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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다이어리

[성우인터뷰] 구자형 “성우를 말한다, 퍼즐을 놓는다”

[성우인터뷰] 16. 구자형 “성우를 말한다, 퍼즐을 놓는다”

 

 

 

 

epilogue 같은 plologue

10시간의 대화, 3.99기가의 카메라 메모리 자료, 두 달여 만에 드는 묵직한 펜

 

질문을 던졌다.

 

“성우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잘 읽고 잘 연기하는 것을 넘어, 맡게 된 그 콘텐츠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전문가에 준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답은 곧장 들어온다. 망설임도 없고 곧게 들어온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연재는 줄곧 ‘성우란 무엇인가’란 퍼즐을 한 조각씩 각 주자가 맡아 맞춰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제 점검하며 그 전반의 틀에 대해 들어보기로 하자. ‘성우 마이스터’를 꿈꾸는 그라면 손색없을 것이다.

 

열여섯 번째 주자로 성우 구자형을 만난다.

 

“선배님은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를 하신다.” - KBS 29기 윤동기

“만날 때마다 이야기가 마르지 않는다.” - 14번째 주자 대교 3기 윤미나

 

여러 성우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두 번에 걸쳐 10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동안 정말 무겁게 펜을 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몇 장 찍지도 않았건만 카메라 메모리는 동영상까지 합해 총 4기가 가량 그를 담았다. 동영상 촬영 땐 하나의 질문에 20분이 넘게 답이 이어진다.

근데 그걸 하나도 놓치기 싫다. 어떻게 실을까.

 

“선배 이야길 다 담겠다고? 정리를 한다고? 불가능할텐데?” - KBS 27기 윤세웅

 

“그 오빠가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해주실거야.” - 15번째 주자 KBS 23기 김희선

고민 중 스승 한 분이 이런 가르침을 전했다.

 

“연기 지문을 받으면 절대 입 떼지 말고 생각만 하라. 입은 실연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떼라.” - 권문정 (KBS 35기)

 

그 말을 작문에 차용해 두 달여간 머릿속으로 고민과 구상만 했다. 어떻게 정리해 담아낼지 오래 걸리더라도 조바심 내지 말자. 대신 한번 펜을 들면 망설임 없이 쭉쭉 써내려가자고. 그가 너무도 깊고 맛있게 내리는 커피처럼 진하고 길게, 그리고 한 번에 가자.

덕분에 지금껏 인생에서 가장 공들인 인터뷰가 됐다.

 

 

 

출처 네이버

 

2004년 KBS에서 방영한 고스트바둑왕에서 그는 왕의 바둑스승이었던 사이(좌랑)를 맡았다. 저 아득한 위에서 내려다보듯 돌을 놓는다. 카드를 쥔 유희(유희왕 SBS,챔프)도 그랬다. 보통의 사람은 놓쳐버릴 찰나에 해답을 깊이도 찔러넣는다.

분신이 그러하듯 성우 또한 내게 건들기는 어렵고 놓치기는 쉬운 것을 내어놓았다. 난 그것들을 쫓는다.

 

“성우가 되려면 어떻게 배워야 하나. 진정 성우로 완성되려면 어떻게 하는가. 성우는 무엇인가. 성우의 내일은 어떨 것인가. 성우는 그 내일을 어떻게 준비할까. 성우가 사는 세상은 어떤 색인가.”

 

그 전반적인 것들에 그는 충실히 답해 주었다. 이 시대 최고의 대가로 불리는 그가 말하고자 한 메시지가, 모쪼록 절반이나마 살아 담기길 바란다.

이렇게 에필로그를 대신할 프롤로그로 막을 연다. 총 4장으로 정리했다. 성우가 되는 길, 성우 면허를 따는 길, 성우들이 내일로 가는 길, 대성우가 가는 길.

