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사망 확인된 짱구는 못말려, 그 19년 동고동락의 기억
짱구가 죽었다.
...정정한다. 짱구는 못말려(원제 크레용신짱)의 작가 우스이 요시토 씨가 사망했다. 헌데 '짱구 = 작가'로 순간 착각하고 말았다. 그만큼 그 50대 작가와 다섯살난 꼬마가 겹쳐 보이는 지금의 나다.
'짱구 작가 실종'이란 검색어가 뜨고, 곧이어 '추정 시신 확인'이란 검색어가 나오더니, 이제 '짱구 작가 시신 확인'이란 문자로 바뀐다. 뉴스 국제면에서도 앞다퉈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설마 설마 하던 네티즌 사이에서도 "결국"이라며 명복을 비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짱구는 못말려. 아동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금자탑이 아니던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신짱구'의 이름은 아이 키우는 가족들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것이,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을 틀어보면 '짱구가 나오는 시간'과 '안 나오는 시간'으로 양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게 사실이다. 지금도 투니버스, 챔프, 애니박스 등에서 짱구 얼굴을 동시에 보는 일이 잦을 정도. 2년전 문을 닫은 퀴니 채널에서도 인기리에 방영했으며 심지어 마지막날, 마지막 전파를 타고 나온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아래 동영상은 몇개월전, 동시간대에 세 채널에서 짱구가 나오는 진풍경을 짤막히 기록한 거다.
황금시간대에 투니버스에선 TV판이, 챔프에선 극장판이, 그리고 애니박스에서도 또다른 극장판이 이어진다.
사실 이를 찍은 건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동시간 중복편성이 심한 프로그램 중 일부(짱구, 뽀로로 등)를 예시, 기사로 지적할까 싶어서였는데 이렇듯 뜻하지 않은 기사에 쓰이게 됐다. 바꿔말하면 그만큼 짱구가 애니메이션 채널의 막강한 인기 터줏대감임을 증명하는 자료기도 하니까. 오래전부터 국내 애니메이션 케이블 채널에선 도라에몽과 더불어 '도배급'의 편성을 자랑하는 인기작이다. (관련글 http://kwon.newsboy.kr/250)
만화 원작은 90년대 초반부터 국내서 정식 수입,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성인판'과 '아동판'이 구분되는 독특한 아이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스이 작가의 초반 컨셉은 우리가 익히 아는 아동용이 아니라 성인용 코믹물이었던 것. 시건방진 유치원생과 이에 시달리는 평범한 소시민 부모의 일상 이야기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먼저 어필됐었다. 그러나 짱구라는 매력적 캐릭터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었고 작품 영역은 아동으로 확대됐다. TV애니메이션이 가족용으로 제작되고 초장수 인기작에 시동을 걸게 됨에 따라 더이상 짱구는 성인 코믹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어느샌가 그 아인 이 시대 최고의 아동 캐릭터 반열에 올라 있었다.
한국에 수입된 애니메이션은 비디오판으로, 공중파로, 케이블로 이어지면서 90년대 아이들과 2000년대 아이들을 잇는 아이템이 됐다. 98년도엔 한 k리그 축구 경기장에서 비디오 출시를 알리는 광고판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골대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 엄청 많이 노출됐던 기억이다.
그리고 99년 SBS에서 첫 방영 개시. 짱구의 국내 공중파 첫 데뷔다. 재밌는건 이 녀석이 TV판보다 극장판으로 먼저 선보였다는 사실. 99년 구정 특선으로 방영한 극장판 두번째 시리즈 '부리부리 왕국의 보물' 편이 그것인데, 이 장편작에 투입된 국내 성우진은 몇 달 뒤 방영이 시작된 TV판에도 곧장 투입됐다. 박영남 - 강희선 - 오세홍의 이 짱구 패밀리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한국판 캐스팅의 '공식'이 됐다. 물론 비디오판이나 투니버스에 선행 투입된 극장판 등에서 다른 목소리가 선보이기도 했으나(예로 짱구 목소리는 이영주, 박은숙 성우가 담당한 적도 있다) 현재는 SBS판이 '스탠다드'로 굳어진 상황. SBS에서 방영이 끝난 후, 지금은 투니버스에서 TV판이 연속 방영 중이며 챔프에선 그간 일본에서 개봉한 십수편의 극장판 전편을 작년부터 일괄 더빙, 프라임타임마다 방영하고 있다.
