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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의료사고는 그들을 두 번 죽였다 - 의료사고 피해자 증언대회

의료사고는 그들을 두 번 죽였다
- 의료사고 피해자 증언대회 중 후(後)장

"자식 잃고 항의하는 우리에게 그들은 법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1억여원을 지급하고 퇴원을 강행한다? 자식 잃고 돈이 무슨 의미입니까?"

의료사고로 피해 입은 부모, 자식 혹은 배우자. 그리고도 솔직한 인정이나 사과 없이 매몰차게 병원서 내몰렸다고 눈물짓는 그들은 의료법으로 억울한 이들이 더 이상 세상에 늘지 않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18일 오후 4시,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 병원과실로 각기 부모님을 잃은 이은주, 이정훈 씨가 결의문을 낭독한다. 18대 국회가 의료사고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실효적 법제정을 하도록 촉구하는 낭독.




장내는 이미 폭풍이 쓸고 간듯 침울한 적막으로 가득차 있었다. 한켠에선 울음소리가 들린다.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을 잠깐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오후 2시 30분,



9인의 증언자가 모였다. 이들은 각기 억울한 사연을 토로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자녀를 잃은 아버지들의 이야기에선 청중 사이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고조됐다.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로서 너무나 미안합니다"


두 아버지는 증언을 마친 후 고개를 떨궜다.

 
호성진 씨는 태어나자마자 죽고 만 아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저에게 의사는 아기가 죽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잠시 후 사실은 죽은게 아니라 뇌사상태다 라고 번복했습니다. (중략)진료기록 일체 복사 요구에 기록 일부만 내주었습니다. 6일간 4차례의 요구로 힘들게 얻은 진료기록지들은 이미 일괄정리돼 있었습니다."

그는 "기록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으며 시간축소, 조작, 기재 미비 등 엉터리 작성이었다"며 "실수를 감추려고 분만당시 살아있는 아기를 죽었다고 말하고선 산소공급을 중단, 사산처리 후 사건을 은폐 축소시키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는 결국 사망했다. 그는 "죽은 우리 아기가 억울함을 꼭 밝혀달라고 붙잡는 느낌에 장례를 미루고 부검을 시행, 부검의에게서 이같은 말을 들었다고.

"'간호기록이 너무나 잘 정리돼 있다'는 말과 함께 병원 측에 태반을 가져오라고 했으나 이를 폐기했다고 하자 '아무 실수가 없었다면 유리한 증거인 태반을 폐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태반박리(병원 측 사인 주장)가 아닐 수 있으며 태반조기박리 전조 증상이 없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끝내 울먹이며 "핑계가 의사의 면죄부가 되서는 안될 것"이라 말했다.


"아들 잃고 항의했더니 난동을 부린다며 병원 접근금지가처분 신청하더라"

한편, 다음에도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는다. 본래는 어머니가 나설 자리였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아 대신 나선 아버지. 비교적 간단하다는 휜다리교정 수술 이틀 뒤 뜻하지 않게 사망한 15세 소년의 아버지다.

"유괴사건과 의료사고는 모두 평온한 가정을 파멸로 잇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유괴범은 사회적으로 매장되지만 의료사고 의사는 당당합니다."



그는 "동네의원에서 중대사항이 발생했다 해도 의료인이 최선을 다했다면 소송도 하지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 공공의료를 대표한다는 병원은 사과는 커녕 위로 전화 한 통 없었으며 주치의를 내쫓는 걸로 사안을 마무리지으려 한 것도 모자라 이를 항의하니 의무기록에 '보호자가 난동을 부렸다'고 허위기재, 병원 100미터 접근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냈다"고 주장했다. 

"병원내 윤리위원회는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답니다. 의학에서 최선이 무엇입니까? 결과 정보공개를 요구하니 1억여원을 지급하고 퇴원을 강행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자식잃고 돈이 무슨 의미입니까?"


"엄마 되고 싶던 스물아홉 꽃다운 내 딸, 이젠 돌아올 수 없어"

아이를 갖고 싶던 성민정 씨는 산부인과의 과배란 인공수정 권유로 남편과 별도 상의 없이 치료에 들어갔다. 그러나 뭔가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사망. 딸을 하루아침에 잃은 어머니 노상조 씨의 이야기다.

 

"결혼 6개월이 채 안 된 딸아이에게 부작용을 상세히 설명하지도 않고 불임시술을 권유한데다 처방약물은 권장량의 2배 이상이었습니다. 헌데 병원은 법대로 하자며 큰소립니다."

노 씨는 "진료기록으론 진실을 밝히기가 너무도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건강하던 부사관 아들, 이렇게 죽이고선 하는 말 "조폭을 동원하든지 법대로 하든지"
 
김윤기 씨는 노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료사고는 미묘하다, 조폭을 동원하든지 법대로 하든지 댁들 알아서 하라고 답변합디다."

스물셋의 아들, 김 모 하사는 휴가 도중 치질 수술을 받은 뒤 어이없게 숨졌다. 그의 증언을 들어본다. 



형사소송 끝에 그는 승리했다. 의료진 과실 입증으로 마취의사 금고 8개월, 외과의사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그러나 이에 불복, 항소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마취의사는 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구속되지 않은 상태다.

그는 병원 이사장과 집도의, 마취의와 재판장 모두가 같은 대학 출신인 점을 알고 담당판사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씨는 "의료사고만 나면 병원은 당당하고 환자 측은 시위만 하는 3류 연출을 이젠 끝내야 한다"고 외쳤다.

"의료법은 의사 보호법, 의료사고 예방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발언자들의 차례가 끝난 뒤, 발언권을 얻은 한 남자는 "의료법은 실상 의사 보호법"이라며 "현재로선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져도 이를 처벌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기록을 의사들이 영어로 날려쓰는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하는 동시에, 약국 처방전처럼 진료기록을 사전에 공개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법을 제정하는 등 억울한 일을 사전부터 예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