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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그리고 로도스섬전기의 회색의 마녀 카라

[이야기속 세상보기] 박근혜, 그리고 로도스섬의 회색의 마녀 카라  

 
 
5. 박근혜, 그리고 로도스섬의 회색의 마녀 - 일본 판타지걸작 로도스도 전기

자아. 박근혜 의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숱한 비판은 일단 여기선 접어두기로 하자. '중도주의'라던가, '기회주의'라던가 하며 미디어법 앞에서의 언행을 두고 평하는 것은 다음 뷰에 오른 다른 블로거들의 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여기선 비평적 시각을 조금 걷어내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본다.

정국을 진동시키고 있는 미디어법 파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결 구도로 흐르는 현 정국. 그리고 한 사이드에선 또 하나의 인물이 줄곧 입담에 오르고 있다. 바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다.

미디어법 통과 전 박근혜 의원은 반대입장을 나타내며 정국을 일순간 숨죽이게 했다. 당시 한 기사 타이틀에 오른 한나라당 내 반응 표현이 재밌었다. '다 된 밥에 뭘 빠뜨렸다'고 했던가.

반면 미디어법을 반대하던 이들에겐 순간 호감이 갈 수 밖에 없던 상황. 그 때문일까. 통과 후엔 크나큰 역풍이 일었다. 한 예로 파워블로거 한글로 님은 23일 이를 자조하는 글(http://v.daum.net/link/3736983/http://media.hangulo.net/914)을 올리기도.

투표 당시 찬성입장으로 돌아선 박 의원, 결국 통과 이후엔 한나라당에서도, 민주당에서도 비난을 받는다. 시사블로거들 사이에선 '기회주의자'란 냉소가 잇따라 터졌다.

그런데 말이다. 이 때 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게 됐다. 기회주의자 논란 여부, 중도주의의 진실성 등은 우선 제쳐두고서 시선을 뗄 수가 없던 부분? 그건 새삼스럽게도 그녀가 지닌 파워에 있었다.

박 의원이 한 마디를 던지면 그건 곧바로 뉴스가 된다. 그것의 영향력은 적 뿐만이 아니다. 같은 한나라당도 움찔하게 만든다. 당 내에서조차 그녀는 확실한 견제세력이다. 인정할 수 밖에. 확실히 그녀는 강력한 힘을 지닌 정치가다. '후폭풍을 맞게 됐다'며 곤란해진 입장을 전하는 뉴스 기사들, 바꿔 말하면 이렇게 후속보도가 연달아 터질 만큼 박근혜 의원에 할애하는 스포트라이트는 수명이 길다.

이번 주 서브웨이 가판대를 보면 적잖이 놀라게 된다.
  

 


효창공원 역에서 찍은 사진이다. 일제히 박근혜 의원을 1면에 실어놓은 주간지들. 대단하긴 대단하다.

이 쯤 하니 문득 떠오르는 가공의 인물이 있다. 미즈노 료의 대표작이자, 일본 판타지의 명작 로도스도 전기에 등장하는 '회색의 마녀' 카라다.

서클릿에 담긴 영혼으로 이를 입수한 자의 몸을 빌려 오랜 세월 로도스의 역사와 함께 하는 카라. 그래서 실상은 없는 존재. 작품 속에서도 두 번 모습을 바꾸는데 이 중 '회색의 마녀'라 불린 것은 아름다운 마파의 사제 레일리아의 모습을 했을 때 이야기다. 전 7권의 시리즈 중 1권에서 판과 디드리트 일행하고 대치했으며, 이후에도 우드 척의 모습으로 바뀌어 영향력을 전 로도스에 미친다.

왜 그녀가 '회색의 마녀'라고 불리는가. 그건 카라의 '회색주의'에 기초한다. 주동인물인 판과 대치하는 반동인물로서 일단은 악역을 담당하고 실제로도 여러모로 잔혹한 짓을 벌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형적인 판박이 악당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이해로 접근해 갔을 시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으니 그것이 바로 회색주의.

    

  레일리아의 몸을 빌린 카라. 7년 후 자유로워진 레일리아는 판 일행과 함께 카라를 쫓는다.

