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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망망대해에 병 편지 띄우는 것 [릴레이 인터뷰]

[릴레이인터뷰] 블로그는 망망대해에 병 편지 띄우는 것
2번주자 네티즌 경력 15년, 홍차도둑


"93년, 블로거란 말이 없던 PC통신시절부터였죠. 햇수로 15년째 네티즌입니다."

"그럼, 뉴스보이도..."

"알죠. 반가운 마음에 만나자고 한 것도 있어요."

"국장님이 신나 하시겠군요."

인터뷰 종료 후 플랫폼에서 마지막 대화 중.


블로그는 망망대해에 병 편지 띄우는 것 - 2번주자 네티즌경력 15년, 홍차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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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희 작가가 그려준 자신의 캐리커쳐로 사진을 대신해 달라 했다.(실물과는 차이가 있을수 있다)  
 
블로거 홍차도둑(http://tirano.egloos.com/). 오프라인 미팅을 원했고, 이름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사진 촬영과 이름 공개를 원치 않는다. 밝힐 수 있는건 유베이스에서 소니디지털캠코더 상담을 담당하는 30대 직장인이란 것 정도.

"직장도 아직은 연수 중이라 딱히 간판으로 내걸긴 그렇네요."

"숨기실거면 딱히 직접 만날 이유가?"

"이메일 회신은 정이 없잖아요. 하지만 공개하려니 오랜기간동안 적을 좀 많이 만들어서. 하긴, 이런저런 이야기 나오다 보면 알 사람은 다 알겠네요."

그는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전성시대 때부터 네트를 열었다. "당시 하이텔에선 카페지기나 운영자란 말 대신 시샵으로 통칭했다", "그땐 익명이 익명이 아닌 시대였다" 등 PC통신시절의 일들을 나열한다. 나이어린 네티즌들에겐 생소할 지식들이다.

그리고, 돌발발언.

"오래도록 네티즌을 겪어본 또 한사람의 네티즌으로 말하는데, 전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수준이 낮다고 단언해요."

논란성 발언에 흠칫했다. 그는 "지면에 지금 하는 이야기를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청한다.

"어떻게 인터뷰가 나올진 모르겠는데, 블로거로서 자리에 나온 이상 할말은 해야 겠죠."

"수준이 낮다면... 일부?"

"노. 전체 중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 않고 자신이 아는 영역으로만 섣불리 판단, 함부로 상처를 낸다"고 했다.

"언젠가 미디어다음에서 축구전문 명예기자로 일했었어요. 그리고 그때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인터뷰 출연한 적이 있죠. 그때 박주영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한창 그가 국민적 기대를 받을 때입니다. 그때 전 그에 대해 '물론 좋은 선수입니다만'으로 운을 떼고선 '그러나'로 이야기를 이었어요. 여기저기 보완할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 거죠. 온리 비난은 아니고 건전한 비판이었다고 자신해요."

그는 이것이 전파를 탄 직후 공격댓글에 파묻혔다고 토로했다.

"욕설이 장난 아니더군요. 대강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 정도라곤 미처 생각못했어요. 다시 말하는데 저는 '까'가 아니라 '건전한 비판'이었다 자평하거든요? 헌데 '네가 뭔데, 닥쳐라'는 반응이 터지더라고요."

그는 이후 홍차 탐방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을 이었다.

"언젠가 어떤 홍차를 놓고서 제 소견과 평을 내린 적이 있어요. 요약하면 '유명하지만 실은 이런저런 점에 있어 비추천한다'가 되겠네요. 그런데 이를 보고선 '너보다 더 차를 잘 안다는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물건에 네가 왜 딴지를 거냐'는 비난이 줄줄이 달리는거예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글 내용을 보니 적어도 그들보단 제가 더 홍차를 잘 알겠더군요. 자신들이야말로 부족한 자기 지식만으로 판단해선 타인 의견을 몰아붙이는걸 생각도 않아요. 홍차 매니아 중에서도 밀크티 좋아하는 사람, 오리지널 사랑하는 사람 비롯해 기호가 얼마나 다양하고 그때마다 달라질 판단결과가 얼마나 많은데..."

"그는 "이후 사과 댓글이나 메일 등을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오히려 과거 PC통신 유저들의 매너가 더 나았다"고 말했다.

"그땐 바닥도 좁았잖아요? 익명이라고는 해도 넷상에선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했고. 악성유저의 경우엔 겪었던 이들이 자체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여기저기에 주의장을 던졌어요. 어느정도 제어가 가능했죠. 그런데 다음이 등장하고 인터넷 포털시대가 열리자 이게 무너졌어요. 거대화의 부작용이죠."

"그럼 실명제를 찬성하시는 입장인가요?"

