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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다이어리

[성우인터뷰] 채의진 "여자가 성우로 산다는 건..."

[성우 인터뷰] 2. '뱀파이어 공주' 채의진 "여자가 성우로 산다는 건..."







"뱀파이어 프린세스, 뱀파이어의 기사, 트와일라잇에 뉴문까지... 정말로 요즘 뱀파이어의 공주가 되었네요."

뱀파이어는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존재다. 그 경외로운 존재가 등장하는 판타지물에 목소리를 입히려면 역시나 매력적인 목소리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 필수요건을 완벽히 갖추고 '뱀파이어물의 안방마님'으로 거듭난 성우가 바로 채의진 성우다.

'뱀파이어의 공주'  채의진 성우를 두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채의진
MBC 1999년 공채 15기 입사
대표작
애니메이션 꼬마마법사 레미 진보라 (MBC)
                미치코와 핫친 핫친 (애니박스)
                쵸비츠 (애니원) 하숙집 미망인
                기동전사 건담 시드 프레이 알스터 (애니원)
                바텐더 (애니박스) 쿠루시마 미와
                디지캐럿 (챔프) 데지코
                키테레츠대백과 (카툰네트워크)
특촬물 파워레인저 트레저포스 옐로우 하나 (챔프)
외화 트와일라잇 벨라 스완 (MBC)
       뉴문 벨라 스완 (MBC)
나레이션 뽀뽀뽀 (MBC) 
             TV특종 놀라운세상 (MBC)
             재능무한대 (MBC)
           


'뱀파이어물 전담 성우'

채의진 성우는 요즘 들어 우연이라 넘기기엔 기묘할 만치 뱀파이어물 작품 복이 터졌다. '친정'인 MBC에선 설 특집외화로 준비한 트와일라잇과 뉴문의 연작에서 그녀를 주연인 벨라 스완에 캐스팅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이미지에 그녀 특유의 고운 목소리가 입혀지면서 더빙판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새로운 분위기의 벨라를 선보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름에서부터 '뱀파이어'가 붙는 작품을 앞뒤 다투듯 맡았다. 최근 애니박스로 전파를 탄 뱀파이어 프린세스에선 신비한 소녀 메이렌 역을 맡았고 애니맥스의 뱀파이어 기사에선 세이렌으로 분해 열연했다. 우연찮게 두 캐릭터는 이름조차 비슷하고 말수가 적은 신비한 캐릭터란 설정까지 겹쳤다. 이렇듯 그녀가 뱀파이어물에서 맡는 역할은 뱀파이어와 사랑을 나누는 인간이거나 혹은 늑대소년 앞에 신비한 미소를 머금고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다. 그녀 스스로가 이 같은 우연을 밝히며 "저도 참 신기해요"라고 밝힌다. 

하지만 원본 자체가 유명하고 골수팬을 확보한 작품들이다 보니 원판에 익숙한 팬들에게서 적지 않게 마음고생까지 얻었다는데. 



트와일라잇으로 악플 세례, 격려 리플 모두 겪었다

원판(해외작)에다 한국어를 입히는 더빙은 호불호가 항상 갈린다. 그것은 작품의 실제 퀄리티 평가를 떠나 처음부터 수용자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상황이 잦다. 성우의 더빙작을 좋아하는 한국 성우팬과 본래의 소리를 그대로 들으려는 원판 지상주의자는 항시 물과 기름처럼 대립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화제작인 만큼 처음부터 결과가 불보듯 했다. 게다가 주말의명화 폐지 등으로 가뜩이나 외화가 줄어든 MBC 자체 사정으로 그 의미가 막중했다는게 채의진 성우의 말이다. 실제로 그녀는 캐스팅 당시부터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담당부장님이 우리 MBC의 사활이 걸린 2연작인데 잘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듣고 "이거 잘해야 반타작이겠구나" 각오했다고.

