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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현충원에서 본 김대중, 박정희 참배객들간 갈등

현충원에서 본 김대중, 박정희 참배객들간 갈등




13일 서울 국립현충원.

"항상 이렇듯 참배객들이 있나요?"

"글쎄요."

우연찮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일전에 화재사건이 발생하고서 논란이 됐던 그의 묘소는 다시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생전 그를 따르던 이들이 모여들었고 이희호 여사가 몸소 이곳을 찾는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여기서 몇발자욱 안 떨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여러 대의 버스가 그 앞에 서 있던 걸로 봐서 단체로 참배라도 온 모양이다. 양 쪽 다 같은 날 같은 일시에 참배객들이 모여드는 걸 보고서 '평소에도 이 두 전직 대통령 묘소엔 인적이 끊이지 않는가' 궁금했던 거다. 

사실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살아 생전 서로의 인연이 얽히고 섥혔던 두 사람이다. 양쪽을 따르던 이들 역시 지금껏 정파, 지역, 그리고 그 악연의 답습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 않았던가. 혹여나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마주치다가 마찰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됐다.

"너 뭐라고 했어?"

갑자기 여기서 성난 목소리가 나온다. 묘소 아래 길목으로 시선을 잡아 빼니 웬 남자 둘과 여기 사람들하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 쪽 참배객인 모양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서로 붉으락 푸르락한다. 여기선 "너 방금 뭐라고 하고 지나갔냐"며 언성을 높이고 저기선 "그냥 가만있으면 될 것이지"라고 싸움이 붙는다. 대충. 무슨 소리가 흘러나왔는지는 알것 같다. 저 쪽에선 여기로 올라온다 만다 하고 이 쪽에선 "무식한 것들"이란 욕설이 흐른다. 현충원서 이런식으로도 실랑이가 벌어진다.




묘역 앞에 서 있는 비석. 그의 생전 바람이 오늘따라 더 두드러져 보인다. 김 전대통령은 통일의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아직 우리들끼리도 뭉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충원서 멱살 잡기 일보직전까지 갈등이 치닫는 별 해괴한 쇼가 다 벌어지는 현실이다.




옆에 아는 지인이 그런 말을 한다.

"두 영웅의 이야기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건지..."

모른다. 하지만 설마 그 두 영웅이 이렇게 인근에 묻힌 뒤에도 참배객들끼리 승강이 벌이는 걸 바라보고 싶어 하진 않았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랗고 예쁘다. 구름에 여과된 햇살이 줄기가 되어 빛난다. 밑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풍경이다. 구름은 서로 떨어져 있음으로 저리도 멋진 광경을 펼치는데.

언젠가 아는 정치인 한 사람이 그랬다. "정치인들이 여길 찾아오면 한나라당은 박정희 전대통령 묘소만 참배하고 가고, 민주당은 김대중 전대통령 묘소만 참배하고 가는데, 사실 이게 뭔 짓이냐"라고. 세월이 지나도 안 변하는 모습들, 여기에 하나 있다.




돌아오는 길, 정문 앞엔 현장답사를 온 듯 학생들이 어울리고 있다. 꽃들은 만개했고 신록은 푸르다. 서로가 조화롭다. 기성세대에겐 결여된 무언가가 여기서 해갈하듯 보여진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따져보면 저들과 별로 세대차이 안 나지만, 세대의 어느 선에선가 반드시 끊어야 할 답습의 버릇 하나를 확인하고 돌아간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