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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경희대 패륜녀' 들어보니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경희대 패륜녀' 들어보니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소위 '경희대 패륜녀'라 불리는 일대사건이 인터넷을 강타했다. 녹음된 파일은 여기저기로 번지며 네티즌들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특히 벌써 자막까지 만들어진 파일은 만 하루사이 다음TV팟의 한 게시판에서만 20만이 넘는 조회객을 불러왔다. 



출처 다음 TV팟 'master chief 님' 공개 파일 (게시판 주소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0&ref=search&sort=wtime&clipid=23950355&searchType=0&svcid=&svctype=1&q=%EA%B2%BD%ED%9D%AC%EB%8C%80+%ED%8C%A8%EB%A5%9C%EB%85%80&lu=v_search_11)


이 파일은 18일 오전 7시 20만 500건의 플레이수를 기록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몇분만에 수백여건의 플레이수가 추가경신될만큼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댓글수만 1700여건. 스크랩 수도 50건이 넘었다. 반응을 보면 경악과 비난을 넘어 욕설로 분노를 내보이는 상황이다.




경희대 총학생회가 사과문을 올리는 등 학교 측도 조기진압에 나섰지만 만인의 분개는 하늘을 찔렀다. 서울의 일류대에서 터져나온 사건은 학벌과 인성이 아무 관계도 없다는 탄식까지 터뜨리게 했다. 한 네티즌은 "명문대 다니면 뭐하나 인성이 저 따윈데"라고 말을 흐리고 만다.

3분여에 걸쳐 흘러나오는 욕설은 이같은 반응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말미엔 그 욕설보다도 더 흠칫하게 만드는 부분이 담겨 있었다. 해당 학생이 아닌 다른 이에게서 터져나오는 말.

"아줌마 이것도 치우세요"

난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미 충격적인 욕설이 난무한 뒤였지만 또다른 학생이 청소하던 아주머니에게 "이것도 치우라"고 지시하는 목소리.

다시 돌려봐도 "아줌마 이것도 치우세요"라고 분명히 들려온다. 순간,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큰소리로 욕을 내뱉는 작태에 앞서서, 네티즌들에 '패륜녀'라고까지 지탄받는 학생의 문제는 다름아닌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마치 상전이 노비 대하듯 고압적으로 깔보는 시선에 있었다. 그런데, 또다른 학생이 내뱉는 그 한마디를 듣고 저 한 사람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치워주시는김에 이것도 치워주세요'라고 부탁하는것이 아니라 이것도 치우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말. 이미 저 학생에게도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막 대해도 되는 아랫사람일 뿐이구나 깨닫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 말 한마디로 사람을 차등하는 대학생의 시선을 곧장 직감하고도 남았다. 한순간 저렇듯 폭풍이 지나간 직후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비록 욕은 꺼내들지 않았어도 일하는 아주머니로선 자신의 신세를 순간 한탄하고도 남을 법한 상황이었다. 이미 한명이 아니라 둘 내지 그 이상에게 이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결국 "학생들도 그러는거 아니야"라고 나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선 자신을 둘러싼 학생들 모두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네티즌들은 "엄마같은 연배한테"라고 노여워한다. 헌데 사실 나이 문제보다 착잡한 것이 인간 대 인간의 문제였다. 이제 학업을 떠나 인간을 배운다는 대학, 그것도 명문대라 일컬어지는 학교 학생이 그것도 여럿이(어느 정도일지는 함부로 짚지 못하겠다) 학교 직원을 동급의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것. 궂은 일을 하는 이에 대한 존중은 간데 없고 언젠가부터 비뚤어진 신분과 계급의식으로 주위를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성 빠진 지성, 지식에 그쳐버린 고학력사회의 무서움을 보게 한다.
정말 그랬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경로우대나 거침없이 욕을 퍼붓는 심성이 아니라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귀천을 가리는 의식의 근본에 있었다. 어릴적부터 당연하다면 당연히 가꿨어야 할 인성의 부재다.
학벌이 사람의 검증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행여 사회지도층이나 타인의 안위를 다루는 자리에 인간을 배우지 못한 자가 들어설까 다시금 겁먹게 하는 오늘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