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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표현 쓰지말라니, 지독한 언론탄압 아닌가

촛불집회 표현 쓰지말라니, 지독한 언론탄압 아닌가



29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을 통해 "촛불집회 표현을 쓰지말라"고 언론에 요구했다.

연일 촛불집회 기사를 내보내며 수없이 '촛불집회'를 제목 및 본문에 실었던 기자로서, 이에 대해 간략하게 반응 한줄 내보낸다면 "지독한 언론탄압"이 되겠다.

"단어 하나 그까짓 꺼..."라 말할 문제가 아니다. 만일 청와대 측이 바라는대로 촛불집회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사라진다면, 향후 매스컴의 촛불정국 보도 분위기는 명확히 달라진다. '시위'라는 말조차 어감이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여론이다. 보다 부정적 단어가 대신해 오른다면 그 어감만으로도 상황은 상당부분 변한다.

촛불집회란 표현을 내려달라니, 그럼 그를 대신해 무엇으로 대체하면 좋겠나. 구체적으로 대체물을 제시해 주지 않은 대변인이 원망스럽다. 혹, '폭력집회'라고 표현해주길 바라나? 아님, '불법시위' 정도?

누구 밥숟갈 내려놓게 만들 일 있나.

노골적으로 직언한다면 저 말부터 튀어나오게 된다. 성난 군중에게 얻어맞는다던지 하는 여부는 둘째치고, 혹 정부에 밑보이는 언론매체들은 아예 간판이 내려지길 바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괜히 언론탄압이라 말을 꺼내겠는가. 경향에 따라선 기사 작성 여부부터 뒤흔들린다 싶을 만큼 매우 부담스런 주문이고 요구다.  

촛불집회가 됐던, 촛불시위가 됐던, 비폭력평화운동이 됐던, 폭력불법선동이 됐던간에 일단 이에 대한 선별여부는 작성기자의 몫이다. 언론의 자유란걸 굳이 먼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단 말이다. 결국 청와대 입맛에 맛없는 어감은 처음부터 원천봉쇄해주길 바라는 것 아닌가.

폭력, 과격 양상이 실제로 불거지고 있는 건 사실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분명 현장을 찾을 때마다 시민과 경찰 양 측의 부상자 속출 및 과격한 충돌양상 등 안타까운 상황은 수차례에 걸쳐 지켜봤다. 이에 대한 탄식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끝까지 비폭력을 사수하고자 했던 평화적 시민들의 염원 또한 같은 공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확인했다.

일부라 할지라도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바로잡아' 달라는건가? 그럼 이거 하나 묻는다. 그동안 여러분 편에서 줄곧 제기해 왔던 '좌파 선동' 등은?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야 하나? 그렇다면 바꿔 묻겠다. 일부든 다수든 그 정도와 무관하게, 분명 여러분들 역시 인정한대로 순수히 촛불을 잡은 이들이 함께 현장에 공존하고 있으니, 그렇게 따진다면 좌파든 폭력이든 배후의 무리든 이들 역시 잘못된 표현으로 삼가해 주는게 맞지 않겠는가.

현상의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의 선택은 그에 맞는 성향의 다수, 소수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기사송고 후 어느 편에서 어떤 욕이 날아올지 모름을 각오하면서 심사숙고해 펜을 드는게 언론인이다. 그간 촛불정국의 표현을 놓고서도 언론마다 상반된 표현이 나왔다. 한편에선 이미 이번 브리핑이 나오기 전부터, 촛불 쪽 여론에 줄곧 두들겨맞으면서도 폭력 내지 불법 등의 표현을 담았다. 그간 평화적 집회를 두각시킨 다른 한편의 그것은 물론이요, 이러한 표현의 매체 역시도 욕먹을 책임을 지고 자신들의 소신에 따라 언론으로서 행사한 권한이었다. 차후 집회 측에 한소리 듣던, 정부 측에 언론중재위 고발 대응을 받던간에 그건 이후 당사자가 짊어질 무게이지, 어디까지나 단어 선별은 분명 논조를 초월해 모든 언론 고유의 독립된 권한이란 말이다.

기자는 지난 두달여간 줄곧 '촛불집회' 표현을 사용해 왔다.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시위'란 표현에도 반감을 표하는 네티즌들의 동향을 의식한 점. 여기에 대해선 겁쟁이라 비웃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하나만큼은 이보다 자신있게 목소리를 낸다. 현장에서 몸을 던져 폭력상황을 막아서던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의 신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8-9일 광화문에선 뒤에서 경찰의 소화기 가루와 기타 투척물을 받아내면서도 이를 등진채 앞에서 흥분한 시위대들 손의 쇠파이프를 붙들고 "비폭력"을 호소하던 예비군부대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31-1일 경복궁에선 버스에서 떨어졌다가 시위대 앞에 풍전등화 신세가 된 전경을 부축해 "이들 상하게 하지 말라"며 경찰 진영까지 호송해 주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내가 '촛불집회'란 표현을 기꺼이 사용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양 측에서 동시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비폭력과 평화집회를 위해 헌신한 최대 공로자들이다. 다시 말해 내가 촛불집회를 고집하는 이유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본인의 소신에 따른 것이다. 여기서 촛불집회란 표현을 포기한다면 이들의 노력에 나설 면목이 없다.

빛을 빛이라 말하듯 어둠을 어둠이라 칭하는 것에 잘못됨은 없다. 두가지가 함께 공존한다면 이의 표현은 최소한 원론적으로는 표현자의 몫이다. 다만, 형상의 그림자를 놓고 어둠이라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이가 빛의 존재에 따른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밤을 수놓았던 저들의 촛불은 그 밝음이 미약해 보일지 모르나, 육탄으로 시민과 경찰 모두의 안전을 지키려 한 이들 덕에 그 그림자마저 살라먹을 듯 인상적이었다. 비록 끝내 막지못한 격렬한 충돌이 불거지고 있지만, 저들은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그림자를 제어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러한 현상을 담고자 하는 언론에게마저 그 표현부터 제한토록 주문한다면 탄압, 외압 말고 대체 무슨 말을 꺼내겠는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