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인터뷰] 1. 위훈 - 한국에도 만능 엔터테이너 성우가 있다
# 한국 성우를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 자리를 엽니다. 대망의 1회는 KBS 극회 위훈 성우로 출발합니다.
'밀레니엄'의 이름으로 모든 설명이 시작되던 2000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계기로 성우 인생을 연 젊은 남자가 있었다.
"엄마가 성우 시험 안보면 용돈 안 준다고 했거든요."
어느덧 데뷔 12년차를 맞이한 그는 이제 영역을 가리지 않는 한국 성우계의 만능엔터테이너를 목표하고 있다.
성우에서 뮤지컬 가수, 연극무대의 연출자까지 아우르는 멋진 남자를 소개한다.
위훈
2000년 KBS 성우공채 28기 입사
대표작
애니메이션 라푼젤(극장개봉작) 플린 라이더
특촬 파워레인저정글포스(챔프) 옐로우
애니메이션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애니맥스) 랜서
애니메이션 아바타 주코왕자 (투니버스)
애니메이션 요절복통 수호천사
외화 위기의주부들 (KBS) 존
외화 블라인드
라디오 국악은 내친구(국악방송) 진행
#외화시트콤 한나몬타나 (디즈니채널) 잭슨 (여주인공 오빠) - 본인이 뽑는 베스트 캐릭터
위훈 성우를 만난 장소는 여의도 KBS. 근래 들어 바쁜 나날의 연속인 그다. 이 날도 녹음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곧장 달려와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러고보면 4년전 폐지 당시 토요명화의 산 증인으로 기꺼이 만나 주었던 대성우 유강진 선생님도 녹음 스케줄이 임박한 시간에 KBS에서 만나 이야길 나눴었다. 본의 아니게 성우분들껜 매번 어려운 만남을 부탁하는 나다.
지금 극장가나 TV, 혹은 라디오에서 그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오는 것은 이러한 강행군을 증명하는 결과물이다. 최근 극장개봉한 애니메이션 '라푼젤'에선 주역을 꿰찼다.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파워레인저 정글포스에선 정글 옐로우로 친숙하다. 차 안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국악방송에 맞추면 '국악은 내친구'에서 그의 나레이션을 들을 수도 있다. 위기의 주부들을 KBS서 즐겨봤던 팬이라면 존의 목소리로 그를 기억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활동이 녹음실 마이크 앞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닌데, 이 부분에 대해선 잠시 후 소개한다.
"성우란 직업은 성우의 삶에 있어 무엇인가"
위훈 성우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야말로 다채로운 표정과 제스처를 보여 준다. 일상에서도 '아 이 사람은 확실히 연기자구나'하는 모습을 물씬 풍겼다. 그것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도 이 사람은 나보다 더 즐겁고 다이내믹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까지 낳았다.
지금 던지는 이 질문 말인데, 어쩌면 이 첫회는 물론이요 앞으로 연속될 모든 인터뷰를 관통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당신의 삶에 있어 성우란 직업은 무엇인가요?"
성우에게서 듣는 '성우란 무엇인가'란 질의응답이다. 위훈 성우의 답은 아래 동영상으로 담았다.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인생에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일이요. 성우 시장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성우가 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잖아요. 제가 어디 가서 막 까불면 누가 '뭐하세요?'라 물어요. 그 때 '성우예요'라고 하면 모두가 달리 봐요. 그럼 또 맘 놓고 까불어요."
"한국에도 만능 엔터테이너 성우가 있는가?" - "위훈을 봐라"
'성우 위훈'을 보면 한국 성우 중에서 특별히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도 이렇듯 멀티 엔터테이너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성우가 있었는가"란 자문이다.
성우 팬이라면 흔히들 우리나라와 옆나라 일본을 비교한다. 일본에서의 성우는 목소리 연기 뿐 아니라 가수나 탤런트, 배우 등 연예계의 타 영역을 모두 섭렵한다. 우리나라도 가요계의 아이돌 스타가 연기를 한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성우의 경우는 찾기 힘든게 사실. 성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반을 내어 팬사인회를 갖고 또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해 열창하는 일본의 모습은 우리로선 상상하기가 어렵다. 출연한 애니메이션이 성공해 그 작품이 뮤지컬로 막을 올리고 또 거기서 성우들 본인이 그 배역 그대로 출연하는 것(사쿠라대전이라는 작품은 그 예다)은 더욱 그렇다.
물론 성우가 대학로 연극무대에 오르거나 (성우 성병숙은 연극인으로서도 알려져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경우(김기현 성우는 매우 친숙한 얼굴이다)는 있다. 그러나 그보단 오히려 라디오 진행이나 극장가 영화 및 애니메이션 더빙 등 본업마저도 타 연예인들에 빼앗기는 모습 보기가 쉽다. 그렇기에 성우의 영역을 묻는다면 대개의 사람은 라디오 드라마, TV 외화 및 애니메이션 더빙 등 '본진'의 것 정도만 열거할 것이다. 좋게 말하면 일본에 비해 본업에 충실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들에 비해 활약할 기회가 적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성우 위훈은 주목하기 충분한 다양성을 띤다. 그는 본래 뮤지컬 배우를 지망했던 사람이었다. 경력을 살펴보면 성우로 입사해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도 뮤지컬 무대에 올랐고 이후로도 꾸준히 뮤지컬이나 무용극 등에 출연했다. 뿐만 아니라 성우로 이뤄진 극단 'MAD'를 결성, 출연은 물론 연출을 맡아 전반을 지휘하기도 한다.
