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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6년차의 분대장... 요새 예비군 훈련이 궁금해?

[오아시스] 예비군 6년차, 분대장을 맡다 - 예비군 훈련 궁금해?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예비군 1동대 1분대장.

무슨 말인가. 내가 분대장이라니. 그런 말인가.

 

58. 예비군 6년차, 분대장을 맡다

  
  이건 며칠 뒤, '다음 기수'의 예비군 소집 훈련 상황을 우연히 퇴근 중 확인해 찍은 사진이올시다.  
 

올해로 예비군도 6년차. 전날 자그니 님의 놀림이 귀에서 맴돈다.

"북에서 정전 협정 파기했다던데~(확인해 보니 선언이 아니라 '거론'이더구만!) 나? 민방위! 내일 예비군이예요? 곧장 소집되서...쿄쿄쿄."

나라 꼴이 잘 돌아가는 터라 향방 훈련 받는 것조차 심란하단 말이지.

올해 향방 훈련은 이상하게 날짜 변경이 잦았다. 지난 3월엔 하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당일과 겹치느라 이를 놓치기 싫어 전화 상담 후 불참했고(동사무소 담당계원이 1회차엔 무단 불참이 조정변경보다 편의성이 높다고 알려주더라) 6월에 잡혔던 것을 시간상 문제로 앞당겼더니 이번엔 예기치 못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로 영결식과 노제가 딱 그날에 잡혔다. 해서 다시 조정.

계원이 "특별히 바꾸시는 사유라도?"라 묻기에 "노 전대통령 영결식이 있어서요"라 했더니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정해 주었다. 여러모로 심란한 기분에서 입은 군복. 동대장 되시는 분 역시 "전직 대통령도 돌아가시고, 북에서도... 여러모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이라고 운을 뗐다.

그런데 거기서 좀 독특한 경험을 했다. 'ㄱ'으로 시작되는 이름 중 아무나 빨리 1번명찰을 받아가라 하기에, 그냥 나섰다. 사람들이 망설이기에 뒤늦게 '앗 설마'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당신을 1분대장으로 임명합니다"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분대장이라니! 예비군에서도 또 분대장이라니!

우와. 이게 얼마만에 분대장이야... 그것도 밖에 나가면 필시 전 동대의 맨 앞에 서는 1분대장이다. 어리버리했다간 욕 먹기 딱 좋은 그 막중한 자리 말이다.

얼씨구나. 깃발까지 주네. 분대원들을 죄다 '앉아! 사수경계' 포메이션으로 들게 하는 권한의 깃발. 에헤라디야.

팔자에 없는 자기소개까지 한다. 하지만 꽤 신선한 경험이었으니,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달까. 8명의 분대장은 저마다 회사원, 음식점 개장 예정의 자영업자, 동대문패션시장 점장 등 다양했고, '프리랜서'라는 내가 제일 '없어 보이긴' 했어. 우리 나라에선 '프리 = 반백수'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던가.

각설하고.

이날 향방 훈련은 꽤 특이했다. 날씨가 31도까지 오른 탓에 생수 한 통씩을 나눠 줬고, 탄창 대신 이걸 탄창삽입대에 넣고 돌아다녔다.

모르는 분들은 시가지를 행보하는 예비군들을 보며 현역과 달리 매우 '껄렁껄렁'한 차림새로 다닌다며 오해하시는데, 그게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쩔 수가 없다. 다들 머리는 잔뜩 길었지(참고로 본인은 장발이다), 때론 오색찬란한 염색 머리도 등장한다. 설마 예비군 훈련 전날 군복에 칼 줄까지 잡아주길 바라는 건 아닐테고.