 

 

 

 

구자형

1992년 KBS 23기 공채

대표작

비촌 켄신 - 바람의검심(애니원)

스파이크 스피겔 - 카우보이비밥(투니버스)

유희 - 유희왕 (SBS, 챔프)

닥터 덴마 - 몬스터 (투니버스)

판 - 로도스섬전기 (투니버스)

야스 - 나나 (애니원)

제로스 - 마법소녀리나 (SBS)

사사쿠라류 - 바텐더 (애니맥스)

미륵 법사 - 이누야샤 (애니원,투니버스)

콜 에번스 레드라이온 - 파워 포스 레인저

카터 그레이슨 레드레인저 - 파워레인저 레스큐

정대만 - 슬램덩크 (SBS)

킨토키 - 은혼 (투니버스)

젝스 마키스 - 신기동전기 건담 W (투니버스)

샤아 아즈나블 - 기동전사건담전기 해후의 우주 게임

키아누리브스 전담 - 매트릭스 콘스탄틴 체인리액션 (SBS), 스피드(KBS) 등

지진희 몬티 - 퍼햅스 러브 (KBS)

제바스티안 코흐 드라이만 - 타인의 삶(MBC)

호랑이 기운 - 콘푸로스트 광고

 

 

 

 

출처 다음 영화 ‘바람의 검심 추억편’

 

1장 - 성우가 되려면? “99% 노력, 재능도 후천적으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그의 출연작품 중 가장 많이 봤던 바람의 검심 시리즈. 이젠 원판 성우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유쾌한 활극이었던 TV판에서 애잔한 OVA판까지 활약했던 그의 켄신은 타인이 최고로 꼽는 스파이크나 덴마 등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대표작이다.

 

‘순수하게 강함을 추구하는 이 녀석은 분명 강해진다’는 스승 말처럼 켄신은 전설의 검객이 된다. 명성만 듣고선 타고난 재능만 생각할 터, 실은 수련과 숱한 사투 속에 다듬어진 노력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럼 성우 구자형은 어떨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분신과 같다. 사람들은 단 한 번에 성우 시험에 붙은 사람, 그것도 친구들이 내민 원서로 응시했다는 일화가 알려져 ‘천부적’이란 수식어로 간단히 그를 정의하려 한다. 그런데 그는 반대로 노력이 자신을 만들었다 말한다.

 

“맞아요, 친구가 써 준 응시원서로 성우가 됐어요. 그런데, 난 나보고 누가 ‘목소리 참 좋으세요’라고 칭찬하는 게 싫어요. 마치 ‘넌 목소리 하나 때문에 성우가 됐구나’라고 하는거 같아서. 난 지망생으로서 산 날은 없었지만, 대신 그렇게 성우가 된 날부터 비로소,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망생으로 살고 있어요. ‘너 오늘도 공부하냐?’는 소리 들으면서요.”

 

그는 ‘재능’이란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달리한다. 흔히 ‘유전적’인 요소를 말하지만, 자신은 그보다는 ‘양육, 환경적’인 요소를 생각한다고 했다. 요리사만 해도 음식을 얼마나, 어떤 것으로 먹었느냐가 중대한 부분인 만큼, DNA가 발현되는건 결국 후천적인 밑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

 

“내 블로그에도 송창식 선생님 말을 올려놨어요. ‘맨날 하는 놈은 이길 수 없다’고. 슈퍼스타K에서 이승철 씨가 ‘재능’을 자주 언급하지만, 난 송창식 선생님의 이야기에 더 무게를 둡니다. 지망생들에게도 요새 자주 말해요. 재능과 노력의 조합이고, 결국 노력의 비중이 훨씬 크다고.”

 

 

 

 

 

그렇다면 그는 정말 성우가 된 이후부터 그 누구보다 혹독한 레이스를 했을 터. 지금 성우 구자형이 쌓아올린 금자탑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정말? 정말이란다. 합격 전엔 성우에 대해 정말 몰랐다고 했다. 도움 될 경력이란 학교 방송 아나운서를 하고, 만화를 즐겨 본 게 거의 전부였다고 했다.

 

“글쎄, 생각해보니 정말 몰랐네요. 알고지내던 다른학교 선배분이 어느날 성우가 됐다면서 같이 밥 한끼 먹자 해 만났는데, 호출 받더니 곧장 뛰어가면서도 지나치는 사람들한테 인사 받는건 없고 ‘안녕하십니까’ 인사만 90도로 하길래 ‘성우? 방송국에서 지위가 낮은가?’ 했지요. 허허. 그 외엔 방송이나 디제이에 관심 있던 정도? 한인 방송국 채용도 합격했었지만 걸프전으로 지연되면서 하기 싫어졌고. 정말 성우를 잘 몰랐던 접니다.”

 

성우가 된 것에 대해서도 그는 담담히 말한다. 어느 날 친구들이 사진관 같이 가자고 해서 찍었고, KBS에 양복 입고 가 봐라 해서 갔더니 사람들이 많더란다. 당최 모를 시험, 옆에서 ‘넌 무슨 설정?’ 이야기가 오가는데 그게 뭔지도 몰랐다. 그저 내 목소리, 내 식으로 했더니 됐단다.

