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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경선 석패한 이계안 선거사무실을 찾다

서울시장 경선 석패한 직후, 이계안 선거사무실을 찾다



6일,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선택받는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명암이 갈리는 그 1분여의 순간을 영상에 담았다.



(현장기사는 http://kwon.newsboy.kr/1666)


한명숙 전총리는 이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그러나 주먹을 불끈 쥐고 환히 웃는 그녀 뒤로, 또 한명의 사람이 있었다. 4년전에 이어 이번에도 경선에서 석패한 이계안 예비후보다.

축하인사를 건넨 뒤 조용히 퇴장하는 이 예비후보. 모여있던 취재진 대부분이 그자리에 남아 계속 승자를 비출 때, 소수의 기자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뉴스 상단에 걸릴 승자의 미소와는 또다른 느낌이 있는 법이다. 패자의 말없는 발걸음을 따르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는 취재진.



"승리를 기원합니다"라 축하하면서도 TV토론 무산으로 불리했던 전세를 극복하지 못한 것에 "독배를 마셨다"고 마음아파하던 그.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에 웃는 얼굴로 답해 준다. 그는 "내가 오래 말할 자리는 아닌 것 같다"며 짤막하게 소회를 밝힌다.




다음 일정이 있다며 떠나는 그의 차량. 그리고 모였던 이들도 하나둘 흩어지는 그 자리 뒤에, 따로 남겨진 이가 있었다. 그의 수행비서관이다. 과거 인터뷰(http://kwon.newsboy.kr/1541) 취재 등으로 이 예비후보의 선거캠프와는 안면이 있던 나. 그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며 지하철로 걸었다. 사무실로 돌아간다는 그에게 난 넌지시 "같이 들어가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불편할 수도 있었을 자리지만 그는 '오브 코스'라 승락한다. 오히려 "불편하지 않겠냐"고 되묻는 내게 "뭐 어때요"라고 답해준다. 

지난 수개월간 캠프서 동고동락했던 그는 되돌아가는 내내 아쉬움을 쏟아냈다. "TV토론이 이뤄졌다면 해 볼만 했는데"라며 못내 아쉬워하는 것. 인지도는 물론이요, 무죄판결 및 노풍 등 현 이슈의 중심에 선 그녀와 비한다면 틀림없이 열세에 있었던 이계안 예비후보지만, 그래도 발빠른 출발로 여러 정책을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수행비서가 아쉬워하는 건 따로 있었다.

"진게 아쉬운게 아니라요, 할거 다해보고 속시원하게 지지 못해서 억울해요. 그래도 여기까지 완주했는데..."
   
한편으론 이런 이야기도 꺼냈다. "한명숙 전총리가 오세훈 민주당 후보보다 더 강한 적수"라고. 경선에서 이겼다면 본선은 해볼만했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다른건 제쳐두고 예비후보의 철학만큼은 참 맘에 들었는데..."라며 아까워한다. 아직 남은 에너지를 다 소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었다.




홍대역 부근에 위치한 그의 선거사무소는 조용했다. 소식을 들었을 터, 절간에 들어선 듯한 고요함과 무거운 공기가 감돈다. 역시 조심스러워진다. 그래도 안면있는 이들은 나를 보더니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 줬다. 
침묵은 누군가 말문을 열면서 살짝 깨졌다. 담소 중에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린다. 자칫 침울할수도 있던 분위기는 그렇게 조금 밝아졌다. 모니터만 주시하며 말없는 이도, 맥이 풀린듯 엎드린 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움직이고' 있었다. 한데 모여 엷게 웃어보이는 사람들.




한켠에 쌓인 자료들. 한 사람은 "이제 짐 꾸려야죠"하고 고개를 내젓는다. 치열했을 지난 수 달의 흔적이다. 그 한켠의 것들은 그들 마음 한켠에 있어 그동안 "살아있었다"란 감흥을 제공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울에 누가 색연필로 '2010km'를 그려놨다. 이계안 예비후보가 걸었던 서울 거리다. 지난해 7월부터 그는 서울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민생현장을 체크했다. 그들이 거울을보며 수없이 되뇌었을 일종의 주문이었다.


 

조금 어수선해 보이는 책상 위, 이젠 거리에서 더 돌릴 일 없을 홍보자료, 그리고 피곤함을 달래줬을 박카스 몇 병. 뭔가, 캠프에서 떠도는 숱한 번뇌와 상념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다.

함께 들어섰던 수행비서는 연락을 받고 다시 예비후보자가 있는 장소로 나선다. 경선은 끝이 났지만 아직은 할 일이 남았나 보다. 뭐라 위로해 줄 이야기가 없나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완주하지 않았느냐"고 말한 나, 스스로에게 참 어줍잖은 위로였노라고 되묻고 말았다. 그는 한번 웃고선 다음에 보자며 자릴 나섰다.



'디데이 27'에서 멈춰버린 캠프의 발걸음. 가만 생각해보니 이들에겐 최종목표에 앞서 저 카운터가 제로에 닿을 때까지 가 보는 거, 그것에 대한 희망과 부담이 더 컸겠다 싶다.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한 수행비서의 한숨을 저기서 한번 더 되새김해 보는 것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선거가 끝난 직후의 사무실에 들어가 보는 것은 젊은 날의 좋은 공부라고. 승자의 샴페인도 의미있지만, 패배한 자의 사무소에 흩어진 서류더미를 보는 것도 참 좋은 공부라고 말이다. 오늘 내가 이 자리를 청한 것은 무의식중에 떠올린 그 공부 때문이었을까.

막상 내가 찾아와 본 광경은, 그 책에서 말한 것처럼 서류가 흩어져 있다거나 모두가 빠져나가 정적이 감돈다거나 하는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경선이 아니라 본선이라면 또 달랐을까? 엷게나마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이 쪽이 더 낫지 않겠나 생각했다.

인사하고 나서려니 정책 비서관 한명이 마중나와 준다. "향후 계획은 있느냐"고 물으니 "일단은... 모르겠어요"라고. 그러고보니 수행비서는 "잠시 쉬고 싶다"고 했었지.
일단은 휴식. 승패를 떠나 완주한 이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다. 우선은 좀 쉬길 바라며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승자의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어쩜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고 또 아무래도 좋을, 그러나 승자의 캠프에선 미처 깨닫지 못할 무엇인가가 남겨진 패자의 캠프 모습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