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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한나라당 덕에 고어(故語)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덕에 고어(古語)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라 하면 본디 선비, 즉 공부하는 사람을 떠올리는게 이상적이겠지요. 청백리는 말할 것도 없고. 뭐, 요새는 그 조차 일종의 판타지(?)처럼 굳어가는 것 같아 아쉽지만 말입니다. 탐관오리, 國K-1... 이런 거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막장인건가요, 아님 다들 동감들 하시는지.

그런 면에서 요즘, 세종시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간의 내홍, 자세히 말해 '박근혜와 그녀의 기사단'이 주류계와 다투는 모습은 그 싸움 자체를 떠나 또다른 면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오, 이 사람들 학식 있는 사람들이긴 하구나... 하고 말이죠.

그래서 요새 한나라당이 좀 달라 뵈기도 합니다. 그간 '차떼기'라는 오명부터 떠올리던 본인, 그래도 많이 배운 벼슬아치들은 맞구나 싶은 게 새삼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여겨집니다.

'미생지신'이란 말이 한동안 회자됐죠. 그리고 '이목지신'이란 말도. 그러더니 이번엔 증자의 돼지입니콰...

소싯적 고사성어 좀 배웠다는 저도 이같은 고어 내지 고사는... 밑천 다 드러내는 고백입니다만 잘 몰라요.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봤습니다.

먼저 1라운드라 할 수 있는 미생지신 편부터 살펴보죠. 본디 뜻과 어떻게 해서 작금에 조명받게 됐는지 말예요.

지난 14일, 정몽준 대표가 맨먼저 이 말을 인용했다죠. 박근혜 전 대표의 원칙과 약속이행 주장을 비난하고자 가져다 썼습니다.

미생지신이 무어냐 살펴봤더니 대강 이래요.

춘추시대, 미생이라는 남자가 있었죠. 만나고자 한 여자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고자 다리 밑에서 기다렸는데 홍수가 찾아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지요. 그러나 이 남자는 그 여자와의 약속만 생각하며 자릴 지키다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사기의 소진전에서 나옵니다. (다음 국어사전 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A015037900&query1=A015037900#A015037900)

...슬픈 순애보구려.

허나 정 대표가 박 전 대표에게 이 구절로 비난하고자 함은 그 남자의 미련함을 강조해 보이고자 함이었지요. 그러니까 그 뭐냐... 세종시 원안 약속 이행이 다리 밑에서 죽을 때까지 약속을 지키려는 것과 같다는 말이려나.

박 대표는 기 싸움에서 지지 않았죠. 곧장 박근혜 대표는 "미생이 옳았던 사람이 아니더냐"고 반박했습니다.

'고지식'하다는 것을 한 쪽은 '미련퉁이'로, 또 한 쪽은 '진정한 순정'으로 해석했구료. 

그런가 하면 비슷한시기 터져나온 이목지신은 또 뭐더냐. 미생지신 정국에서 박 전 대표를 지원사격하고자 친박계 유기준 의원이 꺼낸 고어입니다. 건네는 미생지신에 화답하는 이목지신. 간만에 선비들의 학구적 토론을 보고 계십니다.

이목지신은 사기의 상군열전 중에 나옵니다. 진나라 효공 때, 재상 상앙이 법을 제정한 후 백성들의 신의를 얻고자 9미터 크기의 나무를 세우고 이를 옮기는 자에게 십금을 주기로 했다고. 그러나 옮기려는 자 없어 상금액수를 오십금으로 올렸고 그제사 옮기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곧바로 약속한 금액을 주어 약속을 지키니 이를 본 백성들은 그를 신뢰했고 곧 공포된 법도 잘 지켰다 합니다. (다음 한자사전 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_idiom.do?q=235942) 국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의 중요성을 지적하고자 인용한 말입니다.

그러더니만 이젠 또 증자의 돼지? 박근혜 전 대표가 즐겨쓴다는 이것은 출처가 한비자입니다.

공자 제자 증자 아시는지? 난 이제사 가물가물 기억나는것 같으이. 공자 제자 증자는 어느날, 시장에 따라나서려는 아이를 달래고자 아내가 "돼지를 잡아 먹여줄터이니 보채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약속하는것을 지켜봤습니다. 물론 이 약속은 거짓말이었죠.

...시장 안 따라오면 플레이스테이션3 사줄게 하는 약속이나 진배없군요. 솔직히 지키기엔 너무 벅차다, 이거.

자식의 아비는 이러한 어미의 거짓말을 용납치 아니하였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미를 믿지 않게 된다"고 나무랐고 결국... 일가족은 포식했군요. 어머니로선 눈물의 포식. 오오, 이제 기억난다 이 옛이야기.

...이런 아버지 참 바람직하네.

자. 이 말에 청와대는 누가 총대를 매고 반박을 했을까. 26일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원음방송 시사1번지 게스트로 나와 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차라리 부모가 아이에게 사과한 뒤 책을 사준다던가 하는 차선책으로 달래는게 낫지 않았겠느냐"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그 뭐냐. 이건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니라 증자한테 하는 말인데?

그는 "약속이 중요한 건 동의하지만 그래서 대통령이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론을 폈습니다. (관련보도 뉴시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02&newsid=20100126113913533&p=newsis)

한편, 미디어다음에 걸린 이 뉴스엔 210개의 댓글이 달린 가운데 네티즌들,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럼 거짓말 해도 괜찮은가?" - 새옹지마 님
"사과냐 사기지?" - 푸른하늘 님
"국민이 아이?" - jabro 님
"앞으로 절대 공약하지 마라" - 해망산 님

고해성사던 뭐던 간에, 대통령이 사과하면 다 되는 듯 돌아가는 시대. 촛불집회 때도 그랬지요? 대국민 사과하고 "이젠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았냐"던.

그 때 네티즌들 즐겨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라 꼴 참 잘 돌아간다"라고.

본디 감탄하며 시작한 이야기건만, 결국은 어째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높으신 분들이 옛말로 난상토론을 벌이면 국민은 이로서 때 아닌 학습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조낸 비웃네요.

표심 잃을까봐 거짓말을 한 것이라지요? 첨부터 국가와 국민의 약속이라는 철칙이 깨진 것으로 출발한 터, 쉬울리가 있나. 간만에 격 있는 선비의 말들을 확인하고 있건만, 그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기본 틀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 위로 떠다니며 빛을 잃는게 안타깝구료.

담번엔 약속이나 거짓 같은 기본틀 말고, 어느 편이던간에 국민들이 박수치며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는, 진정 그 고어들 만큼이나 격있는 영역에서의 지적인 전쟁을 볼 수 있길 고대합니다.

약속지키고 안 지키고 문제는 사실 지식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 문제잖아효.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