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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불났던 집 그을린 복도 닦아내는데 자그마치 6개월...환장한다

불났던 오피스텔, 복도 반년만에 닦아낸 사연... '암투'(?)  

7개월전, 아슬했던 기억이 있다. 살고 있는 오피스텔 같은 층 옆집(정확히 하면 옆의옆의옆의집?)에 불이 나서 문만 열면 너구리 잡는 듯한 통로가 펼쳐지던 순간이다. (당시 글 http://kwon.newsboy.kr/1114)

꺼먼 연기가 복도를 메웠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여기저기를 물로 적셨다. 불이 붙지 않았지만 연기와 물바다의 조합만으로도 복도는 엉망이 됐다.

다행히 불은 꺼졌다. 인명피해도 없었고 다른 집이나 복도에 옮겨붙지도 않았지만, 해당하는 집 한칸은 아수라장이 됐고 같은 층 일자형 복도는 새까맣게 그슬려 버렸다.  당시 상황은 아래와 같다.

 

헬게이트가 따로 없다. 이것이 지난 2월의 일.

그리고, 지금은 보수해 이렇듯 깔끔하게 바뀌었다.

 

바닥 옆면 천정의 사면에 낀 검댕을 닦아내고 바닥도 새로 깔았고 색도 다시 칠했다.

그럼 이제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느냐. 맞다. 이젠 상콤하네. 반년동안 헬게이트 주민으로 오가는것 기분 좀 그랬거든.

뭐, 반년?

맞다. 한달전에 이렇게 변했으니깐, 6개월만에 보수된거다. 2월서부터 8월까지 겨울, 봄, 여름 지나 가을 초입까지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오피스텔 통로가 몇 킬로미터라도 되느냐. 그럴 리가. 관리업체가 뉴욕지사서 날아왔느냐. 아니요.

이거 놓고서 암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상황은 이렇다. 여기는 70세대가 넘는 주민이 사는 오피스텔인데, 반상회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십년 이상된 건물이라 전체를 총괄하는 입주자 대표가 있다. 난 불난 날 되서야 첨 알았다. 당일날 이 층에 와서 죄다 죽을 뻔 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아저씨였다.

월 관리세 지로에 꼬박꼬박 관리업체 운영비용도 찍히겠다, 화재보험료도 찍혀 있겠다, 해서 이게 곧 있으면 해결될 줄만 알았다.

함흥차사인거다. 애꿎게 경비인 아저씨만 교체돼 나갔다. 나 말고 같은 층 다른 주민들도 온순해서 마냥 기다리기만 한 건지, 그렇게 세월만 흘렀다. 그러다 지난 6월. 거진 넉달이 되서야 웬 사람들이 전화를 하고 벨을 누르기 시작한다.

먼저 앞서 얼굴 한 번 봤던 대표자. '주민단 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아저씨는 복구공사가 안 된 것이 '총무' 때문이라고 한다. 워낙에 두서 없이 말을 꺼내 한시간 이상을 이어가는 양반이라 해석하는데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자기는 오피스텔 준공 원년부터 살았던 사람으로 주민 대표로서의 일을 오래도록 해 온 사람이다. 헌데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중, 화재가 일어나기 딱 일주일 전 이사온 어느 젊은 사람이 자기 부탁을 수락해 '총무'로서 함께 일을 시작케 됐다.'

자세히 이야기 듣진 못했지만 총무라고 하니 아무래도 금전관리를 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각 세대가 낸 오피스텔 관리비 중 특수상황이 있을시 꺼내도록 준비된 상시비용을 관리한다나 뭐라나.

'헌데 일을 맡자 마자 나하곤 상의도 없이 여기저기 등을 갈고 램프를 바꾸더라. 그리고 자기 업적으로 떠벌리는데 여기 들어간 비용이 자그만치 8백만원이다. 많이 꿀꺽한 거다.'

일단 이 사람 말에 의하면 그렇다. '엄청 해 드신' 정도가 아니라 이건 뭐... 정치인감이네. 그리고 여기서부터 화재 복구 지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작자가 자기가 잘 아는 관리업체로 바꾸자며 독단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금방 문제의 복도를 닦아냈어야 했는데 지난 세월 함께한 업체가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그가 막았다. 자기가 미는 업체로 바뀌면 그제사 그곳을 통해 처리하잔다.'

뭔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는 "자기는 당연히 싫고, 주민투표로 붙여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관리업체 교체 여부와 복구공사는 물론, 주민대표단도 모두 표결(투표 대신 서명)에 붙이자는 거였다. 그는 서명해달라며 서류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회장'님 말에 의하면 '그 죽일 놈의 총리'가 뜬금없이 찾아온다. 그는 업체를 바꾸는 데 동의해 달라며 반대로 또 서명을 요구해 온다.

역시나 사람마다 이야긴 다르다. 그는 "이 곳에 '회장'은 애초부터 없다"며 대표자의 존재를 부정했다. 이 사람 말에 따르면 그 대표자는 자기 존재부터 거짓말한 셈이다. 한편, 그가 '8백만원짜리 치적'(?)이라 비아냥된 그것을 내세우며 "그것도 내가 다 했는데, 그 사람은 한게 뭐냐"고 주장한다. 한 쪽은 "그거 내가 다 했다"고 들이밀고 또 한 쪽은 "아, 그거? 8백만원이나 들인거야"하고 주장하는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 애시당초 그들의 암투엔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빨리 복도만 닦아주면 된다. 저들땜에 지옥 고개 주민으로 몇달씩 사는 구나 하는 헛웃음만 나올 뿐. 싸울때 싸워도 일단은 우리 일부터 어케 해결해주면 안 돼? 그게 안 돼?

해서 내가 서명한 건, 먼저 찾아왔던 대표자가 꺼내든 서명기록부 두어 개 중 '기존 업체를 통해 즉시 복도를 닦아내도록 한다'는 것, 그거 딱 하나였다. 그가 내밀었던 대표단 선거 여부는 안 한다고 했다. 역시나, 이후 반대편에서 찾아왔을때도 서명지를 들이대길래 "사인 안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후자의 경우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이유는 업체를 이제와서 다시 바꾸고 뭐하고 하는동안 또 얼마나 세월이 가야 하느냐 하는 한숨이 가장 큰 것이었다. 대체 복도 한번 닦는데 몇달을 잡아먹는거야?

계속해 종용하는데 난 함부로 서명 안 한다고 거듭 거절했다. 저기도 여기도 다 안 할거라고 했다.(물론 밝혔듯 복도 바로 복구하는 사안 하나는 했지만) 급기야 양 쪽은 "그럼 여기도 저기도 다 요구하는대로 서명 다 해 달라"고 요구해 온다. 환장하겠네. 이럴거면 서명의 가치가 어디로 가는지.

이권다툼이 나랏일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듯 조그마한 주거집단에서조차 벌어지는 것에 고개를 젓는다. 싸움이 번질 때마다 서로 주민 최우선, 고객 최우선, 시민 최우선, 국민 최우선을 외치는 것에 실소부터 터뜨려야 하는 사람들. 결국 그들은 최우선 대상이 아니라 발목 잡힌 '피해자' 밖에 더 되나.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