"맞아요. 실명제로 전환되면 전보단 책임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겁니다. 헌데 요새는 시류가 이렇다보니 까딱 잘못 말 꺼냈다간 '누구빠' 소리 듣죠."

"내부고발 등의 기능약화 때문에 익명제를 존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물론 그 역시 맞는 말이라 생각해요. 분명 그런 순기능도 존중받아야죠. 하지만 현재의 역기능을 바로잡으려면 역시 하나는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보니 아직 본인에 대해서도 소개가 안 이뤄졌다"고 묻자 그제서야 굳은 표정이 풀린다.

"예전엔 축구 관련해 활동을 많이 했어요.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초대시샵이었고, 붉은악마 서포터 창단멤버기도 해요. 이런저런 연줄로 만화 '슈팅' 연재 당시 전세훈 작가와도 알게 돼 시놉시스를 담당하기도 했고요. 아버지가 체육교사라 저절로 축구에 빠지게 되더군요."   

그러나 현재 그의 블로그는 축구만을 전담하지 않는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자문할 정도로 다루는 영역이 넓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요새 먹는 거 이야기만 다룬다고 하죠. 미식가라 이런저런 맛집, 찻집을 찾아가 소개하다 보니 이 비중이 축구만큼 많아졌어요."

"단대 앞에 짜장면 한그릇에 2천원 받는다는 요릿집 소개가 있던데 한번 방문해 볼까요?"(웃음)

"아! 그집 요새 3천원 받던데."

그의 닉네임은 '홍차도둑'이다. 다른 먹거리도 많지만 역시 차에 대한 담론이 블로그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는 자신을 '프로페셔널엔 못미치는 매니아 레벨'이라 평했다.

"솔직히 저 정도 지식 보유자는 유럽 국가 나가면 널렸죠. 국내에서 홍차에 대해 전문가 소리 듣을땐 도리어 슬퍼져요."

"어차피 홍차의 본고장과 국내는 다를 수 밖에 없잖아요?"

"그게 그렇지도 않아요. 유럽에선 홍차의 원산지가 자신들 대륙이라 주장하지만 실은 중국에서 고안됐다는 설도 있어요.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역시 오래전부터 여기서 넘어온 홍차를 즐겼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축구와 홍차의 언밸런스한 조합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는 "젊은시절 배낭매고 축구를 보러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홍차도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유럽에선 홍차를 화제에 올렸을 때 아무말 못하는 사람을 상대도 안해요. 절로 익히게 됐죠. 게다가 제가 실은 커피를 이런저런 부작용 때문에 마시질 못해서요. 그 대안으로 홍차를 삼게 됐지요. 카페인도 똑같은 카페인이 아니거든요."

"닉네임 홍차도둑은 어디서 가져오신 거예요? 역시 만화 홍차왕자와 관련 있으려나?"

"으음, 홍차왕자와도 관련은 있죠. 90년대말 하이틴만화잡지 이슈에서 홍차왕자가 연재될 당시 제가 거기 자투리 공간에다가 홍차에 관한 정보를 연재했었어요. 무려 4년하고도 7개월간 이어갔죠. 나중엔 잡지사측에서 질려 하던데요."

홍차도둑은 만화가인 정상희 작가의 말에서 가져왔다. 언젠가 홍차동호회의 오프라인 만남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홍차를 한박스 가져왔을 때의 일이다. 저마다 이를 통째로 '들고 날아가려고' 눈독들이는 걸 보더니 회원자격으로 참가했던 정 작가가 "여긴 홍차도둑들 소굴이냐"고 물었다고. 마침 동호회의 이름을 공표하는 자리였는데 어감이 괜찮다 싶어 즉석에서 이 이름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자신의 블로거 이름까지 이어지고 있다.

"맛집이나 찻집에 평점을 매길때 기준이라면?"

"맛과 더불어 서비스를 똑같은 가치로 둡니다. 그냥 밥만 먹으려고 식당을 찾는 사람은 없어요. 그럴거면 혼자 집에서 밥해먹는게 낫지. 식비엔 서비스가격이 분명 들어있고 이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가차없이 비판에 들어갑니다. 때론 이 때문에 가게와 언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블로그에 왜 그런 글을 써서 영업에 피해를 주냐고 관계자들이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어요. 그리고 분위기요. 찻집은 차의 맛으로만 승부하지 않거든요. 맛이 별로인데도 그 집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찾는 애호가들 역시 상당하죠. 그리고 때론 차 맛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집도 있습니다."

"일부러?"

"지인과 어느 케이크 집에 가서 케이크 한 조각과 차를 마셨어요. 케이크는 괜찮았고 그에 비해 차는 별로였죠. 지인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이 집 정말 운영 잘 한다'고 칭찬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 집에서 돋보여야 할 건 케이크죠. 차는 케이크를 돋보이게 하는 수준에서 균형을 맞춘 겁니다. 미식 탐방시엔 그런 점도 함께 헤아리고 있어요."

