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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연예

선악의 경계를 허물던 독립파 배우 故 박광정

 

선악의 경계를 허물던 독립파 배우 故 박광정 
이름보다 얼굴 더 알려졌던 개성파, 그를 추모하며 꺼내는 추억 

 


    ▲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중 (출처 스포츠코리아)  
 


15일 타계한 배우 박광정은 누구인가.

박광정은 이름보다 얼굴로 더 알려진 연기자다. 이름만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이도 그의 얼굴을 보면 '이 사람!' 할 만큼 여러 작품을 섭렵하며 인상 강한 연기를 펼쳤다.

그에겐 조역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데뷔 후 15년만에 2007년작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서 주연을 맡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언제나 밥이 아니라 반찬으로 상 위에 올랐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능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주역 아닌 조역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그를 증명한다. 은막과 스크린, 브라운관을 전천후로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를 펼쳐냈다. 때론 어느 한 부분이 삐죽 튀어나온 연극적, 만화적 캐릭터로 분위기를 살리고 때론 꽉 찬 절제력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이제 와서 그가 출연한 작품들에서 그의 요소를 빼 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하다. 주역보다 더 소중한 조역이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말이다.

1992년 연극 마술가게 연출로 데뷔한 그는 투병 중이던 최근에도 연출가로서 연극판을 누볐다. 그의 탄탄한 연기는 연출가로서의 관록에서도 큰 힘을 받은 셈이다.

시청자들에겐 데뷔 2년 후인 1994년, 최대화제작을 통해 첫 인사를 건넨다. '차인표 신드롬'을 몰고 왔던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차인표, 신애라 등의 청춘스타와 그를 비롯한 깜짝스타의 조화가 빛을 발한 케이스다. 역시 연극인이던 권해효와 함께 개그콤비를 이뤄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애달픈 사랑과 코믹 분위기의 언밸런스한 조화가 일품이었던 작품에서 그는 그 한 축을 훌륭히 지탱했다.

그는 2년 뒤 권해효, 차인표와 다시 한 작품에 선다. 96년 KBS로 옯겨 '신고합니다'에 출연했고 깐깐한 부사관으로 등장해 '군대 녹록치 않다'는 것을 연기로 보여줬다. 여름시즌에 편성, 역시 차인표와 함께 당대 청춘스타였던 장동건이 출연한 MBC 아이싱과 '철모 대 철모'의 대결을 펼쳤던 이 작품은 시청률에서 완승을 거뒀다. 이 요소로는 소재의 친화력 등과 함께 출연진의 연기력 차이가 거론됐고 특히 감초 연기진의 존재가 남달랐다. 권용운, 구본승, 이혜영 등과 함께 이를 담당한 그는 큰 액션이나 과도한 표정 없이 짤막한 단문 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하며 사랑받았다. 이 중 여름날 온도가 31도 이상이면 훈련을 제하는 것을 노린 병사들이 야외 온도계를 손보다 그에게 딱 걸렸을 때 신은 대표적이다.

"지금 온도계가 몇도냐?"

"42도인데요..."

"아깐 51도였다. 여기가 아프리카 사막이냐?"

    

  
  ▲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중 (출처 스포츠코리아)  
 


이후에도 그가 출연하는 90년대 작품은 승승장구했고 그의 얼굴은 성공의 브랜드와도 같았다. 그간 세트를 이뤘던 권해효가 그 이름 덕에(?) 라면광고에서 '권해요'(권해효)란 멘트를 날리는 등 네임벨류를 높이는 것에 비하면 이름만으론 인지력이 부족했을지 모르나 얼굴만큼은 못지 않게 확실히 팔려나갔다. 다시 2년 주기로 찾아온 히트작 SBS 미스터Q에서도 악역 진영에서 명계남과 함께 시간차 개그를 펼쳤고 김민종, 김희선, 송윤아 등 주역진이 빛나도록 서포트하며 화제작이 되는데 견인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치를 돋보인 것은 그 유니크함 때문이다.

그는 선인과 악인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배우였다. 그에 대해 만인이 떠올리는 첫인상은 '선역 전문'도 '악역 전문'도 아닌 '웃기는 사람'이다. 주동인물과 반동인물간 갈등에서 그의 캐릭터는 대부분이 자유로웠다. 두 영역에 있어 그는 일종의 독립군이었던 셈이다. 우리편을 돕는 지원군일 때도, 얄미운 소악당일 때도 그는 항시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미스터Q에선 확실히 김민종 등과 대결구도에 있었지만 웃다보면 '미운정'이란 말조차 어색했다. 라스트의 몰락 신에서 두 사람이 2000원짜리 이동 우동집을 경영한 것은 어찌보면 그에게 있어 해피엔딩. '헝그리 정신' 운운하며 혼자만 밥을 먹지 않나, 지독하게 갈구던 명계남을 배달부로 부리며 "이것도 기술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라 타박하던 것은 소악당 답지 않은 카타르시스. 밉지 않은 악역을 위한 특별 배려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렇게 그를 인식해갔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도 그는 동일선상에 있었다. 한일어업협정의 졸속처리를 풍자하는 코너에서 무능한 협상 관리로 등장했을 때다.

"왜 쌍끌이 배는 제외했습니까?"

박광정은 여기서 멀뚱멀뚱한 눈으로 어눌하게 묻는다.

"그런데 쌍끌이 쌍끌이 하는데 대체 쌍끌이가 뭡니까?"

두 귀를 잡혀 쌍끌이로 끌려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남겼다. 그러나 이 또한 일종의 연민을 전했다. 선악의 선을 허물고 언제나 인간의 냄새를 연출해 내는 것이 그였다. 너무나 귀한 캐릭터를 그려내던 그이기에 이제 '큰 손실'이란 말을 꺼내는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16일 새벽, 한 포털 검색어 차트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네티즌들도 추모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이름보단 얼굴을 보여야 사람들이 아는 것일까, 톱스타의 비보에 견줄만큼의 상황은 아니다. 조역 인생의 마침표는 호들갑 없이 은은하게 전해져 내리고 있다. 아쉽다면 더할 나위없이 아쉽고, 언제나 2진에서 톱스타를 지원하던 그의 미덕이 여기에서까지 이어진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그의 이름으로 검출되는 이미지자료를 찾아보면 아쉬움은 더 진하다. 30여페이지 중 28페이지가량이 이번 사망 소식에 따른 사진보도 자료. 십수년의 연기생활 중 찾아볼 사진자료가 너무도 부족하다. 생전 왕성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 단독으로 찾아 볼 자료가 이러함은 그의 공헌도에 비춰볼 때 너무도 섭섭한 대접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2년 연속으로 한국 연예계는 무덤과도 같았다. 수많은 스타들이 자살과, 불의의 사고, 그리고 그가 폐암 투병을 했던 것처럼 지병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다. 올해 마지막달 들어서도 부고가 잇따랐고, 불과 새해를 보름 남긴 지금 우리는 박광정의 비보를 듣는다. 그에게 마지막 인사만큼은 주역 배우 못지 않은 환송과 추모를 담아 호들갑을 떨어도 좋지 않을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