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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는 한결같이 불행했네... 고소영부터 한은정까지

구미호는 한결같이 불행했네... 고소영부터 한은정까지
역대 구미호들, 언제나 새드엔딩으로 뒷 맛이 썼다




'구미호는 언제나 불행했네.'

KBS에서 여름을 맞아 편성됐던 '구미호 - 여우누이뎐'이 결국 구미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역대 구미호 중에서도 특히나 아름답던 한은정은 그렇게 인간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슬픈 결말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찌기, 역대 구미호 중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던 '선배'가 있었던가. 돌아보니 지금껏 등장한 구미호들은 한결같이 뜻을 못 이루고 파국을 맞이했다.




고소영, 정우성은 비트에서나 구미호에서나 사별 커플 - 영화 구미호


출처 다음 영화 구미호 포토 게시판


1994년 개봉한 영화 구미호는 당대 최고의 영스타이자 지금은 톱스타 반열에 오른 정우성, 고소영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장동건과의 결혼이 확정된 후 "고소영이 누구냐"는 질문이 나온 것에 도리어 "아니 고소영을 몰라?"하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로 장동건 못지않은 지명도를 자랑한 스타였는데, 요새 좀 뜸하긴 했지.

이 작품은 청춘스타가 주연을 맡고 탄탄한 연기력의 중견배우가 감초로 뒤를 받치는 청춘영화의 정석을 갖춘 영화다. 고소영이 구미호라면 독고영재는 저승사자였고 방은희는 무속인, 그리고 정우성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택시기사(?)였다. 재밌는것은 청순한 고소영과 청바지 입은 코믹버전의 독고영재, 두 사람다 전혀 무섭지 않은 구미호와 저승사자를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은 95년 허영만 화백의 원작으로 더 유명한 '비트'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이들의 두 주연작이 갖는 공통점이라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넘어 '사별 커플'이 됐다는 거.
차이점도 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역할을 서로 한번씩 바꿨다는 거다. 글로만 읽어도 참 서글픈 커플이다.
이들이 서로 행복해 했던 모습을 굳이 찾으라면, 2000년대 초반 지오다노 전속모델로서 호흡할 때 정도? 이 영화나 비트를 봤던 관객이라면 만감이 교차했을 순간이었다.

구미호의 운명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설정이 이 작품에 있다. 고소영은 인간과 진실된 사랑을 나누어 인간이 되려 하지만 999년간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떠돌다 정우성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1000년만에 그 해묵은 염원을 이루는 동화같은 이야기를 허락치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모든 구미호의 공통된 숙원, 진정한 사랑을 담는 동시에 예나 지금이나 그것을 이루기가 어려운 인간세상의 욕망을 조명한다. 사랑조차 쉽지 않은 인간의 현실이 구미호에겐 곧 슬픔이자 재앙이다.

여담 하나. - 고소영은 그 때도 청순미의 여왕이었고 서른즈음에도 그것이 이어져서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장동건과 백년가약을 맺은 오늘날까지도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장동건은 조심하라. 진짜로 그녀는 구미호일지 모른다.



박상아의 구미호가 보여준 또하나의 비애, 채식주의자를 강요하는 인간사 - 전설의고향 구미호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의 원년 스타, 박상아가 주연을 맡았던 1996년의 구미호. 이는 70~80년대의 명드라마 전설의고향이 다시 부활한 것과 맞물리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고,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시골촌놈 허준호가 서낭당에서 기도를 하던 산골처녀 박상아를 한눈에 보고 반해 집까지 쫓아가선 "따님을 저에게 주시구만요"하던 장면이 지금도 선하다. 재밌는건 따라오는 스토커 남정네를 기겁하며 떼어 놓으려던 박상아나 그의 어머니가 저 말에 곧장 화색이 돌던 시츄에이션. 뭐냐 이거.

그러나 두사람의 신혼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박상아의 오라버니는 인간을 살육하며 간을 먹고 인간의 꿈을 이루려 해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것을 거부하던 박상아도 결국 그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만다. 인간의 쌀밥으로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고 마는 그녀였다. 여기서 우리는 구미호의 또다른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절대 채식으로는 버티지 못하는, 육식(사람고기)동물이란 사실을. 하다못해 흡혈귀는 수혈팩 내지 헌혈을 통해서라도(흡혈형사 나도열을 보면 감이 올거다) 해결할 수 있지만 사람은 고기 내지 간을 내어놓지 못하니 구미호는 설정에서부터 어떤 몬스터보다 잔혹한 운명이다.

