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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에어컨 없는 광장에 나가보니 늦더위도 없더라

늦더위, 에어컨 대신 광장에서... 

8월도 저물었고 이제 9월. 그러나 늦더위 위세는 건재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방 안은 아직 지나가지 않은 현실. 그나마 에어컨이 있다면야 전기세를 각오하고라도 '빵빵'하게 틀테지만, 이것도 능사는 아니다. 껐다가 혹여나 미풍이 불까 창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열풍이 들어온다. 에어컨 팬으로 달궈진 공기가 확 들어오는 것. 그래서 다시 켜 뒀다가, 또 껐다가... 냉방병이란게 어렵게 생각할 게 뭐 있나. 싸이의 옛 명곡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다보면 몸이 느끼는 체감온도도, 바이오리듬도 죄다 실타래처럼 엉켜버린다.

차라리 바깥에 나가보면 어떠한가. 뜻밖에도 시원한 장소가 있을지 모른다. 그 곳은 동네 놀이터일 수도 있고, 학교 벤치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서울 어느 동네의 소시민이라면, 속는 셈 치고 여의도 광장을 찾으라.

그것은 8월의 성하 아래 놓인 어느 날이었다. 

마치 가을하늘과도 같은 '천정'이 여의도 광장을 덮고 있었다. 탁 트인 광장과 그 이상의 하늘. 그 아래에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바람.

바람이 불었다. 방향을 바꿔가며 사방에서 살랑이는 공기의 흐름. 더위에 지친 인간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선선한 미풍이 불어온다.

아직 태양이 저만치 있는데, 열기는 한 풀 꺾여 있다. 어찌된 일일까.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여긴 광장이니까.

콩나물 시루 같던 도심 인파도 여기선 거짓말만 같다. 교통차량의 릴레이는 저만치에 있고, 사방에 가로막혀 바람을 차단하던 건물 숲도 꽤 멀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다. 건물 여기저기에 나붙은 에어컨 팬이 토해내는 열풍이 여기엔 없다. 

우매한 인간은 깨닫는다. 에어컨이 없는 것이 이리도 시원한 것일 줄이야. 아니, 에어컨이 이토록 서울의 여름을 한층 더 달구고 있었을 줄이야.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 시각적으로도 '쿨'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 한 켠엔 날개를 펼쳐들고 바람을 일으키는 거대한 새가 있다. 비익조인가.

저 한 편엔 구름의 계단이 여기선 보이지 않는 천공의 성에 닿아 있다. 저기에 오른다면, 인간들의 땅에선 즐길 수 없었던 시원한 바람을 몸소 느낄지도 모르리라. 그렇게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체감온도는 한층 낮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깨우침을 얻는다.

우린 서울의 기후환경을 논한다. 무신경하게 논할 수도 있고, 때론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을 하기도 한다. "오염으로 날씨는 더 더워졌어", "여름엔 갑갑해서 공기도 맘껏 들이쉴 수 없어"... 그리고 방책을 말한다. "에너지 사용은 줄이고, 환경에 대해선 더 관심을..."

하지만 걱정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청정하고 시원한 기후 환경의 장소를 찾아 즐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인 것을. 이런저런 걱정으로 무거운 심기를 끌어안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에어컨 없이도 충분히 즐거운 자연의 피서장을 찾아 공해 제로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잠시 털어두는 것은 어떤가. 여름을 날 때,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그냥 이대로도 충분함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에너지 소비 없이, 더욱 더운 여름을 만들 일 없이 서울의 기후를 있는 그대로 두 팔 벌려 받아들여 보라.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차단벽도 없는 광장에선 자연이 내려주는 특혜의 시원함이 기다린다. 그 즐거움을 몸소 받아내다 보면 깨우칠지도 모른다. 진정 현명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정령들은 인간을 두고 비웃는다. 왜 부드러운 대지를 딱딱하게 만들어 넘어지면 코가 깨지는지. 로도스섬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물론 현세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 인간은 정령들에 있어 여기서도 한심하기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좀 더 시원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실은 도시 전체를 더욱 더 거대한 찜통으로 만들고 있음을 지적하며, 더욱 쾌적한 삶을 위해 만들어낸 창조물이 실은 천혜의 것을 모두 막아버리고 있음을 비웃으며. "왜 인간은 땀을 식혀 줄 바람을 굳이 회색 숲으로 막아 버리고 무덥게 하늘을 데우는 것일까, 그냥 이대로도 괜찮을 것을"이라며 말을 걸어온다면, 욕심많은 인간은 그저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일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