 

“그렇긴 한데, 누군 그걸 듣고 재능이라 하지만 제가 생각하니 그건 재능도 운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하나의 ‘요소’였어요. 아나운싱 교육도 받았고 사투리도 없고 그런 모든 기본적 요소 중의 하나요. 어쨌든 전 ‘성우가 되고서 성우가 되어야지’하고 시작한 사람입니다.”

 

성우 시험에 언제, 얼마나 해 합격 했는지 여부로 저 사람은 천재형, 저 사람은 노력파로 쉽게 구분하는 건 아닐 일인 것 같다. 산뜻한 출발이었을지언정, 후에 지불할 대가는 그 누구보다 크면 크지 적지 않게 치룬 그의 이야기다. 지금도 지독하게 공부한다고 했다.

그가 평소 어떻게 노력하며 콘텐츠를 만드는지 잠시 영상에 담긴 육성으로 듣자. 무려 20분이 넘는 동영상이 나간다.

 

 

 

 

단 한 마디의 질문이었을 뿐이다. “성우란 단지 기술적으로만 잘 하는 것을 넘어 그 콘텐츠를 자기 것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전에 연구하는 것까지 전제하는 것인가”란 말에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로 그 역시 한 마디로 답했다. 그리고서 20분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진 거다. 애니메이션 때는 원작 만화를 전부 사 와서 보고, 다큐를 할 땐 보이지 않게 연구하고 그렇게 콘텐츠를 만든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란 ‘바람직’도 아니고 성우에게 ‘당연한 것’이라 말한다.

더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출처 다음영화 ‘몬스터’ 포토게시판

 

 

2장 - 성우 면허를 따려면? “지금 공부하는 필드 들여다보니 기겁”

 

“성우님의 분신 중 최고라는 캐릭터 하나를 꼽아주신다면요?”

제로스, 켄신, 스파이크... 정말 많은 인기 캐릭터를 맡은 그는 ‘하나만?’이라고 난색을 표한다. 답은 동영상으로 소개한다.

 

 

 

그에게도 재밌는 추억이 많단다. 당시 투니버스에서 이 작품을 할 때, 팬이라는 여직원이 첫인사를 하면서 어찌나 맑은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봤던지. 그런데 지금은 프로듀서가 되었고 어느 성우와 결혼을 했다. 장인 정신이 투철한 성우와, 진정 해당 콘텐츠 영역을 좋아해 매니아를 자처하는 프로듀서가 만나 작업을 한다면 그 콘텐츠의 퀄리티는 최소한, 그 이해도에 있어선 절륜할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적어도 그 분 개인에 있어선 행복한 삶이네요.”

 

“매니아에겐 최고의 삶이겠죠?”

 

애니메이션에서 의사인 주인공을 꼽으라니 세 명이 떠오른다. 양석정(KBS) 성우가 두 애니채널을 넘나들며 분전한 최강의 무면허 의사 블랙잭, 출판만화로 유명한 근육질 의사 닥터 K,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그가 자신의 분신 중 우선적으로 꼽는 몬스터의 닥터 덴마다.

면허? 성우에겐 공채 합격이 바로 면허 아닐까. 그 역시 합격은 ‘면허를 딴 것’이라 표현한다. 성우가 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성우가 되려면 어떻게 하나’란 질문을 한 번 더 던진다. 단, 내용은 다르다. 앞서의 것이 ‘진정한 성우가 되는 길’이라면, 이번엔 그에 앞서 지망생이 ‘성우 시험에 합격해 면허를 따는 길’이다.

그가 ‘SAE 아카데미’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성우 아카데미와는 다르다고 한다. 동료 중엔 ‘지망생 말고 성우를 케어하는 곳’으로도 알고 있다. 그는 둘 다 잡으려 한다.

 

우선 면허를 따려는 이들에게. 그는 아카데미를 열면서 우선은 성우의 개념, 커리큘럼을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단문만 무조건 잡고 모두 공통된 커리큘럼으로 일관하는 것을 벗어나 제대로 된 배움의 토양을 마련하겠단다. 아울러 성우가 된 이후에도 케어해 줄 수 있는 배움터가 목표다.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의 것들은 뭔가 아쉽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서. 지망생들 공부하는 필드를 들여다봤어요. 그 실상을 보고 기겁을 했어요.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 이러면 정작 들어와도 큰일이다 싶었죠.”

