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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의 숨겨진 잔상

(스타도 한번 못해 본) 나의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 답사기 (9)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의 희귀한 잔상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이 성료된지도 벌써 일주일. 운 좋게 현장의 원정대 자리 하나를 얻은 나,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문 게임기자를 만나 인연을 얻기도 했고, 뉴스보이의 원년멤버, 전설의 10년전 팀장을 만나 '형님' 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잔상이 남겨졌다. 중계방송에 살짝 소개됐거나, 혹은 현장을 찾은 매니아들조차 여기서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를 흑역사까지. 그것을 사람들은 추억이라고 부른다. 연재로 엮어갔던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 기사들. 그것들에 마침표를 찍는 최종 이야기를 시작한다.

 

1. 달리는 사인북, sk 텔레콤 선수단 차량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설 때, 마침 로비 밖엔 SKT T1 선수단의 미니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처음엔 연예인 내지 축구선수단 버스인 줄 알았다. e스포츠와 담을 쌓고 지내던 무지함의 결과였다. 하지만 덕분에 게임으로 먹고 사는 선수들도 대단한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들임을 한 눈에 짐작하도록 만든 경험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이들의 성원에 화답했다. 이 커다란 이동 스케치북이 좀 더 복잡해질 구실(?)이 생긴 셈이다.

그건 그렇고 "횽아와 만나줄래"라고 쓴 사람은 대체...

 

2. 윤택 브라더스, 즉석 결성

스페셜포스 프로리그 결승전. 휴식시간 중 웬 이상한 거대 오리 하나가 돌아다니며 시선을 끌어모은다. 마스코트 인형이다. 혹시 뭔가 재밌는 피처 기사 하나가 나올까 싶어 뒤를 밟았다. 그런데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이 홍보대사, 갑자기 좌석 하나에 턱 앉아 버린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으니, 그게 곧 볼만할 그림이었다.

 

윤택이다. 주변에 앉아있던 관중들도 절로 웃음꽃을 피웠다. 웃찾사에서 마피아보스로도 등장한 바 있는 그가 스페셜포스 멤버와 나란히 앉으니 갑자기 느와르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미안하다. 착각이었다. 역시나, 개그맨의 피는 못 말리는지 곧장 근엄한 표정 거두고 웃겨 주신다.

 

3. 기자가 싫냐? ...쉬워보이냐?! 

소녀시대가 축하 오프닝 공연을 장식했던 첫 날 저녁. 이 축하 공연은 앞서 벌어진 아마추어선수들의 부산 e스포츠 대회와 후에 열린 스페셜포스 프로리그 결승전 스케줄의 가운데에 끼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 경기라 할 수 있는 전후 상황보단 이 축하공연 때가 가장 성황을 이뤘으니, e스포츠 팬들로선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그런데 소녀시대가 등장하기 직전,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웬 남학생들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게 아닌가. 처음엔 소녀시대의 팬클럽인 줄 알았다.

한 친구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제스처를 취해 보인다. 타고난 무대 체질. 다가가서 "소시 주려고 꽃다발 가져왔냐"고 물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이거 아까 우승하고 받은 건데요..."

앞서 열린 아마추어들의 '2009 부산 e스포츠 대회'에서 피파 부문의 우승자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야, 니가 우승했어? 꼭 지가 난리야."

속았다. 우승자는 앞의 친구가 아니라 뒤의 시니컬한 다른 친구였다. 그러나 이 친구는 사진촬영을 완강히 거부했다.

"카메라 싫어요."

"기자가 싫은거야?"

그러자 이 친구, 냅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만하면 무안을 넘어 면박 주는 수준. 기자가 싫다는데 별 수 있나.

"부산 지역대표 우승가지고 뭘 찍어요. 나중에 전국대회 우승하면 그 때 사진 나가야지..."

씁쓸히 돌아서서 프레스석으로 복귀할 때 였다. 카메라 들고 출입제한 라인을 넘나드는 내가 신기해 보였는지 또다른 친구 하나가 대놓고 말했다.

"나도 기자했음 좋겠다..."

누가 그랬는지 얼굴을 못 봐서 그냥 지나쳤는데, 실은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절대 '비추'하는 직업이라고.

근데 생각해보니 좀 그렇네. 이 직업이 쉬워 보이냐? 그런거야?

 

4. 수평선을 여행하는 파란 풍선 15000개

둘째날, 스타리그의 왕중왕을 가리는 결승 1차전의 오픈 무대.

사실 이 날은 꽤  돋보이는 설치물이 여기저기 보였다. 웬 풍선보따리가 한가득 준비돼 있는 것. 어디다 쓰는 물건인고 하며 기다렸더니, 개막 선언과 함께 일순간 보따리가 풀렸다.

"만오천개의 풍선이 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전용준 캐스터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친다. 으윽, 저것이었구나. 장관이로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댔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테두리 없는 수평선 위로 흐르는 다섯자리수의 푸른 풍선.

"저게 진짜 볼거린데요?"

난 감탄한 목소리로 룸메이트인 한 게임기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무덤덤한 반응이다. 해마다 그랬다나. 역시 로맨스엔 돈이 들고 축제에도 돈이 들고, 결국 만족할만한 볼거리엔 물량공세가 요긴한 법이로다.

 

5. 전설의 뉴스보이 1기 등장

경향신문에서 날아온 기자 한 사람과 우연히 카메라 때문에 인연이 닿게 됐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실은 좀체 없는 일이다. 헌데 이것도 운명의 이끌림이었나. 명함 교환 순간, 그의 시선에 그만 명함이 뚫려버렸다.

"내가 뉴스보이를 잘 알죠."

뭐... 뭐여?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내가 원년 멤버걸랑. 내가 키웠어."

당시 취재팀장을 맡았다는 전설의 1기 간부를 우연히 만날 줄이야. 난 "안녕하십니까, 복간멤버인 흰개미 1호입니다"라며 황송해 했다. 해병대 선후배끼리 만나면 이런 분위기인가?

"그 땐 대단했지..."

"아아, 그런데 그 명성을 제가 말아먹고 있는 거군요."

그렇게 우리 둘, 뉴스보이 두사람은 그윽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거 봐, 뉴스보이 오래된 매체 맞잖아, 아유! 이제 "뉴스보이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하던 양반들, 또 그러면 호박을 깨 버릴 줄 알어.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