"그 작품에서 두희(김두희 성우 - 그녀의 후배다)랑 제가 주인공이자 연인이었어요. 두희하고 틈틈이 전화통화 하면서 '야 어떡할래 너랑 나랑 연인 사이인데 설정을 어떻게 할까' 장시간 의견을 나누고 그렇게 서로 고민했어요."

조금 있다 밝히겠지만 그 작품은 두 사람에게도 사연많은 추억을 남겼다. 트와일라잇은 설날 특선작으로 방송을 탔고 뉴문은 더빙이 완료되었지만 아직 방영 미정이다. 그럼 트와일라잇 방영 직후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동영상에서 듣듯 시청자게시판에선 "어 벨라 목소리가 아줌마같애"라는 혹평과 "왜? 나도 원판 찬성자지만 이번 작은 본 배우 목소리보다 낫네"같은 호평이 엇갈렸다고. 

물론 저 같은 예시는 점잖은 편이다. 우선 좋지 않은 평가의 경우 정도가 너무 심한 악플이 쏟아졌다.

"입에 담기 힘들만치 심한 악플이... 어우. 정말 그땐 왜 연예인들이 악플로 자살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것 같았어요. 'MBC 미친거 아니냐', '왜 더빙했냐' 가슴 찢는 소리가 계속 나와요. 근데 남편이 '그냥 보지 마 그렇게 힘들어할거면서 왜 계속 봐'하는데도 계속해서 인터넷 상황을 보게 되더라고요."

다행히도 그 와중에 다른 한 축을 이룬 좋은 평가는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악플 못지 않게 '너무 좋았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며 "특히 '이미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사람인데 원래 배우 목소리는 너무 걸걸해서 이번 성우 목소리가 그보다 듣기 좋았다'는 평도 나와 한숨 돌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땐 여러모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기억이다.




우리 부부요? 현존하는 유일한 M본부 x K본부 성우부부커플!

타 극회에서의 경력까지 합친다면 벌써 성우경력이 15년차에 접어든 그녀다. 그간 성우로서 많은 작품을 빚어왔던 그녀지만 인생 최고의 걸작은 따로 있다. 휴대전화로 세살박이 아들의 웃음을 보여주는 그녀. 성우 채의진의 자랑은 바로 아이다. 

사실 채의진 성우를 소개할 때 당초 내정한 타이틀은 'MBC와 KBS의 만남'이었다. 그녀의 동반자 또한 성우다. 2000년 입사한 KBS극회의 임채헌 성우와 4년전 결혼식을 올려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 또한 걸작이다. 같이 작업하다 눈이 맞아 결실을 맺는 성우커플 이야기는 흔치 않게 들을 수 있었지만 서로 방송국이 다른 사람들끼리 인연이 닿는 것은 드문 케이스를 넘어 현존하는 예를 들려면 이들 부부가 유일하다. 

1999년 데뷔한 MBC성우 채의진이 1년후배인 KBS성우 임채헌을 만난 이야기를 풀려면 지난번 인터뷰 주자였던 위훈 성우 이야기를 함께 꺼내야 한다. 오늘 자리는 위훈 성우가 다음 주자로 채의진 성우를 소개해주어 이루어진 것인데, 이는 임채헌 성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위훈 성우는 베스트프렌드로 주저없이 동기 임채헌 성우를 들었다. 다만 '칙칙한 남자들끼리만 만나서야 되겠는가'하며 "베스트프렌드 대신 그의 아내를 추천한다"고 했었다. 

"신랑 뿐 아니라 저하고도 훈이는 친해요. 원래 우리 세사람은 잘 어울려 다녔어요."

간략히 성우 시스템을 밝힌다. 한국에서 성우는 각 방송사의 공채를 통해 탄생하는데 2년간의 전속기간 동안은 각자의 '친정'에서 활동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어느 방송사에서든 활약할 수 있는 프리랜서 자격이 주어진다. 다시 말해 성우들은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여러 일터에서 뒤섞여 만나며 선후배로서 친분을 쌓게 된다. MBC에서 소문난 미녀와 KBS의 두 남정네가 처음 만난 것도 그 자체는 전혀 특별할게 없었다.