 

 

 

 

지망생들에 진정 필요한 기본적인 것, 바닥에 깔고 있어야 할 것부터 연구했다고 한다. ‘아직은 프로젝트 수준’이라지만 뭔가를 꺼내보이고 있단다. 인터넷 강의 형태, 오프라인 형태 모두 다 해 보면서 말이다.

 

“스노우보딩은 책으로 못 배우고 독학으로 하기엔 너무 시간이 걸리고. 같은 거죠. 그래서 선생이 필요한 이유고요. 그런데 전 동영상으로도 60퍼센트 정도는 각자 노력으로 공부가 가능하다 봐요. 나도 보드를 영상으로 배웠어요. 다만 아무리 공부가 스스로 하는 것이라 해도 좀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하기위해선 코칭은 필요한거죠. 직접적인 코칭엔 강제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도 병행합니다. 공부는 스스로 하고, 대신 직접 만날 땐 그간 고민해 온 성과를 나한테 보여주고. 그리고 난 그걸 마주하면서 코칭하고. 그래서 SAE예요. 스피치, 액팅, 익스프레션. 수업에 관한 고민은 계속 진행 중이에요.”

 

성우가 된 뒤에도 ‘이제 시작’이라 말한다.

 

“KBS에 입사하면, 라디오만 하다가 더빙은 못 하고 프리가 됩니다. 타 극회는 또 정반대고요. 그런 어려움을 돕고 싶어요. 사실 성우 합격은 면허를 딴 것일 뿐이죠. 성우가 되는 건 그 때부터 시작입니다. 이런 후배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구상해 봤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여기가 뭘 하는 곳이라 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이라 한다. 때로는 ‘나 성우 구자형의 개인 놀이방’이며 개인이 좀 더 정진하는 곳이란다. 하나는 확실하다. 성우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연구소’다. 추가하자면 ‘읽고 들려주는’ 성우의 역할을 전문인이 아닌 일반인, 즉 대중에 맞춰서 진행할 수 있는 ‘KERYX’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번 장을 정리해 보자. 일단은 면허를 따기 위한 지망생들 개인의 자각이 필요하다.

우선 지금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열심히’의 눈높이를 높여야겠다 생각했다. 최고의 성우 반열에 든 그조차 여전히 자신을 갈고 닦는다. 이런 사람 앞에서 성우가 되려고 열심히 해 왔다, 나 노력파요 하고 말하는 건 왠만한 사람이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 실제로 그가 맡은 지망생 중에도 노력이 부족한 이가 보인단다.

또, 현재 교육 시스템 상에 허점이 있음을 그가 말하고 있는 바, 수동적으로 현재의 교습이나 학원에 모두 맡겨 연습하기 보다는 직접 수련 계획을 짜고 자신에게 지금 바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자가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출처 다음 영화 카우보이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3장 - 성우가 사는 세상은? “성우 스스로가 그에 합당한 만큼 거두리라”

 

“죽으러 가는 것이 아냐, 내가 살아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러 가는 거야”

 

구자형 성우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전 영역을 통틀어서도 첫 손에 꼽히는 스파이크 스피겔의 저 대사, 주저없이 그의 최고 작품으로 카우보이 비밥을 꼽는 팬들에게는 정말 각별한가 보다. 작품이 방영된지 15년 가량 지났건만 여전히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원판을 초월하는 더빙이란 극찬 속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불멸의 더빙 역작이다.

 

“그러고보니 스파이크의 일본판 성우인 야마데라 코우이치는 마지막에 코고는 소리를 애드립으로 더빙해볼까 제안하기도 했대요. 성우님은 스파이크의 생사를 두고 열린 결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세요?”

 

“글쎄요, 작품성에 있어선 그대로 눈 감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치만 애정이 있는 캐릭터라, 언젠가 각 편마다 관련 포스팅을 해 볼까 싶기도 하고. 만일 원작의 프리퀄 내지 숨은 에피소드 같은 신작이 나온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그래요.”

 

 

 

 

27세의 스파이크도, 오늘날 그도 업계의 스페셜리스트이지만 조금 다른 게 있다. 수류탄을 뽑고 최종 전장에 달려가던 스파이크와 달리 그는 이제, 자신의 생사 뿐 아닌 업계 전반을 생각하고 있다.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과 여건 속에서 그가 생각하는 성우의 내일에 대해 들어보자.