때로는 카페를 빌려 자선공연을 펼치는데 여기선 성우로서의 능력 뿐 아니라 가수로서의 모습까지 내보인다. 아래 동영상은 지난 1월 서울 어느 커피숍에서 진행했던 자선공연 '위훈과 친구들'의 무대다.
EBS 극회의 전해리 성우와 함께 즉석 현장 더빙 및 노래를 선보인다
공연이 매스컴 등으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국내 성우 팬들에 있어선 "한국 성우들도 이러한 무대를 가진다"고 밝힐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것은 녹음에 이러한 활동까지 연말, 연시에 겹쳐서였다. 어떻게 해서 이같은 왕성한 활동이 가능했을까.
"전 출발점이 달랐으니까요. 성우가 되기 전부터 연영과 나와서 뮤지컬배우로 연기를 시작했고, 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부르는건 중학교 시절부터의 이야기고..."
영상에서 보고 듣듯 그는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선배들한텐 별종같았겠죠. 그런데 고마운 선배님들을 많이 만난 덕에 격려 속에서 이같은 걸음을 해 왔고, 지금은 또 후배들이 나를 보며 자극받고 또 배운다고 해요. 저한테서 희망을 보더라고요."
한 우물을 파는 것보단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이 본인의 성격이라고. "성우가 한 우물 파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여러가지 하는것도 좋지 않겠는가"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성우계에도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물론 "성우는 내 본토"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노래는 내게 있어 '플러스 알파'의 무기지만 어디까지나 성우로서의 삶을 전제하고 가능한 것이라는 그였다. "무엇을 하더라도 성우란 직함은 내 '퍼스트'"라고.
"어머니 '강권'으로 지원한 성우공채, 내 인생의 본토가 돼"
요새는 그나마 있던 전문지의 인터뷰 코너마저 사라져가는 상황이지만, 성우 인터뷰 기사를 찾아 유심히 보는 독자는 크게 둘이다. 팬이거나 지망생이거나. 물론 양 쪽 모두인 경우도 있다. 지망생일 경우 인터뷰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역시 "어떻게 성우가 되었는가"란 대목이다. 몇번이나 성우 시험을 봤는가, 그리고 어떤 계기로 꿈을 꾸었고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는 빠질 수 없는 질문이다.
성우 위훈은 단 한번에 합격했다. 그건 본인도 예상 못한 일이었는데 본인이 원해서 지원한 것도 아니요 한번에 합격할 거란 기대도 없었다고.
"졸업하고서 무대에 오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며 이것저것 소일거리하고 있던 시절이죠. 어머니가 KBS에서 성우 시험 있으니 보라는 거예요. 전 성우를 선망하긴 했지만 '내가 되겠어'하며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도전할 생각은 안했거든요.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그럼 내일부터 용돈 안 줘'라고 선언하시더라고요. 도전도 안 해보고 단념하는 자식은 싫다는 거였죠."
"'용돈 안 줘'라는 말 때문에 움직인 거예요?"
"뭐 그렇게 됐죠. 공부를 체계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뜬금없이 시험을 봤어요. 권유라기도 강요라기도 뭣한 어머니 불호령이었는데 그게 내 삶을 여기로 닿게 했죠."
남들은 몇년동안 공부해도 떨어진다는 바늘구멍을 그는 얼떨결에 통과했다. "말하자면 정도를 걸어온 성우지망생이 아니라 다른 접근방식으로 찾아온 지원자였는데 그런 경력 또한 성우시험의 재산이 되었나 보다"라고 밝힌다.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진로가 결정난 것인데, 성우로서의 지금 삶은?"
"과분하죠. 감사하고 축복이라 생각해요. 엄마 말 듣길 잘 했어."
성우로 활약하면서도 노래실력은 계속해 이런 저런 무대로 가꿔가고 있다. 만일 캐스팅된 연기자가 노래실력을 겸비해야 하는 더빙작품이 나온다면 그는 상당한 강점을 갖춘 셈이다.
"어릴 적부터 무슨일을 하더라도 많은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지난번 공연을 보면서 관객 반응을 보다 문득 그걸 이루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욕심엔 부족하지만."
그렇다면 성우로서 바람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우로서 욕심이 있다면 국산작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해외작의 더빙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들 제스처에 우리가 따라가야 하거든요. 꾸며내는 거죠. 이러다보니 우리 색을 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따라요. 그런데 한국말을 하고 듣는 한국사람들이 수요와 공급의 대상인 작품이 많이 나오면 우린 자연스럽게 우리의 말로 연기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좋은 연기가 많이 나올 겁니다."
"성우지망생들에게 TIP, 많이 들어라"
그의 후배가 되길 바라는 성우지망생에게 전할 충고를 부탁했다. 그는 "일단은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라"고 했다.
"귀를 열고 많이 들어요. 전 엄마가 TV 못보게 해서 라디오 많이 들었는데 그러다보니 표준어가 절로 늘었어요."
참고로 그는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아울러 "성우는 할 수록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건 만족을 넘어 축복이예요. 꿈과 인생은 시크릿 같은 것이라, 내가 마음먹은 것에 따라 나비효과처럼 세상일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물었다.
"만일 성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본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으음, 그 때도 기자님을 만났을 거 같아요. 아마 또다른 영역의 누군가가 되어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