"선후배들이 많이 모였던 어느 자리였어요. KBS에 막 들어온 신인들을 만난 거예요. 저도 신참이었지만 그래도 1년 선배였거든요. 이중에 두 사람이 있었죠. 처음엔 '위훈입니다', '임채헌입니다' 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길래 두 사람에게 '어 말 놔 우리 친구하자 나도 친구에 끼워줘'하고 다가갔어요. 그리고 그 날 음주가무하며 신나게 놀았죠. 너무 신나게 놀아서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예요. 그런데 그리고 얼마 안 가 다시 둘을 만난 거예요. '안녕하세요'하고 좀 거리감을 두고 인사했더니, 사람들 다 떠나고 난 뒤 '서로 말 놓자메?'하고 물어와요. 그제사 '어 그랬었나?'했죠."

꽤 오랜 시간 친구처럼 지내던 남편과 각별해진 건 그녀가 아버지와 사별하게 되면서부터다. 친구의 슬픔을 친구가 곁에서 위로해주고 돕고 덜어줬다. 어느샌가 친구는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친구와의 약속은 슬그머니 데이트가 됐다. 청춘은 다 그런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게 뜻하지 않게 비밀연애가 되어버렸어요. 심지어는 절친한 훈이 조차 몰랐을 정도예요."

"특별한 이유라도?"

"남편 생각이었어요. 성우들끼리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도중에 사귀다 헤어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 때 여자가 받는 데미지가 남자보다 클 거라고 생각하고선 나를 염려해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자고 했어요. 서로 손을 잡고 방송국 앞까지 왔다가도 누가 가까워진다 싶으면 얼른 손을 빼요. 그렇게 몇년을 교제하며 장래를 약속했어요."

남편인 임채헌 성우에 대해 그녀는 "너무 좋은 사람"이라 평한다. 신사적이고 착하고 한번도 화내거나 누굴 욕하는 걸 본 적이 없어 한켠으로는 존경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고 했다. 친정 아버지를 많이 닮은 점도 좋다고.

"결혼을 앞두고 맨먼저 훈이한테 밝혔어요. 처음엔 너무 놀라서 '이럴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제 선배들은 더해요. 몇년동안 속아온 기분이라면서 배신감까지 느낀다고 했어요."

하지만 막상 결혼식이 되니 양쪽 방송국 극회에서 수많은 선후배들이 나와 축하해 주었다. 1천명이 넘는 하객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성우들이었다. 성우연기대상 등 어지간한 행사때보다도 더 많은 수백명의 성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물급 스타연예인의 결혼식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고 하니 그 규모는 짐작할만 하다.   


 


여자가 성우로 산다는 것은...

채의진 성우는 자신의 출입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성우지망생들이라면 그토록 꿈에서 그려왔던 방송국 출입증이다. "간만에 사진 찍으려니 머리도 짧게 쳐서..."하고 계속해 쓴웃음을 짓는 그녀지만 이래뵈도 M본부 극회의 대표적 미인으로 소문났던 그녀다. 

"요즘은 선배들이 그래요. 머리도 남자처럼 자르고 화장도 잘 안하고 다니니까 '너 아주 남자가 되려고 작정했냐'그러는 거예요."

그녀가 이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들려준 이야기는 자신이 여자의 몸으로 성우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아쉬움,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들이었다. 이 중엔 결국 밝히지 않은 그늘진 고충에 묻어나는 한숨도 섞여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부분이 오늘 인터뷰의 타이틀이 됐다. 

"여자가 성우로 활동을 하다보면 남자와는 또다른 어려움들에 부딪혀요. 그건 저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여자 성우에 해당하는 이야기예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될 때요. 다른 직장에서도 그 땐 출산휴가라던가 이런 복지 이야기가 화두에 올라있지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성우들에겐 이게 또 상황이 좀 다르거든요."

