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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화상입은 숭례문 공개 행렬에 숨겨진 이야기

화상입은 숭례문 공개 행렬에 숨겨진 이야기

 
 
   
 

저 사진이 무엇의 일부인지 쉽게 알아차렸는가. 불타버린 국보 1호의 화상자국임을.(관련보도 http://kwon.newsboy.kr/1098)

 

전소 1주년 맞은 10일, 6시간동안 한시 공개

"이게 무슨 줄이래?"

   
 
   
 

오후 2시. 서울 숭례문 광장앞에 주욱 늘어진 사람들. 

"이게 무슨 줄이래?"

버스정류장에 내린 노인 두 사람이 영문을 모르겠다며 주고받는다. 한줄로 이어진 행렬의 끝을 따라가 봤다. YTN건물보다 뒤, 서울역 지하철 출입 보도 앞에서부터 새로운 줄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림막 뺀다더니?!"

줄 서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가 불평을 쏟아낸다.

"가림막 뺀다메?!"

본래 언론보도에선 가림막 자체가 하루동안 빠져버리고 모습이 공개된다고 했다. 이에 화재사건 전처럼 '완전공개'를 생각하고 찾아왔던 사람에겐 끝없이 늘어진 행렬을 차례대로 내부에 들여보내는 것이 '뜨악' 할 수 밖에 없는 광경. 바깥에서 줄을 설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보령에서 왔다니께!" "아 글쎄 어디서 오셨는진 모르겠고요."

정문 앞에선 끝없이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야기도 여러가지다. '할 말있으니 담당자 나와라'서부터 '사진만 한 장...', '멀리서 왔으니 그냥 좀...'까지.

두 노파가 문화재청 사람과 승강이를 벌인다.

"보령에서 왔어요."

"글쎄 어디서 오셨는진 모르겠고요, 아침부터 2시간 넘게 기다리고 들어간 사람도 있당께요?"

"그럼 어뜨케?"

"줄 서세요."

"줄 섰어! 줄 섰다 포기했다가 그래도 미련 남아서 온 거라니깐?"

"아 글씨 아까도 새치기하다 우산으로 찔러대고 싸움박질 해서 어르신들이 경찰서 불려갔어요. 또 그럼 그런 망신이 어딨어? 여기 딴 분들도 죄다 어르신이라니깐요."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본다. 결국 진행자들은 거절.

그러나...

"빨리 와, 언니."

"야 이러다 카메라 많은디 TV 나와부리는거 아녀?"

결국 이 두사람, 좀 더 뒤로 돌아간 뒤 은근슬쩍 그냥 줄 안에 들어가 버렸다.

"아 그래도 세상 많이 좋아졌어... 질서 의식 좀 봐"

한편, 앞서의 승강이 중 진행요원 아저씨는 "그래도 옛날보단 참 많이 좋아진 세상"이라 밝혔다.

"그래도 참 많이 좋아졌어유. 저 많은 사람들이 한줄로 딱 서 있잖여. 질서의식이 대단해. 옛날같았으면 우린 깔려 죽어버렸을겨."

진심인지 아님 들으라고 한 고도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결과는 '실패'. 

   
 
  여기서부터 줄이 시작된다. 이건 이거대로 진풍경이라 카메라맨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고령자들 많았다

이 날 오후, 인파의 평균연령(?)은 고령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초로의 여성부터 팔순은 넘은 듯한 할아버지까지, 나이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 진행요원들도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여기 오신 분들이 하도 어르신들이라 우리가 줄곧 곤혹스럽다"고 하소연하는 판국.

간간이 외국인 카메라 관광객, 여학생과 청년들이 가뭄에 콩나듯 보인다. 어쩌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 안겨 눈동자를 굴리면 주위의 어른들은 귀엽다고 난리법석.

아침 7시부터 시작된 기다림

진행요원들의 이야기가 꽤 재미있다. 자신들끼리, 혹은 넉살좋은 시민들과 함께 막간에 이런저런 정보를 나누는데 한참 진행되다 보면 전국팔도 사투리가 죄다 뒤섞여 나온다. 서울시민은 물론 새벽차 타고 올라온 지역민들도 상당수임을 느낄 수 있다. 그들 말로는 오전에 비하면 오후는 그래도 수월한 편.

"저희가 아침 일곱시부터 여기 나와 기다렸거든요? 헌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좌악 늘어서 있어. 아따, 놀랐당께. 아침 댓바람부터 한 2시간 기다려야 들어가고 그랬어."

   
 
  유인물 프린트는 날개돋힌 듯 나갔다  
 

리포터의 굴욕 "인터뷰는 어려워"

TV 출연은 영 껄끄러운 걸까. MBC리포터의 굴욕(?)이 연출된다. 자신있게 한 아이 어머니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그녀.

"어디서 오셨어요?"

문제는 다음 반응. 원하는대로 일이 풀리질 않는다. 갑작스런 인터뷰 질문에 상대는 마이크부터 쳐다봤다. 마치 '이거 노래방서 보던 마이크하곤 생김새부터가 심상찮게 다른데 혹 무전기여?' 하는 눈빛. 그리고 그냥 외면하는 몸짓.

