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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종파와 국적 뛰어넘은 촛불 속 - 용산참사 100일 추모제

종파와 국적 뛰어넘은 촛불 속 - 용산참사 100일 추모제


"장소가 바뀌었다?"

6시 40분. 미디어몽구 님의 '진로변경' 소식에 잠시 멈칫했다. 시청 앞에서 열릴 예정이던 집회가 서울역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20분 전에야 전해 들을 줄이야.

당초 목적지였던 시청 앞. '서울역'으로 향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있다. PD수첩 쇠고기편 방영 1년째 되는날, '시청 앞에서 다시 작년의 그 촛불행렬을 보는가' 하며 떠올린 '상'은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종파와 국적 뛰어넘은 촛불 속 - 용산참사 100일 추모제



다시 타오른 촛불

29일은 용산참사 후 100일째를 맞는 날. 한편으로는 작년 촛불정국의 도화선이었던 PD수첩의 쇠고기편이 방영된 1년째 날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촛불을 생각케 하는 날, 사람들은 정말 촛불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재보선 선거날이었고, 결과에서 공교로운 일이 벌어졌는데 이 부분은 후에 언급한다.




종교인들 집합, 차례로 펼쳐지는 추모의식
 

29일 저녁 7시.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제는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무엇보다 많은 주목을 끌었던 것은 서로다른 종교인들이 모여 순서대로 추모의식을 펼친 것. 불교와 원불교, 천주교의 인사들이 차례대로 추모제를 열어주었다.

불교계는 혼령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목탁소리를 울렸다. 이렇다할 발언 없이 그저, 영정의 이들을 위해 염불과 목탁으로 이들을 달랬다.   

원불교에서도 참여해 다음 순서를 이어갔다. 

천주교의 사제단도 나섰다. 벽안의 사제도, 수녀님들도 다함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문정현 신부 "찾아와요! 찾아와 줘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걸 해 준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사람들에게 분향소에 찾아와 달라고 외쳤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와서 해 주니 정말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었다"며 "각자 찾아와 이들을 달래고 위로해 주는 것이 여러분들이 해줄수 있는 일"이라 계속해 청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 - '강달프' 강기갑, 침묵 속의 행보



"강기갑 의원이다."

몽구 님이 내게 귀띰한다. 정말이다. 그가 앞에 앉아있었다.



기자가 이 날 추모행사 중 놓친 부분이라면 앞부분 정도. 이 때 그가 발언권을 갖지 않았다면 그는 이 날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촛불을 든 채 앉아만 있었던 게 된다. 

작년 촛불정국에서의 모습이 잠시 떠오른다. 촛불 정국과 쇠고기 파문이 일기 전부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먼저 반발하고 나섰던 그다. 사실 이처럼 촛불을 드는 행사에 있어 국회의원 중 가장 부담없이 받아들여지는 1인을 꼽으라면 그 밖에 없지 싶다.

그는 마지막 일정인 시민 헌화에 참여해 500여개의 국화 중 한 송이를 보탰다. 역시 아무 말도, 표정도 없었다. 

정치인은 항시 웅변하고 설전을 벌이며 존재감을 발하는 운명. 그렇기에 말 없이 존재만 내보이고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근래 보기드문 한 장면이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 - 종파도, 국적도... 벽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종파를 넘어, 또 국적을 넘어 다양한 이들이 촛불을 든 것 또한 이목을 끌었다. 푸른 눈의 사제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속세와, 정치적 이해와, 그리고 이 나라의 골을 넘어 불꽃을 나눠든 모습엔 차마 색깔론을 논할 수 없으리.



스님 한 분이 유가족 앞에 다가가 위로한다. 인사를 나눈 뒤, 스님은 염주를 손에 쥔 채 몇마디를 나눈다. 얼굴에 그림자가 진 이들 앞에서 그의 위로법은 독특했다. 서글서글 웃는 얼굴로 눈높이를 맞춘 채 이들을 달랜다. 가득찬 수심 앞에 미소로 상처를 보듬는 그였다. 부처님의 소통법은 참으로 오묘하다.

 

유가족 "고맙습니다..."

유가족들은 추모사를 통해 한결같이 "대통령은 모르쇠로 일관하지 마라", "사람들을 석방하고 진심으로 우리에게 사죄하라"를 주문했다.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한마디는 "고맙습니다"였다.



추모사를 읽다, 나중엔 즉흥적으로 발언하던 한 사람의 말. 

"이승환 등 대중 가수가 우리 아이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연극인들은 연극으로 우릴 달래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렇듯 모여 촛불을 들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고맙습니다..."

 

들려오는 재보선 개표 소식, DMB 속의 결말  

그 사람도 기자였을까. 모여있던 이 중 한 남자가 전화를 받더니 옆에 있던 이에게 말한다.

"민주당이 이기고 있네"

몽구 님께 '그렇다는데요'라 전하니 "정말요?"하며 되묻는다. 둘이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어 DMB 방송 채널을 돌린다. 흘러나오는 뉴스 속 중간집계 상황. 정확히 말하면 무소속의 강세다. 그리고... 설마설마 하던 0대5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었다. 적어도 한나라당에선 1위를 마크하는 이가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수근대는 우리들의 말에 또다른 군중 한 사람이 다가와 궁금해한다. 화면을 보여주니 한나라당의 전패 시나리오 진행에 그는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전만 해도 추모 영상 중 '미운 털'이 박혔던 한나라당이다. 이런 자리에서 이같은 결과를 확인할 줄이야. 공교롭기 그지 없다. 

 

500송이의 국화, 500명의 헌화



집회에 참여한 각계 인사들, 유가족을 비롯 시민들의 헌화가 추모제를 마무리할 때, 진행자는 "준비된 500송이의 헌화 송이가 다 떨어졌다"고 알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헌화 행렬들.

한 송이씩 쌓여가던 꽃이 영정 앞에 가득찼다. 그렇게 100일 추모는 하얀 국화로 장식됐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