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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오아시스]졸업식 소동, 농부의 꿈

[오아시스]졸업식 소동, 농부의 꿈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홀을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찍어대는 몽구님에게 물었다. "감 찾았느냐"고. 그는 웃으며 '나이잊은 학구열'에 대해 말했다.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진 이들의 학사모에 포커스를 맞춘 것에 '그대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감'이 있었다.

   
   
 

55. 졸업식 소동, 농부의 꿈

 

4월, 제 철은 아닌 졸업식이었다. 사실 뜬금없이 들어서게 된 졸업식장(입학식 겸)이다. 충남 금산의 다락원에서 펼쳐진 한국벤처농업대학의 8기 졸업식 겸 9기 입학식.

일반 대학보다 인원규모가 아담해서인지 졸업식은 실내에서 펼쳐졌다. 그래도 홀 안이 가득 찬 모습을 둘러보니 무대울렁증 있는 사람들에 있어 단상위에 오르기 힘든건 마찬가지겠거니 했다. 헌데 꼭 그렇지가 않았다.

졸업식은 기존의 것들과 비교해 이질적이다. 확실히, 처음 눈에 띈 것은 학사모를 쓴 이들의 연령. 주름이 패인 이마, 검게 그을린 얼굴들. 학사모를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젊은이들 대신 큰소리로 웃는 것에 거리낌 없는 중년들이 다수를 이뤘다. 농군으로서 자녀를 대학졸업시켰을 부모님 세대들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특이함의 연속이다. 내 졸업식 기억 잠깐 소개할까?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총장 식사 땐 모두 떠드느라 그냥 흘렀다. 교가가 흐를때도 이렇다할 '눈물샘'은 찾기 어려웠다. 그냥 그렇게 친구들과 사진 몇 컷 찍고 개개인의 감회를 들고서 문을 나섰다.

   
  장태평 장관은 이 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당일 선약을 이유로 자리를 비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부터 졸업식, 농민 CF, 블로거기자간담회 등으로 금산에서의 스케줄을 진행했다.  

   
  불세출의 농구영웅 이충희, 배우 최란 씨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그에 비해 이 졸업식은 참 묘했다. 갑자기 (가짜)서커스단이 코미디 공연을 펼치질 않나, 게다가 정운현 테터앤미디어 대표가 갑자기 방문 블로거단 대표로 즉석무대 위에 불려지질 않나(이후 몽구 님더러 '만일 몽구님 이름 불렸으면 어찌했겠냐고 묻자 '어우'하고 손사래를 친다), 정 대표가 말한대로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이 직접 진행을 맡는 졸업식도 처음이었다. 불멸의 농구스타 이충희와 배우 최란 씨 내외가 그간 대학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장관 표창장 수상차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즉석에서 심야 특강 스케줄이 잡혔다. 이를 주도한 민승규 차관은 "내일 난 죽었다"고 밝히기도. 

뭐니뭐니해도 학생들이 직접 꾸미는 축하공연이 하이라이트였다. 세상에 통달할 연령대라선지 성인유머에도 서슴이 없고 입을 크게 벌려 짓는 웃음도 망설임없이 터뜨린다.

   
  나이지긋하신 양반들이지만 이날은 주저않고 몸개그를 선보인다.  

행사 도중 맨앞에서 촬영하던 고재열 독설닷컴 기자가 봉변을 당했다. 공연 중 '1리터의 물쇼'를 펼치던 학생이 동무들은 물론 촬영 카메라 앞에다가도 물을 뿜었다. 분사력이 매우 뛰어나 주위 사람들이 고생 좀 했다.

   
   맨 앞의 이 양반 덕에 고재열 기자의 캐논 450D가 고생 좀 했다.  

무대 종료 후 고 기자는 "어르신들이 잘 노네"라 감탄하기도. 청춘들은 도리어 쑥스러워 나서지 못할 행위예술이건만 이들은 관대하게 이를 받아들인다. '광란'의 졸업식 소동이란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았다.

눈물에도 주저함이 없다. 무대 위 한 학생은 끝나기 전 졸업식 노래에 메이크업이 망가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4년전 나는 내 졸업식에서 이를 보지 못했다. 부족했던 그것을 그녀가 대신 채워주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무대는 뜻밖의 것. 한 선서자 대표에게 '오솔레미오'를 클로징 무대로 청하자 거리낌없이 수준급 가창력을 보여준다. 즉석의 청이 기대밖의 결과로 줄곧 이어지는 건 대중 앞에 용감해질 줄 아는 연륜 때문일까. 이쯤하면 파격적인 졸업식이 아닌가. 

그래도 가장 내 관심사를 끈 것은 아까 밝힌 축하 개그 공연에서 한 출연자의 멘트였다. (알고보니 그는 민승규 차관이더라)

"내 꿈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장래희망을 물어올때 '난 농부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나라를 보는 것이예요.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벤처농업대학으로 오는 거예요."

웃음이 끓던 장내가 잠시 조용해진다. 여기서 난 이들, 고연령의 농민 졸업생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과거 이루지 못한 학구열의 성취가 아님을 짐작했다. 진정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대학(설령 농업CEO의 장이기에 30~40대 이상의 일정 연령대가 유지된다 할지라도), 그리고 나아가 자신들이 있는 농촌에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나고 자라고 지켜가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나더러 '농촌에 와 살지 않겠나'라 묻는다면 솔직한 내 대답은 '싫어요'다. 난 도시에서 자랐고 농군의 삶은 자신이 없다. 도시가 편하고 좋은 것이 내 솔직한 대답이다.

그래서.

저들을 존경할 수 밖에.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