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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 이어지는 노스텔지어의 약속

노무현의 사람들, 이어지는 노스텔지어의 약속
'7개월만의 귀환' 노 전대통령 찾은 사람들
 

  
"나오십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드디어 그가 나온다.  웃는 얼굴 사이로 간간이 눈물도 보였다.

 
밤 9시가 넘은 시각, 노스텔지어의 함성이 7개월만에 울려퍼졌다. 몇시간동안 서성이던 노무현의 사람들은 그제서야 기다린 보람을 만끽한다. 10월 1일, 서울 남산 힐튼 호텔 앞에서 펼쳐진 이야기의 엔딩이다.

 

노무현의 사람들, 이어지는 노스텔지어의 약속 - '7개월만의 귀환' 노 전대통령 찾은 사람들

 

오후 5시 30분. 서울 남산 아래 위치한 힐튼 호텔 정문 앞.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현수막과 플랜카드를 펼쳐보이고 있다. 10.4 남북공동선언 기념식 참석차 7개월만에 서울로 돌아오는 노무현 전대통령, 그를 맞이하고자 나선 사람들이었다.

    

   


"노사모? 노삼모?"

곁에선 남자들이 헷갈리는 두 단체 이름에 웃어버린다. 기존의 노사모에 올해 초 개설된 카페 노삼모(노무현대통령과 삼겹살파티를 준비하는 모임)가 가세한 것. 여기에 노 전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세상 회원들도 함께 어울렸다. 

노삼모 회원들이 잡은 결집시각은 4시 50분이었다. 사실 전달받은 회원 공지는 아무런 확약이 없었다. "경호와 의전 문제로 스케줄을 공개할 수 없어 환영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말과 "행사 전인 5시 30분 쯤 잠시 뵐 수 있을 듯 하다"란 희망사항이 주 내용이었다. 그나마도 "1분 안쪽일 수 있다"는 전제가 달렸다. "일정 잡지 않았다고 오지 않았다가 후회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나마도 계획을 변경하게 된 모양이다. 당초 희망한 시간은 흘러갔다. 사람들은 이미 수시간 뒤의 행사 종료시각을 기약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나가시는 뒷모습 보려고 계속 기다리느냐"는 질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약없는 기다림이지만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행사 예정인 6시가 가까워 온다. 사람들은 환영 플랜카드를 잠시 접고 어디선가 공수해온 노란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이왕 늦은 거 좀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싶었던 것일까. 줄에다 주렁주렁 묶어선  정문 앞 가로등 양쪽에다 걸어두려는 남자들. 어찌할까 잠시 둘러보더니...

"뭐야 저거... 신발이야?"

남자들의 '잔호박 아이디어'에 뒤에서 지켜보던 여자들이 키득키득거린다. 양쪽 줄에 신발을 무게추로 삼는 임기응변이다.

"저거 좀 잡아 줘요!"

사진 찍고 있던 기자에게 SOS가 날아온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풍선을 집어다 주지만, 이번엔 여러개가 동시에 날려간다. 한순간 풍선을 집느라 허둥대는 어른들의 진풍경이 펼쳐졌다.

    


"풍선 좀 더 없어요?"

"와서 힘 좀 써 봐라. 힘들어 못 불겠다."

"저거, 저거 좀 붙들어!"

노란풍선의 대란이 따로 없다.

행사 개막 시각. 기자는 잠시 이들과 떨어져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여긴 고상한 곳이라 화장실 같은 것도 없는가 보오'하며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새 갓 개막한 식장에 닿아 있다. 그런데 돌발상황.

"이 쪽입니다."

갑자기 밖에 있던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환영식을 준비하던 사람 중 일부가 각 회원들의 대표 자격으로 입장 허락을 받은 모양이다. "강연이 끝나면 곧바로 나와야 한다"는 조건하에 허락된 멀리서의 입석관람이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들.

