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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매직에 추억 잠긴 네티즌

히딩크 매직에 추억 잠긴 네티즌


 
"히딩크, 당신의 마법은 대체 어디까지입니까..."

임경진 아나운서의 마무리 멘트는 감탄사로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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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진출 당시 팬들에 화답하던 히딩크 감독. 출처 스포츠코리아(photoro.com)  


MBC는 운좋게도 최대 명승부의 티켓을 따냈다. 유로 2008에 빠져든 이라면 알겠지만 이번대회 중계는 한 채널의 독점도, 그렇다고 전체 동시상영도 아닌 분배형이다. ESPN이 예선을 맡고 이후 결승 토너먼트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사이좋게 나눠가진 것. 덕분에 팬들은 서커스 유랑단을 쫓는 것 마냥 이 채널, 저 채널을 둘러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채널은 복권을 든 것과도 같다. 물론 방영시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어느 채널이 8강전 몇번째 경기, 준결승 몇번째 경기 혹은 결승전을 갖는다란 식으로 합의했기 때문. 그러나, 토너먼트 대진이 어떻게 짜여질지는 신만이 아실 일, 빅매치 내지 이변의 드라마 배경 성립 등은 랜덤이나 같았다.

MBC는 8강전의 세번째 경기를 잡았다. 시간대만을 놓자면 이상적이다. 시차로 인해 일일 중 가장 난감한 새벽 3시45분대에 진행되는 대회인 점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일단은 주말 한가운데에 잡힌 일정이었다.

네덜란드와 러시아의 매치가 성사됐을 때 MBC 관계자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아마도 한국 팬들의 입맛에 너무도 잘 맞는 세트메뉴가 차려졌다고 기뻐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네임벨류만 놓고 보자면 '본전' 정도. 일단 한눈에 시청률이 확실해 보이는 우승후보간의 빅매치는 아니다. 말하자면 최강 전력으로 분류되는 팀과 객관적 평가에 있어선 차이가 확연한 중위권 팀간의 대결이 되겠다. 이변의 드라마를 기대하는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여부에 기대를 걸 수 있는 정도.

그러나 히딩크가 등장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영웅이었고, 이후에도 온갖 마법을 뿌리고 다녔던 그가 조국의 역적을 희망하는 반란자로 캐스팅됐다면 한국 팬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스토리 라인인 셈. 상대팀인 네덜란드 역시 딱 좋은 캐스팅. 앞서 밝혔듯 얄궂은 운명으로 만난 그의 조국이며, 한국팀에겐 그로 인해 벤치마킹 대상이었고, 3전전승으로 예선을 통과한 우승후보 0순위의 위용은 부족함 없는 매치 파트너였다. 적어도 히딩크를 주연으로 지목한 축구팬이라면 그렇다. 아직 시청률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대회 경기 중 수위권에 자리했으리라.

그리고, 히딩크는 이번에도 기적을 일궈냈다. 네덜란드의 우승을 유력하게 점친 이들에겐 믿기지 않는 결과.

러시아는 시종일관 네덜란드를 압도하더니, 후반 11분 논스톱 슛으로 선취점을 올렸다. 한국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히딩크의 어퍼컷 세레머니가 작렬. 네덜란드 응원단의 초조한 모습이 이어지더니 후반 40분에 가서도 스코어는 그대로였다. 물론 네덜란드 역시 쉽게 물러서진 않았다. 절벽 끝까지 몰린 후반 41분께 헤딩 골로 경기를 원점에 돌려놨다. 어떤 자세로도 득점할 수 있다는 반니스텔루이의 공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가 극적인 드라마의 시작. 종료직전 콜로딘이 두번째 옐로카드를 받으며 퇴장당할 위기에 빠졌지만 직전 상대 선수의 볼 터치가 아웃라인으로 결론나며서 보기드문 번복 판정이 나왔다. 후반 종료.

