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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밤, 축제같았던 아침 - 6월 8일 새벽 촛불집회 현장

전쟁 같은 밤, 그리고 축제같았던 아침 
6월 8일 새벽 촛불집회 현장
 


8일 0시 30분. 서울 청계광장에서 의료지원캠프 사람들을 만났다. 1일 새벽 만났던 자원봉사자 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이동을 하긴 할 듯 한데... 오늘은 전처럼 큰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죠. 별 일 없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는 결국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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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지원캠프. 8일 밤 12시 30분  
 


전쟁같은 밤, 그리고 축제같았던 아침 - 6월 8일 새벽 촛불집회 현장

1시가 넘으면서 광화문 앞 대치 상황은 악화됐다. 버스로 막아선 경찰 저지선 앞에서 시민들은 사다리를 꺼냈고 버스 위에서 대치한 경찰은 이날 회색 가루로 그들의 시야를 빼앗았다. 이 날 경찰은 지난 1일 악명을 떨쳤던 살수차 대신 소화기 분말가루 대량살포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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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대치현장. 1시 상황  
 


분말가루 살포는 밤새 이어졌다. 군중 속을 거닐며 마스크를 판매하는 노점상인들의 매출이 눈에 확 띌 정도. 새하얗게 가루를 뒤집어쓴 시위대 중 최전방에선 버스를 줄에 매달고 뒤흔들며 저항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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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기 분말가루로 뒤덮인 상황에서 시위대는 버스를 줄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2시 상황  
 

1시간 동안의 소모전. 경찰과 시민 양쪽 모두 욕설로 신경을 곤두세웠고 방어라인 한 중앙, 바리케이트가 사라진 곳을 중심으로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사다리가 닿을라 하면 소화기 가루와 방패를 사용한 저지가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군중 가운데 흥분한 이들은 앞으로 몰려들어 경찰버스를 부수기 시작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파이프와 장대 등이 손에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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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이 격해진 시위대가 전방에 나서 경찰버스를 부수기 시작했다. 새벽 2시 상황  
 


경찰 버스 차창은 금세 박살났고 내부에 있던 경찰들은 방패를 들고 일렬로 막아섰다. 돌파선을 뚫고자 버스를 뒤흔드는 줄다리기도 계속됐다. 전방에서 점차 과열 양상을 띠자 이번엔 시민들간에 충돌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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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열 씨 등 예비군 부대원들이 흥분한 시위자들에게 비폭력을 주장하며 말리며 충돌. 새벽 2시 30분 상황.   

  예비군복 청년 몇명과 일부 시민들은 무장한 이들을 막아세우며 "비폭력 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대편이 "비폭력으로 뭐가 달라졌냐"며 무력 행사를 주장,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졌다.

"지금 이러면 언론과 여론 모두가 악화된다고요!"

"그럼 당신들은 방해말고 뒤에서 촛불이나 들고 자유발언이나 사이좋게 하며 서 있어!"

"당신들 나중에 경찰 진압 시작하면 그때도 이렇게 나설거요?"

"나설거야! 그러니 싸우는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

지켜보던 시민들은 "우리끼리 싸우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쉽게 끝나지 않았다. 말리던 측의 한 사람은 "아무래도 누가 (폭력사태를)선동하러 나왔다고 소문이 퍼지더니..."라고 말해 분위기가 과열된 것이 일부러 집회 분위기를 폭력적으로 몰아가기 위한 음모일 가능성을 꺼냈다. 반면 흥분상태에 빠진 강경파는 "지금 상황에서까지 비폭력 운운하는 저의가 뭐냐"고 맞받았다. 일순간 경찰이 아닌 시민 대 시민의 극한 대립 양상이 펼쳐졌고 이는 20여분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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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시민들 간의 충돌. 무력시위를 주장하는 이들과 평화시위를 지켜줄 것을 주장하는 이들끼리 대립. 보고있던 시민들은 "우리끼리 싸울때냐"고 성토. 2시 30분 상황.  
 

일촉즉발의 상황은 겨우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무장한 이들 앞에서 지지않고 비폭력 시위를 외쳐대던 이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러면 저들만 좋아라 할 일인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사람은 "차를 뒤흔드는 것 까지야 일종의 항의 퍼포먼스로 봐 줄 수 있지만 쇠파이프는 정말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몸으로 저들을 막아내던 이들 중 일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니인터뷰 - 이상열(24), 나지혁(23)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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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열 씨(좌)와 나지혁 씨(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소화기를 뿌리면서 사람들이 흥분했어요."