이미 아저씨 풍채와 인덕을 착실히 갖춰가는 이도 상당수. 맹훈련으로 얼굴이 검게 익은 현역 군인들과 달리 피부는 밍숭맹숭(?)하지, 또 눈빛이나 풍기는 분위기도 군기를 요하던 군대와 달리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터라 아무래도 말랑말랑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총은 또 팔자에도 없던 M-16. (가끔은 말로만 듣던 칼빈까지 받는다) 착 감기는 K-2나 간지작살 K-201유탄, 존재감부터 다른 K-3와 달리 이 친구는 몸에 딱 붙질 않는다. 더구나 받아드는 '화이바'(방탄헬멧)의 조절끈이나 벨트의 멜빵이나... 'A급', 'B급'은 고사하고 '폐급' 아니면 축복이라 헐렁헐렁하기 그지 없다. 가끔가다 머리칼을 뻣뻣하게 올린 친구가 조절끈이 시원찮은 헬멧을 받으면 헬멧이 붕 뜨는 웃지 못할 광경도 연출된다. 

이렇다보니 아무리 동대장이 복장을 검열해 벨트를 꽉 채우고, 상의를 바지에 쏙 집어넣고, 십자탄띠를 고쳐매도 후줄근한 코스튬 플레이처럼 보일 수 밖에. 장동건 오빠가 와 봐라. 아마 절반은 그 매력이 날아갈 터이니. 같은 군복이라도 현역과 예비군은 다를 수 밖에 없단 말씀. 차라리 장비 해제하고 전투복만 입으면 그나마 나은데, 그 증거가 바로 지난 촛불정국 시 자발적으로 나서주었던 예비군들의 관록 어린 포스다.

...쓰다보니 왜 이리 사설이 길어? 평소 쌓인게 많았나?

여하튼, 잠깐의 내부 교육으로 일정이 시작된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충효예 교육이 실시되는데...

극중 이등병 - 어? 이건...

면회 온 친구 - 얌마! 실컷 먹어! 군대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초코파이야!

이등병 -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

기자 - ...둘 다 들어내라.

예비군이 된 뒤 추억해 보면 초코파이가 특별해 보이는 건 맞다. 하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등병한테 초코파이 가져다 주는 건 우정파괴의 지름길(?)이다. 왜냐고? 군에서는 그냥 있어도 초코파이가 이래저래... 그나마 익숙하게 접하는 별식인 것. 종교행사 나가도 얻고, 설령 PX에 눈치보여 못 간다 해도 어지간하면 고참들이 하나둘 집어다가 던져 준다. 군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인건 맞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면 잘 못 먹는 사제 음식을 가져다 줘야 할 거 아니냔 말이다. 초코파이를 뽀개다 우유에 타 죽을 만들어 먹었다는 사연을 듣고서 '얼마나 끔찍하게 좋아했으면' 하시는 미경험자 분들이 있나 본데, 별식 거리가 없어 그 짓거리까지 한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한결 편하실 것이다.

저거 참 나쁜 친구일세. 하긴, 보병소대가 탱크 1대대를 밑도끝도없이 수류탄 몇개로 섬멸하던 훈련영화까지 상영되는 거 보면 말 다 했다.(이건 다음 기회가 되면 다루겠다) 여튼 철저한 고증을 요하는 문제다.

야외로 나가 작계훈련을 시작한다. 이날 따라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가던 중에 건물에 불이 나 불자동차에 교통경찰까지 사거리에서 얽히고 동네사람들도 한데 모였다. 여기에 웬 군인아저씨들까지 출현하니 사람들 눈이 휘둥그래진다. 영화 촬영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 일이지.

공사현장은 또 어찌그리도 많은지. 100여명 남짓의 무리가 두 줄로 행군하는 게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시장통 입구를 지나갈 때에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인도에 마늘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상인으로 진로가 딱 막혔다. 하필 맨 앞에 선 게 나다. 비켜달라는 동대장이 옆에 없었다면 우린 서로 마주보며 웃고만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골목을 지나치면 또 길이 막히고... 신호등 앞 횡단보도를 지날 땐 이게 또 일이다. 두 줄로 갈라놓았지만 그래도 기차놀이하듯 50여명이 줄줄이 지나야 한다.

결국 동대장 왈,

"훈련이고 뭐고 차에 치일까 겁나 죽겠네."