연장전에서 러시아는 마치 2002년의 한국팀을 연상케하는 모습이었다. 맞선 강팀보다 더 많이 뛰었고 강하게 밀어부쳤다. 골 찬스를 더 많이 만들었고 막판마다 아쉬운 마무리로 한숨지었지만 상대편에 있어선 간담이 서늘하다 못해 죽을 맛일 상황. 연장전반 종료 직전 골대를 맞췄을 땐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수문장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반 데 사르 키퍼가 버티고 있는데도 불구, 네덜란드 골대는 어째서인지 커보였다.

후반이 되자 매지션 히딩크의 숨결이 불어닥쳤다. 10여분 뒤의 승부차기를 생각할 즈음 사각에서의 슬라이딩 슛이 득점으로 이어졌다. 2대1.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히딩크의 두번째 어퍼컷이 화면에 날아들었다.

네덜란드가 반격 태세를 갖추기도 전, 곧바로 추가골이 터졌다. 롱 드로인으로 이어진 패스가 최전방에 이어지면서 땅을 훑는 슛으로 이어졌고 수비 발 맞고 굴절된 볼은 키퍼 다리 사이를 통과, 3대1로 스코어를 벌렸다. 피니쉬였다.

히딩크는 스탭을 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경기 종료. 이번 대회 최대의 이변이자, 최대 명승부 중 하나로 기록될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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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색어 1위 등극  


 
경기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또한번 히딩크의 마법에 매료됐다. 회원수 92만명, 국내 최대 축구 매니아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아이러브사커(http://cafe.daum.net/WorldcupLove) 프리토크방에 지난 새벽부터 오전까지 쏟아진 게시글은 600여건. 대다수가 이 경기에 관한 글들이다. 쐐기골이 터지던 오전 6시경엔 게시물이 폭주했다. "히딩크 대단하다"(빨간하이힐의그녀 님), "무서운 히딩크, 사람인지 의심스럽다"(ks마크no.13+7 님) 등 히딩크를 연호하는 감탄사가 터졌다. "어젠(크로아티아 대 터키) 졸면서 연장을 봤는데 오늘은 차원이 다르다"며 경기내용에 만족한다는 의견도 올랐다.

포털 스포츠뉴스에서도 이 날 경기는 대서특필됐다. 네티즌들의 스포츠 섹션 메인 장식은 모처럼 히딩크 감독의 몫이었다. '끝나지 않은 히딩크의 매직쇼'(머니투데이), '영국 언론 히딩크 2002년 한국의 4강신화 재현'(osen) 등 각 매체는 히딩크 매직, 히딩크 마법을 연호했다. 보기 드물게 톱기사는 조선일보의 기사가 차지. 러시아 현지 반응을 전한 기사에 오른 150여 댓글은 하나같이 그에 대한 찬사, 그리고 그에 대한 향수였다. 이지스 님은 "히딩크 형님은 어째 인생이 패배를 모르노?"라 감탄했고 쟈니 님은 "돌아와요 히딩크, 우리나라 축구 좀 살려 줘"라고. 홍국영 님은 "히딩크는 축구로 많은 이를 행복케 하는 매지션"이라 추켜세웠다.

800여 댓글을 넘긴 마이데일리의 러시아 4강진출 소식에서도 "당신 멋져", "당신은 진짜 마법사" 등 감탄사가 줄지어졌다. "돌아와요 히동구"라며 과거를 추억하는 팬들도 여럿.

네티즌 중엔 "4강 징크스"를 말하며 "마법은 이제 끝"이란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그의 네덜란드 팀은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고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팀 역시 꿈같은 4강 진출 후 4위로 대회를 마쳤다. "4강 감독"이란 말은 찬사인 동시에, 그의 마법이 머무르는 징크스의 무게이기도 하다. 대회 최강자들만이 남을 4강에서 그의 마법이 다시 통할지 여부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2002년 4강 신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번 유로 2008을 통해 다시 히딩크의 돌아온 전설에 매료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하튼 4강까지 진출한 이상, 준결승 이후 결승이든, 3, 4위전이든 그의 모습은 대회 마지막까지 볼 수 있게 됐다. 그의 마법으로 한국 네티즌들은 대회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한 추억에 잠기게 됐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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