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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미네르바, 매트릭스 네오의 그림자 [이야기속 세상보기]

[이야기속 세상보기] 미네르바, 네오의 그림자 
영화 매트릭스 

 
 

"난 여기서 글을 쓰지만 난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를 가진 정보량 2진수의 01001011의 그냥 단순 데이터일 뿐이다...(중략) 사회 구조 매트릭스에 대한 자각과 각성과 깨달음을 통해서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경제적 재산권을 지키고 나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 미네르바, 11월 13일 '과연 나는 누구인가' 중

"매트릭스의 네오가 생각나네요, 건강하세요" - 댓글러 '루츠' 님.

2008년의 대한민국은 그에게서 2199년, 매트릭스의 네오를 본다.

 

4. 미네르바, 네오의 그림자 - 영화 매트릭스

 

평범한 회사원, 토머스 앤더슨.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며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낸다. 용모단정의 말쑥한 청년으로 사회에선 더할나위없는 모범적인 시민. 그러나 또다른 이름이 있다. 컴퓨터 세상에선 비범한 해커 '네오'가 그의 분신인 것.

어느날 인생이 뒤바뀐다. 정부기관일까, 알 수 없는 요원들에 붙들린 그. 역시나, 네오로서의 활동을 심문받는다. 그리고 돌아온 뒤부터 그의 삶은 달라졌다.

모피어스라는 수수께끼의 남자가 전해오는 매트릭스의 정체는 상상 이상의 것. 역시 알수 없는 여자 트린의 안내를 받아 그가 당도한 곳은 '진짜 세계'였다. 진짜라 믿었던 세상이 가상 공간임을 알면서 모든 것이 뒤집혀 버린 현실. 역류한 진실 속에서 그는 세상의 구원자로서 몇 안되는 자유인들과 저항에 나선다.

...매트릭스 1편의 전반적 스토리라인이다. 1999년 등장한 작품은 세기말의 분위기 속에서 SF의 새로운 신화로 기억됐다. 물론 '이 설정은 진실이 절대 아니길 바란다'는 네거티브적 희망을 함께 전달하면서.


촬영 현장 - 출처 다음 TV팟 문패님.

 

그 암울한 분위기 속 영웅의 그림자가 현실에 드리워진 것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웅을 접하기 전 이를 언급하게 된 현시대의 분위기에 유감부터 깊게 전해야 할까.

2008년, 한국은 미네르바의 존재를 알아챘다. 이젠 설명이 필요없게 된 인터넷 속의 은둔자를.

그의 존재에 뒤따르는 현상은 '영웅'으로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그것이 과장이든, 허상이든, 왜곡이든, 진실이든간에 적어도 이미 뒤따르는 영향은 현실이다. 센세이션이라 불러도 과할 것이 없다.

미네르바는 세상의 빛을 얻는데 필요한 요소를 다 갖췄다. 첫째가 타이밍.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더니 정말로 경제난이 언급되는 찰나 이슈에 올랐다.

그러나 그 정국에 들어서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존재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그는 위기감이 확산되기 전, 한발빨리 '예언자'의 모습을 빌려 등장했다. 자연스런 등장이었고 네티즌들에게 '그는 진짜다'란 확신을 심어줬다.

놀랄 정도의 적중 결과가 그 다음 과정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의 예상은 하나하나 맞아떨어졌고 어느샌가 '예언'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단발성, 우연성의 반짝스타가 아니라 베일에 싸인 진짜 실력자로 어필됐다. 언론 역시 높은 관심을 보였고 찬사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의 예측글은 경제보고서를 꽤 읽었다 생각하는 기자가 보기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수준이 높다.(중략) 한마디로 1급의 경제분석 보고서인 셈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하승주 정치부 차장 칼럼 중

네티즌의 정부에 대한 반감 등 경제 위기를 떠난 정치적, 여론적 시국과도 맞아떨어졌다. 다음 아고라에 그의 글이 뜰 때마다 네티즌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미덥지 못하게 보여지던 정부를 향해 '거 봐, 그가 뭐랬어'라 외쳤고 그의 존재감은 급격하게 부상했다.

그의 예언록은 확산됐다. 관련 카페가 생성됐고 여기선 그의 지난 글들을 한데 모아 파일로 철했다. 그가 어느새 자신의 지난 글을 모두 지우고 모습을 감췄을 때도 이는 그의 존재감을 유지시켰다.