출처 베스트아니메(http://bestanime.co.kr/) 로도스도전기 페이지 자료실
   

회색주의는 중도주의와는 비슷한 듯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 물론 '기회주의'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댓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박쥐' 같다고 욕할 수도 없다. 그래도 원작에서 판 일행을 '결국 정답이요 정의'라고, 카라를 '결국 악이요'라고 정의하도록 힘을 실은 건 그녀가 자신의 회색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가차없이 처리하는 잔혹성 때문이었는데, 만일 그 잔혹함을 거두고 여기에서도 나름의 당위성을 갖춘 방도를 썼다면? 이 작품은 기동전사 건담의 '연방 대 지온' 양상과 흡사할만치 빛과 어둠의 명암이 무의미한 양상이 됐을 것이다.  

경외와 지탄의 대상에 오르지만 그런 카라 역시 나름의 정의와 신념을 지니고 역사에 개입한다. 실제로 본작의 30년전 이야기를 다루는 또다른 시리즈 '로도스 전설'에선 도리어 '어둠'에 대항하는 '빛'의 일원으로 활약했었다. (그 빛의 무리 중 한 편은 본작에서 계속 정의의 편으로, 또 한 편은 어둠의 편으로 갈려 대립한다) 카라의 목적은 대립하는 두 세력의 끝없는 저울질이다. 어느 한 쪽을 정의로, 또 타파할 악으로 규정치 않고 그저 두 힘의 균형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 쪽의 세력이 강해지면 카라는 약해진 세력을 돕는다. 그러나 일순간 전세가 역전되면 다시 상대편에 힘을 빌려준다. 양강 구도에서 한 축이 무너지거나 소멸하면 그것이 곧 세계의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불안불안하고 희생이 따르지만 세계의 존망은 이들의 '대립하는 공존'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이는 양당 구도를 이루는 민주국가의 의회와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것은 독자적인 입김만으로도 역사의 추를 흔들 수 있는 강대한 힘에 있다. 결국 이것은 진정한 정의에 대해 고뇌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에 패하지만 무조건 부정만 하긴 어려운 회색주의,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강력함은 매력적인 악역의 반열에 들 만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전쟁과 분쟁이 이어지는 결과를 요구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하나마 평화와 공존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양면의 모습을 지녔다. 악의 세력으로 규정되는 측에서 주인공 측에 도리어 '우린 버림받아야 하는 존재냐'고 되물어올 땐 독자의 정의관을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편, 카라의 회색주의를 또 한번 진지하게 생각토록 만든다. 이 작품에 있어 양 구도와는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한층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 그것이 바로 회색의 마녀 카라다.

    

  30년전에 이어 새롭게 탄생한 여섯영웅들이다.

출처 베스트아니메 로도스도전기 페이지 자료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의원이 카라처럼 회색주의자라던가, 그녀만큼 고뇌해 볼 무게감을 지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박 의원이 결국 자신의 당인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이미 끝난 사안이다. 진정 추를 균형에 맞추려 했다면 민주당 편에 계속해서 힘을 실어줬을 테니까.

카라를 떠올린 것은 순전히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케 만드는 그 '힘'에 있다. 카라가 갖춘 두 가지, 회색주의와 강대한 힘 중 후자에 시선이 간 것. 어쩜, 보수와 진보가 극명히 대립하는 우리나라에도 어느 한 축이 수세에 밀렸을 시, 자신이 몸담은 축과 자신의 신념이 상반된다면 이를 피력하고 상대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순간의 상념이었다. 물론, 이 때는 이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반박할 수 있는, 그리고 어느 한쪽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고뇌할 수 있는 또다른 '빛'이 있어야 겠지만. (실은 이 쪽이야말로 절박한 시점인데... 그나마도 이 쪽은 딱히 떠올릴 만한 인물이 없으니 참으로 불행이다)

글쎄, 너무 큰 기대감이었을까? 판도, 디드리트도, 카라도, 환도, 베르도도, 아슈람도... 이들같은 매력적 영웅, 매력적 다크히어로, 매력적 중재인을 우리 세상에선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차라리 이미 존재하건만 우리가 무지해 미처 몰라보고 있다면 좋으련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