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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생애 첫 재산세 납부, 그렇게 조금 더 어른이 됐다

[오아시스] 생애 첫 재산세 납부, 그렇게 조금 더 어른이 됐다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재산세 내셨어요? 7월하고 9월에 나눠서 내잖아요. 오늘이 말일인데 혹시 잊으셨남?

나도 냈습니다. 첫 경험했네요.

 

63. 생애 첫 재산세 납부, 그렇게 조금 더 어른이 됐다

 

처음에 우편함에서 찾았을때는 이게 뭐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했다. 난생 처음보는 납세 통지서. 찬찬히 뜯어보다 아아, 이게 그 말로만 전해 듣던 그 분이셨쎄요? 했지 뭔가.

재산세였다. 가진거라곤 꿈 하나만 달랑 손에 쥐고 팔랑거리는 줄 알았더니, 이젠 나도 뭐 재산이라 할 만한 게 있다고 국가에서 세금을 다 요구하네. 아무래도 작년에 내 명의로 된 방 한칸을 얻은 것이 주효했던 모양이다.

내 나이가 올해 한국나이로 계란한판이다. 어이쿠 더럽게 많이도 쳐먹었다.

...아아, 갑자기 생각나는, 하지도 못하는 소주 한잔. 물론 만으로 따지면 아직 젊은 20대.

나는 피터팬 컴플렉스가 있나 봐. 또 한번 울적해 지는거 있지. 또한번 자각하게 되는, '어른이 됐다'란 생각에.

울적한 이유는 하나 더. 납세액이 이래저래 합쳐 8만6000원을 넘는다. 첨에 바짝 긴장한 거 생각하면야 납득못할 것도 없다지만 9월에 또 한번 나온다나. 7월에 한번, 9월에 한번. 세금에 신경 쓰인다는 말이 이제사 납득이 간다. 내가 뭐 가진게 많다고 이리도 요구하시나. 행여나 차라도 한 대 끌고 다니면 엄청나겠다.

뭐, 그런데 꼭 우울하지만은 않다.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 읊조려보니,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어깨를 또 쫙 펴게 되는거 있지 않은가.

올해 들어서 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걸 여러번 느낀다. 첫째로 '서른'이라는 나이 카운터(한국 버전)가 그렇다.

원빈도 아닌 주제에 자꾸만 커피맛에 관심이 가는 것도 그렇다.

며칠전 처음으로 진토닉을 맛 봤다. 바에 들어가 칵테일을 마시며 '이게 어른의 맛이군'이라 음미한다는 건 이미 연재물에서 밝힌 바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끼이면 나이 계산에 한숨을 쉬면서도, 반대로 애송이 취급당한다 싶으면 '내 나이가 서른인데'라 들이대는 잔머리. 나이로 잔호박 굴리는 걸 보니 역시 생활에 때가 타고 나이를 먹긴 먹었다.

'돈이 곧 힘이다'라는 걸 깨닫게 만드는 경험도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은데, 통장잔고에 수천만원이 들어있다면 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봤다.

꿈을 좀 더 꾸더라도 총알은 좀 비축해놔야 겠다 싶었다. '배고프다'라는 감각을 어느때보다 확실히 느끼고 있다.

서른이 되면 몸매무새엔 신경을 안 쓸 줄 알았다. 해서 지난 이십대 때를 돌이켜보며 "내 인생은 정말 검소하고 푸대자루 같았구나"하고 결말형으로 단정지으려 했다. 헌데 어찌된 게 더 관심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드레스셔츠가 좋아지고 향수에 관심이 가고... 이상하게 겉멋이 잔뜩 들어가는 것이었다. 절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닿는다. 이것이 성장통일까.

그리고, 첫번째 재산세 납부. 인터넷을 뒤져보니 같은 목소리를 내는 네티즌이 있었다. "첫 납세라 뿌듯하긴 한데... 너무 많이 나오네요"라고.

강서구청 세금 통지서 발행 담당자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 재산세 통지서를 성인식 안내장으로 삼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겠지.

       

 
     
정말 저 말 그대로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해주길 바랄 뿐. 내겐 진정 값진 돈이걸랑. 서른에 맞은 성인식을 자축이라도 해야 할까?

감명깊게 봤던 일본드라마가 있다. '워터보이즈2'라고, 투니버스 방영 당시 매편이 끝날 때마다 절로 박수치며 보곤 했다. 마지막편엔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리고 우린, 조금 어른이 되었다"

역시나, 자축해야 겠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