짱구와 흰둥이. 이제 이 19년(애니메이션 기준 17년) 콤비는 적어도 원작자에 의해선 새 이야기로 만날 수 없게 됐다 (출처 챔프 보도자료)
사실 따져보면 이래저래 사연이 많았던 작품이다. 이는 지난해 콘텐츠페어에서 이뤄진 모기 히토시 프로듀서와의 간담회 취재기사에서도 확인가능하다.(http://kwon.newsboy.kr/888)
애니메이션판 짱구에 있어 또 하나의 산 증인인 모기 히토시 프로듀서는 당시 방한에서 청중들에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로 실소를 자아냈다. 당시 애니메이션 기준으로 16년 롱런 기록을 써내려가던 짱구는 못말려가 실은, 6개월이나 가려나 했다는 것.
모기 프로듀서는 TV애니메이션 런칭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성인용으로 출발해 인기를 얻던 우스이 작가의 원작 만화를 짤막한 홈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때, 자신들은 물론이요 이를 제의해 왔던 방송사 조차 성공에 회의적 관점이었다는 거다. 성공은 커녕, "그냥 6개월만 어떻게 막아봐라"고 주문했다는 것. 당시엔 우스이 요시토 작가의 원작 또한 그저 성인 코믹에서만 알려진, 대중적 인기로까진 검증되지 않은 매니악한 작품이었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이것을 어린이도 함께 보는 가족 아동물로 컨버전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자신없었음도 함께 짐작할 수 있다.
"그냥, 만들어 방영할 기회를 주는 거라 생각하고 1년... 아니, 6개월만(TV애니메이션은 흔히 6개월단위, 주일별 1편씩 총 26편을 기본 단위로 만들어진다) 일단 막아봐라고 하더군요. 헌데... 이게 16년동안 이어졌어요."
여기서 그도, 청중들도 웃고 말았다. 지금으로선 짱구 없는 애니메이션 채널을, 짱구 없는 아동용 출판만화시장과 캐릭터 시장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그런데 그 출발이 이렇듯 뜬금없었을 줄이야.
모기 히토시 프로듀서는 "이젠 나도 짱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10년이면 10년, 5년이면 5년... 기회가 주어지는 데까지 가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뜻하지도 않게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 작가의 사망으로 중대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원작 출발이래 19년째 쌓은 금자탑. 물론 도라에몽 처럼 원작자 사망 이후에도 TV판이 꾸준히 만들어지는 사례가 있다. 짱구 역시 그간 쌓아올린 것을 생각해 본다면 무난히 생각할 사안. 다만, 원작자 없이 이어질 계보가 많은 과제를 남기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추석엔 최신 극장판 시리즈 '폭풍을 부르는 엉덩이 폭탄'편이 국내 최초로 한국 극장에 내걸린다. 지금까진 모든 극장판을 TV 채널을 통해 뒤늦게 확인했었으나 이젠 극장에서 본격적으로 상영되기 이른 것. 이에 따라 원작자의 공식 방한 등도 예상되던 시점에, 급작스런 그의 비보는 여러모로 국내 팬들에 있어 충격적이다.
한 네티즌은 사망 추정 기사에 "이제 짱구는 누가 말리지"라 자문했다. '짱구는 못말려'가 결국 작가 손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미완의 행보로 남은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네티즌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생각해보면 짱구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다.
오랜기간 연재되던 작품은 결국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원작자를 언젠가 잃는 법이다.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도 세상을 떳고, 찰리브라운(원제 피너츠)과 스누피의 아버지 찰리슐츠도 2000년 타계. 도라에몽의 아버지 후지코 후지오는 "나는 죽어도 도라에몽은 죽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짱구의 아버지 우스이 요시토가 이렇듯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은 다시 한번 안타까움을 더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