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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세트를 선물받고 감동먹은 가난한 귀향자의 사연

추석 선물세트를 선물받고 감동먹은 가난한 귀향자의 노래


어릴 때 꿈에서 깬 것을 확연히 느끼는 추석이다. 올해도 그렇다.
어릴 적엔 알게 모르게 은근히 포부가 크다. 설고연대 말곤 대학이 없는 줄 알았고, 스물셋엔 빨간 스포츠카를 몰 줄 알았다. 찐한 사랑도 당근 할 줄 알았고. 뭐, 여기까진 다들 공감하지 않남?

...하지만 철인28호 조종기를 손에 얻어 인터폴로 활약할 거란 망상에 젖은 건 평범의 범주로 용서가 안 되려나. (꽤애애액)

조금 머리가 더 굵어졌을 때, 난 서른 즈음에 뭘 하더라도 그럭저럭 여유 있는 삶을 살 줄 알았다. 추석에 귀향길을 오르면 당근 자가용을 끌고, 선물세트 한가득 밀어넣은 트렁크를 걱정하며 고속도로 정체길에서 라디오를 들을 거라 생각했다.

개 뿔. (^^;...--;...ㅜㅜ;)

올해도 빈손으로 귀향길에 오른다. 그래도 귀향할 수 있는건 행복한거잖네라고 휘파람을 꺼내 불며.

추석빔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인터넷쇼핑몰을 둘러봤지만 그만 두었다. 한장 오천팔백원하던 카고바지 특가전은 꼭 필요할때 죄다 증발하더라. 그래도 좀 차리고 가야지 하고 생각하다 이년전 이모가 사다 준 뒤 안 입고 모셔뒀던 리바이스 한장의 택을 뗐다.

추석선물세트는 여기저기, 집 앞 가게에서도 진열해 놓고 가져가길 기다린다. 허나 잠시 눈길만 줬을 뿐, 선뜻 손이 안 간다. 삼년전 출퇴근 직장생활 할 때 받았던 비누, 샴푸 청결 세트를 가져다 준게 유일했었나. 못 할건 없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 수중에 여유가 없는 것 이상으로 씀씀이를 인색케 한다.

그런데 말이다. 출발을 앞둔 어제 저녁, 뜻하지도 않은 행운을 얻었다.

저녁마다 공부하는 곳이 있다. 그 곳에서 우리들, 학생들에게 선물세트를 하나씩 나눠주는게 아닌가.



학원으로 친다면 '원장' 격인 실장님의 선물이다. 이쯤하면 감동 안 할 수가 없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겉봉투를 볼 때마다 거듭 고마울 따름이다.

별거 아닌것에 너무 소박하게 감격하는 거 아니냐 물을지 모른다. 허나 내겐 큰 은혜다. 적어도 어릴 때는 당연시 여기던 설정 하나, 그냥 그만두려고 했다가 다른 누군가의 배려로 이루게 됐으니까.

자. 나도 이제 귀향길에 오른다. 가난한 자의 귀향, 그래도 갈 수 있는 집이 있음에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며. 행복의 근원은 실상 빈부를 넘은 저 곳에 있으니까.

나도 간다. 고향앞으로. 언젠간 추억할 수 있을 가난하던 날의 기억을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