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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에반게리온의 2014년에 MP3는 없다

[애니, 현실, 시간차 읽기] 1. 신세기에반게리온
- 2014년, 워크맨은 건재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에반게리온 : 서 - 포토 게시판 중 스틸

 

1995년 등장한 저패니메이션의 금자탑, 신세기 에반게리온.
2쿨, 26부작으로 6개월간 TV 방영된 이 작품은 일본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화제작으로 사실상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 국내에서도 지대한 관심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리뉴얼되며 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실험작을 대중적 인기로 연결시키는 마법의 군단, 가이낙스의 작품 중에서도 첫째로 꼽히는 대표작으로 애니메이션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근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SF로봇물. 정체불명의 거대생물체 '사도'와 이에 대항하는 네르프, 그리고 그들의 인류결전병기 에반게리온이 벌이는 시가전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에 탑승하는 주인공 소년, 소녀의 성장과 어른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내면을 그려내며 또다른 면에서도 주목받았다. 

또 하나 이목을 끈 점은 근미래의 문명을 꽤나 '담백하게' 그렸다는 데 있다. 장르상 당연히 등장하는 '로봇'(정확히 말하면 로봇이란 정의도 조금은 빗나가는 점이 있다) 에바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제작 및 방영 당시 시점의 시대상과 별 차이가 없는 시대적 배경이다.

방영은 1995년, 작품 속 시대는 2014년.
20여년이란 시간은 여러모로 감 잡기가 애매한 시간차다. 21세기를 5년 앞두고 세기말과 신세기의 분위기가 공존하던 당시는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말이 어느때보다 크게 다가오던 때가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이질적인 공간을 예상하기엔 또 너무 호흡이 짧고... 

결국 제작진이 선택한 것은 현실과 별 차이 없는, 약간 세련미가 더해진 정도의 세상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나무로 된 책걸상 자리로 간다. 전철 속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고 냉장고나 세탁기, 레토르트 식료품과 캔맥주 등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저 시멘트 건물이 좀 더 뾰족해졌을 뿐.

방영 후 14년이 지나 2009년. 이젠 방영시점보다 저 작품속의 2014년에 훨씬 가까운 시간에 이르렀다. 5년을 앞둔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시대관은 제대로 적중했다. 지난 100년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진 세상이지만 90년대와 2000년대의 그것은 과거의 격동만큼 큰 변화가 일진 않았잖은가.

그러나, 딱 하나. 저거 하나만큼은 시대흐름에서 놓쳤구나 싶은 게 있으니...

   


출처 다음 영화 에반게리온 : 서 등록 예고편 동영상(아래) 중 한 컷 캡처


테이프가 돌아가는 워크맨. 신지가 애용하는 아이템으로 타인과 단절된 고독함을 보여주는 소재기도 하다.
그러나 작품을 분석하는 것과 별개로 이젠 새로운 시점을 도입하게 됐다. 현재 우리에게 있어 어느샌가 생소한 물품이 되지 않았는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점가판에서 테이프 보기가 편의점 간판 보기보다 더 쉬웠지만 90년대 말에 들어선 CD플레이어의 입김이 한결 더 강해졌고 잠깐 싱글CD와 MD가 반짝하는 듯 하더니 2000년대 들어 MP3라고 하는 완벽한 차세대 주자가 등장해 버렸다.
현재의 아이들에게 이를 보여주면 "저 형아 어학공부하는 거야?"하고 대뜸 물을 상황. 만일 신지가 워크맨 대신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다면 위화감은 없었을지도. 제작진이 미처 예상 못했던 소리매체 기술의 격변이었나.
반면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카드키는 아직도 먼 미래의 일처럼만 느껴지는데.



스페셜 예고편 - 출처 다음 영화 에반게리온 서 동영상 게시판


북적대는 지상철 안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 세탁방 이야기와 라면 파는 포장마차. 빽빽한 시멘트 숲에선 여전히 네 바퀴 달린 자동차가 돌아다닌다. 70, 80년대만해도 2000년대라고 하면 자기부상차와 화상전화를 그려놓던 걸 떠올렸을 때, 에반게리온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리얼하게, 또 실제와 얼추 비슷한 세계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향후 5년간 세상이 엄청나게 급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만 너무 앞서간게 있다면 앞서 언급한 카드키 정도. 네르프나 에바 등의 오버테크놀로지야 작품을 위한 것이니 논외의 것이고.
반면에 정체된 것이 바로 카세트테이프. 만일 5년 후 블루투스 이어폰이 급속히 퍼져 있다면 저 검정 유선 이어폰의 존재도 멋쩍을 수 밖에.
하지만 말이다. 다 돌아가고 나면 달칵 멈춰버리는 저 아날로그 매체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정겹고 반가운 것은 나만의 감상인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