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봤던 극악의 기사 오타 사고들 모음
기자가 최초로 맞닥뜨리는 주적은 오탈자
기자가 기사를 쓰는 데 있어 가장 많이 만나는 적은 무엇일까.
스포트라이트에 나온 것처럼 재력과의 싸움, 권력의 외압, 사명감과 현실의 괴리... 등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로맨티스트.
우리의 주적은 국장? 푸핫.
댓글 다는 네티즌들이 악마(악플러)로 보인다고 하면은... 뭐 기사를 어떻게 써서 그런거야?
됐습니다, 됐고요. 역시나 가장 많이 맞닥뜨리는 녀석이라면 이거지, 재확인을 해도 환상의 무사고 100% 달성을 확답할 수 없는 내 글 속의 악마, 오탈자.
팔만대장경은 오탈자가 전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쯤하면 세계 유산이라기 보단 세계 미스터리에 가깝다. 역시나 경건한 마음으로 글자를 한자 한자 옮기면 오탈자는 없는 것인가.
해외 어느 나라의 지역 신문은 오탈자의 최고봉이었다고 알려진다. 200자 중에 무려 90자나 오탈자였다나. 폐간될 당시 지역 주민들은 신문사로 '축, 폐간'이라 적어올린 케이크를 선물했다니 말 다 했지 뭐. 이유는 신문사 편집 교정인들이 죄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도 상황이 심각했던 사람들이라나.
세상은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 오프라인 매체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다 인터넷으로 새 페이지를 열었다.
어찌보면 인터넷 신문, 포털 뉴스라는 것은 초창기 '오탈자에서의 해방'이라는 기자들의 해묵은 염원을 바로 해소해 줄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한번 나간 인쇄물은 수정 불변의 강을 건너고야 말지만 인터넷으로 송고한 기사는 여차할 경우 수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았지.
가끔가다 여러분은 포털 대문에 떡하니 엄청난 오타가 걸려 있음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원 공급원에서 실수 했으면 포털 편집자가 수정하면 되는 거 아니야?
데스크에다 문의해 봤다. 간만에 모셔오는 국장이다.
"국장, 왜 포털에서도 이처럼 아마추어같이 오탈자가 나오는지 몹시 궁급합니다."
국장 왈, "포털은 설령 오타가 있어도 원 공급원에서 수정을 하지 않는 이상은 토씨 하나 수정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오타까지 수용하고 만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렇다곤 해도 이걸 메인에다 걸어놓는 참사는 어케 생각해야 하는거야 이거?
뉴스보이에서 기자질 한지 2년 반. 그간 취재영역은 크게 바깥세상 반, 인터넷 반으로 삼았고 포털을 위시한 인터넷 각 영역에서 웃지 못할 모습들을 많이도 봐 왔다. 그 와중엔 오타 및 탈자의 고전적 코미디도 숱하게 있었다. 이쯤해서 내가 그간 봐 왔던 오타 사건사고 중 '나이스'란 경탄이 절로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모아 봤다. 물론, 뉴스에 한정해서다.
1.네이버 다음 엠파스 네이트... 모든 포털을 경직케 했던 연쇄사고
인터넷기자의 세계에 들어선지 얼마 안 됐던 초창기, 각 포털에서 연쇄적으로 터진 오타 사고를 목격했다.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1075)
당시는 한국인이 해외서 피랍되는 사건이 연이어졌던 때. 이 날은 소말리아 해적에 한국 선원 2명이 피랍되는 긴박한 속보가 흘렀다. 그러나, 긴박해야 할 속보는 오타 하나 때문에 순간 또 다른 의미로 보는 이들을 경직케 했다.
안타까움이 묻어나야 할 댓글란에선 "뭔 이야긴지 이해를 못하며 들어왔다"는 반응부터 넘쳐났다.
사실 오타는 딱 두 단어였다. '선언'하고 '2면'. 고작 두 글자가 뭐 대단한 실수냐고? 그게... 대단할 수가 있더라.
안 그래요 국장?
국장 - "포털 시스템은 다단계 피라미드야. 몰랐어?"
2. 삼성을 국수가게로 만드는 마법의 한 글자
삼성생명은 오타의 마수에 희생되는 단골 간판. 2년전 삼성이 화두에 올랐을 때 네티즌들은 미디어다음의 오타 한 자에 실소하고 만다.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2848)
'삼성생면'은 곧장 "삼성이 국수도 만드냐"는 폭소로 번졌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같은 실수는 아주 잦았다. 그에 앞서 TV 뉴스에서도 삼성의 국수 업체가 버젓이 떠오른 것. 자세한 내용은 본문 참조.
