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지폐에 찍힌 "예수천국불신지옥" 불쾌하다

지폐에 찍힌 "예수천국불신지옥" 불쾌하다 

 
 
지난 주말, 특식으로 뭘 먹을까 하다 중국집에다 탕짜면 하나를 주문했다. 배달도 빨랐고 배달원도 친절했다. 그저 기분좋게, 맛있게만 먹어주면 되는 상황.

그러나 무심코 눈길이 간 거스름돈이 즐겁던 기분을 지워버렸다.

 



뭐하는 짓이야 이게?

보기 싫어 뒤집었다. 그러나 얼레? 뒤에도 확실한 마무리가...


 

제대로 확인사살을 시켜주시는군 그래. 이름모를 열성 신자여. 비꼬는 말인건 알지?

지폐가 도화지냐? 제 멋대로 스탬프 쾅 찍게.

난 종교인도 뭣도 아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저런 만행은 곱게 보지 않았을 터. 그래, 선교가 아니라 만행이다. 내 수중에 들기 앞서 거쳐왔던 이들 중 그 누군가에게 '낙인'이 찍혀버린 지폐가 불쌍해 보일 따름이지.

낙인이지 뭔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급적 원판 그대로 보존되며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과 여행할 천원짜리 지폐 한장이 보는 이에 따라서(아마 대다수일 것이다) 보기가 매우 그런 모습이 돼 버렸다.

난 이렇다하게 믿는 종교가 없지만(그렇다고 딱히 거리끼지도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종교를 좋아한다. 어떤 교파나 교리를 떠나 "착한 일을 하라"는 공통된 가르침은 절대적 공감의 성역이요, 무언가의 의지가 필요한 인간에 필수요건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런 일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같은 믿음을 지닌 신자들에게도 '저도의 안티'밖에 안될 역효과임을 어째서 모르는가. 하물며 통용화폐를 저 꼴로 만들다니. 다시 말하듯 만행이지, 저건 선교도 뭣도 아니다.

문방구에서 준비물 사 왔던 아이가 이 지폐를 들며 분명 엄마에게 물었을 거다. "엄마, 불신자가 뭐야? 안 믿으면 지옥 가?"라고.

손님에게 건넬 잔돈 하나하나에도 신경쓰던 식당의 매니저, 순간 멈칫했을 것이다. 혹여나 카운터에서 꺼내들다 손이 멈췄을지도 모르지.

무슨 자기 가게 쿠폰에 스탬프 찍는 것도 아니고, 이런식으로까지 믿음을 강요하고 싶나? 이렇게 하면 이슬람교인(한국에도 분명 있다)이, 혹은 불교나 가톨릭인이 개종을 생각한다고 믿나? 무신론자가 찾아올거라 생각하나? 아님 진정 종교인다운 이들의 이미지를 깍아내려는 고도의 안티 내지 저도의 까인가.

난 불신지옥이란 말 자체를 경멸한다.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은 선교도 권고도 아니요 협박이나 진배없는 결례다. 가뜩이나 불쾌한 말이건만 그걸 또 만인이 사용하는 돈에다 찍어버렸다. '지폐훼손', 그 이상의 표현은 필요하지 않다. 타인의 종교, 혹은 유무의 권리조차 인정치 아니하고 게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화폐까지 제 멋대로 엄하게 만드는 자,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려는 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신사적으로 부탁한다. 같은 일을 겪은 어느 네티즌의 부탁말을 빌려서.

"부디 진정한 문화인, 종교인이 되어 주세요"

그리고도 혹여나 토 달지 모르니 물어본다.

"지폐 훼손하면 죄인거 알지요?"

뚜렷한 법적 처벌 근거가 없어도 수많은 도의, 지어선 안될 죄를 지적하는 게 종교적 가르침 아니던가. 내가 종파를 초월해 종교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