 

“먼저 성우협회에 대해서. 성우는, 자신들의 의식만큼 그에 합당한 수준의 협회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조직원도, 리더도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나눠야 합니다. 학원에선 공통된 커리큘럼을 고민해야 하고, 방송 여건이나 현실의 괴리감 문제도, 또 언더성우라던가 여러 것들에 대해서도 그래요. 지금문제가 되고 있는 얼마 전 명화극장 폐지와 관련된 대응도 그렇고요. 그건 협회에만 미루거나 못을 박을 문제는 아니고, 회원들이 함께 생각해야죠. 리더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의식 변화가 필요해요. 리더는 도덕적이면서도 지향하는 바에 몸을 던질 줄 알아야 하고, 회원 개개인은 또 함께 하고자 지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할 줄 알아야 하죠. 모범적 리더와 손해 볼 줄 아는 개인, 지금 성우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각자의 신뢰가 맞물려야 하는 일입니다.”

 

성우들의 생업과 흐름의 판도에 대해선 “역시, 성우들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또, 내일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린다.

 

“성우들이 스스로 정당하게 주장하고 찾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지금의 저야 어느 정도 기수가 차서 조심스럽게라도 전언을 할 수 있지만, 젊은 기수들은 아무래도 말하기 어렵죠. 그런 부분에서 베테랑들의 역할도 중요하고, 어쨌든 현재로선 그런 움직임에서 아쉬운 점이 있어요. 토요명화를 비롯 수년간 우리가 발 담던 외화 프로그램을 거듭 잃을 때도 그렇고, 이 일을 하면서 녹음 현장에서 여실히 느끼는 시스템이나 개선해야 할 문제점들도 그렇고. 그리고 성우를 요하는 시장의 크기라면, 그건 성우들이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분명 달라질 겁니다. 지금 세어보니 성우협회에 등록된 성우는 750여명이고, 이 중 어느 정도 활동하는 이는 200여명 정도예요. 성우 일이 없어지진 않겠죠. 하지만 성우들이 수동적으로 자신의 일만 찾으려 한다면 분명 그 수는 적어요. 그런데, 또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직접 찾아내어 만드는 주체가 되려 한다면 내일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걸 제가 이거저거 연구도 하고 실행해보려 합니다.”

 

그는 ‘법무프린스’를 하면서도 우리 성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계약직들의 실상, 열정페이계산법 등으로 번뇌하는 이들을 다룬 변호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성우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북텔러리스트에 대해선 들어보셨어요? 현재 동료들과 여기서 녹음하고 있어요.”

 

그가 지금 ‘해보려 하는 것’ 중에 하나며 이미 진행 중이고 가장 실체가 보이는 시도다. 간단히 보자면 ‘오디오북’인데, 팟빵에 책 낭독 형식으로 게재하는 팟캐스트다. 이름은 북과 북텔러, 테러리스트와 쉰들러리스트를 조합한 거란다. 지난번 소개한 김희선 성우를 비롯 여러 성우들이 뜻을 모아 진행하고 있다. 1회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마쓰모토 세이초 작)를 시작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등 국내외 고전이 진행됐고 현재 28회인 눈의 아이(미야베 미유키)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클라이언트를 통한 것이 아니라 성우 스스로가 직접,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능동적으로’ 들고 나선 시도란 점이다.

 

“북텔러리스트도 성우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가능성을 갖고 계신 건가요? 단순히 성우가 남의 저작물과 콘텐츠에 힘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성우 스스로가 그 주체가 되고 또 주인이 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갑과 을의 관계로 계약하고 주어지는 일을 하는 것만이 성우 시장의 전부가 아님을, 우리가 바로 콘텐츠의 주인이 되고 생산할 수 있는 선례가 되어 알려지면 좋겠어요.”

 

 

 

 

4장 - 성우 구자형의 미래는 ‘성우 마이스터’

 

“정말 여러 작품들을 하셨고, 장편 시리즈도 많았죠. 기억에 남는 때가 많으실 것 같아요. 카우보이 비밥, 몬스터, 나나, 이누야샤, 은혼...”

 

“은혼 때는 팀웍이 정말 좋았죠. 재미도 있었고. 정말 간만에 그런 기분이었달까.”

 

“이전이라면 나나라던지 비밥? 혹은 몬스터?”