쇠파이프로 전경들과 충돌하던 이들을 끝까지 만류하던 이상열(24) 씨는 안타깝게 말했다.

"지금까진 평화시위가 대세 아니었습니까. 앞으론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게 됐지만 사실 이 정도까지 진행됐으면 계속 비폭력으로 나가야하는게 맞아요."

그는 비폭력 평화 시위로 뜻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를 듣고 있던 나지혁(전주대, 23)씨도 이에 동의하며 거들었다.

"헌데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도 예민해진거예요. 처음부터 정부가 문제점은 솔직히 털어놔야 함에도 '이건 안전하다'며 은폐만 해대니 결국은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진것 같아요."

그런데 그의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있어 순간 고개를 갸웃하자 "그게 아니다"며 손을 내저었다.

"이거요? 저는 저쪽 사람이 아니고요, 말리다가 빼앗아서 손에 든 거예요. 보셨잖아요? 맨손으로 막아서면 듣질 않아요. 얼마나 위험한데.(웃음)" 

한편 이 씨는 아까 예비군 부대 사이에서 터진 '분위기를 흐리기 위한 선동 의혹'에 대해 "몇시간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경찰 버스앞에서 시위대 중 두 청년은 대형 태극기를 꺼내 보이는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대치하던 정면에서는 물론 이후 교보생명 앞 측면에서도 분주하게 이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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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버스안에 들어가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던 시위자에 시민들이 "그만두고 나오라"며 질타, 결국 나오고 마는 시위자. 3시 30분 상황.  
 
하지만 한편에선 시민과 경찰 사이에서 따뜻한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이 보여 눈길을 끌었다. 교보생명 앞에서 대치하던 한 경찰버스 앞에서 시민들과 경찰들이 방패 사이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그것.

"몇살? 스물 둘? 우와! 우리랑 비슷해."

한 젊은여성이 친근하게 걸어오는 대화. 나지막하게 전경들도 응한다. 젊은 남녀들은 물론 뒤에서 하나둘 다가오던 중년들도 "힘들겠다", "너네가 무슨 죄냐"며 토닥여준다. 지금껏 험한 대립만 지켜봤던 시민들 입장에선 절로 걸음이 멈추는 장면이었다. 한 남자는 "목마를텐데"라며 마실 것을 방패사이로 들이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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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겠다" 버스 안을 지키던 경찰들과 시민들간에 애틋한 이야기가 오갔다. 3시 40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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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들은 대화하며 경찰들에 물을 건네기도. 3시 40분 상황.  
 


4시. 소강상태였던 대치 상황은 다시 험악해졌다. 파이프를 든 남자들은 버스에 올라가 위에서 전경들을 보호하고 있던 바리케이트를 뜯어 부수기 시작했다. 방어선 맨 우측의 버스가 집중 공격대상. 더 이상은 말릴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더니 급기야 통째로 뜯겨나가버렸다. 후방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분위기는 복잡했다. "하지 말라"는 외침으로 평화시위를 원하는 이들은 "몇몇 때문에..."라 안타까워했다. 반면 "이건 뭔가 단기간에 다음 단계로 발전해가는 단계"라는 이도 있어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아저씨 그건 아니죠. 지금껏 우린 평화 집회를 했는데."

"아니, 그냥 제 의견은 그렇다고요. 계속 장기적으로 집회를 이어가고자 할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이번에 확실히, 단기간에 끝을 내려는 사람들 생각도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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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시위가 격해지기 시작한 새벽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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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버스 위 우측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4시 상황. 직후 '준법 질서' 바리케이트는 통째로 뜯겨나갔다.  
 


한 남자가 버스위로 올라가 전경들에 덤벼들었다. 그러나 홀로 올라갔던 그는 곧 제압됐고 이에 흥분한 이들은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결국 버스를 포기한 경찰들은 위에서도, 차내에서도 모두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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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우측 방어선의 버스가 끌려나오기 시작. 4시 30분.  
 


