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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늦은 밤, 가을 풀벌레 소리를 찾아 동네를 헤매다

늦은 밤, 가을 풀벌레 소리를 찾아 헤매다


서울 한 복판의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밤. 불면증에 시달리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이젠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때, 갑자기 귀에 젖어오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인가? 아님 다른 풀벌레 소리?




"......"

주섬주섬 옷을 입고, 동영상기능이 탑재된 하이엔드 카메라를 들고 정처없이 밖으로 나갔다. 가을 풀벌레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정문을 나서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풀벌레들의 합주 소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진원지가 있음을 함께 느꼈다. 

가을이 오는 소리. 과연 마에스트로는 어디에 있는가. 거리를 걷다 소리가 멀어지는 걸 느끼고 멈칫. 방향을 바꿔 돌다보니, 아하. 여기인가. 점차 가까워지는 음색.





이 안에 마에스트로가 있다


인기척에 잠시 소리를 거뒀다가도, 곧장 속개되는 연주. 괜시리 미안한 마음을 안고서 자리를 뜨게 만든다.

물론 이 상권지역 안에 숲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이 작은 생명체들은 시멘트 바닥 위에 놓인... 그저 한뼘만한 녹색지대만 있어도 연주에 문제가 없나 보다. 흙과 풀과 작은 화분만 있어도 그 곳에선 어김없이 그들의 '목소리'가 악기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번져가는 하모니, 절묘한 앙상블. 서울 밤하늘 아래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낭만이다.

좀 더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는 어디에 있을까. 가까운 놀이터를 찾아 몇 발자욱 걸어봤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가을이 왔음을 축하라도 하듯 멋지고 웅장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커다란 나무 곁으로 다가가면 보다 볼륨이 커진다. 아스팔트 위 작은 녹지공간의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그것은, 무미건조했던 도시민을 한순간 센티멘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름하야, '가을이 오는 소리'다.

놀이터만은 아니다. 반대편 작은 잡초뜰 뒤에서도, 공사장 한 켠의 귀퉁이에서도, 쓰레기봉투가 쌓인 골목 뒤편에서도 저마다의 파트가 나뉘어져 훌륭한 서라운드를 연출하고 있다.

청량한 기분을 얻고서,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온다. 이제 여름이 가는가 했던 순간, 어느덧 우리 곁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저, 지금껏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내가 너무 무신경했던 게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