"저기..."

리포터는 웃으며 쫓아가보지만 결국 손을 내저으며 잰걸음으로 달아난다.(?) 근성의 리포터는 포기않고 이번엔 아이에게 접근했으나... 엄마랑 꼭 닮은 제스처를 반복하며 아이도 웃는 얼굴로 달아난다. 꼭 닮은 모녀다. 

"푸욱."(리포터 한숨 꺼지는 소리) 

마감 1시간 전, 줄서기 작전

남의 일 만은 아니다. 기자도 굴욕 한 방.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누구요? 애기?"

막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엄마에게 '인터넷 기자'라며 사진 한 컷을 부탁. 그러나 퇴짜 맞았다. 프레스완장을 차나 안 차나, 먼저 요청부터 하나 그냥 들이대보나 인터뷰는 어렵더라.

돌아서려다, 한 마디만 물었다.

"저기, 몇시간정도 기다리셨어요?"

"으음, 한 30분?"

어라라? 생각했던 것 보단 대기시간이 짧다? 어쩔까 망설이다 '나도 한 번...' 하며 행렬에 동참해 봤다.

   
 
   
 
 

어르신 왈 "어르신이니까..."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칠순가량 되어보이는 할아버지였다. 그래도 꼿꼿한 허리가 아직은 건강해 보이는 어른. 헌데, 잠깐 이 노인을 고민하게 만드는 시츄에이션 등장.

팔순 내지 구순 쯤 되어보이는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보청기에, 백발에, 뉴스보이모자에다, 아주 굵은 지팡이.

"...구경하실라구요?"

조금 더(?) 나이많아 보이는 할아버지는 웃어보였다. 틀니를 안 갖고 오셨는지 고개만 끄덕끄덕. 가만 보니 노인과 노인이 아니라 차장 아저씨와 경로우대증 지닌 승객의 대화만 같다. 잠깐 뒤돌아 이 쪽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노인은 '어여 들어와요'란 몸짓으로 합류시켰다.

"(다리아픈)어르신이니까..."

어르신 사이에서도 청년과 어른의 선은 명확했다. 원칙이냐 융통성이냐를 놓고 내린 판단, 어쩜 언쟁이 붙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나... 다행히도 이에 대해 뭐라 하는 이는 없더라.

   
 
  드디어 차례. 다만 1순위로 딱 끊겼다.  
 

숭례문에 띄우는 한 마디, "힘내라" 

정말로 30여분정도 기다리니 차례가 돌아온다. 숭례문에 들기 앞서, 앞에 펼쳐진 포스트잇 뭉치와 화이트보드가 우릴 기다린다. 숭례문에 전할 격려 한마디를 적어내는 순서다.

한가득 붙여진 글들을 읽어봤다. "얼마나 뜨거웠을까"라 붙이고 막 들어간 할머니의 글부터 "내가 크면 복원사(?)가 되어서 널 복원해줄게"라는, 어린아이의 글로 추정되는 글까지 다양하다. 기자가 잠시 고민 끝에 꺼낸 것은 결국 이거였다.

   
 
  이건 뭐 재미도 없고, 멋대가리도 없고, 짧고, 게다가 졸필이고... 그래도 성의없다고 하면 열불낼 뿐이고.  
 

들어서는 순간 사방에서 터지는 한숨들

숭례문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골절에 전신을 철사로 고정시킨 중환자마냥 수도없는 파이프가 재생 중인 몸체를 감싸고 있다.

   
 
   
 

저 편에서 "이걸 어째"란 한숨이 터진다. 불태워져 떨어져 내린 목조품의 검댕이 사람들을 수심에 잠기게 한다. 전소된 국보 1호, 이것이 조상님과 후손들 앞에 선 현 시대의 모습이다.

   
 
   
 

   
 
   
 

다시 한번 비난 쇄도, "태워버린 놈이 누구라고?, "왜 개방했대?" 

불보듯 확연한 상황이 실현됐다. 한 노인은 씹어뱉는 소리로 연신 욕지거리를 뱉었다. "미친 놈이 이 꼴을 만들어 놨다"며 방화범에 대한 노기를 세운다. 기도 차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졌다.

한편 DSLR 카메라로 불에 타버린 자국을 접근촬영하던 젊은이는 "누가 개방해 이런 일을 자초했느냐"고 중얼댔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동조하는 목소리도 줄곧 이어졌다.

   
 
   
 

   
 
   
 

나와서도 미련 남긴 군중들

오랜시간 기다려 숭례문의 상흔을 답사한 이들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나왔다. 한편에선 아직 미련이 남은 듯 주변을 배회했다.

   
 
   
 
언제쯤 이것이 완전히 복원되는지 여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히 재건되고 복원되더라도 이미 한번 타버리고 말았음을 의식한 것일까, 선조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나온 듯 사람들은 침울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