이쯤에서 잠시 그가 가져온 캐논 디지털카메라에 시선을 뒀다. 항상 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만족스러운 가게가 있으면 사진에 담는걸까. 역시 그는 "출퇴근시나 여가시나 대개는 이를 소지하고 다닌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블로그엔 가게 말고 풍경 사진도 꽤 많더라고요."

"아까 길 건너다 하늘 찍는거 보셨잖아요. 취미예요. 그림 괜찮다 싶으면 아무데서나 들이대고. 사진 이야기까지 곁들이다보니 블로거 방문객들에겐 이런저런 잡동사니 창고로 보일테지요."

"그럼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포스팅은?"

"으음... 역시 축구에서 찾아야 겠네요. 니폼니쉬 감독 이야기(http://tirano.egloos.com/1755662)가 좋겠어요. 윤정환 선수에 대해 연재한 이야기도 괜찮고요."

"그럼 역시 블로그 인생 중 가장 즐거웠던 추억도 축구와 관계있겠군요?"

"아뇨. 그게... 라면 먹고 히트 쳤던 일입니다. 실은 지난 3월에 어느 라면집에서 점보 라면 빨리먹기 이벤트에 참가했거든요. 있잖아요 왜, 식신 정준하 씨도 실패했던 4인분 라면 20분안에 먹기 게임. 그 집에서 이걸 성공하면 라면값 공짜, 실패하면 라면값 2만원을 내야 해요. 그런데 제가 먹어치웠어요. 이 내용을 블로그에 소개했더니 갑자기 이글루 메인에 올라가 버리더라고요. 댓글도 많이 달리고. 실은 이걸 계기로 블로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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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날 여기저기 기고한 자유연재물들을 블로그에 수록. 축구 잡지서 순정 만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 인기 블로거에게 듣는다 - 초보자에게 건네는 팁 

인터뷰는 3시간동안 이어졌다. 마지막에 그는 "나도 블로거로서 뭔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바셋 님 인터뷰를 보니 스페셜 질문 있더라고요.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이제 막 블로그를 여는 이들에게 팁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블로그 입문자들에게 "무엇이든 좋으니 확실한 주제 하나를 잡으라"고 말했다.

"나야 지금은 이것저것 다루지만, 처음엔 한 우물만 파는게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제가 아는 한 블로거는 수년간 편의점 음식에 대해서만 깊게 파들어갔어요. 사소하게 보일지도 모를 묘한 전문영역이지만 이걸로 현재는 여러 팬들을 얻었어요."

한편 '블로그'에 대해선 이렇게 정의한다.

"바셋 님은 블로그를 '벽보고 이야기하기'라 하시던데, 저 같은 경우엔 병속에 편지 한 통을 담아 망망대해에 띄워보내는거라 생각해요. 회답이 올지 안올지 여부는 아무래도 좋아요. 그저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건네고자 하는 메시지를 적어 흘리는 거죠. 누가 이 병을 확인해 열어볼까 기대해 보는것도 즐겁고요."

자리에서 일어설 때, 이 이야기도 함께 실어주면 좋겠다고 알린다.

"아까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인데, 네티즌들이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주길 바랍니다. 자신과 상반된 네티즌이면 배척부터 하고 보는데, 만일 당신과 내가 똑같다면 존재의미가 없는거죠. 극과 극이 아니라면 이질감의 가치는 인정해 줘야 서로 존중하며 소통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생각만 내세워 인신공격으로 이어가면 말 다한거죠. 사실 자신이 못 보던 세상의 또다른 한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이질적인 존재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일지. 자기 잣대의 채점표를 다른 이에게 강요치 말고 더불어 사는 온라인이 되면 좋겠어요."

"여기저기에 적이 많다고 하시던데, 그래도 블로그 활동은 계속 활발하게 하실거지요?"

"재미있으니까요. 한때는 편집 담당자한테 전화해 '나 못해먹겠다'고 하소연도 했지만. 앞으로는 저도 한 가지 정도 꾸준한 연재거리를 잡을까 해요. 한 사진가가 10년간 자기 집 앞에서 세월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찍어 구성한 기록물이 이후 엄청난 인기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부럽더라고요."

"다음 주자를 소개해 주시죠."

"누구로 할까요. 두 이글루 주민을 소개합니다. 한 분은 파파울프 님. 이글루에서 '파파울프의 음흉한 둥지'(http://idealist.egloos.com/)를 운영 중인데 역사 이야기를 즐기는 분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이 채다인 님.  다인의 편의점(http://totheno1.egloos.com/) 운영자로 아까 잠깐 소개드린 분이죠. 재미있을 거예요.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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