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다시 찾은 청와대 앞 '촛불 전장'
쇠고기 촛불정국 1년, 다시보는 이야기 (4)
자신의 취재 기사 중 가장 오랜시간 취재하고, 또 가장 오랜시간 기사를 작성하고, 또 가장 고생했고,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기사를 뽑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않고 이걸 고른다. 1년 전, 청와대 앞에서 써 냈던 이 기록 말이다.
벌써 1년, 다시 찾은 청와대 앞 '촛불 전장'
쇠고기 촛불정국 1년, 다시보는 이야기 (4)
"수도세가 아깝다"를 외치며 비난하는 시민들. 곧이어 구호는 "독재 타도"로 달라졌다. 어느새인가 청와대 앞은 독재정권 시대의 항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화했다... 시민들은 "시원해, 시원해"를 외치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 본문 中
2008년 6월 1일, 폭풍의 일요일
딱 1년 전, 2008년 6월 1일의 일요일은 내게 특별하다. 그날의 24시간을 모두 쏟아냈던 르포르타주의 기억. 내가 지켜본 촛불집회 중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점철된 폭풍의 일요일. 난 그날 기사에 '물과 불의 만가'라는 부제를 붙였다.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3381)
사실 지금 와서 읽어보니, 다시 꺼내들기 상당히 민망하다. 르포라고 부르기엔 내 1인칭 시점이 상당히 돌출돼 있고, 글도 거칠다. 기사라기보단 습작에 가깝다. 사이사이 첨부했던 동영상 자료는 사라져 공백이 됐다. 설마 엠엔캐스트가 1년새 망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 날 나처럼 기사도 만신창이다. 반창고를 하나 붙여주고 싶을 만치.
그래서 더 정이 가기도 하지만.
그날 자정부터 12시간은 취재에, 이후 12시간은 기사작성에 썼다. 단일 기사 치곤 상당한 분량이다. 청와대 앞 경복궁 인근에서 날을 지새고, 물대포와 경찰진압에 밀려 안국역으로 떠내려갔다가 다시 광화문과 시청으로... 그간 물대포에 사람이 날아가는 모습도 목격했고 나도 집중 포화에 얻어맞았다. 바닥에 뒹굴던 사람의 비명. 정말 여긴 전쟁터였다. 민주주의의 비명이 난무하는...
진압이 시작되던 아침, 란 스튜디오 앞은 부상자들의 응급치료실이었다. 여기서 멋쩍은 고백 하나.
나는 이 앞에서 연막이 터지자 순간 최루탄인 줄만 알고 부상자와 진료진에게 입을 막으라고 난리 부르스를 추기도 했다. 다행히도 눈물콧물 쏙 빼놓는 그런 최루가스는 아니었다. 일종의 공포탄이었달까.
급작스런 상황에 여성 의료진이 비명에 가까운 소프라노로 "여긴 아니예요!"라고 반복해 외쳐댔다. 적십자 표식을 갖다대고 사람들이 손을 내젓고 다급해지자 "야! 여긴 아니라니까!"하고 비명을 질렀다.
- 본문 中
그로부터 1년째 되는 날, 가장 먼저 찾은 장소도 이 곳이었다.
2009년 6월 1일, 모든 것들이 환상 같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1년이 지난 오늘 그 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1년 후의 월요일 저녁은 한가롭다 못해 평화로워보였다. 카메라를 들고서 여기 저기 두리번대는 내가 다른 사람 눈엔 외국인 관광객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걸어 동십자각으로, 또 정부청사와 광화문 앞으로 향했다. 그날의 진로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듯.
군중들은 "일어나라 아침이다", "예배 가야지" 등 조소 섞인 구호를 외쳤다... 연장전을 예감케 하는 순간. 그러나 이 때만 해도 곧이어 찾아올 상황이 최악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본문 中
그날 아침,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청와대 앞에까지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가길 바라며 끊임없이 이명박 대통령을 불러댔다. 시대극에서 4.19 혁명의 함성에 귀를 의심하는 이승만 대통령처럼 그도 당혹스러워 하길 다들 바라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1년의 텀을 두고 찍은 이 두 사진을 나란히 바라보니 정말로 환상을 본 것만 같은 착각에 든다. 그 사람들의 물결이 싹 사라지고 난 지금의 이 곳은 정말 그 곳이 맞는가 싶을 만치 이질적이다.
끔찍했던 6시의 기억
1년만의 답사 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이 돌아오는건 역시 이 곳. 그 날 이 곳에서 저 멀리엔 경찰병력이, 이 쪽엔 동십자각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비명소리가 울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 역시 그대로 직격, 일순간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의심의 여지 없는 타겟 록온이다... 왼 발목이 접질려 순간 기동성을 잃었다. 팔을 짚고 일어서려니 이번엔 부어오른 왼 팔꿈치가 비명을 지른다.
- 본문 中
지옥. 물지옥. 전쟁터가 따로 없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요일 아침. 그 때의 저들에게 묻고 싶다. 그 강경했던 해산작전은 아침 교통을 풀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자신들도 혼비백산했던 것인지.
실제로 이 날은 촛불정국 중에서도 정부가 최악의 여론을 맞았던 시국이다. 군홧발에 머리를 밟히는 여대생의 영상 자료가 한 기자를 통해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물대포는 최고의 이슈로 떠올랐다. 물대포에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그 중엔 나도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 당시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얼마전 일을 환기시키는 저 현수막. '자칫하면 제2의 촛불로 이어진다'며 정부와 여당을 숨죽이게 만들었던 비극,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그 때의 기억과는 또다른 씁쓸함이 고개를 젓게 만든다. 그야말로 조용할 날이 없는 1년이 아니었던가.
다시 미래로
하룻밤동안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던 길목. 저 편 경찰 바리케이트 앞에서 시민들은 "독재타도"를 외쳐댔다. 불과 취임 3개월만에 자유당보다 더한 독재 대통령이란 비난을 듣게 된 이명박 대통령이다. 지지율 하락은 이 날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 날의 모습이 하락세에 탄력을 더한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경복궁역 앞 진입로도 마찬가지. 저 편엔 경찰병력이 완전봉쇄하고 있었다. 이 편엔 시민들이 길을 열 것을 종용했다. 그 날 현장을 보지 못한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믿겨지지 않을 대규모 집회 현장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의 답사는 끝이 났다. 1년 전엔 이 모든 것들 중 최초로 목격했었던 그 출발점 위에서.
과거의 1년은 그렇게 흘러 지금에 닿았다. 유감스럽게도, 거리의 총성없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만 해도 노동절 집회, 또 노 전대통령의 추모를 둘러싼 충돌 등이 계속되지 않았던가. 이렇듯 지금도 서울 도심은 언제 어떻게 전장으로 화할지 모른다.
이젠 앞으로의 1년을 내다볼 시기. 미래의 1년은 어떤 모습으로 우릴 맞이하고 있을까. 확실한 것은, 그 민주주의의 전장이 계속해 열린다면, 그 때마다 인터넷 저널리스트들의 기록은 계속 이어질 거란 사실. 과거 1년간 그들은 거리의 종군기자였고, 앞으로도 현장에서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록에 담아 블로그에, 또 자신의 매체에 옮겨갈 것이다.
다만 그것이 좀 더 먼 미래에 있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