4시 30분. 비어버린 버스는 시민들의 줄다리기로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검거하겠다"는 경고방송을 내보냈지만 밧줄에 매달린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완전히 끌려나오면서 시민들은 "통로가 뚫렸다"고 그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끌어낸 버스 뒤엔 또다른 버스들의 첩첩산중. 시민들은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연호하며 경찰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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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끌어낸 버스 뒤엔 다른 버스들로 첩첩산중. 4시 30분 상황.  
 


5시가 임박할 무렵, 버스가 끌려나와 방어가 취약해진 이 구역에 경찰들이 직접 내려왔다. 도로에서 시민들과 육탄전 개시. 그러나 시민들 역시 물러서지 않고 경찰들을 압박했다. 결국 경찰은 더이상 밀고 내려오지 못한채 뒤에 배치된 버스를 후진시켜 이 부분을 막아서 버렸다. 



날은 완전히 밝았다. 첫차가 다닐 시간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경찰 부대는 강제진압 작전을 개시. 인도 측 시민들은 눈깜짝할 사이 광화문 지하도로 앞까지 몰렸고 큰 도로에서도 경찰의 진격으로 청계광장 앞 세종로 사거리의 전방위 가장자리로 인파는 분산, 각 도로 바깥으로 내몰리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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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들이 버스 위에서 내려와 강제 해산을 시작, 양 측 대치. 5시 상황.  
 


진압작전으로 여기저기서 불상사가 목격됐다. 한 시민이 경찰에 둘러싸여 진압당하자 그를 목격한 시민들은 전경 중 하나를 붙들어 대열에서 끌어낸 뒤 똑같이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 시민들은 밀려들어오는 경찰들에 밀리면서도 강하게 항의했고 사거리 바깥 대치 라인에선 예비군 부대가 두 진영 가운데 인간띠를 두르고 자칫 극도로 치달을 수 있는 양측 감정을 조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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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 사거리 각 방면에 나뉘어 대치된 양 측은 밀고당기는 접전을 벌였다. 5시 30분.  
 


30여분 이상 밀고당기는 상황이 지속됐다. 여기저기서 부상당한 사람들이 속출. 시민은 물론 전경 부상자도 눈에 띄었다. 한편 이를 보도하던 일부 기자들과 경찰간의 실랑이도 이어졌다. 그렇게 시각은 6시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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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끌려나왔던 버스. 밤새 두들겨맞은 몰골이다. 5시 50분 견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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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은 계속 인원을 투입.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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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시 15분 세종로 사거리의 동화면세점과 교보생명 쪽 교통로가 뚫렸다.  
 


6시 15분, 세종로 사거리 중 먼저 동화면세점과 교보생명 쪽 도로가 점거에서 풀렸다. 광화문 쪽은 여전히 경찰들의 버스 방어선이 막아선 상황. 경찰들은 마지막 남은 시청쪽 시민들의 해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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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앞으로 밀렸던 군중들이 다시 모여들어 아침 새로운 대치상황이 시작. 6시 30분.
 
 


그런데 생각치못한 일이 벌어졌다. 6시 30분. 시청쪽으로 물러섰다 생각했던 시민들이 다시 걸어오며 프레스센터 앞 도로로 천천히 밀려왔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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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여분간 팽팽한 대치.  
 


10여분 후, 경찰은 시청방향 도로 강제해산에 나섰다. 달려드는 경찰에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내쫓겼다. 그러나 잠시 후 경찰은 다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시청 앞에서 시민들은 다시 경찰 앞을 가로막고 섰다. 게다가 그 수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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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시 45분. 진압 시작. 달려가는 경찰들에 쫓겨 시민들은 시청까지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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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시52분 상황. 시청 앞에서 군중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며 새로운 국면.  
 


상황을 사진에 담던 취재진들도 혀를 내둘렀다. 한 중년 카메라맨은 "완전히 87년 상황이다"라며 되뇌었다. 경찰의 진압에도 불구 시민들의 기세는 예상 이상으로 거셌다. 무엇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

이 때, 시민들은 갑자기 아침이슬을 불렀다. 군중가요가 이 시각 특유의 적막감과 맞물려 도로에 진동했다. 노래를 마친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경계심을 풀고 아예 자리에 앉아버린 시민들도 있었다.

경찰 역시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해산 시도를 멈춘 경찰은 8분여간을 머무르다 갑자기 예상못한 결정을 내렸다. 배치인원이 하나둘 뒤로 빠지더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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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경찰병력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환호하며 한국언론재단 앞까지 다시 전진. 7시 상황.
 