본인이 의식을 했는지, 혹은 그 반대를 원했는지는 본인만 알터. 그러나 그의 글은 신비주의적 매력을 발산했고 그의 존재를 더욱더 부각시켰다. 절필을 선언할 때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아달라고까지 부탁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어쩜 자신을 숨기고자 했던 바의 역효과였을지 모른다) 자신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그를 '경제 대통령'으로 표현했고 네티즌들은 '현자'라고 말했다. 미네르바 본인은 스스로를 '고구마 파는 할아범'이라 표현하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지만 이는 이거대로 새로운 화제를 몰고 왔다. "고구마 파는 할아범을 진짜로 봤다", "난 미네르바의 진짜 정체를 오늘 노점상에게서 봤다" 등 숱한 낭설이 함께 번졌다. 생각해보면 '고구마 장수 노인'은 더할나위 없이 정감가고, 호감가는 서민의 이미지를 수반하고 있었다.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이 더해졌고 이 때부턴 정말로 영웅이 됐다. "나 오늘 고구마 할배 말대로 한 덕에 주식시장서 화를 면했어요, 땡큐"란 감사글이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그가 자산을 지켜준다는 환상까지 더해졌다.

갑자기 '정부가 미네르바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획재정부가 그를 찾는다", "토론을 제의하고자 한다"는 기사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다음 아고라 경제방은 순간 폭풍전야와 같은 무거운 분위기에 들었다. '여론 탄압'이란 의혹 제기는 곧장 수반됐다. "그를 왜 찾느냐", "스카웃하겠다는 거냐"에서부터 "곤란해지니 입을 막으려 한다"는 비난까지 쇄도했다.

그리고, 갑작스런 미네르바의 절필 선언. 평소와 달리 하루새 세네번에 걸쳐 연거푸 게재된 그의 글은 이런 의혹에 대해 예상 이상으로 구체적인 답변이었다.

"난 경제 이야기를 쓰면 안된다...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 11월 13일 '과연 나는 누구인가' 중

수많은 네티즌이 몰려들었고 반향은 엄청났다. 야당 진영은 "시대가 어느 때냐"며 정부를 비난했고 언론에서도 이는 집중조명됐다. 이내 MBC뉴스데스크 클로징멘트는 찬사를, 반면 개편으로 이런저런 구설수에 시달리던 KBS의 시사360은 비난세례에 빠지는 일도 동시간대에 벌어졌다. 인터넷을 넘어 방송을 통해 바깥 세상으로까지 미네르바 신드롬은 나날이 확대되어 갔다. 이젠 경제논객이 아닌, 여론 간섭과 마주한 네티즌의 상징으로 의미가 달라져 버렸다.

어느새인가 그는 네티즌들에게 매트릭스의 네오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를 의식한건지 혹은 우연일지, 여하튼 그는 '매트릭스'를 연거푸 글에다 언급했다.

"분명 한국사회의 매트릭스 체계는 다양성이라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매트릭스 체계의 냄비는 이제 덮혀지는(뚜껑을 덮는다는 뜻이 아니라 데워진다를 표현하고자 한 듯) 단계를 넘어 끓기 시작했다는 걸 모두가 눈치채기 시작했다"

"구조적 매트릭스 체계의 시각 없이 안에서 사육만 당하고 있었다면?" - 이상 '과연 나는 누구인가' 중



댓글란에서도 "매트릭스의 네오가 되어라" 등 영화 속 세계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도 매트릭스의 깨어나는 네오가 되겠다"란 반응도 잡힌다. 인터넷 검색창에 '미네르바'와 '매트릭스'를 동시에 올려놔도 이같은 흐름이 블로그나 게시판 등 각 영역서 파악된다. 존재를 밝히지 않고, 또 그 존재자체가 정부에 있어 껄끄러운 그 누구, 그러면서도 줄곧 대중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현시대에 대한 대중의 불신까지 더해지면서 곧장 저 SF걸작으로의 링크가 걸려버린 모양새다.

대중이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떠올린다는 것은 세상 그 어느 정부에 있어서도 달가울 수가 없다. 삼킬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정부가 그를 정말 곤혹스럽게 본다면 그건 그의 경제론이 아니라 매트릭스를 들여다보는 이들의 의식 때문일지 모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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