그녀는 출산하기 전 애니메이션과 나레이션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결혼을 전후한 2006년과 2007년 사이엔 어느때보다 바빴고 오디션을 보면 모두 붙었다. 그런데 출산이 임박해오며 잠시 공백을 갖게 된다.
매일같이 일이 이어져야하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다른 성우가 그 공백을 대신했고 스케줄 조정이 어려웠던 녹음작업 역시 성우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그건 스스로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니 프로덕션에서 연락 한 통 없이 그냥 캐스팅을 교체하는 일이 벌어지는거예요. 그건 몸조리 후 복귀할 때 즈음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어요. 저 하나때문에 녹음일정을 조정하는건 원치 않아요. 다만 서로 논의했으면 미리 선작업을 하던가 할 여지가 있는 상황인데도 '아 저 사람은 당연히 안되겠지' 넘겨짚고선 제게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교체해 버리는게 아쉬워요. 내가 연구해서 창조해낸 캐릭터인데, 이건 넘겨받는 후임자 입장에서도 절대 좋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최선을 다했는데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라며 "여자성우들이 임신했을 땐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 하나만의 문제가 아녜요. 여자성우들이 발버둥을 치는 일이 없지 않거든요. 프리랜서니까 일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선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불안하죠. 그렇다고 낳을 아이를 안 낳을 것이냐. 근데 진짜 그런 문제로 아이를 못 갖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죠. 곁에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고 위로하지만 막연해요."

"일이 출산 전후로 많이 줄으셨나요?"

"일전엔 열개 이상의 스케줄을 갖고 있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헌데 이후 줄었다 해도 대여섯개는 꾸준히 했네요."(웃음)

물론 다시 되찾은 자리도 있다. 한 예로 뽀뽀뽀 해설은 5년째 계속 해오고 있다. 출산 직후인 2주차에 복귀해서는 아이를 돌돌말아 업고서 녹음을 했다고.
 
성우로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고 했다. 그건 한 사람의 여자로서 상처받은 일이기도 하다. 당시를 떠올린다면 여러가지로 회의감을 느낄 일이었다고. 그럼에도 "성우는 여자에겐 정말 좋은 직업이다"고 밝히는 그녀다.

"세번의 기회가 있다잖아요? 그 중 하나는 성우가 된 일이예요. 전 특히 한번도 어려운 성우시험을 두번이나 합격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또 하나가 신랑을 만난 건데 이것도 성우가 되어 가능한 일이었죠."

"성우가 안 됐으면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까요?"

"다른 모습으로라도 방송일을 했던가 아니면 유치원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성우일을 하실거예요?"

"으음, 그땐 딴 일을 또 해보고 싶어요. 성우되면 세상일을 다 경험할 줄 알았는데 내가 배역 고르는게 아니거든요. 호기심이 많은거죠. 이미 이 생애센 모든 기회를 다 얻었으니."





통증 참으며 종일 녹음... 끝나고 병원행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접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냐 물었다. 다시 지난해 가을 녹음했던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이야기가 나온다. 그건 목숨을 건 모험이야기였다.

"1편인 트와일라잇하고 속편인 뉴문 더빙을 하루에 연속으로 소화했어요. 영화 보시면 알겠지만 이게 대본 보는데만 5시간이 걸려요. 헌데 그 장고가 진짜로 엄청 험난한 여정이 되버린거예요.
전날 부담감을 갖고 먹었던 햄버거가 체하는 바람에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강행군을 하게 됐어요. 아침 9시반부터 1시까지 트와일라잇 더빙을 했어요. 수시간 내내 마이크 앞에 서서 혼신의 힘을 쥐어짜는데 기절하겠더라고요. 2시부터 다시 뉴문 녹음이 시작되는데 너무 아파서 쉬는시간에 남편한테 전화를 했어요. 약하고 두유를 사서는 곧장 달려왔더라고요. 그걸로 힘을 내고 다시 뉴문을 오후내내 했죠."
 