결국 남편 허준호에게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박상아. 시어머니와도 파국을 맞이하게 되고. 자신을 구하려는 오라버니와 남편의 사이에서 박상아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

엔딩에서 남편은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 모처럼 재회하는 두 사람이지만 일전에 자신들이 꿈꾸던 행복한 부부의 소원은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여담 셋. - 사투리 쓰는 구미호를 보고 싶다면 단연 이 작품 추천이다.



천하의 김태희도 못 비켜간 구미호의 숙명 - 드라마 구미호외전



출처 다음 영화 포토 게시판

2004년 등장한 KBS의 여름 드라마 구미호외전. 한발 앞서 '천국의계단'의 악역으로 아름다움을 뽐낸 김태희는 당당히 구미호로 주역이 됐다. 한 편으로는 신화의 전진이 등장해 소녀팬들을 설레게 했던 화제작이기도 하다.

구미호에 현대의 블록버스터 느낌을 살리려 했던 작품으로 총화기는 물론 요요까지 무기로 등장했던 작품. 여기서도 김태희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새드엔딩을 맞는다. 뿐만 아니라 등장했던 이들 대부분이 몰살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구미호 집단과 이들을 사냥하는 비밀팀이 전투와 더불어 공존을 위한 협상 테이블까지 마련하는 전쟁 설정은 꽤 신선했다.

확실한 것은 고소영의 구미호도 그렇듯 예나 현대나 구미호는 그 숙명을 거스르지 못함을 재확인시킨 작품이었다. 아울러 인간과의 공존은 결국 불가하다는 결론 속에서 그것을 거슬러 해피엔딩을 쟁취하지 못하는 남녀. 실로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상으로 격정적인 설정이 한국의 구미호 전설이다.

여담 둘. - 팬들에겐 섭섭한 말이겠지만, 그 때 전진과 김태희의 연기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뭐. 그렇다고 김태희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것에 의혹을 품는 건 절대 아니고.




한은정도 못 벗어난 구미호의 비운 - 구미호 여우누이뎐

               
출처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 홈페이지 '촬영현장의 현장유희'

(http://www.kbs.co.kr/drama/2010gumiho/making/fun/index.html?messageId=29087723) 중 -


매번 뇌리에 남았던 선배 구미호들이 늘상 이런 결말을 맞이하니, 이번 작품도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서 챙겨보진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렇게 됐다. 정작 기사를 쓰다 저 사진을 보게 되니 그제사 "저런 식으로 시트콤이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면 도리어 참신하지 않았을까" 망상을 하는 거였다.

이 작품의 구미호는 여타 작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고소영, 김태희, 박상아로 이어지는 이들은 한결같이 인간 남자와의 사랑을 테마로 했다. 반면 이 작품에서 구미호는 이미 인간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었고 시종일관 아이에 대한 모성애를 시청자 앞에 내 보인다. 인간의 그릇된 자식 사랑보다 훨씬 나은 모성, 그리고 끝내는 남의 자식마저 품에 안는 휴머니즘이 가뜩이나 아름답던 그녀를 한결 더 돋보이게 했는지 모른다.

여기서 구미호는 그릇된 인간의 욕망을 지탄하고, 인간보다 훨씬 나은 경외적 존재로서 교훈을 불러온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선량한 그 존재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인간들이었고, 그 속에서도 끝까지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는 구미호. 해리슨포드와 숀영이 주연한 SF영화의 걸작 블레이드러너가 제시했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계인간'과 일맥상통하는 교훈이다.

여담 넷. - 말이야 바른 말이지 구미호보다 아역이 더 무서웠다. 앞으로 그 어떤 특수효과보다 무서운 아역이 출몰한 작품으로 회자될 전망이다. 서신애는 향후 호러퀸으로 자리잡을 것인가.


구미호는 존재 자체가 슬프다

사실 구미호는 그 존재 자체가 슬픈 운명을 끌어안은 여인. 인간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본의 아니게 운명에 휘말려든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인간이 되어 인간사에 녹아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소박한 바람은 늘 이뤄지지 못하고 깨어지는데 늘상 착한 구미호와 죽여도 시원찮을 나쁜 인간의 구도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퇴치사는 함부로 원망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구미호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고 더 나은 무언가를 제시하며, 이를 지켜보는 인간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슬픈 결말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가져다주는 마법의 장치를 더할 나위없이 제대로 발동시키는 구미호. 그것이 가능한것은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진실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설정은 낭만적이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상의 아름다움을 늘 꺼내 보인다. 다만 그것을 항상 슬픈 결말로 이뤄내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까.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