 


군중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더니 물러서는 경찰 앞으로 천천히 전진해 왔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결국 경찰은 7시, 한국언론재단까지 다시 물러섰다. 군중들은 자리에 하나둘 앉아 "전경들도 앉아라", "경찰들도 자유발언"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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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중들은 "전의경도 앉아라"며 물을 건넸고 웃으며 아침이슬 등 노래를 불렀다. 이에 경찰 측이 "마시면 갈거예요?"라며 실소, 팽팽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누그러졌다. 7시 20분 상황.  
 


20여분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폭탄같던 살벌함은 사라지고 갑자기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선 기묘한 감정의 선이 흐른다. 한 시민이 경찰 앞에 나서더니 '목마르겠다'며 마실것을 건넨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한 지휘관은 확성기에 대고 "그거 마시면 다들 가 주실거예요?"라고 웃음섞인 한마디를 건넨다. 경고 및 감정 섞인 방송을 주고받던 양측 사이에서 모처럼 웃음소리가 서로에게 전해진 것.



갑자기 '개똥벌레'를 따라 부르는 시민들. 방금전까지의 긴장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축제라도 벌이는 양 웃고 노래했다. 이를 바라보던 전경들 사이에서도 순간순간 웃음이 보였다. 한 시민이 종로경찰서장에 제안 하나를 꺼냈다.

"노래 한 곡 하시면 해산할게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더니 "노래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제안이 수락되진 않았지만 분명 상황은 집회 답지 않은 평온감을 불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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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시 30분 경찰은 다시 코리아나호텔까지 물러났다. 군중들은 환호하며 다시 청계광장이 보이는 장소까지 돌아왔다.  
 


7시 30분. 다시 경찰은 뒤로 물러섰다. 앉았던 군중들은 다시 일어서서 환성을 터뜨렸다. 코리아나 호텔 앞, 청계 소라광장이 보이는 도로까지 다시 돌아온 시민들. 아리랑을 부르자 취재 중이던 칼라TV의 세 청년은 군중 속에 파고들어가 즉석 안무를 선보였다. 웃음소리가 연쇄적으로 터지는 상황에서 옆에 있던 파워블로거 미디어몽구 기자는 "이제서야 본래의 촛불집회 분위기로 돌아왔다"고 그제야 웃는다.

경찰은 결국 시청 쪽 도로를 시민들에게 넘겨줬다. 하지만 밤새 극렬히 대치하던 시민들과 잠시나마 극적인 화해 무드를 이끌어냈다. 불과 한두시간전 상황을 생각한다면 믿기지 않는 급반전이었다. 끝까지 피를 보고야 말았던 지난 역사의 항쟁과 해산진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이끌어냈고, 이는 또 하나의 역사였다. 시민들은 경찰들에 "배고프지 않냐"며 음료 등을 건넸다. 쉽게 받아들수는 없어도 경찰 역시 잠시나마 경계를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마치 "전경들도 앉아라"는 시민들 요구에 응한 듯 도로에 앉아 마주대하고 있었다.

지난 밤, 이제 평화적 집회는 물 건너간 것일까란 안타까움에 많은 이들이 탄식하고 말았던 위기의 순간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아침이슬'로, 또 '개똥벌레'로 이어지던 군중들의 가요 합창은 또 한번 비폭력 평화집회를 쉴새없이 외치고 또 이에 주목해 오던 이들에게 희망 하나를 남겼다.

누가 이 역사에 승자로 남을지, 패자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승자의 역사이든, 패자의 역사이든 간에 사람들은 역사를 보고 있다. 지금은 경찰의 입장으로, 또 집회자의 입장으로 갈려 바라보고 있는 것들, 이는 이후 이들이 한데 어울려 다시 회고할 모든 국민들의 이야기다.

분명 위기는 있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지난 밤을 놓고선 집회자들도 촛불집회의 오점이란 지적과 함께 실망감을 말하고 또 음모론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축제를 연상케 했던 아침엔 집회자도, 경찰들도 함께 마주앉았다. 소통의 부족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항쟁의 역사에서, '소통의 항쟁'이란 씨앗을 도로에 뿌린 6월 8일 아침의 순간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