그렇게 했던 작품이니 이후 인터넷 악플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법도 했다. 그렇게 악조건속에서 치룬 작업의 결과물은 어떠했을까. 

"솔직히 전 작업하면서도 어떻게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게 아니라 아예 잃을 지경이라 잘했는지 어떤지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번역작가와 담당부장 등 함께 작업한 분들은 모두 만족했어요."

목숨을 건 더빙이 끝나고 쫑파티가 열렸다. 그녀는 잠시 병원에 갔다오겠다고 하고선 자리를 떳는데 결국 파티장엔 돌아오지 못했다. 그대로 입원하고 만 것이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런데 제가 링겔 맞고 있을 때 함께 주연했던 두희도 탈이 났어요. 파티 때 술을 잘못 받았나봐요. 결국 이날 주인공 두 사람이 모두 기절해버렸어요."
 
그야말로 사활을 건 더빙이다. 뉴문이 방영하게 되면 반드시 찾아봐야겠다고 그 자리서 약속해버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전속시절 '안토니아스라인'

내가 그녀의 이름을 인지한 것은 2000년 MBC가 선보인 애니메이션 꼬마마법사레미의 진보라로 화려한 신고식을 할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품은 매 시즌마다 1기때 김서영, 박선영, 박소라, 그리고 3기땐 박신희 등 당시로선 신진급 성우들을 대거 기용한 등용문이었다. (박영희, 윤현정, 윤소라, 이종혁 등 베테랑 성우들 역시 작품 퀄리티를 돋보이게 했다.) 물론 당시 신참급이던 그녀들은 지금 내노라하는 MBC의 주역이며 채의진 성우 역시 그 중 한 축이다. 들어보니 당시 그녀가 맡은 진보라는 본디 대선배인 기경옥 성우가 맡아 2주분량 녹음까지 했었지만 행운의 여신이 그녀에게로 역할을 돌려놓았다고. "세상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게 그녀의 말이다.

그럼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하나를 꼽아 달라고 했더니 전속시절의 외화였다. 물론 그 고생을 한 트와일라잇과 뉴문도 애착이 안갈래야 안 갈수가 없는 작품이지만 그보다 더 생각나는건 '안토니아스라인'이란 가족영화라고. 

"지금은 작고하신 고 한영숙 선배님과 송도영, 윤성혜 선배님하고 함께 한 영화예요. 저 분들과 저까지 네명의 성우가 4대에 걸친 주역 여성들을 연기했는데 잔잔한 영화였어요. 저로선 전속시절에 너무 큰 역할을 맡았던 작품인지라 애틋해요."

현재 하는 작품들도 하나같이 기억 속에 착착 감기고 있다는 그녀다. 

"대원방송 녹음현장에 가면 이게 또 후배 만나는 재미가 너무 좋아요. 얼마전 2기 성우를 뽑았는데 너무들 열심히 연구해서 도리어 제가 에너지를 받아와요. 1기 같은 경우는 따로 조언을 구할 선배가 극회 안에 없다보니 타극회 성우들이 오면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거든요. 때론 전화로 평가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그 자세가 너무 예쁜 애들이예요. 제가 젊어지는 기분이기도 하고."

내년이면 불혹의 나이가 된다며 그간 성우로서 보낸 30대를 되돌아보는 채의진 성우는 "올해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한결같은 성우로 남길 바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성우팬인 네티즌들에겐 "격려글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성우를 싫어하는 이들의 욕과 악플에 우울하다가도 칭찬글을 듣게 되면 위안과 큰 도움을 얻게 된다"며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성우팬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 성우지망생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나요?"

"믿음을 가지세요. 꼭 성우가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요. 단, 자만심은 버려요. 성우가 된 것인양 착각하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요. 그러나 반드시 될거라는 마음은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래요. 동기유발이 필요해요."

끝나고 사인을 요청했더니 내 이름이 과거 소중했던 어느 인연과 같단다.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 꼭 만나고 싶은 성우 채의진이다.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