여담이지만 검색해보니 일반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급하게 국수가게를 찾는 촌극이 비일비재함에 또 놀랐다. 왜 그런가 키보드를 가만 살펴봤더니... 딱 옆에 이웃하고 있네 그려, 'ㄴ'과 'ㅇ'사이는 사랑과 우정사이보다 더 심오하다.
삼성은 천상 국수업계에 진출할 운명인가.
3. 김연아를 듣보잡으로 만든 김영아 사건
이제 우리는 피겨여왕 김연아를 오타로 물먹이는 사고를 목도하게 된다. 작년 3월, 미디어다음엔 피겨여왕 김연아는 간데 없었다.
한 네티즌은 "김연아를 듣보잡 취급하다니 다음 사장 나오라 그래"라며 항의했다.
여신은 특별하다. 피폭자가 피폭자인 만큼 수십여분 후엔 긴급 수정이 이뤄졌고 그나마 논란은 조기 진압됐다. 딴 건 몰라도 명사에서의 오타는 치명타라는 거.
4. 존테리 스캔들, 의미를 확 바꿔버린 단 한 글자
옛 이야기들을 회자케 만든 건 최근의 한 기사 때문이었다. 아츠뉴스의 오자 하나가 잠시 날 아연실색케 했다. (http://www.artsnews.co.kr/news/60525)
존 테리의 부적절한 관계는 이미 현지를 넘어 국내 축구팬들까지 경악케 만들고 있다. 존 테리는 곧장 법원에다 언론이 자기 사생활을 들추지 못하도록 소송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이 기사는 그 이야기를 인용보도한 외신보도 중 하나.
난 처음 보고 한참 갸우뚱거렸다.
'존테리는 영국 법원에 자신의 사생활을 보도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사생활보다 우선한다며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한 줄.
사생활을 '보도'해 달라?
보도 아닐세, 보호라니까. | ||
다른 기사들과 대조해 보니 '보호'였네 그려. 그럼 그렇지. 보도해 달라고 하면 이거 뭐... 막나가는 가장의 막장 드라마야?
단 한 글자에 기사 내용은 확확 바뀔 수 있습니다.
열 글자 나와도 그냥 넘어갈 '실수', 받침 하나만 틀려도 '대형사고'...오타는 심오하다
오자, 탈자 실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기자수업 당시 내가 처음 모셨던 국장님은 오타에 대해 "기자가 오타내는건 무지 창피한 거"라고 일갈했었다. 매우 엄격하게 잣대를 적용하는 예다.
반면 '한 두자 틀릴 수도 있지'하며 관대하게 눈 감아 줄 수도 있겠다. 아무리 교정을 봐도 오자 탈자는 나오기 마련이라면서.
다만 보다 더한 노력으로 부주의한 사고의 예방을 줄일 필요성은 부정할 필요가 없겠다. 문제는 오자 탈자의 심각성 여부가 어디에 달려 있느냐인데, 이것은 단순히 한 글자 틀렸느냐, 열 글자를 틀렸느냐로 가늠하기엔 좀 곤란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자 중 90자를 틀리는 신문사는 일단 제쳐 두고, 군데군데 사이드라인에서 오탈자가 거듭되는 건 상황에 따라 큰 지적 없이 넘어갈 수 있다. 심지어는 열두어군데 틀려도 읽는 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단 한 글자, 받침 하나가 초대형 반향을 불러오기도 한다. 위 예에서 보듯 명사나 핵심단어에서의 실수는 '딱 한 글자 틀렸을 뿐인데' 라는 변명을 용납치 아니한다.
그리고, 절대 실수해선 안될 단어들이 있다. 보호가 보도로 둔갑해 내용을 확 뒤집어버린 '존테리'의 예는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개념'에서 손가락이 오른쪽으로 살짝 미끄러지면 알지? 'ㅁ'과 'ㄴ'도 딱 손가락 하나 차이다. 무역 기사에서 '수출'과 '수술'의 한 글자로 인해 사주에게 다이렉트로 까이던 선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인터뷰 기사서 교수를 교주로 썼다간 두고두고 볼 일이고.
그래서 말인데, 이상적인 언론사를 만드는데 있어 이같은 캠페인은 필수요건이 아닐까 한다.
'급히 넘길 기사문이라도 커피 한잔 하며 돌아볼 여유 정도는 가집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