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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포스 우승팀 이스트로, 회견 중 공중분해시킬뻔한 사연

(스타도 한번 못해본) 나의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 답사기 (8)
스페셜포스 우승팀 이스트로, 회견 중 공중분해시킬뻔한 나? 조현종 선수, 나를 긴장시켰어


이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기자수첩이 되겠다. 정확히 일주일전의 그 감동을 아직도 만끽하고 있을 그 선수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또한번 웃어젖히지 않을까.

부산 e스포츠 페스티벌에서 첫 날을 장식한 것은 스페셜포스의 결승전. 원년우승팀을 가린다는 점에 있어 스페셜포스사에선 한층 더 뜻깊은 일전이었다. 결과는 리그 1위 KT를 격파한 2위 이스트로의 우승. 수비와 공격조를 번갈아가며 최종 생존자가 나오는 팀이 승리하는 이 슈팅 게임은 문외한에게도 이해가 빠른, 매우 관대한 게임이었다. 

난 스페셜포스를 잘 모르지만, 현장에서 보여지는 중계는 매우 재미있었다. 직접 해보지 않았기에 손맛이나 게임성 등은 알 수 없어도 격앙된 사회자들의 중계나 팀원들끼리 격려하는 외침 등은 꽤 볼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한번도 이 게임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전문적인 요소는 놓칠 수 밖에. 당장 주워들은 용어는 '1대2 세이브' 정도?

객관적 전력에서 다소 불리하다던 이스트로가 접전 끝에 우승컵을 거머쥔 뒤, 프레스석 앞에 이들이 모였다. 기자들과의 우승 회견이 마련된 것.

다시 말하지만, 난 기자단 중에서 질문하기가 참 뭣한 유일한 멤버였다. 상세하게 경기를 들춰내며 당시 상황을 묻는다던지 할 수가 없었던 것. 그래도 두 번에 걸쳐 질문을 던졌으니 나름 애 썼다고 할지, 아님 욕 봤다고 해야 할지.

첫번째 질문은 이거였다.

"가장 아찔했던, 위험했던 위기의 순간을 꼽는다면요?"

회견에 앞서, 우승 소감을 무대에서 밝힐 때 정소림 캐스터는 감독에게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느낀 순간"을 물었던 바 있다. 해서 내가 무난하게 물을 수 있던 질문은 저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평범하면서 무난한 질문이었다. 주장인 이호우 선수는 4세트를 내주고 마지막 5세트에 임할 때 "어쩜 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1세트를 이기고 2세트 지고 3세트 다시 이기고 4세트 다시 지면서 분위기가 상대에 넘어간데다 5세트 전반에서도 우리가 3대4로 3점밖에 못 낸 것이 불안했다"는 것. "자신들은 공수 밸런스가 역전된 팀이라 공격에서 우세한데 공격을 담당한 전반에 끌려가고 말았다"며 당시엔 사실 불안했었음을 밝혔다. 역시나, 답변에 있어서도 노멀하고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두번째 질문이 문제였다. 회견이 거의 끝나갈 무렵, 프레스석에서 질문거리가 똑 떨어져 잠시 침묵이 흐르던 순간이다. 그 때 난 한번 더 마이크를 요청했는데 이번엔 조현종 선수를 직접 지목해 물었다.

그는 내가 여러모로 인상깊게 본 선수였다. 3세트에선 1대2 상황에서 세이브를 잡았고, 4세트에선 홀로 남아 상대편 서너명을 상대하다 결국 장렬히 산화하던 모습이 서너번에 걸쳐 이어졌다. 실질적 도움으로 이어질때나 그렇지 못하고 끝날때나 할 거 없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유독 많았던 선수였다.

난 그에게 이를 언급한 뒤 "혼자 고군분투할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전문적 질문은 안되지만, 그래도 문외한에 있어선 나름 재밌는 상황 질문이라 생각했다.

조현종 선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무나 솔직한 대답을 꺼낸다.

"그 때 팀원들이 미웠고요..."

"푸핫"

프레스석 기자들에게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난 애써 같이 웃었지만 속으론 뜨끔했다. '이거 설마, 내가 이간질시킨 셈 아니야?' 하면서 말이다.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현종 선수는 연속해서 말을 잇는다.

"왜 다 죽고, 나만 남겨둬서 나 혼자 이러고 있어야 하는 생각 들었고요..."

"하하하"

기자들은 계속해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데, 그의 말이 끝이 아니었다. 팀원들이 죄다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내 질문에 릴레이 답변을 시작하는 것. 처음엔 이호우 선수가 맞받아친다.

"그 때 팀원들 다 죽고 현종이 혼자 남은 건 우리가 못해서가 아니고요, 현종이가 앞에 안 나와서예요."

"우핫"

기자석에선 연신 웃음이 터진다. 다른 선수들도 하나 하나 같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게, 연습할 때 우린 원래 현종이가 앞에 나서서 싸우고 우리가 뒤에서 하나하나 맞춰 잡는 작전을 쓰거든요. 그런데 그 때 현종이가 앞에 안 나오고 계속 뒤에 짱박히는거예요."

난 수첩에 메모를 하며 미소를 띠웠지만 속으론 내심 곤란했다. 점차 이야기 진행이... 그렇다. 이건 완전히 '팀의 공중분해'였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 '기껏 우승했더니 축하 자리에서 찢어져 버리는 우정' 뭐 이런 타이틀로 내일 기사가 뜨는 거 아닐까 싶은 거였다.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은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현종인 짱이예요."

"푸하하하"

기자들이 뒤집어진다. 한편에선 "진실성이 안 느껴져"라 고개를 젓기도. 비게임 기자의 한마디가 우승회견 자리를 실소 한마당으로 변질(?)시킨 시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정말 우정에 금 가는 소리를 내뱉은 건 아니다. 그들은 뒷풀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끈적한 우정을 과시했다는 후문을 이 자리를 통해 전한다. 그저, 게임 대회를 처음 와 본 기자의 돌발 질문 하나가 뜻하지 않게 우승 회견을 순간 즐겁게(?) 만든 일화다.

아쉽게도, 다음 날 기사를 살펴보니 이 질문과 답변은 우승소감 소식에서 죄다 누락되어 있더라. 첫번째 질문은 한 신문사를 통해 전해졌던데 말이다. 아마도 함께 있던 기자들에 있어 나의 그 질문은 역시나, 쓸데 없는 소리였나 보다. 즐겁게 웃던 것과 기사의 가치는 별개의 것이었나. 물론 나 역시 우승 소식을 전하는 당시 기사에선 이 이야기를 누락시켰다.

그렇다, 이 글이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를 전하는 언저리 소식일  것이다. 그냥 묵혀두긴 아까워서 말이다. 이 유쾌한 선수들을 언젠가 또 한번 만난다면, 그 땐 보다 유익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물론, 그 땐 스페셜포스에 대해 어느정도 전문지식을 갖추고서.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