심히 동감한다.

하필 돌발상황이 많은 날에 분대장을 맡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지금껏 봐 오던 예비군들 중 가장 통제가 잘 이뤄지는 사람들이었다는 거다. 분대장을 맡으면 가장 많이 행하는 것이 인원 파악이다. 휴식 후 이동을 위해 정렬할 때마다 분대원들이 모두 모였는지 머릿 수를 세고, 또 우리 대원이 맞는지 확인한다. 재수가 없어 이상한 멤버를 받게 되면 그 때마다 사라지고 없어 애를 먹는다. 이전엔 칼빈 들고 잠시 탈영한 친구가 있어 배를 잡고 웃은 기억이 있다. 다행히 사람들은 정렬 때마다 제 자리에 대기해 주었다. 동대장 지령에 따라 또 기수를 내리면 불평 없이 앉아서 사수경계를 한다.

작전 포인트 지점은 공터나 놀이터가 많다. 학교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 도착하면 휴식하게 되는데, 야간 훈련이면 모를까 오후 훈련이라면 완전히 구경거리가 된다. 우릴 바라보는 아이들, 엄마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아찌, 그 총 진짜야?"

"삼촌들한테 체포당하는 분위기야 오호호..."

가정교육을 너무 잘 받은 나머지 보는 족족 "수고가 많으세요"라 인사하는 아이도 있다. 덕분에 훈련 중의 긴장감은 죄다 날아가고 없다.(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선 훈련이 무색한 순간. 그러나 이건 이거대로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기억감이다.

갑자기, 매우 유니크한 상황이 연출됐다. 놀이터에서 휴식할 때, 한 여자아이가 아빠를 외치며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예비군 아저씨 한 명이 다가가 덥석 안아 올린다. 저 만치엔 부인으로 보이는 아이 엄마가 웃으며 다가온다. 카메라가 있었다면 괜찮은 사진이 잡혔을지 모른다. 백마디의 충효예 교육보다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소집훈련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그 순간이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가슴에 와 닿는게 아니겠는가.

훈련은 석양이 깔릴 때 종료. 예비군 경력이 6년씩 되면 사실 어려울 것도 특이할 것도 없다. 받았던 군장 물품을 반납하고, 맡겨두었던(볼모로 잡혔던?) 신분증을 돌려받으면 저마다 '진짜 예비군' 아저씨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 날도 별 다를 것 없는 엔딩.

하지만 말이다. 이날 훈련은 내게 상당히 감성 수치를 높인 기억이 됐다. 예비군과 현역군인을 구분 못하는 아이들이 이를 무섭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호감을 느끼며 다가오는 풍경이나, 똑같은 옷차림새임에도 불구 자신의 아빠를 곧장 찾아 웃으며 달려오는 딸아이의 모습. 그리고 씁쓸하게 과거 초코파이에 목매달던 시절을 복기하게 된 사연까지. 막상 통지서가 날아오면 귀차니즘에 사로잡히지만, 어쩜 우리들은 군 시절보다도 더 삭막하고 통상적인 일상에 지쳐있다가 '다음 달 훈련받으러 오세요'라고 날아오는 그 통지서로 인해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늦은 밤에 집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야간 훈련 중인 예비군들을 봤다. 카메라를 꺼내고 이런저런 조정할 새도 없이 얼른 한 컷. 그 날 봤던 동대장이 오늘도 수고한다. 오늘은 완전한 민간인이지만, 그런데도 저 뒷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약간은 지쳐보이는 발걸음. 그건 전술 이동때문일수도 있고, 발목을 무는 군화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직장상사 눈치를 보며 조기 퇴근 후 가시지 않은 업무 피로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걸 수도 있다. 우리 젊은 사회인들의 뚜벅대는 발걸음. 아직 사회생활에 있어선 '소년병'인 우리들의 행군이다.

언젠가, 예비군 훈련에서 완전히 벗어난 훗날에 이들을 접한다면 난 그 때 또 어떻게 달라진 시선과 감흥으로 저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