 

“몬스터는 정말 다시는 그렇게 성우들이 모일 수 없을 무대였죠. 글쎄요, 근데 워낙 작업에 욕심이 있어서 사실 그 몬스터 때도 아쉬움은 조금씩 있었죠. 뭐랄까, 저 뿐만 아니라 여러 동료랑 함께 호흡하며 만드는 작품이잖아요? 전 늘 거기서 만족감을 얻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무언가 함께 해냈다는 기쁨. 그런데 요즘 들어선 그런 재미나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줄어서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해요.”

 

팬들이 걸작 더빙이라 찬사해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다는 그에게 앞으로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보느냐 물었더니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되어야 겠단다. 성우의 장인, 성우 마이스터. 이른바, 연재 초기부터 ‘성우의 최종장’이라 막연히 생각해 온 ‘대성우’의 영역인 것일까.

 

“23기로 입사하셨고, 이제 23년째를 맞이하셨어요.”

 

“그러네요. 그리고 이래저래 같은 동기도 총 23명이었고요.”

 

‘이미 많은 걸 이룬 성우’라 생각했건만,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도 그가 앞으로 꿈꾸고 있는 것들에 대해선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기회가 되면 그것들은 별개의 기사로 다뤄보고 싶다. 성우 구자형만의 것이 아닌, 그가 제시하는 ‘성우들의 미래’와 대안으로 말이다.

 

“그래요. SAE아카데미도 그렇고, KERYX도 그렇고, 또 기회가 되면 지금 제가 동료들과 하고 있는 북텔러리스트 녹음 현장도 보면서 더 많은 걸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껏 언론 매체에서 저를 찾아도, 대개의 인터뷰는 답이 정해져있거나 본인들이 듣고자 하는 대답만 원했죠.”

 

하지만 만일, 그가 생각하는 대로 성우가 주체가 되는 길이 여러 갈래로 열린다면, 그 땐 매스컴에서도 정해진 것이 아닌 모르는 것을 들려 달라 청해 올 것이다. 모쪼록 이 글이 그 서장의 하나가 되길 바란다.

 

 

 

prologue 같은 epilogue - 성우는 즐겁다

 

과거 공채 시험으로 그가 주인공 사사쿠라 류를 맡은 ‘바텐더’ 대본이 나온 적 있다.

난 그걸 알고자 바에 찾아가 바텐더에게 자문을 구했고, 칵테일도 주문해 맛봤다. 그 사실은 그에게 말하지 않고 왔었구나. 연기란 게 연구하는 것도 참 심오하다 생각했는데, 그를 만나니 아마 그 역시 그 작품을 연구하면서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진토닉, 갓파더. 그의 바텐더를 통해 전해 듣고 알게 되어 가끔 찾아가 주문하는 맛있는 한 잔이다.

 

 

 

출처 다음 영화 바텐더

 

성우가 되는 길은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맡게 되는 콘텐츠를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에서 열린다.

성우 시험에 합격하는 길은 성우가 된 자 조차 그 자격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하고 있음을 잃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성우가 잇는 길은 그들 스스로의 노력과 그에 합당한 만큼의 보상으로 열릴 것이다.

성우가 걷는 길은 끊임없는 자신의 즐거운 고행, 그리고 모두를 위한 생태계 연구에 있다.

 

내가 그와 10시간 만나 통해 얻은 네 가지의 답이다. 서너가지 섞어 칵테일처럼 내놓은 그의 이야기가 괜찮게 조화되었음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지금껏 23년간 성우로 지내보니 어떠했느냐”고 질문했던 것에 대한 답을 옮긴다.

 

 

 

 

“글쎄요, 그게 지난 일을 돌아봐야 가능한 답인데, 전 아직 그렇게 정리해 보진 않았으니까요. 늘 현재에 있었으니까. 아! 재밌었느냐는 답에 대해선 할 말이 있어요. ‘성우란 일을 하는데, 정말 재밌는데 돈도 벌리네?’ 하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아닐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럴 때가 더 많았죠. 최소한 저한테 있어선, 하하 정말 좋은 직업이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직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능동적인 직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우 마이스터를 목표하는 그에게 ‘언젠가 건담 마이스터 록온 스트라토스도 맡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또 대의적으로 저 높은 곳에 목표를 많이도 세운 그가, 그 모든 걸 성층권에서부터 정확히 저격해 주면 좋겠다.

 

 

권근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