     
 


     
 
오후 7시가 되자 드디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별연설이 시작된다. 단상에 오를때나, 내려갈때나, 그리고 50여분간의 논스톱 연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박수와 반응을 보낸 것은 역시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언이 끝난 직후, 어느새인가 그들은 약속대로 장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만찬회가 시작된 8시 무렵. 바깥은 깜깜해졌다. 장외 환영식장은 그 사이 모양새가 그럴 듯하게 갖춰졌다. 사람 수는 더 늘어나 백여명 안팎에 달했다.

"자, 나오시면 이렇게 하는 겁니다."

리허설 개시. 하다 말고 저마다 폭소를 터뜨린다. 이미 3시간이 넘게 기다린 사람들이지만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짤막한 리허설이 끝나자 장소는 더욱더 노란색으로 물든다. 플랜카드도, 현수막도, 풍선도, 심지어 노란 우산까지 준비해 와 펼쳐든다.

"이 쪽으로 안 오시고 다른 곳으로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

누군가가 김 빠지는 시나리오를 꺼내든다. 하지만 들뜬 분위기는 깨지지 않는다. 이상할 정도의 자신감이다.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고, 상황이 이쯤되니 호텔 입구에선 외국인 방문객들이 호기심을 내보인다. "이게 무슨 일일까"하는 눈빛으로 주시하는 사람들. 이 쪽 분위기를 따라 저 쪽에서도 웃어보이는데 상황을 파악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8시 50분이 되자 누군가가 뛰어 나오며 낭보를 전한다.

"5분! 5분!"

노 전 대통령 내외와의 만남이 확정된 소식. 사람들은 환성을 지른다. 저들에 있어 5분 남짓한 시간은 지난 4시간의 기다림에 충분한 보답이었다.

9시. 경호원들이 하나 둘 이들 앞에 서더니 뒤로 물러서 줄 것을 요청한다. 정작 기다리던 시간이 가까워지니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아예 학익진 진형으로 웅크리는게 어때?"

"거기 깃발 좀 치우라니깐. (현수막의) 대통령 얼굴 가리잖어."

"아, 나중에 들어가면 될 거 아니냐고."

"아따 고만한 거 펼쳐드는데 몇명이 붙들어?"

설왕설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웃음보를 터뜨린다. 실랑이 속에서도 들뜬 마음을 주체 못하는 사람들. 이를 지켜보던 과묵한 경호원조차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안에서 "왜 또 분위기가 이렇게 단란하게 변하는데?"하는 실소가 나온다. 그리고.

     
 


     
"나오십니다!"

그 한마디에 떠나갈듯한 환호성이 터진다. 정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사람들은 일순간 "노무현! 노무현!"을 연발했다. 천천히 걸어 그들 한가운데로 다가가는 전 대통령 내외는 미소로 화답한다.

앞다퉈 내미는 손을 두 사람은 일일이 잡아줬다. 그리고 잠깐의 단체사진 촬영이 허락된다. 단 몇분간의 만남이지만 환호는 그칠 줄 모른다. 기다려준 사람들과 그에 응한 사람들이 한데 엉킨 모습에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7개월전 서울역 앞에 몰려들어 노스텔지어의 노래를 불러주던 사람들은 그렇게 그 때의 약속을 지켰다. 다시 손을 흔들며 천천히 물러가는 노 전대통령 내외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웃음 가득한 사람들이지만 눈물을 꺼내며 돌아서는 이도 보인다. 사람사는세상 회원 김은주 씨는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고 웃음 반 눈물 반 얼굴을 내보이다 민망해했다.(엮음 기사 '미니인터뷰' 참조)       

해산에 앞서 사람들은 "내일을 기약하자"고 외친다. 이제 그들은 내일의 환송을 준비한다. 노란 손수건 대신 풍선을 흔들어 보이는 노무현의 사람들. 그들의 약속 '노스텔지어'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미니인터뷰 보기 ->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4330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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