라고요. 트랜스포머 땐 단체 인터뷰가 있긴 했는데 전 그때 슬쩍 빠졌고, 셜록홈즈는 글쎄요. 저도 화제작이 되어서 한번 쯤 기자들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게 '다른데서 찾아가겠거니'하고 생각했는지 안 오더라고요."

그는 겸손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요즘 성우들은 전속 기간이 짧아서 커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어지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생존게임을 한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햇수로 데뷔 후 경력 6년차신가요. 지금 같은 시기가 성우분들에겐 참 어렵고 치열한 시기일거 같아요. 한 켠에선 이제 프리랜서인데 실력을 보여줘야하지 않겠나 하고 기대하고, 또 한 켠으론 그래도 출중한 선배들이 앞에 많이 있는데 그에 비하자니 경력이나 여건이 녹록친 못하실거고."

"으음, 지금은 전속성우도 실수했다고 해서 봐 준다거나 기다려 준다거나 그런 게 없어요. 과거와 달리 기간이 워낙 짧으니까. 옛날엔 전속기간이 10년이었다잖아요? 실수해도 '그래,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이젠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바로 경쟁해야 해요. 실수를 두번만 하면 바로 그 자리서 바로 위축됩니다. 성우가 되는 순간부터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돌입한 거죠."

그는 자신에 대해 "모나진 않지만 튀는 부분도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한다.

"사실 제 동기들이 모두 짱짱해요. 여자들은 일단 성별이 다른 관계로 경쟁할 그룹이 다르다고 보고, 남자들만 놓고 보더라도 모두 실력도 좋고 배경도 대단해요. 예대 나오고, 또 경력도 화려한데다... 동료지만 또 경쟁자인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긴장할수 밖에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사실 성우는 누구나 다 열심히 해요. 형석이 형(정형석 성우는 32기 동기로 그보다 몇살 연배다)만 해도 꾸준한 반복연습에 발음이나 자연스러움 등을 두루 갖춘 성우고."

그런데 그 와중에서 "난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였다. 

"남남북녀는 정말 우연히 발탁됐어요. 그리고 벌써 3년째 하고 있고요. 신인상도 그 작품으로 받았어요. 이후에 트랜스포머, 셜록홈즈, 우진이... 하지만 나한텐 큰 기회가 먼저 온거고, 아직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동기나 후배들도 반드시 기회가 언젠간 올 거예요."

그는 "겸손해지려고 노력한다"며 "지금까진 기대 이상으로 잘 달려왔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였을 뿐 내 실력에 우쭐해 하거나 해선 안된다며 스스로에게 주문한다"고 말했다.




지금껏 해 왔던 작품들 돌아보니

이쯤에서 그는 그간 자신이 해 왔던 작품들을 돌아본다. 그의 인생 최초의 인터뷰에서 풀어놓는 에피소드들이다.

"먼저 가면라이더 키바요. 나름 중간보스로 나왔었는데 오디션 봐서 됐죠. 헌데 이 캐릭터가 편당 다섯 여섯줄 하더니 어느샌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완소 퍼펙트 반장은, 우진이라는 애로 나왔는데 얘도 주인공이랍시고 나와선 대사가 편당 몇 줄이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뭐 좋죠. 캐릭터는 한 두마디 하면 여자들이 멋있다고 우루루 몰려드는 애였고, 나는 나대로 받을 거 다 받으면서 일은 딱 몇 줄 대사로 끝내고. 으하하하. 물론 농담인 거 아시죠."

"트랜스포머와 셜록 때는 어땠어요?"

"트랜스포머는 바깥에선 아까 말했듯 워낙 골수팬들이 많다 보니 악플도 받고 했지만 그와 별개로 신선했다고 좋게 봐 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또 안에선 선배님들이 '리얼한 모습이 좋다'며 칭찬 많이 해주셔서 기뻤어요. 셜록 땐 인터넷 정말 자주 들어가 검색해 봤네요. 요샌 바빠 잘 못들어가지만 그 땐 정신없이 내 연기에 어떤 반응일까 살폈어요. 다행히 트포 때에 비해 평이 좋았어요."
 
"전 작년 KBS성우연기대상 때 팬들이 많으신 거 봤었는데."

"나도 놀랐죠. 누가 '장셜록' 패킷을 들고 있던데 구자형 선배님이 '너 팬 있네'하고 놀리시질 않나, 선배님들이 그걸 다 본 거예요. 드라마씨디 쪽으로도 팬이 좀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끝난 뒤엔 사인해달라는 분들이 쇄도하는데, 문제는 제가 카드에 찍찍 긋는 사인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인을 급하게 개발하기도 했어요. 내 아내랑 머리 맞대고 사인 개발한 거 좀 있다 보여드릴게요."(그는 끝나고 내게 사인해주었다)

"다시, 애니메이션 쪽은요?"

"요샌 우리들이 있었다에서 엄상현 선배님과 친구이자 사랑의 라이벌로 녹음 중에 있어요."
 
"여주인공이 대원 1기 김성연 성우죠?"

"맞아요. 예전부터 그녀를 좋아하는데, 또 친구와의 우정때문에 뒤에서 바라만 보는 그런 남자애예요. 또 닌자의 왕이란 작품에서는 유키미란 캐릭터를 맡았는데 그 캐릭터 괜찮았어요. 너무 어린 층 위주의 가벼운 작보단 이런 청소년 타겟 작품이 재밌었죠."

"그럼 특별히 선호하는 작품이나 캐릭터는?"

"진지한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애니메이션보단 영화쪽이 재밌었는데, 애니메이션도 연령대가 높은 층이면 또 괜찮고요."




성우지망생들 적극적으로 나가라... 얼마전 새로 생긴 내 꿈은...

성우지망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선 늘 겸손하길 주문하면서도 시험을 칠 때 이들의 자세에 대해서는 "겸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시험을 칠 때는 겸손하지 않아도 돼요. 자신있게! 열정적인 사람은 눈에 바로 들어와요. 물론 실력은 기본이고 소리와 발음이 제일 중요한 건 알죠?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해요. 없으면 있는 척도 해요. 특히 KBS는 선 굵은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공부할 때 수업에 임할 때 수동적으로 있지 말고 늘 사고가 깨어있어야 해요.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 때마다 무조건 다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려고만 하지 말고 이 말은 맞는 거 같아, 이건 아니야 하고 스스로 분별해 보려고 노력하도록 해요. 갇혀있으면 안되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또 그래야 합니다." 

그럼 성우 장민혁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때 여자 짝의 꿈에 자신도 덩달아 세상에서 존경하는 사람은 배한성 성우고 내 꿈도 성우라고 발표했던 소년은 이제 애아빠가 됐다. 여전히 내일을 향해 쏘는 그가 겨냥하는 곳은 어딜까.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성우를 할 수 있을까, 30년 할 수 있을까, 요샌 40대 넘어가면 특출난 선배님 아닌 이상은 몸값은 올라도 일감 얻기엔 여러모로 어렵다던데 같은 걱정을 요즘 들어 자주 해요. 구자형 선배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고선 '넌 계속 올라갈 애가 왜 벌써 그런 생각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스스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길 '내가 최고의 성우가 될 수 있을까'같은 막연한 생각 말고 다른 것을 꺼내본다고 했다.

"요새는 그렇게 생각해요. 최고의 성우란 하다보면 될수도 있고..."

"그리고?"

"안 될수도 있고. 그저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뭐 그 정도를 바라고 있어요. 이 길이 내 길일까 고민하던 지망생이 이젠 여기까지 와서 생전 인터뷰란 것도 다 해보잖아요? 그럼 언젠가는 성우 장민혁의 이름이 어느 누군가의 기억엔 딱 남아 있겠죠. 그 정도는 바라고 있어요. 최고의 성우가 될거야, 나도 배한성이 될 거야 같은 바람은 그 이후에 생각해 볼거예요. 배한성 선배님 계신 그 자리까지 올라간다면 정말 좋고요. 열심히 하다보면 계속해서 지금보다는 더 높은 곳, 또 높은 곳으로 가 있겠지요."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에필로그 - 마지막으로 그는 다음 주자가 될 사람을 부탁받고 잠시 고민한다.

"으음, 한 세사람...아니 네사람인가? 떠오르네요. 정재헌 선배님은 어떤가요?"

"MBC의 새로운 에이스?! 인기 좋으신 분이니 소개해 주신다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그리고 또 떠오르는 사람이... 제 동기네요. 도형이는(KBS 32기 성우 남도형) 어때요?"

"남도형 성우님이요? 요새 페어리테일에서 주연으로 열연 중이신 분! 역시 만나뵙고 싶은 분이예요."

"그리고 혹시... 제 동갑내기 친구인데 투니극회의 성태는(투니버스 6기 성우 박성태) 어때요?"

"아! 성우갤러리에서 여자팬들이 좋아하는 분이죠. 독자들이 좋아하겠는데요?"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어요. 그 사람은 어때요?"

"...그 분 말인가요?"

많은 성우들을 다음 주자로 소개해 주고 싶어하는 그였다. 누가 네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이 될 지는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누구 할 것 없이 이 시대의 젊은 기대주들이었다. 그래서 또 설렌다. 다음번엔 또 어떤 성우와 어떤 이야기로 '성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다가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